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평 변호사 “양승태는 억울한 사람이다?”

'법원을 법정에 세운' 재임용탈락 1호 판사

서울의소리 | 입력 : 2019/04/14 [22:33]

 

 

4월 19일부터 한 달간 대학로 드림아트센터(3관)에서 한 편의 연극이 공연된다. 극단 ‘청산’의 창단 작품인 ‘법원을 법정에 세우다(신성우 극본·박장렬 연출)’이다. 사법농단에 맞서는 현실 법정극이다. 법정극은 TV드라마나 영화의 단골 소재지만 이렇게 연극무대에 오르는 것은 이례적이다.

 

이 연극의 원작자는 신평 변호사(63)다. 그가 지난해 10월 쓴 <법원을 법정에 세우다>가 이 연극의 원작이다. 연극 시나리오를 본 신 변호사는 “항상 원작자는 불만이라고 한다”면서 “사법농단의 실체를 좀 더 잘 표현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 아쉬움은 ‘즐거운’ 아쉬움이었다. 시나리오 작가는 법조인이 아니니까. 

 

‘법원 법정에 세우다’ 신평 변호사 인터뷰.  /이상훈 선임기자

‘법원 법정에 세우다’ 신평 변호사 인터뷰. /이상훈 선임기자

 

-어떻게 자신의 책이 연극으로 만들어지게 됐나. 

 

“나는 연극 올리는 것에 구체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 극단에서 연극으로 만들겠다고 해서 좋다고 했을 뿐이다. 연극을 만든 극단과 <저널인미디어>는 지난 촛불혁명 정신을 이어받기 위해 창립했다고 한다. 이들은 적폐 가운데 가장 극명한 적폐가 바로 사법적폐라고 봤다. 그들은 사법적폐 청산에 초점을 둔 내 책을 보고 연극을 기획했다고 한다.” 연극 ‘법원을 법정에 세우다’ 원작자 

 

-법정 드라마가 연극으로 만들어지기는 아마 처음 아닐까. 

 

“내가 연극분야는 잘 모르지만 한 사람을 모델로 대본을 쓰고 연극을 공연하기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물론 이 연극을 통해 사법적폐가 해소될 것이라 보지 않는다. 하지만 이 연극으로 사법개혁의 작고 다양한 기폭제 역할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연극의 원작 <법원을 법정에 세우다>를 쓴 이유와 말하고 싶은 얘기는 무엇인가.

 

“설명하기에는 너무 길다. 다시는 이런 억울한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염원을 담았다. 촛불혁명을 전후해 핍박받는 한 인간 의식의 각성 과정이다.” 

 

그의 책 <법원을 법정에 세우다>는 일종의 ‘고해성사’다. 2015년 1월 18일 일기로 시작한다. 그는 “오늘부터 일기를 쓰기로 했다. 가슴이 쓰린 나날이다. 그럴수록 이 쓰린 순간들을 기록으로 남겨 둘 필요성을 절감한다. 그래야 이 쓰린 순간을 딛고 일어서는 미래의 이정표로 삼을 수 있을 테니까”라고 적었다. 일기는 2018년 5월 15일 “상고 기각 판결이 선고되었다. 천길만길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멍했다. 참담하다. 어떤 글로 써도 내 심정을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로 끝난다.

 

신평 변호사는 판사 출신의 로스쿨 교수였다. 법에 관해선 평생 ‘전문’이고, ‘생활’이었다. 그는 2014년 8월 대학 총장의 부당한 인사를 비판하는 글을 학교 게시판에 올렸다. 한 교수의 성매매, 투서, 3년간 동료를 괴롭힌 사실 등을 비판하는 글이었다. 해당 교수는 그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고, 지루한 소송 끝에 ‘의도적’ 판결로 그는 패소했다. 

 

그는 1990년 판사 시절 일본 유학 경험을 담은 <일본 땅 일본 바람>이라는 책을 썼다. 이 책은 현대 일본 사회를 연구하는 책 5권 중 하나로 꼽히며 베스트셀러가 됐는데, 이 책에 일본 사법부와 비교해 한국 판사의 일탈행위를 비판하는 대목이 들어 있었다. 선·후배 판사들의 “너만 잘났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이때 한 주간지가 사법개혁에 대한 글을 청탁하자 그는 작심하고 판사실에서 공공연하게 돈봉투가 도는 실태를 폭로했다. 

 

그는 사법부 정풍운동을 벌였다. 집요하게 사법개혁을 외쳤지만 세상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법조계는 오히려 그를 ‘돈키호테’나 ‘이단아’ 정도로 치부했다. 결국 1993년 사법부는 그를 재임용에서 탈락시켰다. 법관의 재임용 탈락은 1987년 헌법 시행 이후 처음이었다. 인권의 마지막 보루라는 사법부마저 내부고발자를 용납하지 않았다. 아니 사법부는 일반인보다 훨씬 ‘더럽고 치사하게’ 가짜뉴스를 조작해 그를 재임용에서 탈락시켰다. 그런 ‘전과’를 가지고 로스쿨 교수로 온 그는 2016년 <로스쿨을 위한 로스쿨>이라는 책에서 로스쿨의 부정입학 문제를 또다시 폭로했다.

소작농의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그는 문재인 정부 들어 대법관에 추천됐다. 하지만 검찰과 사법부는 질질 끌어오던 명예훼손 재판에서 그를 ‘유죄’로 선고했다.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최근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사건에서 보듯이 사법부는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제왕적’ 존재다. 기자가 ‘드러난 사법농단 문건에서 가장 심각한 것이 무엇인가’라고 묻자 그는 “드러난 그 문건에서 ‘있을 수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대답했다. 이렇게 말하는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양승태 사법농단이 대수롭지 않다는 것인가. 

 

“솔직히 나는 양승태씨는 좀 억울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억울한 사람이다?(기자는 이해되지 않는 표정으로 그를 보며 반문했다)

 

“(웃음) 역설적으로 양승태씨는 과거 해오던 대로 했을 뿐이다. 우리 사회에서 돈 있고, 힘 있고, 빽 있는 사람은 누구나 재판을 움직일 수 있었다. 행정처에 부탁하든 대법원장, 대법관에게 부탁하면 다 통했다. 해당 지방법원장이 재판장을 불러 ‘이렇게 하면 좋지 않겠나’라고 얘기하는 것은 너무나 보편적 현상이었다.” 

 

-로스쿨 교수 사회를 폭로하면서 “박완서가 6·25 참상 보고 ‘세상의 똥구멍’을 보았다고 했다, 나는 60이 넘은 이 나이가 되어 그것을 보게 된 것이다. 이것은 정말 ‘세상의 똥구멍’이다”(책 256쪽)라고 썼다. 또 다른 기고에서 사법부를 ‘조직폭력배 중 최고의 강력한 조직폭력배들이 사법부’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책에는 그리 썼다. 그런데 내가 조폭이라고 말했나? (웃음) 그리 말한 기억이 안 난다. 그러나 ‘거친 권력’이었다. 걷잡을 수 없이 거친 권력이다.” 

 

-사법부가 왜 거친 권력이 됐나. 

 

“대법원장의 권한이 너무 강한 이유도 있지만, 원인이 꼭 대법원장 한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기득권화한 거대한 사법권력이 우리 사회를 움직여온 것이다.”

 

-우리 사법부가 거대 권력이 된 이유는 권위주의 시절을 겪으며 ‘사법독립’만 강조되다 보니 대법원이 제왕적 구조가 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맞다. 나는 <한국의 사법개혁>이라는 책에서 사법 독립만 강조해서는 법관의 부패로 직결되고 과도한 권력집중 위험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요즘 세계 트렌드는 사법 독립과 함께 사법 책임을 강조한다. 독립과 책임 양대 축으로 공정한 재판을 실현하자는 것이 현대 법학의 조류다.”

 

-어떤 방식으로 사법 책임을 강조해야 할까.  

 

“배심원제를 확대해야 한다. 지금의 국민참여재판제도는 껍데기뿐이다. 또 우리 실정에서 사법부와 검찰을 견제하기 위해 공수처(고위공직자수사처)는 필수적이다. 검사·판사의 비위를 막으려면 징계위원회 제도만이라도 제대로 하면 된다. 검사·판사 진정이 접수되면 신속하게 징계절차를 밟도록 해도 엄청난 변화가 올 수 있다.” 

 

최근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에서 보듯이 사법권력의 ‘저항’도 만만치 않다. 특히 이들을 단죄할 곳도 기존 사법부다. 이 재판부가 사법정의를 실현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그래서 특별재판부를 구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사법부는 ‘위헌’이라는 주장을 편다. 이에 신평 변호사는 “우리 헌법에 법관의 자격을 가진 사람이 재판하면 된다고 돼 있어 한시적으로 법관 자격을 부여하면 된다”면서 “이는 별도 입법도 필요 없어 특별검사 임명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고 일축했다. 그는 “대법원장이 결심만 하면 된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신 변호사는 김명수 현 대법원장에게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김 대법원장은 취임 후 한 번도 ‘공정한 재판’이라는 말을 하지 않고, ‘사법부 독립’만 얘기하고 있다”면서 “말로 나타난 그 사람의 속심은 ‘지금 소나기가 오니 좀 피하자’, ‘기득권을 내놓지 못하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신 변호사는 1956년 대구 출신이다. 그의 말대로 “부모 양계 모두 임진왜란 때부터 대구에서 살아온 토박이”이다. 부모는 ‘송곳 꽂을 땅도 없는’ 소작농이었다. 그는 가난한 소작농의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학창시절 그는 문학이나 역사 쪽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문학상을 받았고 현재도 문인협회 회원이다. <경주신문> 편집위원장과 포항MBC 시청자 위원 등 언론에도 관심이 많다.

 

대구의 명문 경북고를 나온 그는 1974년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다. 그는 “우리 때 시골학교에서는 1등에서 몇 등까지 서울대 법대, 다음은 서울대 영문과 등 선생님이 학교·과를 정해줬고, 그렇지 않으면 대학원서를 써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적성에 맞지 않은 법대에 간 그는 이 시절을 ‘비참한 생활을 한 시기’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법원 법정에 세우다’ 신평 변호사 인터뷰.  /이상훈 선임기자

‘법원 법정에 세우다’ 신평 변호사 인터뷰. /이상훈 선임기자

 

TK 모임 간사 경력 “부끄러운 기억” 


“법은 강자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도구로 기능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법서를 읽을 수 없었다. 막걸리를 잔뜩 마셔야 겨우 법서를 읽을 수 있었고, 그나마 헌법책만 봤다. 이런 내가 연로하신 부모님에게 효도하기 위해 고시공부를 해야 했다. 내가 학생운동을 하면 부모님을 배신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죽기보다 싫은 비참한 생활이었다.”

 

당시 그가 사귀던 사범대 여학생은 운동권으로 ‘위장취업 1세대’였다. 그 여학생은 교사가 됐지만 1979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남민전) 사건으로 구속됐다. 남민전 사건이란 RO(혁명조직)가 도시게릴라전으로 국가를 전복시킨다는 얼마 전 이석기 내란음모사건과 비슷했다. 그러나 2006년 민주화보상심의위는 남민전 사건은 모두 조작됐으며 관련자를 민주화운동가로 인정했다. 그는 사귀던 여학생을 살리기 위해 서울대 안전기획부(현 국정원) 파견사무실로 김만복씨(후에 국정원장이 됨)를 찾아가 눈물로 사정하기도 했다. 

 

신 변호사는 사법시험에 합격해 1983년 인천지방법원에서 판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서울가정법원·대구지방법원 등을 거치며 ‘잘나가는’ 판사로 꼽혔다. 당시 전두환·노태우의 대구·경북(TK) 정권에서 경북고와 서울대 법대는 출세의 보증수표나 다름없었다. 그는 “감사원장, 군부의 별자리 등 당시 TK 출신이 대단했다”면서 “내가 그 TK 모임 간사를 했는데 이 모임에 가입하기 위해 별도로 부탁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부끄러운 기억”이라고 말했다.

 

잘나가던 판사, 대우받는 로스쿨 교수 등 ‘마음만 고쳐먹었으면 기득권을 누리고 편하게 살았을 텐데, 왜?’라는 질문을 했다. 이에 그는 “글쎄…, 평등하게 사는 삶을 희구했기 때문인가…”라고 말했다.

 

요즘 그는 다시 바쁘게 산다. 법무법인 ‘사람들’을 만들어 자신과 같이 억울한 사법피해자를 돕기 위해 나선 것이다. 그는 “우리 사회의 사법피해자들이 피를 토하듯이 절규하고 있다”면서 “이 어둠을 밝히자는 것이 우리 로펌의 목표”라고 말했다. 오는 5월 초 개소할 ‘사람들’은 인권·노동권은 물론 트라우마를 해소하는 연구소 사업도 구상하고 있다. 

 

연극 법원을 법정에 세우다 제작발표회/극단 청산

연극 법원을 법정에 세우다 제작발표회/극단 청산

 

그는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 중앙선대위 위원장 등으로 선거를 도왔다. 기자의 ‘정치를 하려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웃으며 “그럴 리가 없을 것”이라고 부인했다. 인터뷰 마지막으로 다시 ‘대구에 출마하지 않겠는가’라고 질문하자 그는 “오랫동안 경주에서 농사를 지었다”면서 “인생 마지막도 농사꾼으로 마치겠다”고 거듭 답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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