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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李舜臣)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국가개조’란 전쟁 혹은 혁명 할 때나 내거는 용어다.

서울의소리 | 기사입력 2014/09/10 [02:10]

이순신(李舜臣)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국가개조’란 전쟁 혹은 혁명 할 때나 내거는 용어다.

서울의소리 | 입력 : 2014/09/10 [02:10]
▲ 신성대 주필 © 한국무예신문

세월호 사고 아닌 사건이 터지자 국가를 개조하겠다며 난리 법석이더니 고작 세월호 특별법 실랑이에 다 휩쓸려 가버리고, 끔찍한 기억은 짜증으로 변질되어가고 있다. 그러다가 가혹행위에 의한 사고가 연이어 터지면서 여론의 화살이 군(軍)에 집중되더니, 결국은 지난 6월 육군 1군 사령관이 만취로 물의를 일으킨 일이 뒤늦게 대통령에게 보고되자마자 말 그대로 ‘찍’소리 한 번 못하고 잘렸다. 다음날, 뇌물수수 혐의의 국회의원 체포동의안을 국회가 부결시켰다.


인격(人格)과 물격(物格)의 차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알카에다의 ‘성탄절 여객기 테러 미수 사건’직후 사과 연설에서 “남을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제가 남 탓을 할 수 없는 까닭은 제가 최종 책임자이기 때문입니다. 안전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책임은 제게 있습니다.”라고 말하였다. 또 2012년 10월 16일, 뉴욕주에서 열린 미트 룸니 공화당 대선 후보와의 2차 TV 토론 발언중 “리비아 주재 영사관이 공격을 받아 4명의 미국 외교관이 사망한 사건의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나에게 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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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7일, ‘세월호’가 침몰하자 진도 실내체육관을 찾은 박근혜 대통령은 실종자 가족들 앞에서 “오늘 이 자리에서 제가 가족 여러분들과 나눈 이야기들이 지켜지지 않으면 여기 있는 분들은 책임지고 물러나야 합니다.” “책임 있는 사람이 있다면 엄벌토록 하겠다.”고 하였다. 이어 4월 21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는 “단계별로 책임 있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민형사상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결국 그 책임을 물어 해경을 해체하겠다고 했다.


많은 이들이 위 두 대통령의 사례를 비교하며 ‘세월호’사건에서 드러난 허술한 재난관리시스템과 컨트롤타워 부재에 대한 대통령과 정부의 무능을 탓하였지만, 정작 그 말 속에서 비친 대통령(한국인)의 의식 구조에 대해서는 미처 깊이 생각하지 않은 듯하다. 이는 단순히 정치인으로서의 수사학(修辭學)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람들은 부지불식간에 사람을 인격(人格)으로 안 보고 물격(物格)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해서 같은 사안을 두고 한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과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의 본질적인 차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그저 최고지도자의 책임지는 자세 비교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 서구 선진문명권 사람들의 기본적인 인식이다. 심지어 적(敵)이나 범죄자라 해도 마찬가지다. 인격은 이용가치가 없어도 존중받아 마땅한 존재인 반면, 물격(物格) 또는 도구는 이용가치가 없어지면 가차(假借) 없이 무시되거나 버려지는 것들이다.


박대통령의 발언은 ‘사람을 이용 수단이나 도구로 보는’ 한국적 사인의식(私人意識)에서 나온 것이라면,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은 인간존엄성에 기반을 ‘인격존중’의 공인의식(公人意識)에서 나왔다 할 수 있다. 진정한 주인의식이 뭔지를 일러주는 좋은 예(例)라 하겠다.  

 

작금의 한국대통령 등 정치지도자들과 사회 각계각층 속물형 지도자들의 인사관리 및 조직관리의 근본적인 인식, 그리고 문제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각종 재난이나 사고 대책 과정에서 허튼소리를 해서 국민들을 공분케 하는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 평소 인격을 표격(票格)으로 봐왔기 때문이다.  

 

별 넷을 만드는데 돈이 얼마가 들까?


아무리 전시가 아니라지만 별 넷을 그렇게 하루아침에 날려도 되는 건지 참 걱정스럽다. 알려지지 않은 다른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고작 그만 일로 목이 날아간다면 《삼국지》에 장비(張飛)는 이름도 못 올렸겠다. 아무렴 그 장군이 아니더라도 한국의 군 장교들은 음주운전 하나만 걸려도 별 달 생각을 접어야 한다.   생즉필사(生卽必死) 사즉필생(死卽必生)? 한국 군인의 최우선 목표가 적과의 싸움이 아니고 ‘자기와의 싸움’, 실은 몸조심이다. 이런 상황에선 이순신(李舜臣) 같은 영웅이 다시 태어난다한들 별 수 없을 것이다. 적에게 총 한 방 쏘기 전에 매뉴얼 살피고, 결재 받고, 사후 보고 및 감사, 여론재판, 청문회까지 각오해야 한다.


부하들의 생사여탈권을 휘두른 것도 아니다. 지위를 이용해 사적 이득을 취한 것도 아니다. 패전조차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 하였건만 이 땅의 군인에겐 음주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성인다운 몸가짐으로 오르지 복지부동만이 군인의 살 길이다. 몸조심이 무혼(武魂)이다.


누구는 올림픽 금메달 하나로 영웅이 되고, 박사논문 표절해서 교수도 되고 국회의원 배지까지 달았다. 성추행으로 물의를 빚은 교사들은 아직도 교단에 건재하다. 왜 유독 군인들에게만 성인에 가까운 잣대를 들이대는가? 세상이 다 썩어도 군인만은? 작금의 군에서 연이어 일어나는 사건 사고의 원인과 책임이 온전히 군에만 있는가? 군이 인성교육기관인가? 수도원인가? 고장 한 번 일으켰다고 최신 탱크 내다버릴 건가?


이 땅의 군인은 모두 제갈량이 되어야 하고 이순신이 되어야 하는가? 두들겨 맞아도 군말 말고 나가 싸워야 하는가? 이순신이 못되는 군인은 나쁜 군인인가?  《명량》에 몰려간 사람들이 그 백분지일만큼이라도 평소 군(軍)에 애정과 관심을 가졌던가? 그저 어쩔 수 없이 세금으로 유지되는 소모품 집단, 미운 오리새끼 취급한 건 아닌지? 앞으로 군에서의 사건 사고는 지금보다 더 했으면 더했지 결코 덜 하지 않을 것이다. 그때마다 별들을 날리면?

▲ 영화 '명랑' 포스터. 생즉필사(生卽必死) 사즉필생(死卽必生)? 한국 군인의 최우선 목표가 적과의 싸움이 아니고 ‘자기와의 싸움’, 실은 몸조심이다. 이런 상황에선 이순신(李舜臣) 같은 영웅이 다시 태어난다한들 별 수 없을 것이다.     © 한국무예신문

 

이순신은 없다


단언컨대 수신제가(修身齊家)하고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한 영웅은 없다. 이순신이 제 분수나 지키고 고분고분 했으면 그렇게 백전백승했을 리도 없고 붙잡혀가서 매를 맞을 리도 없었을 것이다. 아무렴 그렇다한들 이번에 잘린 사령관도 내일 이 땅에 전쟁이 터진다면 당연히 뛰쳐나가가 싸울 것이다. 파리 목숨이라 해도 그게 군인의 본분이니까.   현대의 리더는 탑(Top)이 아니라 센터(Center)이다. 나를 따르라며 명령하는 우두머리가 아니라 조직의 중심에서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해내는 사람이다. 국민 눈치 보며 하는 일이 반드시 국민을 위하는 것도 아니다. 원칙과 신뢰만 고집하며 매일같이 지시하고 질책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지금처럼 서슬 퍼런 눈으로 호통 쳐서야 누가 제대로 일을 해내겠는가? 영화관과 시장을 찾는다고 민심이 돌아설까?


엊그제 김기춘 비서실장이 청와대 출입 사진기자들에게 “대통령님 환한 모습을 많이 찍어주길 바란다!”고 당부하였다고 한다. 도무지 뭐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으니 환한 얼굴을 찍고 싶어도 못 찍을 판이다. 가시적으로 성과를 내놓아야 민심도 따를 것이다. 그러려면 일선 행정가들이 열정적으로 일을 할 수 있도록 대통령이 먼저 그들과 소통을 해내야 한다. 질책이 아니라 격려를 해줘야 한다.


초장왕(楚莊王)과 갓끈


초나라 장왕이 여러 신하들에게 술을 내려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날이 저물어 술이 거나히 올랐을 때 공교롭게도 등불이 꺼지고 말았다. 이에 어떤 이가 함께 자리한 어느 미인의 옷을 잡아당기며 수작을 부리려 하였다. 그러자 그 미인이 그를 붙잡아 갓끈을 잡아당겨 끊어버리고 나서 임금에게 고했다. “지금 어두운 틈을 타 어떤 자가 첩의 옷을 잡아당겼습니다. 첩이 그자의 갓끈을 끊어 가지고 있으니, 등불을 밝거든 그 갓끈 끊어진 자를 살펴주시옵소서!”


이 말이 떨어지자 임금은 좌우에 이렇게 명하였다. “오늘 나와 더불어 술을 마시면서 갓끈을 끊지 않은 자는 즐겁지 않다는 표시를 하는 자이로다!” 그리고는 백여 명이 넘는 신하가 모조리 갓끈을 끊고 나서야 등불을 밝혔다. 그렇게 끝까지 그 즐거운 분위기를 다한 채 잔치를 마치게 되었다.


그로부터 3년이 흐른 후, 진(晉)나라와 전쟁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한 신하가 제일 선봉에 나서서 다섯 번 싸움에 다섯 번을 분격하여 선두에서 적을 격퇴시키는 것이었다. 장왕이 이를 이상히 여겨 그 신하에게 물었다. “과인은 덕(德)이 박하여 일찍이 그대를 특별한 자라고 여기지 않았는데, 그대는 무슨 연고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렇게 선봉에 나섰는가?”


신하가 대답하였다. “저는 마땅히 죽을 몸이었습니다. 지난날 술에 취해 그 예(禮)를 잃었지요. 그런데 임금께서는 이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시고 참으시며 제게 주벌(誅罰)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임금께 그 보답을 위해 간과 뇌를 땅에 드러내어 죽는 것과 목의 피를 적군에 뿌리기를 원해 온지 오래입니다. 신이 바로 그 주연에서 갓끈이 끊겼던 자입니다.” 


살기등등한 대한민국


지금은 전 국민이 흥분한 상태이다. ‘누구든 걸리기만 해봐라’며 쌍심지를 돋우고 있다. 여기에 국가최고지도자까지 흥분해서야 사태가 제대로 수습될 리 없다. 부하의 잘못을 무조건 벌주기보다는 대국민사과는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하고, 음주로 실수한 장군을 조용히 청와대로 불러 좋은 술을 내놓고 “앞으로 술 마시고 싶으면 언제든 청와대로 오시라!”며 점잖게 타일렀어야 했다. 이순신이라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


원칙과 법, 규정만 따진다고 신뢰가 서는 것 아니다. 배려와 관용, 융통성, 인간존엄, 인재존중 없이는 시스템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지도자는 평정심으로 중지를 모아 길을 찾아야 한다. 당장에 해결책을 내놓으라는 게 아니다. 국민들이 제 일을 할 수 있게 안심이라도 시켜달라는 거다. ‘국가개조’란 전쟁 혹은 혁명 할 때나 내거는 용어다. 대통령직을 걸겠다는 각오가 아니면 헛소리했다는 오명만 남길 것이다.

 신성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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