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억대 친일 재산 중 찾은 건 땅 1평.. 국가, 친일파 이해승 땅 소송 사실상 패소

10여년 걸친 재산 환수 소송에서 이해승 땅, "197만1000㎡ 중 4㎡만 국고 환수" 판결

정현숙 | 입력 : 2019/06/26 [17:18]

광복회 "국민의 건전한 양식과 정의관에 반하는 판결" 개탄스러워

 

친일재산 국가환수 촉구 집회 광복회가 2010년 12월 23일 집회를 열어 조선왕족 이해승의 친일재산 국가환수 패소 판결에 항의하는 모습.  연합뉴스

 

강산도 변한다는 10여년에 걸친 소송에서 국가가 되찾을 수 있었던 건 오로지 한평 남짓한 땅이었다. 친일파 이해승에게 손자가 물려받은 땅 197만 1000㎡ 중 고작 4㎡만을 환수하라고 판결한 것이다.

조선 왕족 출신인 친일파 이해승이 유산으로 남긴 당시 시가로 수백억대의 땅을 국가에 귀속시키겠다며 대한민국 정부가 그 후손에게 낸 소송에서 또다시 패소했다. 후손의 땅 소유권을 전부 인정했던 1심 판결이 사실상 그대로 이어졌다.

 

26일 서울고등법원 민사13부(김용빈 부장판사)는 국가가 이해승 손자 이우영 그랜드힐튼호텔 회장을 상대로 낸 소유권이전등기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원심 대부분을 인용했다. 다만 원심판결 가운데 일부를 깨고 토지 1필지를 국가에 이전하라고 선고했다.

 

이해승은 1910년 한일 강제병합 이후 일본으로부터 조선 귀족 중 최고 지위인 후작 작위를 받은 인물이다. 철종의 아버지인 전계대원군의 5대손으로 1928년에는 일제 식민통치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공으로 쇼와대례기념장을 받은 것을 비롯해 1941년에는 자발적 황국신민화 운동을 위한 단체인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으로 활동했다.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는 2007년 이해승을 친일재산귀속법이 규정한 ‘한일합병의 공으로 작위를 받은 자’로 보고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목하면서 정부는 이해승의 손자 이우영 그랜드힐튼 호텔 회장이 상속받은 수백 개 필지를 친일재산으로 지목해 국가에 귀속시켰다

 

이 땅은 197만 1000여㎡로 당시 시가로도 322억 원대의 가치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친일파 168명에 대한 환수대상 땅 중 가장 넓고 비싼 땅으로 전해졌다.

 

앞서 이 같은 처분에 불복한 이해승의 손자 이우영 회장은 국가귀속 처분을 취소하라며 위원회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고, 친일재산귀속법의 허점을 파고들어 2010년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친일재산귀속법은 재산 귀속 대상을 ‘한일합병(국권침탈)의 공으로 작위를 받거나 이를 계승한 자’라고 규정했는데, 이해승의 손자는 “후작 작위는 한일합병의 공이 아니라 왕족이라는 이유로 받은 것이므로 재산 귀속 대상이 아니다”라는 논리를 폈다. 

 

말이 일부승소 판결이지 내용은 사실상 완패다. 재판부는 이 회장이 물려받은 땅 중 고작 4㎡의 소유권만을 국가에 넘기라고 판결했다. 환수 대상이 된 필지는 소송 대상이 된 138필지 가운데 하나로 충북 괴산군에 있는 수로 4㎡에 해당한다.

 

나머지 토지에 대해서는 원심과 동일하게 이미 확정된 판결의 소송 대상이었으므로 개정 법 부칙에 따라 국가 귀속 의무가 없는 친일재산귀속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 회장이 당시 소송에서 땅을 되찾을 수 있었던 건 친일재산귀속법(친일 반민족 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상 토지귀속 규정의 요건 덕택이었다. 개정 전 친일재산귀속법은 '한일병합에 공을 세워서 작위를 받았다는 등 사정이 인정된 자'의 재산을 귀속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었다.

 

당시 법원은 ‘이해승은 한일합병(국권침탈)의 공이 아니라 황실의 종친이라 작위를 받은 것이고 관련 필지도 일제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한 재산이 아니다’라는 이 회장 측 주장을 받아들여 이같이 판단했다.

 

비난 여론이 들끓자 국회는 확정판결 이후 2011년 5월 친일재산귀속법에서 ‘한일합병의 공으로’라는 부분을 삭제했다. 한일합병(국권침탈)에 공이 있는지를 불문하고 일제 식민통치에 적극 협력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목된 이들에게서 재산을 국고로 환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아울러 개정법을 소급 적용할 수 있다는 부칙도 신설했다.

 

정부는 대법원의 2010년 판결이 절차상 잘못됐다며 개정 친일재산귀속법(친일 반민족 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해당 토지는 정부 소유라며 지난 2015년 이 회장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땅 소유권이전등기를 정부에 넘기고 이미 처분한 토지 대금을 반환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국가가 재심 청구 기간(사유 발생일로부터 30일)을 넘겨 이의를 제기했다며 2016년 12월 청구를 각하한 바 있다.

 

이 회장 측은 해당 토지가 개정 친일재산귀속법 부칙인 '확정판결에 따라 이 법의 적용대상이 아닌 것으로 확정된 경우'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친일재산조사위원회가 국가 귀속 결정을 했지만 2010년 대법원 확정판결로 토지의 국가 귀속 결정이 취소된 이상 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1심 법원은 이 회장의 주장을 받아들여 정부 전부패소 판결을 했다. 2심 법원 역시 확정판결로 국가에서 되찾은 토지에 대해선 친일재산귀속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이 회장의 항변을 받아들여 법원은 정부가 이 회장에게 이전을 청구한 토지들 가운데 이 회장이 대법원에서 2010년 확정판결로 되찾은 토지를 제외한 땅 4㎡만을 국가에 반환하라고 판단했다.

 

부당 이득 환수 대상이 된 토지는 이 회장 측이 반민족규명법과 친일재산귀속법이 발의·제정된 2004년 4월∼2005년 1월 집중적으로 처분한 땅이다. 

 

이 회장은 이번 소송에서 '이미 처분한 땅의 대금을 토해내라는 건 시효가 지나 인정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재판부가 이번에 환수 결정을 내린 1필지는 당초 국가귀속 대상 토지에 포함되지 않은 땅이다. 재판부는 다만 이 회장이 이미 처분한 부동산의 매각대금 중 3억5천여만원은 국가에 환수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친일재산 귀속법의 목적은 헌법적으로 부여된 당위"라며 "친일재산을 국가에 귀속시켜야 할 공익상의 필요가 피고가 입을 불이익을 정당화하는 것 이상으로 압도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친일반민족행위자인 이해승이 친일재산을 보유하고 대대로 부귀를 누리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고, 그 손자인 피고도 일제강점기하 이해승의 행적과 재산을 취득한 경위, 경과를 잘 알고 있다"며 반환하는 것이 맞는다고 지적했다.

 

이런 판결이 나오자 이번 소송의 정부 측 보조 참가신청인인 광복회 측 소송대리인 정철승 변호사는 “최종심인 대법원이 국가와 사회의 역사적 정의를 바로 세워주길 간곡히 호소한다”며 즉각 상고 의사를 밝혔다. 

 

정 변호사는 또 “거물 친일파는 단죄되지 않는다는 70여 년 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의 실패를 떠올리게 하는 참담한 판결”이라며 “친일재산귀속법과 그 개정법률의 취지가 친일파 후손들에게 면죄부를 주겠다는 것이 아닐 텐데 재판부가 부당한 판결을 내렸다. 순국선열들께 고개를 들 수 없는 참괴한 판결이 내려져서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얼마든지 합리적인 해석을 통해 역사적 정의를 살리는 판결을 내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건전한 양식과 정의관에 반하는 판결을 내렸다”고 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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