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일가 '파도 파도 의혹'.. 외조부 소유 '그레이스호텔'의 비밀

공안기관의 숨겨진 불법, 호텔수사의 역사.. 나경원 집안과 공안기관의 관계

정현숙 | 입력 : 2020/03/24 [11:41]

박종철 열사와 나경원 집안 어떤 관계가 있을까

 

공안기관들은 박정희·전두환 시절 대공분실이나 경찰서 조사실, 유치장 말고도 피의자와 참고인들을 감금하고 조사하는 곳으로 호텔이나 여관을 이용했다.

 

1987년 박종철 열사의 죽음이 물고문에 의한 것이라고 폭로했던 중앙대 병원 오연상 의사를 감금했던 곳이 중앙대 용산병원 앞에 있던 그레이스 호텔이었다. 그 호텔은 나경원 의원의 집안이 소유하고 있었다.

 

1987년 1월 14일, 서울대 3학년 학생이던 박종철 열사가 경찰에 연행되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심문을 받다가 물고문으로 사망한 사건이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의 폭압통치의 절정을 보여준 사건이자 위대한 시민 혁명의 도화선이 된 사건이다. 1987년 6월 항쟁의 주요한 계기가 되었다

 

치안본부장 강민창(1933~2018)은 박종철의 사망원인에 대해 “책상을 탁! 치니까 억! 하고 죽었다.”라고 거짓 시인을 하는 바람에 이것이 정식 사인으로 언론에 발표된다.

 

하지만 전두환 공안 통치정권에서 박종철 열사의 죽음이 고문이었다고 폭로한 용감한 의사가 있었다. 당시 중앙대 용산병원 내과의 오연상 의사였다. 그는 언론에 진실을 말한 뒤 형사들에게 끌려갔다.

 

오연상 의사는 "박종철은 병원에 옮기던 때에 사망한 게 아니라 사건 당일인 14일 오전 11시 45분경에 이송 당시 사망한 상태였으며, 자신이 도착했을 때 박종철의 복부는 부푼 상태였고 청진기 진단 결과 복부 등 몸속에 '꼬르륵'하는 물소리가 났다"고 했다.

 

그는 쇼크사는 심장마비 뒤에 호흡곤란이 생기므로 쇼크사는 아닌 것으로 판단했다.  또 그는 자신이 도착할 적 조사실 바닥에 물기가 있었고, 자신은 진료가 아닌 사체 검안서를 썼다고 밝혔다.

 

오연상 의사는 대공분실에 끌려가기 전 한 호텔에서 24시간 감금 조사를 받았는데  그 호텔이 나경원 의원 외조부 정희영 씨 소유의 그레이스 호텔이었다. 이 빌딩은 현재 신원빌딩으로 이름을 바꾸고 사무용 빌딩으로 정 씨의 아들이 운영하고 있다.

 

경찰이 호텔에서 조사한다는 게 지금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독재시절 공안기관이 숨겨왔던 불법을 자행하는 모종의 은신처 구실을 했다.

 

오연상 의사는 남영동 대공분실과 가장 가까운 종합병원에 근무했다. 그는 그레이스 호텔에서 24시간 동안 같은 질문을 100번도 넘게 받았다. 진술 번복을 받기 위함이다.

 

왜 하필 나 의원의 조부 정희영 씨 소유의 그레이스 호텔이었을까? 이 호텔은 그전에도 공안기관의 조사실로 활용된 전례가 있다.

 

아직도 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는 '윤 노파 살인사건'으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다. 윤 씨의 조카며느리인 고숙종 씨를 범인으로 지목해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며 구속했다. 고 씨는 그레이스 호텔과 용산경찰서 지하실 등 7곳을 11일간 끌려다니며 수치심을 주기 위해 옷을 모두 벗기고 양손을 뒤에서 수갑으로 채우고 욕탕에 거꾸로 집어넣는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검찰은 사형을 구형했고 법원은 고문과 협박에 의해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이뤄졌으므로 임의성이 없어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이 사건은 고문에 의한 자백을 배척한 최초의 법원 판결이다. 독재정권 시절 수사 분야를 막론하고 고문 수사가 자행됐던 시대의 단면을 보여준 사례다.

 

정희영 씨 소유의 그레이스 호텔에 오연상 의사를 구금해 진술 번복을 강요했고 또 고숙종 씨를 감금하고 고문을 자행한 경찰 왜 하필 호텔에 구금했을까?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피의자를 체포한 경우 48시간 동안만 구금할 수 있다. 막 나가는 공안기관도 일반인을 10일 넘게 구금하는 건 부담이 된다.

 

혹독한 고문을 하고 편법적으로 장기구금을 했던 '호텔수사'를 경찰은 피의자가 임의로 진술에 응했고 달리 고문을 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불법이 아니라고 강변했다.

 

이렇게 구금과 고문 장소로 이용됐던 나 의원의 외조부 정희영 씨가 대표였던 그레이스 호텔의 과거 이력을 들여다보자. 정 씨는 일제시기 철도청 공무원으로 근무하다가 1963년 삼화 건설을 설립해 부를 축적한다. 이 회사는 이후 (주)선도 엔터프라이즈로 사명을 변경하고 그레이스 호텔이 있었던 신원빌딩에 현재 입주해 있다. 

 

정 씨는 1970년 점포아파트 건립 명목으로 8층 건축 허가를 받고 설계변경 허가 없이 무단으로 해 10층짜리 그레이스 호텔 건물을 세운다. 애초의 건축 허가 조건이 아닌 호텔로 사용한 것이다. 뇌물을 받고 서울시 공무원 등이 묵인해준 대가다.

 

이후 나 의원 외조부 정희영 씨는 무허가 건축 혐의로, 뒤를 봐준 서울시와 용산구청의 공무원 2명은 뇌물수수 혐의로 입건된다. 이 호텔은 또 1974년 당시 외국인 상대 매춘행위로 적발된 일류호텔 13곳 중 하나였다. 

 

그레이스 호텔은 1977년 3명에게 팔렸다가 나 의원의 외조부인 정희영 씨 아들이 매입한다. 증여세를 내지 않기 위해 호텔 돌려 팔기를 한 것이다.

 

또 정희영 씨는 1973년 설립된 나 의원 일가의 홍신학원 초대이사장으로 홍신학원 재단 설립의 종잣돈을 댄 인물이다.

 

나 의원의 부친 나채성 씨가 이사장으로 취임하기 전에는 나 의원의 모친 정효자 씨와 외조부 정희영 씨의 아들 정훈기 씨가 대표이사로 있었다. 정효자 씨는 홍신유치원 원장을 지냈다.

 

정리하면 나 의원의 외조부가 건설회사를 통해 돈을 벌어 공무원들을 뇌물로 매수해 그레이스호텔을 편법으로 세웠고 사학비리의 온상으로 의혹을 받는 홍신학원 설립의 종잣돈을 댔다는 것이다. 또 그레이스 호텔은 군사독재 시절 공안기관의 조사실로 쓰였다.

 

지금은 고문이란 행태가 없어졌지만,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 시절은 누구에게나 고문을 자행했던 시절이었다. 공안기관의 조작사건은 물론 일반 형사사건에서도 만연했다. 그레이스 호텔의 사례처럼 공안기관의 불법 구금에 협조하거나 묵인하면서 장기간 불법 구금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1987년 당시 나경원 의원은 서울대 법대 대학원 재학 중으로 같은 학교 후배였던 박종철 열사는 대공분실에서 고문으로 죽었다. 그 죽음을 고문이라고 폭로한 중앙대 오연상 의사는 나경원 의원의 외조부 소유 호텔에 감금되어 박종철 열사의 고문 폭로에 대해 진술번복을 강요당했다.

 

"무고한 시민들의 공안기관 불법 구금에 협조했던 혹은 묵인했던 호텔은 아무 죄가 없을까?"라는 물음을 던진다.

 

출처: 곰곰이 'https://youtu.be/ZbFc-kaPKf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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