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에 명시된 '경자유전의 원칙'은 어디로 가고 대한민국 국회의원 1/3이 ‘농부’

'PD수첩' 국회의원 법의 맹점 이용한 농지 소유 투기 흔적.. 생활 터전 잃는 농민들의 절규

정현숙 | 입력 : 2019/06/19 [09:07]

 국회의원들의 수상한 농지 소유 투기 흔적.. 3명당 1명이 농부? 농지 이용 실태

 

18일 방영 된 MBC' PD수첩' 화면 

 

우리나라 헌법 제121조에는 농사를 짓는 사람만 농지를 소유할 수 있다는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이 명시되어 있다그런데 ‘2018년도 국회의원 재산변동사항 신고 내역에 따르면 국회의원 289(2018년 재산공개 기준중 97명이 농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18일 밤 MBC 'PD수첩'에서는 국회의원 소유 농지 실태를 조명한 '의원님 농촌투자백서' 편으로 꾸며 졌다. 2019년 현재, 대한민국 국회의원 1/3이 ‘농부’다. 2018년 3월 공개된 국회의원들의 재산변동사항 신고 내역을 분석한 결과, 97명의 국회의원(배우자 명의 포함)이 농지를 보유하고 있었다.

 

국회의원 정수가 300명인데  3명당 1명이 농사를 짓는 ‘농부’라는 것이다. 국정운영에 바쁜 국회의원들이 직접 농사를 지을 시간이 과연 있을까? 법의 맹점을 이용해 농지를 소유하고 투기대상으로 이용해 왔다는 의혹을 받는 국회의원들의 농지 이용실태를 낱낱이 파헤쳤다.

 

PD수첩은 국회의원들의 재산내역 중 토지, 그중에서도 농지 현황을 전수 분석했다. 전국에 분포된 국회의원의 농지는 총 674,278㎡. 20만 평을 초과하는 규모로, 상암 월드컵경기장의 3배에 달한다.

 

그중 137,831㎡(41,693평), 4만평이 넘는 땅이 자유한국당 박덕흠 의원의 소유다. 박 의원의 배우자 최 모 씨는 2005년부터 2014년까지 수년에 걸쳐 강원도 홍천군 구만리 일대에 가시오갈피 등의 농사를 짓겠다는 농업경영계획서를 제출하고 농지와 임야를 사들였다.

 

마을주민들에게는 가시오갈피 농장으로 인한 일자리 창출을 약속했다. 뒤늦게 골프장 건설 계획을 알게 된 마을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하자 최 씨가 소유한 ‘A’ 레저 측은 용역을 동원하고 주민들에게 약 11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결국 강원도가 사업계획 승인을 취소했다. 박덕흠 의원의 부인이 대주주인 ‘A’ 레저 측은 강원도지사를 상대로 처분취소 소송을 제기했고 2015년 대법원의 판결에서 승소했다. 다시 골프장을 건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최 씨가 제출한 철원군 농지의 농업경영계획서에 따르면 해당 농지에선 가시오갈피가 재배돼야 한다. 그런데 그 자리엔 엉뚱하게도 골프장 사업이 추진됐다. 인근 주민들은 10여년간 저항했지만 2015년, 대법원은 결국 박덕흠 의원 측의 손을 들었다. 이제 철원군 구만리 농지에는 합법적으로 골프장이 들어설 수 있게 됐다. 마을 주민들은 12년 전의 악몽이 되풀이될까 봐 불안해하고 있다.

 

MBC 'PD수첩'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 '오이밭에서는 신발 끈을 고쳐 매지 말라'는 속담이 무색하다. 국민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국회의원이 사익을 위해 개인의 농지를 매입한 직전과 직후, 인근 지역에 개발 호재가 불거나 신규 사업이 추진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의원들이 소유한 농지의 인근 주민들은 하나같이 의원이나 배우자가 직접 농사를 짓지 않는다고 증언했다. 

 

심지어 의원의 농지를 경작하고 있다는 지역민을 만나 이들이 어떻게 법의 맹점을 이용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농지를 소유한 97명의 의원 중 45명의 의원들은 본인이 속한 지역구에 농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본인의 지역구에 농지를 소유한 의원들의 땅과 공약의 연관성을 살펴봤다. 

경기도 안성이 지역구인 자한당 김학용 의원은 2008년부터 고삼호수 수변개발 사업과 서울~세종 고속도로 고삼호수 휴게소 유치를 위해 노력했다. 고삼호수휴게소 설치가 공표된 1년 뒤인 2017년, 김 의원은 고삼저수지 인근 농지를 매입해 주택을 건설했다. 제작진이 방문했을 때 그곳에는 이동식 주택이 지어져 있었다. 

인근 주민들과 부동산 관계자들에 따르면 김 의원이 농지를 매입했을 때보다 호가는 2배가량 뛰었다고 한다. 심지어 부동산에서는 국회의원도 매입한 땅이라고 홍보를 하는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김학용 의원은 지역개발정책과 자신의 농지매입은 아무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2004년 1월, 민주당 유동수 의원의 부인 정모 씨는 지인과 공동으로 인천시 계양구 다남동에 3528㎡ 크기의 농지를 매입했다. 농업경영계획서에는 ‘벼 및 고등채소’를 재배하겠다고 작성했지만 의사인 정 씨는 이곳에서 농사를 짓지 않았다.   

임차농을 두고 대리 경작을 하다가 2016년 다세대주택을 건축했다. 이 과정에서 마을주민들과의 트러블이 생겼다. 그러자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는 마을주민들의 민원을 해결하기 위한 공약을 신설하기도 했다.

 

국회의원들의 농지 소유 중 자기 지역구의 농지를 매입한 의원은 45명. 1996년부터 시행된 농지법에 따르면 ‘농사를 직접 짓는 농민만이 농지를 소유할 수 있고(제6조), 농지를 매입할 때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기재한 ‘농업경영계획서’도 제출해야 한다(제8조). 또한 농민이라면 1년에 90일 이상 의무적으로 농사를 지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완전히 달랐다. 국회의원들은 땅을 사놓고 방치하거나, 적법 절차를 통하지 않고 대리경작을 하기도 했다. 방치된 농지, 버려진 농작물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는 인근 농민들도 있었다. ‘농업경영계획서’는 말 그대로 ‘계획서’일 뿐, 이행을 강제할 수 있는 장치는 없었다. 손이 많이 가지 않는 조경수를 심어두고서 농지를 활용했다고 주장하는 의원도 있었다.

 

국회의원들의 농지는 자기 농사를 짓기는커녕 대부분 올바른 쓰임을 하지 못하고 방치됐다. 토지의 용도가 변경되어 개발부지가 되거나 건물이 들어섰다. 그러는 동안 농업이 생업인 주민들은 밀려나고 있다. 

 

농지가 투기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헌법과 농지법이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을 명시했다. 그런데도 의원들의 사리사욕은 경자유전의 원칙을 넘어선 법의 허점을 기막히게 비집고 들어갔다. 통계청이 지난 4월 발표한 농림어업조사에 따르면 2018년 말 기준, 전년 대비 농가는 2%, 농민은 4%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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