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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동포사회에 부는 ‘역이민’ 러시

‘아메리칸 드림’의 종말…“머물까, 돌아갈까”

서울의소리 | 기사입력 2011/08/13 [18:40]

미주 동포사회에 부는 ‘역이민’ 러시

‘아메리칸 드림’의 종말…“머물까, 돌아갈까”

서울의소리 | 입력 : 2011/08/13 [18:40]
극심한 불황, 척박하고 외로운 이민생활, 역이민 행렬
미국내 반이민 법안, 쉬어진 복수국적, 역이민 부추겨
생활고에 시달리는 이민자들에게 역이민은 ‘그림의 떡’
역이민 한국살이, 차이의 극복과 적응에 상당시간 걸려
 

끝이 보이지 않는 경제 불황으로 인해 미 전역에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인구가 늘고 있는 가운데 미주 한인사회에서 한국으로 영구 귀국하는 역이민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최근 한국에 정착하기 위해 역이민을 가는 사례가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역이민 현상은 한국의 경제력이 향상된 반면 미국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서 한국과 미국 간 생활수준의 격차가 상당 부분 좁혀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특히 중·장년층에서의 역이민은 어려운 경제상황, 척박한 이민생활, 외로움, 가족관계 등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또한 미 전역에서 반이민 법안이 봇물을 이루고 있어 불법체류자들이 경제활동의 제약 등으로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고, 10만원 안팎의 보험료만 내면 미국과 비교할 수 없는 양질의 의료혜택이 주어지는 의료보험도 한국으로의 역이민을 부추기고 있다.

여기에 개정된 국적법은 시민권을 포기하지 않아도 미국 국적과 한국 국적을 동시에 보유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음으로써 65세 이상의 이민 1세대들의 역이민 행렬을 더욱 부추길 것으로 보여진다.

<시몬 최 취재부 기자>

최근 한국 외교통상부의 이민에 관한 통계발표를 보면 한해 11,000명 정도의 한국인이 한국을 떠나고, 4,200명 정도의 교포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고 있다. 어림잡아 이민을 떠났던 열 명 중 네 명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셈이다. ‘역이민 열풍’이다. 이런 역이민 열풍을 보면서 척박한 이민생활에 누구나 한 번쯤은 역이민을 고민했을 것이다.


하지만 동포가 동포의 등을 치는 삭막하고 살벌한 이민생활에서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희망마저 보이지 않는 이민자들에게 역이민은 ‘사치스런’ 고민이기도 하다.

LA 한인타운 인근에 거주하는 50대 후반의 여성 K씨는 몇 주 전 갑자기 실신을 했다. 다행히 곧바로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가 정신을 되찾고 제 발로 걸어서 퇴원을 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정상적인 생활을 했다. 그런데 며칠 후 가족들이 K씨에게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K씨가 퇴원 이후 이틀간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던 것이다.

집에서나 가게에서나 평소와 똑같이 정상적인 생활을 했었던 이틀이 K씨에게 전혀 기억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 병원을 찾았다. 검사결과 모든 것이 정상이었다.

재산도 희망도 모두 잃어

하지만 본인은 원인을 잘 알고 있었다. 이민생활 이십여년 만에 수중에 쥔 돈이 80만 달러. 일반적으로 봐서 무척 성공한 케이스에 속한다. 나이도 있고 해서 이젠 좀 편안히 살 요량으로 찜질방을 인수했었다.

앞으로는 그저 찜질방을 운영하면서 먹고만 살면 된다는 생각에 평생 모은 돈 80만 달러를 쏟아 부었다.


그런데 그 돈을 다 날리게 생겼다. 사기를 당했다고 한다. 사기를 친 당사자는 다름 아닌 딸의 친구로 하늘이 무너지고 숨이 막힐 노릇이었다.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해 졸도를 하고 순간 기억상실을 했던 것이다.

낼 모레면 육십인데 갑자기 전 재산을 날렸다. 가진 돈이 아예 없었더라면 일찌감치 꿈을 포기하고 LA에서 흔히 보이는 몇 푼의 연금으로 연명하는 노인들의 그렇고 그런 노년을 대비하고 있었을 텐데, K씨에게는 80만 달러라는 돈이 있었다. 그래서 윤택하지는 않겠지만 나름대로 아름답고 품위 있는 노년을 보낼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노년의 꿈이 순식간에 날아갔다. 자기가 그토록 경멸하던 그런 추한 노인의 삶만이 기다리고 있다. K씨의 눈빛엔 초점 없는 무망함만이 있다. 희망을 모두 잃었기 때문이다.

2년 전 샌디에고에서 호텔체인을 운영하던 60대 부부가 동반 자살한 사건이 발생해 한인사회를 술렁이게 했다. 부인을 먼저 총으로 쏴 죽이고 남편이 따라서 자살했다. 비록 저가 호텔체인이긴 하지만 그래도 호텔을 소유하고 운영하던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부를 축적한 이민자인데, 그런 사람이 호텔 운영이 어렵다고 자살을 했다.
 



 

C씨는 2년 전 동업자 두 명과 함께 현금 600만 달러를 넣고 2천4백만 달러에 호텔을 인수했었다고 한다. 셋이서 동업을 했으니 일인당 투자금액이 2백만 달러 정도였다. 2백만 달러의 현금 동원능력이 있었다면 일반적인 미국이민에서 ‘굉장히 성공한’ 케이스에 속한다.


C씨는 호텔을 인수하기 전까지 작은 모텔을 운영하던 사람이었다. 부부가 직접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면서, 그렇게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뜻을 같이하는 동업자들을 만나 꿈에 그리던 호텔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평생 모은 전 재산 2백만 달러로 그 꿈을 이루었다. ‘모텔주인’에서 꿈에도 그리던 ‘호텔 사장님’으로 올라 선 것이다.

하지만 2년 전은 미국 부동산 경기가 천정을 치던 무렵이다. 물론 상업용 부동산은 주택만큼 폭락한 게 아니라고는 하지만, 어찌 되었든 그 시절은 너도나도 부동산 투기광풍으로 미쳐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도 이 호텔을 터무니없이 비싸게 주고 인수했을 것이다. 그러다 주택시장 붕괴와 극심한 경기침체를 맞은 거다. 호텔의 운영이 순식간에 어려워졌고, 호텔의 시세도 당연히 폭락했다.

모텔주인에서 벗어나 ‘폼 나는’ 호텔 사장님이 되었지만 성공의 기쁨도 잠시였고, 한순간에 무너졌다. 그 일로 C씨 부부는 계속 살아갈 희망을 잃었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인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척박한 이민생활

고국을 떠난 이민생활은 외롭고 척박하다. 어려울 때 도와줄 가족도, 손을 잡아줄 이웃도 없는 것이 이민 생활이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도 실상 영원히 가까워질 수 없는 남이다. 그래서 비록 내색하지는 않지만 매일 매일이 외롭고 고독하고 불안하다. 주변에 사람이 북적대는 줄 알았지만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심각하게 상의할 사람이나 도움을 청해볼 사람은 없다.


이민자 중 상당수의 사람들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것이 실상이다. 고국의 가족이나 친지들에겐 적당히 부풀려 이야기를 했겠지만 이게 실상이다.

한국을 떠나 이곳에 새로운 터를 잡은 이민자들은 떠나기 전 수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머물까, 떠날까.’ 머물자니 답답하고, 떠나자니 불안하고. 그래서 참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이민 결정이 보다 인간다운 환경을 찾았던 것이든, 그저 막연히 외국생활을 동경했던 것이든, 아니면 먹고 살기위한 것이었든, 아무튼 이민자들은 용감하게 한국을 떠났다.

많은 이민자들은 환상을 가지고 한국을 떠나왔을 것이다. 잘 가꿔진 정원과 공기 맑은 발코니에서 우아하게 모닝커피를 마시고, 사업체는 종업원을 두고 운영하면서 여유롭게 골프나 치는 생활, 이런 폼나는 모습을 꿈꾸며 한국을 떠났었다. 그러나 그 꿈이 깨지고 현실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리고 한국에선 생각지도 않던 그런 일을 하면서 겨우겨우 살아간다.


그렇게 길을 잃는다. 나아갈 길도, 돌아갈 길도 안 보인다. 위기에 처하면 곧바로 극단적인 선택을 강요받는 외로운 이민 생활. 그래서 요즘같이 더욱 척박한 때엔 많은 사람들이 예전에 한국을 떠날 때 했었던 그 고민을 똑같이 다시 하고 있다. ‘머물까, 돌아갈까.’

그렇지만 실상은 한국을 떠나던 그때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다. 돌아가면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볼까. 돌아가면 도대체 뭐해먹고 사나. 애들은 과연 한국에 적응할 수 있을까. 그냥 여기서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하나. 고민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이러면서 많은 사람들이 역이민을 포기하기도 한다.

버티다 버티다 벼랑 끝에 몰려 한국으로 돌아가는 경우들도 있겠지만 최소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어서 역이민을 가는 40%의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부러운 대상이기도 하다.


 

고령의 시민권자 역이민 증가

최근의 역이민 행렬에는 앞의 경우와 다른 희망적인 경우들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풀러튼에서 상당한 규모의 청과·야채가게를 운영하는 Y씨는 자녀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하게 되면 아내와 함께 한국에 가서 노후를 보내기로 약속했다. 이를 위해 Y씨는 오래 전에 서울 근교에 전원주택을 지을 수 있는 땅까지 사두었다. Y씨는 가게와 주택을 정리하고 조만간 한국에 들어갈 예정이다.


K씨는 가족 모두가 귀국 준비에 한창이다. 한국 유명 대기업에서 10년 넘게 근무했던 김씨는 아들과 딸에게 더 좋은 교육 기회를 주기 위해 2002년 LA 인근으로 이민 왔다. 10년이 지난 지금 아들은 이곳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의 모 기업에 취직이 됐고, 딸도 한국의 대학원에 진학하길 희망하고 있다. 더 이상 미국에 머물 이유가 없어진 셈이다.

1980년대 이민 온 72세 P씨 부부도 역이민을 고심 중이다. P씨는 “딸 둘이 모두 결혼해 타지에 떨어져 살고 있어 외로움이 커졌다”면서 “이제는 한국에서도 사회보장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 만큼 귀국해서 친척들과 정을 나누며 사는 게 좋지 않나 고민스럽다”고 말했다.

시민권자인 K씨는 ‘사회보장 은퇴연금’을 한국에서도 수령할 수 있어 남편과 함께 한국에 영구귀국하기로 하는 이른바 역이민을 결심했다. 매달 1,600달러가량을 수령하고 있지만 주택을 처분한 돈으로 고향에 집과 땅을 마련할 생각이다.

최근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역이민 현상은 한국의 경제력·국력이 향상된 반면 미국의 경제 상황이 나빠지면서 한국과 미국간의 격차가 상당 부분 해소됐기 때문이기도 한다.



역이민의 가장 큰 수혜자는 65세가 넘은 시민권자들이다. 지금까지는 한국으로 역이민을 떠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국인 거소증을 발급받거나 시민권을 포기하고 한국 국적을 회복하는 방법을 통해 한국에 정착했다.

하지만 새 국적법은 시민권을 포기하지 않아도 미국 국적과 한국 국적을 동시에 보유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65세 이상 시민권자들은 이중국적을 보유한 채 미국에서 시민권자로서 ‘사회보장 은퇴연금’을 수령할 수 있기 때문에 역이민을 부추기는 것으로 보여진다.

다만 한국으로 역이민을 갈 경우 저소득층 생계보조금과 푸드 스탬프는 미국 거주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한국으로 역이민을 가면 그 혜택을 누릴 수 없다.

국적을 회복하면 국내인과 동일하게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게 돼 운전면허, 금융거래 등 모든 권리가 보장되며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참정권도 주어진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한국에서 외국인으로 살지 않겠다는 서약을 해야 하며 이 경우 세금 등 모든 부분에 있어서 내국인들과 똑같은 의무를 갖는다.

LA영사관의 이민 담당자는 “사회보장 은퇴연금을 한국에서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문의하는 한인 노인들의 상담이 꽤 있다”며 “한국으로의 역이민은 극빈층이 아니라 한인 노인층 중에서도 상당한 액수의 은퇴연금을 수령하는 이들이다”고 밝혔다.

그는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역이민자가 꾸준히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된다”면서 “이런 추세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역이민을 결심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더라도 실제 적응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이를 극복하기까지의 가치충돌이 만만치 않다는 게 영구 귀국한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거리낄 것 없는 언어소통, 깔끔하고 편리한 공공 서비스와 저렴한 디지털 환경의 한국에서 미국과 다른 환경과 사회 분위기, 먹거리 등 한국살이에 고충이 따르기도 한다.

특히 숨이 콱콱 막히는 대도시의 공기 오염으로 인한 건강에 대한 위협과 다양한 의견이 무시된 채 일방적으로 흐르는 한국 사회의 분위기는 미국에서 오래 산 한인일수록 적응하는 데 애를 먹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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