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광고
로고

민주주의를 ‘설문조사’로 전락시킬 셈인가

사회교리 렌즈에 비친 세상 - 이동화]

서울의소리 | 기사입력 2014/07/17 [02:54]

민주주의를 ‘설문조사’로 전락시킬 셈인가

사회교리 렌즈에 비친 세상 - 이동화]

서울의소리 | 입력 : 2014/07/17 [02:54]

지방선거가 끝난 지 한 달이 지났고,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듯이 선거를 앞두고는 모두가 자신을 공복으로 자처한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국민의 처지에서 열심히 종노릇을 하겠단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바꾸겠습니다”라는 자기비판과 읍소도 등장하고, 눈물도 흘린다. 20대 말의 청년을 내세워 뭔가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식의 비상대책이나 혁신도 언제나 선거를 앞두고 나오는 말이다.

 

그리하고는 언제나 그랬듯이 종노릇도, 자기비판과 혁신도 다 사라지고 만다. 지난 대선이 끝나고서 경제민주화 등의 개혁적 정책 공약이 사라지기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고, 지방선거 전에 있었던 세월호 사건과 관련하여 ‘모든 게 대통령의 책임’이라던 성찰도 어느 순간인지 쏙 들어가 버렸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는 선거용으로만 존재하고, 시민의 권리와 역할은 짜장면과 짬뽕 중에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유권자의 역할로 한정되어 버린다.

   
▲ 6.4지방선거를 하루 앞둔 3일 오후 손수조 새누리당 당협위원장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도와주세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꾸겠습니다. '부산'을 믿어요! 손수조'가 적힌 피켓을 놓고 절을 하고 있다. 옆에서는 '중·고생 엄마'라고 밝힌 시민이 '오늘 세월호 49재. 세월호 아이들이, 유가족들이 살려달라 울부짖을 때 당신들은 도와주었나요? 도와주세요?? 표 구걸?? 16명의 실종자 찾아주세요'가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권우성

 

오늘날 민주주의(democracy)라는 제도는 그 옛날 아테네의 제도를 모방한 것으로서 그 말 자체가 의미하듯, 귀족이나 부호에 대비되는 평민으로서 인민 또는 시민(demos)의 지배(kratia)를 뜻한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란 평범한 시민들의 집합적 의사로써 공동체를 운영하는 원리를 뜻한다. 물론 그 옛날 아테네의 폴리스(polis)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오늘날과 같은 국가에서는 대부분이 대의(代議) 민주주의라는 간접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대의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민주주의의 원리를 훼손하고 있다는 것이다.

 

첫째는 권력과 지배의 선출 과정에 있어 시민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의 두 거대 정당은 전체 유권자의 투표수에 비해 과잉 대표되고 있으며, 반대로 소수의 정당들은 과소 대표되고 있는 실정이다. 예를 들면, 지난 20년 동안 있었던 여러 차례의 부산광역시 의회선거에서 한나라당과 그 뒤를 잇는 새누리당의 득표율은 67% 정도였지만, 20년간 줄곧 시의회의 의석수는 거의 100%에 가까웠다. 언제나 1등만 뽑는 소선거구제의 폐해다.

 

둘째로 정책의 수립과 실행에 있어서도 시민의 참여는 거의 배제되어 있다. 권력의 선출 이후에 선거에서 제시했던 공약을 헌신짝처럼 내버려도 그 권력을 소환하거나 또는 어떤 공약을 강제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니 우리나라에서 정치적 주체로서 시민의 정치적 삶과 참여는 딱 두 가지, 선거 시기에는 투표하는 유권자로서, 그리고 일상적으로는 여론조사기관이 설계한 질문과 응답을 선택하는 것으로 한정되는 것이다.

 

물론 비례대표를 더욱 확대하거나, 소선거구를 중대선거구로 바꾸고, 국민소환제를 실시하는 등 법과 제도를 바꾸면 훨씬 더 민주주의의 원리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겠다. 그러나 문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기까지의 과정이 지금 우리 처지로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두 개의 거대한 독점적 정당의 동의를 이끌어 내거나, 그들을 강제하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 같다. 그러므로 우리의 눈길을 돌려야 하는 지점은 결국 시민사회다.

 

가톨릭교회의 사회교리가 밝히고 있듯, 시민사회는 국가에 비해 모태이며 우선적이다(간추린 사회교리 417~418항). 이 말은 한편으로는 시민사회에 봉사해야 할 국가의 의무와 시민사회에 대한 국가 개입의 한계를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법과 제도, 권력과 지배를 바꾸는 것은 시민사회라는 시민들의 진지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기도 하겠다.

 

그러니 우리의 민주주의를 선거용 장식품으로 만들고, 시민의 정치적 삶을 유권자와 설문조사 응답으로 제한하는 현실에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이 오늘날 시민사회라고 하는 공론의 장에서 할 수 있는 시민의 중요한 정치적 참여라고 할 수 있겠다. 늦지 않았으니 이제라도 쓸 만한 시민사회단체에 후원하고 연대하자.

 

적어도 이런 면에서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는 노무현 전 대통령은 말씀은 새겨보아야 할 것이다.

 

이동화 신부 (타라쿠스) 천주교 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도배방지 이미지

  • 2014/07/17 [12:38] 수정 | 삭제
  • 고 가시내 욱기는 가시나내 ... 땍기년 !!
광고
광고
광고
PHOTO
1/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