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채호 선생 자부 이영훈·주옥순에 일침.. "한국쌀 먹고 어떻게 그런 짓을!"

'반일 종족주의' 이영훈·'아베에 사죄' 주옥순 친일 행각 비판.. "일본보다 이런 친일파가 더 문제"

정현숙 | 입력 : 2019/08/17 [08:43]

독립운동가 며느리의 친일 매국노 향한 일침

 

단재 신채호 선생 며느리 이덕남 여사. 연합뉴스

 

"우리나라 친일파가 더 문제예요. 1945년 8월 15일 이후 친일파가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게 오늘까지 이어졌어요." 

 
"한국 땅에서 나는 쌀알을 먹고 살면서 어떻게 그런 짓 하나"라며 "내가 나이 먹어 그렇지 60세만 돼어도 가만히 안 둔다"
 

항일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1880∼1936) 선생의 며느리 이덕남(76) 여사는 지난 15일 광복절 날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경제보복을 단행한 일본보다 친일 논란을 빚는 국내 일부 인사들의 무분별한 친일 행각이 더 못마땅하다며 단단히 일침을 가했다.

 

이 여사는 '반일 종족주의' 대표 저자로 일본군의 위안부 성노예화와 강제징용을 부인하는 내용을 담아 논란이 된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사죄한다"고 발언한 주옥순 엄마부대봉사단 대표를 거론하며 "일본놈보다 더 심하다"고 비판했다.

 

이 여사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둘째 아들로 1991년 작고한 신수범 선생의 부인이다. 단재의 중국 베이징 망명 시절 태어난 남편은 '돌'이 될 무렵인 1922년 어머니와 한국으로 돌아왔다. 시아버지 단재는 독립운동에 참여하다 체포돼 중국 뤼순(旅順) 감옥에서 복역 중 1936년 숨졌다.

 

독립운동가를 남편으로 뒀던 시어머니인 박자혜 선생은 산파 일을 하며 가족 생계를 책임졌다. 그 역시 간호사들의 독립운동 단체인 간우회(看友會)를 조직해 활동할 정도로 독립운동에 열성적 인물이었다.

 

이 여사는 "시어머니도 너무 고생을 많이 하셨지만 대단하셨던 분"이라며 "남편은 아버지가 독립운동가인 줄도 모르고 지내다가 13살이 돼서야 어머니께 물어봤다. 어머니가 싸릿대로 한참 때린 뒤 '오늘 이후 아버지 이름을 입에 올리면 혓바닥을 끊어버리겠다'고 다짐받은 후에야 아버지에 대해 얘기해줬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이 여사는 또한 독립유공자 대우를 소홀히 하는 국가에 대한 한마디도 잊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처우가 많이 개선됐지만 이 여사의 눈에는 아직도 미진한 부분이 있음을 가늠하게 하는 부분이다.

이 여사는 "현충원에 가보면 17만명이나 되는 무후(無後·자손이 없음) 유공자들이 있다"며 "그분들은 실제로 자손이 없어서 그렇기보다는 호적·국적이 없기 때문에 자손과 연결고리가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단재도 무국적이었지만 2009년에서야 국적을 회복한 바 있다. 1912년 일제가 식민통치를 위해 호적제를 개편했고, 이에 단재는 일본 호적에 이름을 올릴 수 없다면서 거부했다. 그러나 광복 후 정부가 호적에 등재된 사람에게만 국적을 부여하면서 단재는 무국적자가 됐다고 전해졌다. 

 

이 여사는 이런 탓에 자신도 투쟁가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역설했다. "저 역시 투쟁가로서 아버님 국적 회복 운동을 19년간 했다"며 "바로 선 나라였으면 해방된 후 순국선열의 국적을 바로 회복해줘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이 여사의 투쟁은 여전히 이어져 최근 단재의 옛 집터인 삼청동 일대 소유권을 반환해달라는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곳 삼청동 집터는 단재가 베이징으로 망명하기 전까지 산 곳으로 추정된다. 1912년 국유지로 기록됐다가 단재가 순국하고 2년이 지난 1939년 한 일본인 앞으로 소유권 보존 등기가 이뤄졌다. 이후 소유권이 몇 차례 바뀌었다. 현재는 선학원이 소유 중이다.

이와 관련, 이 여사는 "국유지였던 땅이 일본인이 소유권으로 됐을 때 제대로 된 절차나 증거가 없다"며 "대한민국이 팔아먹은 것이나 다름없다"면서 "국가가 이완용 등 친일파 땅은 찾아주면서 독립을 위해 하나뿐인 목숨을 바친 분들의 땅 한 평은 찾아줘 봤느냐"며 "이번에 내가 투쟁의 선봉에 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영훈 또 망언 "위안부 원류는 조선시대 기생"
 
한편 이 여사가 성토한 '반일 종족주의' 저자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는 2004년 MBC 토론 프로그램에서 위안소를 사실상 공창 형태 성매매업소라고 발언했다는 것이 알려져 위안부 피해자를 찾아가 사과했지만, 책에선 입장을 바꿔 위안부를 성노예로 보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이승만학당 교장으로 있으면서 친일 식민사관 논란을 일으킨 이 전 교수는 16일 유튜브 채널 ‘이승만TV’에 올린 영상 ‘반일 종족주의 독자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에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자기 주장을 여전히 굽히지 않았다.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현 이승만학당 교장) - 유튜브 채널 ‘이승만TV’ 화면 

그는 "일본군 위안부의 원류는 조선시대 기생제이며, 이 제도는 해방 이후 민간 위안부, 한국군 위안부, 미군 위안부 형태로 존속했다"며 "위생 상태, 건강 상태, 소득수준, 포주와 관계는 (광복 이후가) 일본군 위안부보다 훨씬 참혹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하지만 조선시대 기생은 그림과 글씨, 춤, 악기 등 다양한 기예를 익혀 예법을 중시하며 어느 정도 격을 따져가며 활동했다. 그리고 비록 생활고로 나서기는 했지만, 강제성이 없는 해방 이후 위안부를 비자발적으로 짐승처럼 취급당하며 수십 명에서 많게는 백 명 가까이 상대하며 총알이 날아오는 전쟁터의 일본군 위안부를 비교한 자체가 설득력이 없는 망언과 다름없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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