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3주기, 그들을 다시 생각하며...

부하들이 죽어 나갔는데, 책임자들은 승진이라니...

서울의소리 | 입력 : 2013/03/26 [21:58]

나는 군인 동생을 둔 누나다. 동생이 하나는 천안함 피격 당시, 군대 그것도 강원도 모 부대에서 한참 이등병으로 구르고 있었을때였고, 천안함이 피격되고 난 뒤에 전쟁도 불사치 않는다는 당시 군통치권자 MB의 말에 밤잠못이루고 정말 전쟁 나면 어떻게 하느냐며, 당장 나는 괜찮은데 능력없고 가난한 누나가 아무런 방패막이도 되어주지 못하고 개 끌려가듯 소 끌려가듯 전쟁터로 동생을 앞장세워야 되나 싶어서 제발 전쟁 일어나지 마라고 몇일을 밤잠 못이루고 몇일을 어떻게 안절부절 못해서 달보며 돌고 울고 불고 난리를 쳤다.
 
정말 생떼같은 목숨들이 죽었다. 대한민국을 지키던 나라의 아들들이 죽었고, 아직도 그때의 그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살아남은 자들도 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사과도, 제대로 된 응징도, 제대로 된 대처도 하지 못한채 생존시간 들먹거리고, 산소 공급 들먹거리며 또 다른 목숨을 죽어 나가게 한 장본인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들에 있어서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생존 가능시간 69시간이라는 거짓말...

 
아직도 나는 기억한다. 동생이 군대에 있어, 우리 동생이 저 차가운 바닷속에 갇혀있는거 마냥 점점 추워지는 밤 10시가 되면, 정말 가슴이 두근거리고 눈물이 계속 핑핑 쏟아지고 이러다가 정말 전쟁이라도 나면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며 계속 집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어떻게 할바를 몰라 그냥 두꺼운 점퍼를 둘러 쓰고 나가 동네를 걸었다. 동사무소로 나가고 빙빙 돌아 공촌사거리로, 빈정내 사거리로 우리집으로. 그렇게 아침 해가 밝아올 여섯시까지 동네를 돌고 또 돌고 또 돌며 한없이 소리내서 엉엉 울고 제발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랬다.
 
그렇게 반 정신을 놓고 집에 들어와 아침부터 TV로는 뉴스를 보고 인터넷으로는 한없이 뉴스를 찾아보며, 제발 실낱같은 희망을 찾을수 있기를 나 뿐만 아니라 온국민이 애태워 몇일밤을 세웠다. 처음 천안함이 피격되고, 물속으로 가라앉자, 당시 김성찬 해군참모총장은 말했다. 어디 문을 닫으면 산소가 있고, 물이 안들어 차서 69시간은 생존 할수 있다고.
 
그말을 정말 철썩 같이 믿고 믿고 또 믿으며 정말 새파란 목숨들이 차가운 바다속에서 구출되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라고 씨익 웃으며 복귀 할수 있기를 정말 바랬다. 한시간 한시간이 지날때마다 내 피도 정말 바작바작 말라 타들어 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국방부는 처음부터 솔직했었어야 했다. 처음 이야기 한 69시간을 72시간으로 늘리고 72시간이 지나자 120시간으로 늘리고, 그래도 계속 국민들과 유족들을 희망고문하며 "천안함 함미에 공기를 주입했다" 라는 퍼포먼스까지 해가며 국민들을 희망고문이 뭐야, 정말 저들이 살아올수 있을것 처럼 그렇게 국민들을 몇일을 들었다 놨다 피를 바작바작 마르게 만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것들이 모두다 거짓말쇼라고 밝혀진 계기가 있었는데, 이 천안함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민주당 의원은 "천안함에 구형 환풍기가 있어 천안함 실종자가 69시간 생존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냐?"며 김태영 전 국방장관에게 질의했다. 장관의 답변은 충격적이었다. "천안함은 잠수함이 아니기에 완벽한 방수기능이 갖춰져 있지 않았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수밀이 돼 생존해 있으리라 생각하진 않았다, 천안함 침몰 초기, 실종자들의 '69시간 생존' 가능성은 희박했다"
 
유족들과 국민들이 걸었던 기대는 모래탑 무너지듯 무너졌다. 정말 내 아들같은, 동생같은, 오빠같은, 형같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는데 애초에 그것이 안될 것임을 알면서도 이리 저리 언론에 69시간 생존 가능성을 이야기 하며, 72시간 생존가능성, 120시간 생존가능성을 이야기 하며 애초에 생존자가 없을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리저리 언론플레이, 생존 가능성을 이야기 하며 UDT 대원들을 동원해 함미에 산소를 넣는 쇼를 하다, 한주호 준위마저 순직하고 만다.
 
부하들이 죽어 나갔는데, 책임자들은 승진이라니...
 
69시간으로 희망고문한것도 억울하고 분통해 미칠 지경인데, 당시 지휘라인에 있던 책임자들은 대부분 징계는 커녕 오히려 승진했고, 징계처분을 받은 이들도 이에 불복해 징계가 최소 되거나 완화 되었다. 더욱이 징계를 받았거나 징계 대상에 올랐던 이들 상당수가 진급하거나 군의 요직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심지어 천안함 사고 책임에 따른 문책성 인사도 없었다.
 
정말 새파란 목숨들이 죽어 나갔다. 나라 지킨다는 그 자부심, 그 의지 하나로 망망대해 배위에서 몇일이고 몇달이고 온갖고생 다하며 그렇게 언제 어디서 누가 처들어 올지 모른다는 그 두려움, 이렇게 싸우다 내가 죽어 나가도 괜찮다는 그 열정 하나로 나라지키던 그 사람들을 그렇게 잔인하게 수장시켜 죽인 1차적 책임자는 그래 천안함 북한이 어뢰쏴서 피격 됬고 북한이 없엇으면 저런 잔인한 일들도 안일어 났을거라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배에 물이 새고 있고, 지금 배가 위험하다고 수십 수차례 몇번씩 보고를 해도 괜찮다며 괜찮다며 배끌고 이끌고 나가던 책임자들은 되려 승진을 했다니. 부하들을 지키지 못한 책임자들이 승진을 했다니...
 
전투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 받지 못한다고 그랬다. 나같으면 정말 부하들 볼 면목도 없고, 살아 남아있는, 차가운 물속에서 억울하게 목숨을 잃어야 했던 부하들에게 너무 미안해서 옷벗는다. 정말 엎드려 자복하는 심정으로 그들에게 가서 빌어도 빌었지, 끝까지 그자리 버티고 앉아있다 슬슬 눈치보며 승진 안한다.
 
우리나라는 언제든 전쟁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휴전 국가이다. 북한은 그동안 군사적인 도발도 심심치 않게 해왔고, 그동안 새누리당은 자신들이 안보전문가라 지칭하는 자들을 군수 통치권자의 자리에 앉혀 놓았다. 그러나 다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69시간, 72시간, 120시간 국민들, 유족들 데리고 거짓말 쇼하고 유능한 인재를 46명의 용사와 함께 수장시켜 버린 책임자들을 영웅으로 추대하고 승진을 시켜 주다니.. 
 
그 큰 천안함에 어뢰를 쏘고 도망가는 북한 잠수정을,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잡지도 못하고, 되려 지나가는 새떼에다 총이나 몇방 쏘고, 가라앉는 함미에 부하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배를 지켜야만 하던 사람들이 그 부하는 차가운 물속에 빠져 죽든 말든, 아랑곳 앉고 구조배에 냅다 올라타고 엉덩이에 불붙은듯 도망만 다니던 비겁자들에게 승진을 시켜 주다니..참 우습지도 않은 안보정신이고, 참 우습지도 않은 결과다. 
 
우리나라의 주장대로, 그 행위들을 북한이 한것이라면 북한을 불러다가 확실하게 사과를 받고,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확실한 재발방지 촉구를 했었어야만 했다. 어물쩡 덮어 놓고 넘어가고 나니, 어떤 결과 벌어졌었나. 북한은 연평도 민간인 시설에다 무자비한 폭격을 했고 민간인들이 죽어 나갔다. 당장이라도 보복응징을 했었어야만 하는 상황에서 되려 확전은 막으라는 군수통치권자의 멍청한 대응에, 속터지고 다시 또 전쟁이 일어날까봐 두려워 하며 몇일밤을 지세워야만 했던 국민들이 있었고 그 상황속에서 자신은 안전한 벙커속에 쏙 숨어 들어가 있는 한심한 군수통치권자만 있었다.
 
46명의 군인들과, 남아 있는 분들에게...
 
나는 남아있는 그들에게 양심선언을 해라, 뭘해라 이야기 하고 싶지도 않고 압박하고 싶지도 않다. 저런 멍청한 사람들을 군수통치권자라며, 안보전문가라며 앉혀놓은 국민의 탓이 더 크기에, 어쩌면 그들은 국민의 우매함 때문에 피해받은 피해자라 생각되어 마냥 그저 미안해 진다.
 
아직도 나는 남동생 하나가, 군인신분으로 있다. 북한의 도발뉴스나 북한 관련 이야기가 포털메인에 뜨거나 혹은 그런 소리가 들리면 다시 또 있는대로 신경이 곤두서고 아무것도 못먹겠고 잠한숨 편하게 못자겠더라. 키리졸브 훈련한다고 북한이 그걸로 꼬투리 잡아 불바다 협박할때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일어나는 기분이 들었었고 온몸에 소름돋는 기분이 든다.
 
예전에 교통사고가 난 적이 있었다. 유턴을 하는데 누가 쌩하고 달려와서 차 옆구리를 들이 박았다. 정말 억! 하는 순간에 사고가 나있었고, 벨트를 하고 있어서 천만 다행으로 다치지 않았고, 그냥 왼쪽 팔에 시커멓게 멍이 든 정도로 사고가 마무리 되엇었다. 그런데 그 뒤로 차를타는게 정말 두려웠다. 하다못해 버스를 타도 버스 옆으로 찌끄만 모닝한대가 지나가도 울렁울렁 속에서 울렁증이 일어나고, 어지럽고 멀미하고 토하고... 한동안 그 트라우마 때문에 바깥을 나가는걸 꺼려 했었다. 나가면 차타야되서, 하다못해 여기서 지하철역이 버스로 20분 거리에 있는데 그 거리를 1시간을 넘게 걸어 다닌 적도 있었다.
 
간단한 교통사고를 당했던 나도 저렇게 힘겨운 내 스스로와의 싸움을 햇었는데, 상황을 그 두려움을 직접 피부로 겪었어야만 했던, 사고당일날 까지도 웃으며 전우애를 다졋어야만 했던 전우들을 뒤로 한채 살아 남은 생존자들은, 정말 오죽할까 싶다. 정말 우선적으로 케어하고 보살펴야 하는건, 부하들을 수장시키고도 승진된 저런 멍청한 지휘관들이 아니라, 그 상황을 지금도 상흔처럼 안고 살아가는 일반 장병들인데...

다시금 이야기 하지만, 정부의 주장대로 북한에게 폭침당해 무고한 생명들을 차디찬 바다에 수장시킨 것이라면, 지휘자들의 경계근무 태만으로, 그 젊은 채 못피운 꽃들이 억울하게 바닷속에 수장되었는데, 그에 대한 책임은 못질망정 왜 그들이 승진을 해야 하는지 도대체 모르겠다. 대응 한번 못해보고 총 한번 쏴보지도 못하고 유유히 돌아가는 북한 잠수정을 잡지도 못한채 돌아온 그들을 왜 영웅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그들이 책임을 지지 않고 왜 승진을 해야 하는지 궁금할 뿐이다. 
 
차디찬 물 속으로 사그러든 46명의 무고한 희생에 마음이 숙연해 진다. 엄마가 해주는 따듯한 밥이 그리웟을 나와 비슷한 연배의 친구도 있을테고, 아빠를 애타게 기다리는 젖먹이 아기의 아버지도 있을거고, 한 집안의 든든한 가장, 한 집안의 든든한 남편도 있었다. 차마 그들을 보내지 못해 오늘도 가슴이 한겹한겹 베이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는 유가족들도 있다. 그들의 억울한 희생을 추모합니다. 마음속으로 꽃 한송이 올려 드리며 채 피지 못한채 사그러든 꽃봉오리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아고라 논객 난 아직도 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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