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94주년 맞아 '김구선생 사진자료집 출간'...

백범이 암살당하는 순간까지 머물렀던 경교장이 복원을 마치고 3월 2일부터 공개

서울의소리 | 입력 : 2013/02/28 [00:46]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이자 백범이 암살당하는 순간까지 머물렀던 거처인 경교장이 복원을 마치고 오는 3월 2일부터 일반에 공개됩니다.
 
이미지 

<3.1절 94주년을 앞두고 백범 김구 사진자료집이 출간됐습니다.>

많이 본 듯한 사진도 있지만 처음 접하는 사진들도 많았습니다. 사진자료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보노라니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 해방 이후까지 한국현대사를 백범이란 인물의 삶을 통해서 들여다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연관된 취재를 하면서 임시정부의 역사도 간략하게나마 살펴볼 기회가 있었는데 임정의 역사 또한 백범과 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1949년 6월 26일….


이미지이미지1949년 6월 26일 경교장에서 안두희의 흉탄에 서거한 직후의 모습입니다.이미지서거 당시 입고 있던 바지와 저고리.. 핏자국이 선명합니다.이미지라이프지 기자가 촬영했다고 하는 이 사진은 경교장 창문의 총알 구멍을 걸고 경교장 밖에서 백범의 서거를 애도하는 모습을 촬영한 것입니다.
이미지가장 눈에 익은 사진, 대표 이미지라고 하겠습니다. 아마 환국 이후에 촬영된 사진이 아닐까 합니다.이미지그런데 백범 선생이 더 젊었을 때 콧수염을 기르고 안경을 쓰지 않았을 때 사진은 느낌이 확 다릅니다.이미지양복 입고 만면에 미소를 띤 사진, 아마 경교장에서 찍은 사진이 아닐까 싶습니다.이미지이 사진은 1919년 상하이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1919년은 3.1 독립선언과 3.1 만세운동이 있었던 해이자 이 결과로 같은해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해입니다.

당시 임시정부 방식대로면 '대한민국 1년'이기도 합니다. 왼쪽이 당시 임시정부 경무국장인 김구, 가운데는 내무총장, 국무총리 서리를 맡았던 안창호, 오른쪽은 이 탁 선생입니다.

임시정부는 수립 이후 어려움 속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했는데 그중 하나가 비밀조직을 통한 주요 인물 제거 활동으로 한인애국단이 그 조직입니다. 대표적인 애국단 소속 대원이 이봉창, 윤봉길 의사입니다.

이미지1931년 이봉창 의사가 태극기 앞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수류탄을 들고 찍은 사진은 많이 흔들렸습니다. 이봉창 의사는 이 사진을 찍고 얼마 뒤 도쿄로 잠입해 1932년 1월 8일 일본 국왕 암살을 시도합니다. 그러나 실패했습니다.
이미지위의 사진은 암살 시도 직후 연행돼 조사실로 끌려가는 장면입니다. 이후 그해 10월에 이봉창 의사는 사형에 처해졌습니다.이미지윤봉길 의사의 이 사진은 눈에 익습니다. 태극기 앞에서 오른손엔 권총, 왼손엔 수류탄을 쥐고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김구 당시 임시정부 국무령과 함께 찍은 사진도 있습니다.이미지1932년 4월 27일 거사를 이틀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김구 선생의 전기나 윤봉길 의사 전기에 나오는 유명한 대목, 기억하실 겁니다. 윤봉길 "제 시계가 더 좋은 건데 저는 한시간 뒤면 소용이 없으니 바꿉시다" 그 시계가 이렇게 생겼습니다.이미지왼쪽 금빛 시계가 원래 윤봉길 의사의 시계, 오른쪽 은빛 시계는 김구 선생의 시계였는데...
4월 29일 아침에 맞바꿨다고 합니다. [도왜실기]라는 책은 한인애국단의 활동을 알리기 위해 상하이에서 발간된 중문 책자입니다.

윤봉길 의사는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홍구공원에서 열린 일왕 생일 축하 및 상하이 사변 전승 축하식에서 폭탄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역시 바로 체포됐습니다.

이미지그해 12월 19일 총살 당하기 직전의 사진입니다. 다소 침체기였던 임시정부의 활동은 연이은 거사 이후 활력을 더하게 됐지만 그만큼 일제의 압박도 심해져 임시정부는 상하이를 떠나 중국 각지를 돌아다니는 장정에 오르게 됩니다.

1940년 임시정부는 한국광복군을 창설합니다.
이미지이청천 사령관과 광복군 성립전례식을 마치고 찍은 사진입니다. 특수훈련까지 실시하면서 국내로 들어가 작전을 펼 준비를 한창 하고 있었는데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하면서 이 노력은 빛을 보지 못합니다이미지임시정부의 환국을 기념해 1945년 11월 3일 중경 임시정부 청사 앞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임시정부의 문지기라고 하겠다며 1919년 상하이의 임정을 찾았던 백범은 이때 주석으로써 사진의 가장 가운데 자리하고 있습니다. 백범의 왼쪽은 김규식 부주석, 오른쪽 끝에는 신익희 선생의 모습도 보입니다.

임시정부 환국 이후 1946년 3월 1일에는 해방 이후 처음으로 3.1절 기념식이 치러집니다.
이미지이미지국내에서 임시정부가 주관한 첫 3.1절 기념식으로, 김구 주석은 축사를, 김규식 부주석의 선창으로 만세삼창하는 사진도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임시정부 환국 이후 백정기, 이봉창, 윤봉길 삼의사의 유골을 발굴해 모셔오게 됩니다.
이 사진은 윤봉길 의사 유골 발굴 장면입니다.
이미지이렇게 찾아온 삼의사의 유골은 현재 서울 백범기념관 근처 효창공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치돼 있습니다. 백범 선생은 환국 이후 임시정부 요인들과 신탁통치 반대 운동을 적극 추진했고  이후 유엔 감시하의 남북선거에 의한 정부 수립안을 지지했습니다. 그러나 남북이 갈라서면서 남과 북에 각각 단독 정부가 수립됐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 기념사업협회와 백범학술원, 백범김구기념관이 공동으로 발간한 이 사진자료집은 760여 장의 백범 관련 사진이 담겨 있으며 비매품으로 전국 도서관에 무료로 배포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SBS 취재파일] 백범을 통해 본 한국현대사  심영구 기자   블로그   트위터·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 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