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웹자서전'.."'바이블'을 '비블'로 읽는 법대생​과 광치령·한계령·소청봉·비선대"

"고개를 넘으면 새로운 세상이, 어쩌면 정상이 펼쳐질 거라는 ‘희망’에 다시 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서울의소리 | 입력 : 2021/12/27 [17:24]

​"내려 가면 반드시 올라가고, 또 골이 깊어야 산이 높다는 것을..."

 

 

‘바이블’을 ‘비블’로 읽는 법대생​

 

대학이 이상했다. 하루에 수업 한두 개가 전부였다.

대입 전까지 늘 시간이 없어 조바심치며 공부했는데 시간이 주체할 수 없이 남아돌았다.

 

대신 새로운 복병이 나타났다.

한자였다.

법학, 경제학, 행정학 전공서적을 읽는데 온통 한자였다.

 

검정고시와 단 8개월 대입준비로 대학 들어온 자는 한자를 공부할 기회가 없었다. 옥편을 뒤져가며 끙끙거리고 있는데 아버지가 도와주겠다며 나섰다.

 

평생에 없던 진풍경. 아버지는 모르는 한자가 없었다.

낯설었다.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슬쩍 아려왔다.

 

이후 나는 아예 옥편을 다 뜯어먹어 버릴 작정으로 한자를 공부했다.

복병은 또 있었다. 교련수업의 총검술과 제식훈련이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교련수업을 받은 동기들에 비하면 나는 형편 없었다. 제식훈련을 할 때마다 발이 틀렸다.

 

이런 나를 두고 법대 동기생 이영진은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왜 그렇게 교련을 못하는지 몰랐는데 검정고시 출신이라고 하더라구요. 재명이는 학교 다닌 애들이면 당연히 아는 걸 잘 몰랐어요. 근데 교련을 제일 못하면서 교련복은 혼자 입고 다녔죠(웃음).”

 

학교 다닌 애들과 다른 점은 또 있었다.

후에 사법고시 1차에서 영어 말하기 시험을 보면서 깨달은 것인데 내 영어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즉 문법은 잘했는데, 놀랍게도 아무도 내 영어발음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었다.

 

내게 ‘바이블’은 ‘비블’이었고, ‘아이언’은 ‘아이롱’이었다. 나라 이름은 ‘아일랜드’, 섬을 뜻하는 단어는 ‘이질랜드’인 줄 알았다. 영어를 직접 들어본 적이 없어서 벌어진 참사였다. 버스와 화장실에서 독학한 영어의 최후. 교정이 필요했다.

 

미팅도 해보고 고고장도 가봤다. 하지만 대체로 시시했다. 교련복에 고무신 신고 다니는 이 누추한 청년에 관심을 보이는 여학생이 있을리 없었다.

 

게다가 나는 20세 미만 대학생 70%가 키스 경험이 있다는 통계를 보고 깊이 충격을 받는 청년이었다. 내게 이성은 머나먼 이국이었다. 

 

한편, 특대장학금으로 서울에 방을 얻어 재선 형과 공부하겠다는 나의 의지는 실현되지 못했다. 아버지가 끝내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나는 대신 아버지와 신사협정을 체결했다. ‘선 보관, 후 지급’이었던 것을 ‘선 지급, 후 보관’으로, 제도 혁신을 단행한 것이다.

 

즉 이전까지 아버지에게 월급을 모두 맡기고 필요한 돈을 받았던 것을, 이제 장학금을 받으면 재선 형의 학원비와 우리의 책값과 용돈을 먼저 떼고 아버지에게 맡기기로 한 것이다. 아버지도 거기까진 합의해주었다.

 

선지급권을 확보하고 꿈에도 그리던 공부방은 포기해야 했다. 다음에 이사할 때는 집을 사서 가겠다던 아버지의 계획도 어그러져 우리는 다시 지하 단칸방으로 퇴각했다. 2백만 원 전셋집이 너무 허술해 겨울을 날 수 없었던 까닭이다.

 

어느 새벽, 여섯 식구들이 모두 잠든 방에서 법학개론을 펼쳤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식구들의 숨소리가 달라 붙었다.

 

- 지금 벌써 2시 30분이 넘었다. 엄마, 아버지, 형, 형, 동생, 동생의 숨소리가 들린다.

 

잠에 깊이 빠진 모습들. 이렇게 한 방에서 고생하며 살지만 정만 있으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이렇게 살았기에 우리 형제는 우애가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아버지와는 등지고 살아가는 듯하지만...

우리 가정에도 영원한 행복이 오기를...

 

1982. 3.31​

 

 

광치령, 한계령, 소청봉과 비선대

 

대학 첫 학기는 대충 보낸 하루에 대한 자책과 내일부터는 공부에 매진하겠다는 다짐 사이에서 끝났다.

 

일곱 식구 복닥거리는 단칸방에서는 공부가 잘 되지 않았고, 동기들보다 한 살 일찍 대학에 들어온 나는 사법고시도 3학년에야 볼 수 있었다.

 

졸업정원제에 반영하는 성적도 2학년부터 적용됐다.

 

문득 이것은 ‘1학년 때는 놀도록 하라’는 어떤 초자연적 명령이 아닐까 하며 합리화에 골몰했다.

 

결국 여름방학을 맞아 여행이란 걸 해보자 결정했다. 수학여행을 빼면 삶은 지금껏 단 한 번도 내게 여행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

 

친구 심정운이에게 말하니 적극 반겼다. 우리는 교양과목 교재는 한 권만 사서 돌려보며 책값을 아꼈다. 그렇게 모은 돈을 몽땅 털어 강원도로 떠나기로 했다.

 

1만4천원을 들여 낚싯대와 배낭, 싸구려 농구화, 모자를 샀다.

설렘으로 밤잠을 설치고 경춘선을 탔다. 춘천에서 정운이네 큰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고 소양강에서 양구행 배를 탔다.

 

푸른 물을 가르며 달리는 뱃머리에 서 있으니 너무 좋았다. 대학생이란 이런 것인가 싶었다. 물론 영화 타이타닉의 레오처럼 ‘I`m the king of the world! (내가 세상의 왕이다)’를 외치진 않았다.

 

그 배에서 자전거를 가지고 탄 학생 하나를 만났는데 뜻밖에 그도 중앙대 공대 1학년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제주도까지 갈 거라고 했다. 우리는 단박에 의기투합해 함께 여행하기로 했다.

 

양구에서 인제로 가기로 했다. 광치령을 넘어야 했는데 고개 기슭에 도착했을 때 이미 오후 6시가 넘어 있었다. 군인들이 걸어서 넘기엔 너무 늦었다며 말렸지만 세 청춘을 막진 못했다.

 

정상에 도착했을 땐 밤 10시가 넘었다. 지나온 길은 달빛 아래 아득했고 가야 할 길 위로는 밤안개가 밀려오고 있었다. 그렇게 밤새 광치령을 넘었고, 여행은 외설악과 한계령, 소청봉과 비선대로 이어졌다. 소청봉과 비선대는 싸구려 농구화 때문에 물집이 잡혀 맨발로 올랐다.

 

여행은 삶의 가장 훌륭한 학교다. 오르막을 오르면 내리막이 기다리고, 내리막을 가면 다시 오르막이 있다는 걸 깨닫는 시간이다.

 

고개를 넘으면 새로운 세상이, 어쩌면 정상이 펼쳐질 거라는 ‘희망’에 다시 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희망은 우리를 견디게 하고, 비용을 요구하지 않아 만인에게 공평하다.

 

광치령을 밤새 걸어서 넘을 때 산이 구름에 가리지 않고 그 모든 골짜기를 드러냈다면 엄두가 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혹자는 내가 두려움을 모른다는데 맞지 않는 얘기다. 나는 겁이 없는 게 아니라 여행을 통해 배웠을 뿐이다.

 

내려 가면 반드시 올라가고, 또 골이 깊어야 산이 높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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