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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실을 다지고 준비를 갖춘다.

이정랑 칼럼 | 기사입력 2019/02/14 [00:54]

내실을 다지고 준비를 갖춘다.

이정랑 칼럼 | 입력 : 2019/02/14 [00:54]

이정랑의 고전소통 실이비지(實而備之)

 

“동서고금을 통해 모든 전쟁은 내가 이기고 상대를 패하게 만든다는 아주 간단한 차원에서 치러져왔다. 책략가의 일차적인 움직임과 역할은 먼저 자기편에게 지지 않는 기초를 세워주는 데 있다. 만약 자기 편 실력이 명백히 적보다 못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심사숙고 하지 않고 무작정 적과 싸우면 그 결과는 빤 할 수밖에 없다.“

 

책략가의 절묘한 계산은 충분한 준비라는 기초 위에서만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따라서 공격이 되었건 방어가 되었건 ‘실이비지’는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계략이다.

 

공격을 준비할 때 상대의 역량이 충실하고 전투력이 강하다면 날개를 접고 힘을 기르면서 시기를 기다려야 한다. 방어 태세에 처한 상황에서 적이 무기를 가다듬고 전군을 정비하여 대외 확장을 꾀한다면, 우리 쪽은 ‘안정되어 있을 때 위기를 생각한 다’는 ‘거안사위’의 자세로 내부를 단단히 다스리고 외침을 막아낼 힘을 길러야 한다.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이런 움직임을 드러내지 않아야 하며, 정치‧외교적 수단으로 적의 공격 시기를 늦추도록 해야 한다.

 

봉건 세력이 할거 하고 열강들이 자웅을 겨루는 와중에서 이 ‘실이비지’는 기회를 엿보며 공격을 기다리는 책략이었다. 그 중에서 ‘비(備)’ 자는 전투를 위한 군비 확충과 실력 증강의 정책뿐 아니라 간첩‧외교 및 각종 침투 수단으로 적국의 경제를 파괴하는 등, 적의 정신 무장을 흩어놓는 책략도 포함한다.

 

 

춘추시대 오나라와 월나라가 서로 다툰 경우를 대표적인 보기로 들 수 있겠다. 오가 강하고 월이 약한 상황에서 오가 허점을 보이기 시작하자, 범려(范蠡)‧문종(文種)은 월왕 구천(句踐)에게 ‘내부(월)를 보강하고 외부(오)를 허술하게 만드는’ ‘내보외설(內補外泄)’의 9대 전략을 제안했다.

 

① 하늘과 땅을 존중하고 귀신을 섬겨 백성의 신앙을 확고히 한다.

② 오나라에 더 많은 재물을 보내 오왕 부차(夫差)의 마음을 교만하게 만들어 그의 투지를 갉아먹고, 내부 간신을 뇌물로 포섭하여 오왕 앞에 서 월에 대해 좋은 말을 하도록 한다.

③ 오나라의 식량을 높은 가격으로 사들여 여분의 식량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한편 국고도 비개 한다.

④ 미녀를 바쳐 왕의 심신을 약하게 만들어 그의 지적 능력을 파괴한다.

⑤ 기술자와 좋은 재료를 오왕에게 제공, 궁정 등 대규모 토목‧건축공사를 일으키게 만들어 국력을 소모시킨다.

⑥ 먹고 마시고 놀기 좋아하는 신하를 오왕에게 보낸다.

⑦ 갖가지 수단‧방법으로 오나라의 간신과 충신 사이를 이간시켜 간신이 득세하고 충신은 배척당하도록 한다.

⑧ 한편 월나라는 부국강병을 꾀하는 동시에 몰래 전쟁 물자를 준비한다.

⑨ 병마를 훈련시켜 오나라를 공격할 시기를 기다린다.

 

구천은 이 건의를 실행에 옮겨 점차 오나라의 실력을 약하게 만드는 한편, 월의 국력을 키워 끝내 오나라를 멸망시켰다.

 

‘실이비지’에서 옛 사람들은 안(자신)을 바짝 졸라매고 바깥(적)을 느슨하게 흩어놓고, 은밀히 자신의 힘을 축적할 것을 특히 강조했다. 상대에게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서는 싸우지도 않으면서 무력을 과시하거나 넉넉하지도 못하면서 넉넉한 척 상대를 현혹시키려는 수법은 절대 피해야 한다. 은밀히 꾀하되 실상을 드러내지 말아야 하며, 상대의 말을 고분고분 따르는 척하면서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쳐들어가도 위험을 비껴가고 후퇴해도 매복에 빠지지 않을 수 있으며, 적이 전혀 의심하지 않는 동안에 자신을 강화할 수 있다.

 

11세기 초, 북송 왕조와 거란 민족이 세운 요(遼)나라는 ‘단연(澶淵)의 맹세’를 체결하고 웅주(雄州-지금의 하북성 웅현)를 요나라와 경계를 이루는 변경의 성시(城市)로 삼았다. 웅주의 북쪽 교외에는 송나라 백성이 꽤 많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주변 성곽이 없었기 때문에 적의 염탐과 빈번한 침입을 막기 어려웠다. 북송 쪽에서는 ‘실이비지’에 뜻을 두고 북쪽 성을 확장하려 했지만, 요나라가 트집을 잡을까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당시의 군사력은 요가 송보다 훨씬 강했을 뿐 아니라 조정의 대신들도 너나 할 것 없이 구차하게 안정만 추구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변경에서 작은 문제라도 생기면 적으로 하여금 무력을 동원하게 만드는 구실이 될 수밖에 없었다.

 

웅주의 방위를 책임지고 있던 지방관 이윤(李允)은 ‘몰래 교묘한 수단을 써서 바꾼다’는 뜻의 ‘이화접목(移花椄木)’의 방법을 활용하기로 했다. 그는 먼저 백은으로 큰 향로를 주조하여 북쪽 교외의 사당 안에 갖다 놓게 하고는, 일부러 지키는 사람을 두지 않았다. 향로는 이내 도난당했다. 이윤은 기다렸다는 듯이 사방에 방을 붙여 도둑에 대한 현상금을 걸었다.

 

‘취옹의 뜻은 술에 있는 것이 아니다’(醉翁之意不在酒. 줄여서 ‘취옹지의’라고도 한다. 술을 마시기 위해 마시는 것이 아니라 술기운을 빌려 산수를 감상하기 위해 마신다는 뜻으로 겉과 속이 다를 때 쓰는 말)는 말이 있듯이 이윤의 의도는 사실 다른데 있었다. 아무튼 이 사건은 온 장안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이윤은 이 분위기에 편승해서 사당의 기물들이 벌써 여러 차례 도난 당했기 때문에 성을 쌓아 지키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말을 흘렸다. 여론의 엄호아래 이윤은 백성을 동원하여 서둘러 북성을 쌓았다. 10일이 채 안 되어 성이 완성되었다. 강적 요나라가 이윤이 성을 쌓는 군사적 의도를 미처 깨닫기도 전에 웅주에는 이미 요와 대적할 수 있는 방어 요새가 구축되었다.

 

이 이야기는 심괄(沈括)의 ‘몽계필담(夢溪筆談)‘에 나온다. 군사적 식견이 상당했던 심괄은 이 사건을 대체로 이렇게 평하고 있다. 기묘한 모략의 오묘함은 사람을 현혹시켜 판단을 어렵게 만드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상식에 부합하는 형식으로 자연스럽게 시행되는 데 있으며, 그것으로 적을 속이는 효과를 얻는 것이라고 말이다.

 

필자 : 이정랑 언론인(중국 고전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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