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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연과 김학의 사건이 영원히 묻히길 누가 원하는가?

윤지오, "모진 풍파는 다 내게로 오니 제발 동료 연예인들이라도 관심 가져달라!"

정현숙 | 기사입력 2019/03/18 [08:19]

장자연과 김학의 사건이 영원히 묻히길 누가 원하는가?

윤지오, "모진 풍파는 다 내게로 오니 제발 동료 연예인들이라도 관심 가져달라!"

정현숙 | 입력 : 2019/03/18 [08:19]

누군가는 '장자연 사건'이 영원히 묻히기를 간절히 원해

언론·연예계에 관심 지속 호소

지난 15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열린 검찰 과거사위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및 고 장자연씨 사건 진상 규명 촉구 기자회견'에서 배우 윤지오씨가 발언을 마치고 울먹이고 있다. 노컷뉴스

 

'장자연 재수사' 청와대 국민청원,  닷새 만에 61만 6000명 이상의 참여를 이끌어 내

 

"저는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 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라는 장문의 글을 남기고 장자연 씨는 2009년 3월 7일 지금처럼 꽃망울 피우는 봄의 초입에 돌아올 수 없는 길을 택했다.

 

지금부터 딱 10년 전이다. 2009년 당시 신인배우였던 장 씨는 채 피어 보지도 못하고 서른 살의 꽃다운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당시 유력 언론사 사주와 방송사 PD, 정치계 인사들에게 술과 성 접대했다는 기록을 남겨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이에 그해 8월 수원지검 성남지청 형사3부(부장 김형준)가 폭행 및 협박 혐의로 김모 전 소속사 대표를, 명예훼손 혐의로 유모 전 매니저를 각각 불구속 기소했다. 하지만 성접대와 성상납 명단인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에 오른 10여 명의 유력 인사들은 강제추행 혐의에 대해 모두 무혐의 처분되며 ‘봐주기 수사’ 논란이 발생했다. 그리고 장자연 사건은 사람들의 뇌리 속에 잊혀 갔다.

 

과거 공개된 그의 유서에는 “나를 방에 가둬놓고 손과 페트병으로 머리를 수없이 때렸다. 신인이라 수입이 적었지만, 매니저 월급 등을 모두 부담하도록 했다”고 폭로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접대 의혹 사건’과 ‘고(故) 장자연 리스트 사건’에 대한 검찰·경찰의 부실 수사 정황이 드러나면서 재수사 여론이 커지고 있다. 재수사를 위해서는 공소시효가 남아 있어야 하는데, 두 사건 모두 발생한 지 10년이 넘어 일부 혐의를 제외하고는 수사가 어려운 상황이다.

 

‘성접대 문건’을 남기고 사망한 고 장자연 씨 사건 관련 재수사를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닷새 만에 60만 명 이상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지난 12일 올라온 ‘고 장자연 씨의 수사 기간 연장 및 재수사를 청원합니다’라는 청원은 17일 오후 참여자 60만 명선을 돌파했고, 18일 오전 0시 40분 기준 61만 6000명 이상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흉악범 조두순 출소 반대 청원 참여자 수(61만 5354명)를 뛰어넘었다. 닷새 만에 60만 명을 넘어선 국민적 관심도가 향후에도 이어질 경우 최다 청원으로 기록된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가해자 엄벌 청원(119만 2049명 참여)에 필적할 가능성도 있다.

 

 

국민적 분노가 갈수록 커지는 것은 장 씨 사망 당시 경찰과 검찰의 부실 수사 정황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검찰이 지난해 12월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을 비공개 소환 조사했고, 장 씨가 사망 전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과 수십 차례 통화한 사실이 최근 새롭게 알려지면서 진상조사단 활동기간을 연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 상황이다.

 

장 씨의 동료이자 ‘장자연 리스트’를 목격한 것으로 알려진 윤지오 씨는 지난 15일 여성단체들과의 기자회견에서 “이 사건을 단순 자살이 아니라고 보고 수사한다면 공소시효가 25년으로 늘어난다”며 재수사를 통한 진실 규명을 촉구했다.

 

윤씨는 또 “경찰과 검찰 과거사위 모두 숙제를 풀듯 시간에 한정돼 사건을 다룬다는 건 비통한 일”이라며 “고인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사람들이 법의 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힘을 모아달라”고 호소했다.

 

"유독 언니의 사건이 오를 때마다, 자극적인 보도가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고 용기 낼 수밖에 없었다.” 장 씨의 유일한 증언자 배우 윤지오 씨가 대검찰청 산하 '검찰 과거사 진상조사단(이하 검찰)'에 출석해 참고인 조사를 받은 다음 날, 자신의 SNS에 적은 문구다.

 

윤 씨가 검찰에 출석한 그날(3월 12일)은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하는 정준영 씨를 향해 온 언론의 시선이 쏠린 날이었다. 온라인과 신문, TV 뉴스는 ‘장자연’이 아닌 ‘정준영'으로 도배됐다.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로 불려 온, 고 장자연이 남긴 성접대 명단을 접한 유일한 목격자로 알려진 동료 배우 윤지오 씨가 언론과 연예계를 향해 이 사건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호소했다. 

 

최근 얼굴을 공개하고 장자연 사건 증언자로 나선 윤 씨는 17일인 어제 자신의 SNS에 올린 글에서 "듣보잡 배우라 무시 당하고 연예계에서 왕따인 것도 슬프고 서러운데 기자분들에게마저 외면 당해야 하는 저는 듣보잡 왕따 배우 윤지오"라며 "정확한 보도는 이제 바라지도 않고 인터뷰한 기사만이라도 좀 올려주세요. 제발 부탁드려요"라고 전했다.

 

윤 씨는 이 사건에 침묵하는 연예계에 대한 아쉬운 심경도 드러냈다. 그는 "연예인분들의 응원은 바라지도 않아요. '이러한 사실이 안타깝다' 정도만의 언급도 어려우신 걸까요?"라며 "두려우시겠지만 바람 맞는 건 저잖아요. 무명인 듣보잡 배우보다는 영향력 있는 배우나 가수분들이 '국민 청원에 동참해달라'는 한마디 말씀 SNS에 기재하는 게 그렇게 어렵나요?"라고 적었다.

 

이어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지 알고 있지만 모진 풍파는 다 제게로 오니 좀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라며 "어제 처음으로 여자 가수 한 분이 응원한다고 DM(다이렉트메시지) 받게 됐다. 그분께 정말 큰 감동을 받았다. 하시는 일마다 축복이 따르시길 기도할게요"라고 덧붙였다.

 

또 개그맨 부부 김원효, 심진화 씨가 17일 오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앞서 윤지오 씨가 SNS에 남긴 게시글을 캡처해 게재하며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참여 방법을 몰라서'라는 핑계 죄송합니다. 재수사 응원합니다! 장자연 님이 하늘에서라도 꼭 웃을 수 있게 되길 진심으로 바라요"라고 진심을 전했다.

 

배우 김향기 씨 또한 공개적으로 SNS에 글을 남기지는 않았으나 윤지오가 지난 15일에 올렸던 게시글에 '좋아요'를 누르며 응원의 손길을 건네면서 보이지 않는 두려움에 그동안 침묵했던 일부 연예인이 동참을 했다.

 

누군가는 장자연 사건이 묻히기를 간절히 원한다.

 

자연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버닝썬 게이트'가 등장한 것이라고 할 수 없지만, 윤지오 씨 이야기처럼 비슷한 시기 터진 다른 사건으로 인해, 장자연 죽음이 남긴 숱한 의문을 이대로 내버려둔 채 넘어가선 안 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반면 누군가는 '장자연 사건'이 영원히 묻히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KBS '저널리즘 토크쇼 J'

 

장자연 사건 조사는 사실상 이번이 마지막이다. '장자연 리스트' 등장인물들의 접대 의혹이 상당 부분 규명된다 하더라도, 이미 공소시효는 끝났다. 따라서 처벌 가능성도 낮다. 그러나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또 부실 수사 이면에 수사기관과 거대한 권력이 어떤 식으로 개입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KBS 시사프로 '저널리즘 토크쇼 J'는 진상조사단의 수사결과 발표를 앞두고 10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던 ‘장자연 사건’의 검경 부실 수사와 그에 얽힌 언론의 이야기를 되짚어본다.

 

"조선일보는 정권을 창출시킬 수도 있고 정권을 퇴출시킬 수도 있다." 조현오 폭로

 

이명박 정부 댓글조작 지시 관련 혐의로 재판중인 조현오 전 경기경찰청장이 재직시 장자연 사건 수사를 지휘했다. 그는 당시 조선일보로부터 수사 외압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조 전 청장은 지난해 방송된 MBC 'PD수첩’을 통해 “'우리 조선일보는 정권을 창출시킬 수도 있고 정권을 퇴출시킬 수도 있습니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이어서 (방상훈 사장에게 경찰서에) 들어와서 조사를 받으시라고 하니 (조선일보 간부가) 나한테 와서 정권을 운운하면서 협박하니까 (힘들었다)”며 “방상훈 사장 이름이 거명되지 않게 해달라고 조선일보 측에서 경찰에 굉장히 거칠게 항의해 모욕으로 느꼈고, 정말 협박으로 느꼈다”고 증언했다.

 

조선일보는 이 같은 인터뷰가 나가자 조 전 청장의 인터뷰 내용이 허위라고 주장하면서 조 전 청장에게 3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MBC PD수첩'에도 정정 보도와 함께 역시 3억 원의 손해배상액을 청구한 상태다.

 

장자연이 2009년 3월 7일 사망한 다음 달 4월 25일 자 조선일보는 '조선일보의 명예를 훼손한 49일간의 비방 공격'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의 날 선 문구들로 불만을 표출했다.

 

"일부 언론과 세력들은 수사를 통해 인사의 결백이 밝혀지기 전까지의 기간을 최대한으로 악용해 어떻게든 조선일보와 이 인사의 명예에 상처를 주기 위해 온갖 탈선적 보도와 음해 시위를 벌였다. 이번에 조선일보에 악의적인 명예훼손 공격을 퍼부었던 세력들은 독자를 이어주는 윤리적 신뢰의 고리를 어떻게든 끊어보겠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조선일보는 이 악의적 세력에 대해서는 법적 책임을 엄격히 물을 것이다"

 

'저널리즘 토크쇼 J' 고정 패널 정준희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겸임교수는 “어떤 칼끝이 향하고 있었던 곳이 조선일보 사주뿐만이 아니라, 조선일보의 명예로 향하고 있다는 것은 정황상 느낌이 오기 때문에 이 같은 반응을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장자연 리스트'와 조선일보의 관계를 다룬 언론 보도가 당시 그리 많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조선일보 기자들)이 보인 반응은, 보도량이나 질에 비해 훨씬 더 강했다는 점이 의아하다”라고 지적했다. 도둑이 먼저 제 발 저린 꼴이다.

 

지난 3월 5일 조선일보는 창간 99주년 기념식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방상훈 사장은 "조선일보의 비판을 불편해하는 세력이 조선일보를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공격하고 있다. 우리 스스로가 과거 어느 때보다 높은 윤리의식을 갖춰야 하는 이유"라는 기념사를 낭독했다.

 

하지만 높은 윤리의식을 강조하는 방 사장의 훈시와는 달리 사주 일가의 일탈 행위(방용훈 부인 이미란 씨 자살, 손녀 운전기사 폭언 사건)과 박수환 문자로 드러난 자사 기자들의 금품 수수 행각, 기사 거래 의혹들, 과거 친일 행적, 5.18 왜곡 보도 논란에 대한 사과나 언급은 일절 없었다.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창간 99주년 기념사� 중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창간 99주년 기념사’ 중

 

정준희 교수는 이에 대해 "방상훈 사장의 기념사와 김대중 전 주필의 칼럼이 일맥상통한다고 본다. 상당히 많은 조선일보 기자가 조선일보의 운명과 사주 일가의 운명과 자신들의 운명을 상당히 일체화해 살아온 측면이 있었을 것으로 본다. 조선일보라는 우리나라의 거대 언론사가 언론의 기능을 하는데 장애가 일어나는 것이 이 때문이다. 내부에서 이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작업을 선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학의·장자연' 재수사해도..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 어려워

 

‘고(故) 장자연 리스트 사건’과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접대 의혹 사건’에 대한 검찰·경찰의 부실 수사 정황이 드러나면서 재수사 여론이 커지고 있다. 재수사를 위해서는 공소시효가 남아 있어야 하는데, 두 사건 모두 발생한 지 10년이 넘어 일부 혐의를 제외하고는 수사가 어려운 상황이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현 변호사)은 2013년 7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특수강간(2인 이상이 범죄실행을 분담해 성폭행한 경우) 혐의를 받고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됐다. 증거물인 ‘강원도 원주 별장 성접대 동영상’은 2009년 무렵 촬영된 것으로 추정됐다.

 

당시 경찰 판단처럼 그에게 특수강간 혐의를 적용할 경우 재수사가 가능하다. 범죄 시점인 2009년부터 특수강간죄의 공소시효인 15년을 적용하면 2024년에 시효가 만료된다. 다만 김 전 차관이 성 접대 받은 것을 형법상 알선수뢰 혐의로 볼 경우 공소시효는 5년에 그친다.

 

알선수뢰는 공무원이 지위를 이용해 다른 공무원의 직무에 관련해 뇌물을 수수·요구·약속하는 범죄다. 앞서 경찰은 김 전 차관을 알선수뢰 혐의로 수사하던 중 공소시효가 만료됐다고 판단, 특수강간죄만 적용했다.

 

고 장자연 리스트 사건은 어떤 혐의를 적용해도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돼 가해자 처벌로 이어지긴 어렵다는 평가다. 형법상 강제추행,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성매매알선처벌법)’상 성매매알선은 이 사건에 적용 가능한 혐의 중 공소시효가 가장 길지만 10년에 그친다.

 

경찰이 강제추행 혐의를 특정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사건은 2008년 8월 발생했다. 지난해에 이미 시효가 끝나 재수사가 불가능하다. 술자리 접대를 받은 남성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강요죄(공소시효 7년), 성매매알선처벌법상 성매매(공소시효 5년) 혐의도 시효가 지났다.

 

장씨 사건과 관련해 강제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유일한 인물은 조모(50) 전 조선일보 기자다. 그는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과거사위)의 권고를 받은 검찰의 재수사로 지난해 6월 불구속 기소됐다.

 

장자연 사건은 거대 언론 조선일보가 연관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고 전 법무차관 '김학의 집단강간 사건'은 박근혜 정부 당시 법무부 장관이던 자한당 황교안 대표와 민정수석 곽상도 의원의 개입이 불가피한 정황이다. 이번에 분명하게 그들의 입장을 명명백백 밝혀 장자연의 억울한 원혼을 달래고 젊은 청춘을 고스란히 짓밟힌 여성들에게 뼛속 깊이 뉘우치며 사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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