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만의 참회..6.25와 분단은 일제침략 탓, 사죄하는 일본 천주교

1945년 해방 이후 한국전쟁과 남북분단의 근원에는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의 침략정책의 역사

서울의소리 | 입력 : 2019/03/13 [15:08]
태극기는 없고 일장기와 욱일기만 나부끼던 일제 치하 천주교 조선전례 150주년 기념식. 천주교 홈페이지.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한국 천주교가 과거사를 참회하고 먼저 사과하면서 이웃 일본도 이에 동참했다. 한국 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인 김희중 대주교가 한국 천주교의 입장을 먼저 지난달 20일에 내놓았다. 

 

100년 전 그날, 천주교 교단은 민족의 열망에 동참하지 않았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선 70년도나 80년대에는 명동성당 등을 은신처로까지 내주며 시민과 더불어 독재와 불의의 정권에 맞서 싸우길 주저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천주교 신자들이 일본의 침략전쟁에 협력하도록 촉구한 것과 관련, 일본 천주교에게 큰 책임이 있다는 반성이 나왔다.

 

12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 따르면, 일본가톨릭정의와평화협의회장 가쓰야 다이지 주교는 '3·1 독립운동 100주년을 맞아' 발표한 담화에서 이렇게 인정했다. "올해 3월 1일은 우리 일본 천주교회에도 역사를 직시하고 한반도를 비롯한 아시아인들의 평화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를 다시 물어야 하는 날"이라는 것이다.

 

가쓰야 주교는 "일본 천주교회는 일제강점기에 한국 천주교회에 크게 관여했고, 신자들이 일본의 침략 전쟁에 협력하도록 촉구한 것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게다가 1945년 해방 이후 한국전쟁과 남북분단의 근원에는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의 침략정책이라는 역사가 있다"라고도 했다.

 

가쓰야 다이지 주교.  일본가톨릭정의와평화협의회

 

가쓰야 주교는 한·일 천주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형제자매'로서 과거 일본의 가해 역사를 직시하면서, 문화·종교 등 시민을 통한 다양한 교류를 돈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것이 100년 전 조선의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사람들, 그리고 현재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응답"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3·1 독립선언서는 일본에 대한 비난과 단죄가 아니라, 차별하고 민족의 자기 결정권을 빼앗은 식민지주의의 극복이라는 더욱 숭고한 인류 보편적인 이상 실현의 호소이며 초대라고 봤다.

 

가쓰야 주교는 "이것은 당시 한반도의 국민들뿐만 아니라, 100년 후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세계의 모든 사람이 기억하고 상기해야 하는 내용"이라고 짚었다. 따라서 "우리 일본의 천주교 신자들도 한국 천주교회와 함께 이 '선언서'가 지향하는 지평을 바라보며, 국가보다도 인류, 또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동아시아와 세계의 평화와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기원하자"고 청했다.

 

김희중 대주교, 독립운동 참여 금지.신사 참배 권고 사죄

 

일본 천주교에 앞서 한국 천주교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과거사를 참회하고 사과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는 지난달 20일 발표한 3·1운동 100주년 기념 담화를 통해 “백년 전에 많은 종교인이 독립운동에 나선 역사적 사실을 우리는 기억한다”며 “그러나 그 역사의 현장에서 천주교회가 제구실을 다 하지 못했음을 고백한다”고 밝혔다.

 

잔학한 일제의 통치를 외면한 채 오히려 그들의 일에 협력하도록 권유했던 과거사를 공개적으로 참회하고 반성하는 게 처음이라고 한다. 빼앗긴 강토를 되찾고 겨레의 얼을 회복하려는 붉은 피 낭자한 만세의 현장에 천주교계의 지도자들은 없었다. 오히려 총칼을 앞세운 일제에의 협력을 권유하고 나섰다. 이른바 '천주교의 보속(補贖)'이다.

 

2월 1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종교지도자 초청 3.1운동 100주년 기념 주요기관 대표자 간담회 및 기자회견에서 김희중(왼쪽 세번째)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이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2019.02.11. 뉴시스

 

김희중 대주교는 일제강점기 천주교회의 '신자 독립운동 참여 금지' 조치 등에 대해 "잘못"이라며 사과했다. 김 대주교는 이날 발표한 3·1운동 100주년 기념 담화를 통해 "한국 천주교회는 시대의 징표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채 민족의 고통과 아픔을 외면하고 저버린 잘못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성찰하며 반성한다."고 말했다.

 

김 대주교는 "100년 전에 많은 종교인이 독립운동에 나선 역사적 사실을 우리는 기억한다."며 "그러나 그 역사의 현장에서 천주교회가 제구실을 다 하지 못했음을 고백한다"고 말했다.

 

김 대주교는 "외국 선교사들로 이뤄진 한국 천주교 지도부는 일제의 강제 병합에 따른 민족의 고통과 아픔에도, 교회를 보존하고 신자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정교(政敎)분리 정책을 내세워 해방을 선포해야 할 사명을 외면한 채 신자들의 독립운동 참여를 금지했다"며, "나중에는 신자들에게 일제의 침략 전쟁에 참여할 것과 신사 참배를 권고하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종교계가 주도한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은 천도교 15명, 개신교 16명, 불교 2명이 참여했으나 천주교는 참가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3·1운동 뒤 상해임시정부에선 내무총장 이동녕 선생의 명의로 천주교인들에게만 보내는 ‘천주교 동포여’라는 공포문에서 “전 한족이 다 일어나 피를 흘리며 자유를 부르짖을 때 어찌 30만 천주교 동포의 소리는 없느냐?”고 참여를 호소하기도 했다.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 때 43년간 한국 가톨릭 수장이었던 프랑스 선교사 뮈텔 주교(1854~1933)는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 의사의 천주교 신자 자격을 박탈해 종부성사(죽기 전에 주는 천주교 의식)마저 거부하고, 지시를 어긴 빌렘 신부에겐 2개월간 미사 집전을 금지하기도 했다. 뮈텔은 안중근 의사의 동생 안명근이 데라우치 총독 암살을 꾀하고 있는 사실을 일제 아카보 장군에게 밀고하는 등의 친일 행적을 보였다. 

 

천주교계는 안중근 의사에 대해 1990년대 이후 "일제 치하 교회가 안 의사 의거에 대한 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1993년 김수환 추기경), "안중근 의사는 애국충절뿐 아니라 돈독한 신앙인으로서도 마땅히 존경받아야 할 분"(2009년 정진석 추기경)으로 재평가한 바 있다.

 

 

김희중 대주교는 이날 "한국 천주교회는 과거를 반성하고 신앙의 선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후손이 되어, 한반도에 참평화를 이루고, 더 나아가 아시아와 세계 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기도하며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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