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과 참모들이 전한 서거 10주기 김대중 전 대통령 이야기

김대중 10주기 추도식.. “역사를 두렵게 여기는 DJ의 진정한 용기 되새긴다”

정현숙 | 입력 : 2019/08/19 [08:23]

"일본 20년 우경화의 역사.. 아베 등 극우 정치세력 오부치·고이즈미 성과 다 깨부숴"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생전에 연설하는 모습. 김대중기념사업회 제공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0주년이었던 18일, 정치권 인사들이 추도식에 총집결해 한일관계 해법과 미래 비전을 제시했던 고인의 업적을 돌아봤다. 또 화합과 통합의 뜻을 기리는 다양한 추모 행사도 이어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만큼 일본과 특별한 인연을 가진 정치인도 드물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난 그는 야당 정치인 시절 일본에서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에 납치돼 생사를 넘나들었다. 1981년 내란음모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았을 때 일본 시민사회는 그의 구명에 적극 나섰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 1998년 한일관계의 초석이 된 오부치 총리와 공동선언문을 끌어냈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맞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들의 마음속에 (김 전) 대통령님은 영원히 인동초이며 행동하는 양심”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김 전 대통령의 과거 연설을 인용해 ‘역사를 두렵게 여기는 진정한 용기’란 제목으로 추모 글을 올렸다. 

 

문 대통령은 이날 "김대중 대통령님은 한국과 일본이 걸어갈 우호·협력의 길에도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1998년 오부치 총리와 함께 발표한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은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명문화했고 양국 국민이 역사의 교훈을 공유하며 평화와 번영의 미래를 함께 열어가자는 약속이었습니다"고 일본을 언급했다. 

 

1998년 10월 8일, 국빈 방일 2일째를 맞은 김대중 대통령은 8일 숙소인 영빈관에서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기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어 “오늘 저는 김대중 대통령님을 추모하며 "역사를 두렵게 여기는 진정한 용기"를 되새깁니다. 국민이 잘 사는 길, 항구적 평화를 이루는 길, 한일 간 협력의 길 모두 전진시켜야 할 역사의 길입니다. 전진해야 할 때 주저하지 않고 인내할 때 초조해하지 말며, 후퇴할 때 낙심하지 않겠습니다. 국민들의 마음속에 대통령님은 영원히 인동초이며 행동하는 양심입니다. 이희호 여사님의 손을 꼭 잡고 여전히 대한민국을 걱정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국민들과 함께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를 꼭 보여드리겠습니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그러면서 "전진해야 할 때 주저하지 않고, 안내할 때 초조해하지 말며, 후퇴할 때 낙심하지 (않겠다)"는 김 전 대통령의 어록을 자신의 다짐으로 삼았다. 

 

문 대통령이 인용한 ‘역사를 두렵게 여기는 진정한 용기’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8년 10월 일본을 국빈방문해 일본 참의원 본회의장에서 연설한 내용이다. 김 전 대통령은 당시 연설에서 “일본에는 과거를 직시하고 역사를 두렵게 여기는 진정한 용기가 필요하며, 한국은 일본의 변화된 모습을 올바르게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일 발전에 자취를 남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업적을 계승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부분으로 일본에 대해서도 ‘역사적 직시’를 확실히 요구하는 대통령의 결기가 읽힌다. 

 

김 전 대통령의 10주기 추도식은 이날 오전 10시 서울 동작구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열렸다. 문희상 국회의장과 이낙연 국무총리가 추도사를, 이해찬(더불어민주당).황교안(자유한국당).손학규(바른미래당).심상정(정의당).정동영(민주평화당) 대표가 한 목소리로 민주주의와 평화에 헌신한 고인의 뜻을 기렸다.

 

김한정 의원  "20년 우경화 일본.. 김 전 대통령 살아계셨다면 호통쳤을 것"

 

김대중 전 대통령 생전 옆에서 직접 보필했던 김한정·이훈·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최근 불거진 한일 간 경제 갈등을 두고 그를 다시 한번 회고했다. 
 
김 전 대통령의 퇴임 후 첫 비서실장을 지낸 김한정 민주당 의원은 보다 문재인정부가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김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은 '오부치 선언' 이후 일본의 변질과 배신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셨을 것"이라고 운을 뗐다. 김 의원은 김대중정부 청와대 제1부속실장을 역임했고,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수행한 바 있다.

 

그는 "아베 정권이 반성은커녕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고, 전범 국가를 전쟁국가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며 "이같은 움직임이 동아시아 평화에 역행함과 동시에 국제자유경제질서를 훼방 놓는 것이라는 점을 국제사회에 더 강력하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오부치 정권의 반성에 기초해 우리가 용서했고, 동반자로서 협력선언을 한 것"이었다며 "일부 정치권에서 20여년 전의 역사를 왜곡해 우리의 선택이 한일 갈등 문제의 원인이 된 것처럼 말하는데 이는 김대중을 오·남용하고 오독하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은 대통령에 당선됐다. 한일관계는 전임 김영삼 대통령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는 발언으로 최악의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98년 10월 일본 국빈방문 일정이 잡혔다. 일본은 잔뜩 긴장했다.
 

김한정 의원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납치사건을 자신들이 덮었기 때문에 김대중 대통령이 이 사건 사과를 요구할 수 있다고 봤어요. 일본 언론들은 연일 ‘납치사건에 대해 공식사과를 요구할 것’이라고 보도했어요. 부끄러운 역사였기 때문에 일본 전체가 김대중 대통령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조마조마해 했죠.”

 

하지만 일본을 찾은 김 대통령은 납치사건은 물론 양국 간 과거사 문제를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특히 국회연설 땐 ‘독재정권 하에 망명 생활할 때, 사형 선고를 받고 갇혀 있을 때 자신을 지켜주고 도와준 일본 국민과 언론인, 정치인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최근 김대중 대통령의 이런 업적을 근거로 문재인 대통령이 대일외교를 잘 못 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이들을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은 외교 실력이 뛰어나서 한-일 관계를 잘 풀었는데, 문 대통령은 외교 실력이 부족하다고 트집을 잡는다. 이런 비판은 명백한 역사 왜곡”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대중 정부가 상대했던 오부치·고이즈미 총리는 평화헌법을 유지했고, 북한과 관계개선도 시도했다. 한반도 평화를 시샘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20년간 일본 정치가 극우화됐고, 아베로 대표되는 일본 극우 정치세력이 오부치·고이즈미 때 이뤄놓은 성과를 다 깨부쉈다”고 지적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살아있다면 지금 일본을 어떻게 상대할까. 김 의원은 “일본을 향해 크게 호통치셨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좌절시킨 건 일본이에요. 진심 어린 사과와 반성을 담은 외교문서를 사실상 폐기했죠. 일본 정치지도자들이 파렴치한 행동을 하고 있어요. ‘김대중-오부치’에서 ‘김대중’은 그대로인데 ‘오부치’만 ‘아베’로 바뀌었어요. 지난 20년 역사는 일본 우경화의 역사입니다. 이대로라면 어떤 지도자가 와도 한-일 관계가 좋아질 수가 없어요.”

 

문희상 국회의장, 이낙연 국무총리,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황교안 자유한국당, 손학규 바른미래당, 정동영 민주평화당, 심상정 정의당 대표 등이 18일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10주기 추도식에서 묵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대중 정부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등을 지낸 이훈 민주당 의원은 "DJ라면 일본과의 '비공식 접촉면'을 넓혀가기 위한 노력을 계속 기울이셨을 것 같다"며 "먼저 DJ는 일본과 인연이 있는 모든 국내외 인사들에게 조언을 구했을 것 같다. 학계 전문가, 정치권 인사, 일본 언론, 일본 내 지한파 의원 등을 차례로 만나 조언을 구하고 우리의 의견을 전달하게 하고, 일본의 의견을 확인했을 것이다"고 말했다.

 

1985년 김대중 평화민주당 총재 비서로 정치활동을 시작한 설훈 의원은 "지금 일본과의 관계는 문재인 대통령이 8.15 담화에서도 말씀하셨듯이 우리가 대화의 문을 열어둔 상태"라며 "즉 일본에 대화 채널 가동의 공이 넘어간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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