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방한에 대한 세 가지 우려

‘종교 없는 종교’ 혁명의 바람을 기다린다

서울의소리 | 입력 : 2014/08/14 [03:53]

내가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하여 개인적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교황 취임 이후 역대 교황들과는 달리 찬란한 예복, 호화스러운 집, 또는 좋은 차를 거절하고 아주 검소한 생활방식을 택했다는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그의 ‘기이한’ 행적들이 아니라, 그의 ‘얼굴’과의 조우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의 ‘얼굴’이 담고 있는 따스한 ‘연민의 시선’과 순전한 ‘웃음’이 전해주는 그의 ‘인간됨’의 모습이다.

 

그 ‘탈교황적 교황’의 모습, ‘인간의 얼굴’을 한 ‘웃음’과 만나는 이들을 향한 따스한 ‘연민의 시선’은 제도화되거나 또는 상투성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의 인간됨의 깊이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느꼈으며, 그것은 ‘가식적 연기’나 또는 그 어떤 외적 요소들에 의하여 상실되는 것이 아닌, 교황 되기 이전부터 일생동안 그가 살았던 그의 삶과 존재 깊이에서 묻어나오는 부정할 수 없는 ‘존재의 내음’ 같은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물론 이러한 나의 그에 대한 인상은 매우 주관적이며 감정적이어서 그러한 느낌을 합리적으로 증명해 낼 수 있는 것은 전혀 아니다. 이 글에서 나는 커다랗게 두 가지 측면, 내가 우려하는 것과 기대하는 것에 대해 나의 생각을 나누고자 한다.

 

교황 방한에 대한 세 가지 우려

 

첫째, ‘개신교 대 가톨릭’의 극단적 대립화

 

한국에서도 일부 개신교 지도자들의 주도로 ‘교황 방한 반대’라는 주제를 건 대대적인 집회들이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교황 방한 반대집회를 결사적으로 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가톨릭을 ‘이단화’하거나 ‘악마화’하고 있으며 ‘적그리스도’라는 극도의 왜곡된 신학적 오류를 서슴지 않고 있다.

 

표면적으로 그들은 ‘교황의 신격화, 우상화’에 반대한다고 하나, 실제 이유는 그러한 집회를 구상하고 진행하는 이들의 ‘종교권력의 확고화’라고 나는 본다. 나는 교황 방한 이전과 방한 중에, 그리고 이후에 무수한 개신교회들의 강단에서 그러한 신학적 왜곡으로 점철된 설교들이 “신의 이름으로” 전달되며, 그러한 설교에 “아멘”을 외치며 기도할 개신교인들에 대하여 우려한다.

 

둘째, 교황 방문의 정치적 이용

 

교황이 이 세계 곳곳의 나라들을 방문할 때마다, 그가 ‘누구’를 만나는가는 종교적으로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건으로서 ‘신학적 선언’의 의미를 지닌다. 그가 만나는 사람들, 방문하는 공간들은 교황의 개인적 기호만 아니라, 가톨릭교회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들을 반영하는 것으로서 이 세계에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번 방한에서 교황이 만나게 될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보면서, 이러한 교황의 만남들을 정치적으로 역이용하는 일이 있게 될 것을 우려한다. 대표적인 예로, 교황이 ‘의전상’ 만나게 될 대통령과의 만남이 현 정부의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다양한 사회 · 정치 · 도덕적 오류들과 불의함을 무마시키는 ‘정치적 지지나 보증’의 의미로 이용될 가능성에 대하여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셋째, 제도화된 종교로서의 교회에 대한 맹목적 미화

 

‘종교’의 존재 의미란 사실상 ‘제도’도, ‘교리’도, ‘조직’ 그 자체도 아니다. 진정한 종교는 자신을 사랑하듯 타자를 향한 연대, 환대, 책임성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은 예수의 다양한 가르침들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핵심 메시지들이다. 예수는 ‘종교’에 대하여가 아니라 타자를 향한 연민과 사랑 그리고 책임과 연대에 대하여 가르쳤는데, 정작 등장한 것은 ‘제도화된 종교’로서의 교회이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그리스도 교회들은 ‘타자들’을 향한 폭력, 무관심, 정죄와 배제를 자행하면서 무수한 ‘죄의 역사’를 반복해 오고 있다. 교황의 방한이 어떤 특정한 교회나 또는 종교 집단들이 지니고 있는 무수한 교리적 또는 실천적 오류들의 가능성들까지 미화되고 이상화되는 것에 대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교황’은 그 ‘화려하고 높은’ 직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 ‘인간’이라는 사실, 그리고 인간이 만든 여타의 제도화된 종교들은 인간의 ‘해방과 억압’이라는 상충적 기능을 해 왔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 한 종교적 직제나 구조들을 단순히 자신들과 다르다고 이단시하고 정죄하거나, 또는 반대로 맹목적으로 미화하고 절대화하는 것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한다.

 

▲ 지난 4월 성목요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장애인과 여성, 이슬람교도들의 발을 씻기는 세족례를 거행하고 있다. (사진 출처 / 교황청 유튜브 갈무리)

 

교황 방한의 가능한 의미들

 

첫째, 종교를 종교 되게 하는 전환점이 되기를

 

지난 2014년 4월 그가 부활절 전의 ‘세족례’(발씻김 예식)를 거행할 때에 이전의 교황의 행보와는 전혀 다른 ‘혁명적 세족례’를 거행했다. 어찌 보면 연례행사로서의 한 상투적 예식일 수도 있는 이 세족례가 세계의 많은 이들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온 것은 그가 선택한 12명의 사람들 때문이다. 이 세족례의 장소가 ‘소년원’이었다는 사실, 장애자들이었다는 사실, 남성만이 아닌 여성도 포함되었다는 사실, 그리스도교인뿐 아니라, 이슬람교도도 있었다는 사실, 나이도 16살부터 86살까지 있었다는 사실—나는 이러한 사실들이 매우 중요한 신학적 · 종교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동성애자에 대한 질문에서 그가 답한 “신이 아닌 인간인 내가 도대체 누구를 정죄할 수 있는가?(Who Am I to Judge?)”라는 의미의 선언은 교황이 현대사회에서 “신”의 이름으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억압과 배제의 문제에 경종을 울리는 것이라고 나는 본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보여주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과 주변부인들에 대한 관심은 이미 세계적 관심을 받고 있으며, 종교의 진정한 모습이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하게 한다.

 

둘째, 진정한 에큐메니즘으로의 전환점이 되기를

 

‘교회들의 하나 됨’이라는 우선적 목표를 가지고 전개되어 온 에큐메니컬 운동의 궁극적 목표는 ‘인류의 하나 됨(unity of humanity)’이다. 에큐메니즘의 궁극 목표는 결국 교회의 하나 됨만이 아니라,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와 이 세계 안에서 어떻게 ‘진정한 의미의 정의와 평화, 평등’이 사람들 간에 이루어지고 있는가에 대한 관심이 되어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미 그의 다양한 행적에서 보여준 바, ‘인류의 일치’라는 커다란 비전을 가진 그의 방한이, 한국 사회의 크고 작은 공간들에서, 교회들의 일치만이 아니라 ‘인류의 일치’를 향해 새로운 발걸음들을 내딛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셋째, ‘포괄의 원’의 점진적, 급진적 확장—조용한 혁명의 바람이 되기를

 

어떤 ‘사건의 의미’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창출되고 만들어가야 하는 ‘지속적인 프로젝트’라고 보기에, 나는 교황의 방한 그 자체가 이미 고정된 어떠한 ‘절대적 의미’를 저절로 가져오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방한 의미는 교황을 ‘종교적 권력’, 절대적 화신으로 확인하는 사건으로서가 아니라, 그 스스로가 보이고 있는 ‘종교권력의 상대화’ 그리고 ‘교황의 탈교황화’ 등의 행보들이 지닌 복합적인 의미가 하나의 지속적인 ‘프로젝트’로 한국 교회들, 종교들, 그리고 사회에 남게 되어야 한다.

 

‘권력/힘’은 그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 다만 그 권력을 가진 사람이 그것을 확장하고, 영구화하고, 절대화하는 것으로 그 권력을 남용할 때, 문제가 된다. 나는 ‘교황’의 자리가 하나의 종교적 권력의 대표적 상징으로 교회와 사회에서 이해되고 있는 점을 보다 긍정적으로 활용하여, 교황 방한을 통해서 한국 교회, 종교, 사회에 무수한 주변부인들의 정의, 평등, 평화를 확산하는 데에 쓰이기를 바란다. 그래서 ‘우리’라는 울타리가 성별, 계층, 교육 배경, 종교 배경, 또는 성적 성향 등에 의하여 그 ‘포괄의 원’을 배타적으로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을 ‘모두’ 끌어안을 수 있을 때까지 그 ‘포괄의 원’을 조금씩 넓히는 작업들을 해 나가야 할 것이다.

 

‘종교 없는 종교’, 즉 종교권력의 확장을 위한 담론과 실천을 양산하는 데에 주력하는 ‘제도화된 종교’의 담을 홀연히 넘어서서, 타자에 대한 연민, 책임, 연대라는 ‘생명 확장의 종교’로의 이행을 하는 데에 교황의 방한이 한국 교회와 사회의 작은 귀퉁이들에서라도 조용한 혁명적 바람을 일으키기를 염원한다.

 

   
 

강남순 텍사스 크리스천대학교 브라이트신학대(Texas Christian University, Brite Divinity School)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재 ‘WOCATI: 세계신학교육기관 협의회’의 회장을 맡고 있으며, 최근 저서로는 <Cosmopolitan Theology>(2013)와 <Diasporic Feminist Theology>(2014, Forthcoming) 등이 있다.

 

 

출처-<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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