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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진실] 지배층이 진실을 거부하는 이유

스러지지 않을 것으로 살아가기

서울의소리 | 기사입력 2014/09/20 [00:49]

[사랑과 진실] 지배층이 진실을 거부하는 이유

스러지지 않을 것으로 살아가기

서울의소리 | 입력 : 2014/09/20 [00:49]

복음에 보면, 예수께서 당시의 세태를 꼬집는 대목이 있다. ”세례자 요한이 와서 빵을 먹지도 않고 포도주를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루카 7,33-34)

 

세례자 요한이 왜 빵도 포도주도 마시지 않았는지 그들은 몰라서 물었을까? 그것은 힘없는 사람들을 벼랑으로 내모는 세상의 권력자들의 회개를 위한 것이 아니었던가? 예수가 왜 먹고 마셨는지 그들은 몰라서 물었을까? 그것은 벼랑 끝으로 내몰린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들과 함께 하며 그들의 이웃이 되기 위한 것이 아니었던가?

   
          ▲ 9월 8일 광화문 세월호 단식 농성장에서 열린 추석 잔치 ⓒ강한 기자

 

오늘 우리 사회의 현실을 보고 있으면 같은 말을 해 주고 싶은 사람들이 떠오른다. 이렇게 묻고 싶다. 세월호 특별법을 왜 요구하는지, 수사권과 기소권을 왜 요구하는지, 당신들은 정말 모르는가? 이 요구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함이 아닌가? 오직 이것만이 진상 규명의 유일한 길임을 우리의 과거사가 입증하고 있지 않는가?

 

용산 화상경마도박장의 이전을 왜 요구하는지, 당신들은 정말 모르는가? 이 요구는 지역 주민의 주거권의 파괴를 막기 위함이 아닌가? 학생들의 교육권을 보호하기 위함이 아닌가? 이 땅의 모든 화상경마도박장의 폐지를 왜 요구하는지, 당신들은 정말 모르는가? 이 요구는 사람들이 도박 중독자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 아니던가? 우리 삶의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기 위함이 아니던가?

 

신규 핵발전소 건설과 노후 핵발전소 폐쇄를 왜 요구하는지 당신들은 아직도 정말 모르는가? 용산참사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문제 등으로 대변되는 온갖 사회적 현안의 진상 파악과 책임자 처벌을 왜 요구하는지, 당신들은 아직도 정녕 모르는가? 이 모든 요구는 이 땅의 정의와 평화, 우리 모두의 인간다운 삶, 우리의 안녕을 위함이 아닌가?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권한과 책임을 지닌 자들은 모르쇠로 일관한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기들도 인간이라면. 차마 내놓고 인정할 수 없는 숨기고 싶은 이유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같은 정당한 요구에 계속 트집과 꼬투리를 잡는다. 궁색하고 옹색한 변명을 늘어놓기 일쑤다.

 

세월호 특별법의 수사권과 기소권이 삼권분립과 사법 체계의 근간을 흔든단다. 최고 권력자가 최종적으로 확인한 세월호 특별법의 불가 사유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모두 알고 있다, 그들도 우리도. 수사권과 기소권을 진상조사위원회에 주면 “마음대로 청와대를 들쑤시고 다닐게” 두렵기 때문이다. 그렇다! 숨기고 싶은 진짜 이유는 이미 그들 자신의 입을 통해서 드러나 버렸다. 두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진실 규명을 위해서 필요할 때에만 어디든 누구든 수사하고 기소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왜 두려울까? 아니, 바로 그래서 두려울 것이다.

 

화상경마 도박장은 건전한 말 산업, 레저산업의 육성을 위한 것이라 문을 닫을 수 없단다. 아니, 돈 때문에 그렇다. 문을 닫으면 엄청난 액수의 수입과 세금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 앞을 무시로 지나다니는 아이들도 다 아는 사실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한다. 전력대란 때문에 핵발전소를 더 지어야 하고 수명을 연장해서라도 가동해야 한다고 우긴다. 아니, 돈 때문에 그렇다. 그렇지 않으면 핵발전소 건설과 유지를 둘러싼 엄청난 이권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들은 우리를 이길 수 없다. 저들은 거짓에 서 있고 우리는 진실에 서 있기 때문이다. 거짓은 진실을 이길 수 없다. 어둠은 빛을 가릴 수 없다. 가린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렇다, 저들은 우리를 이길 수 없다. 저들은 탐욕으로 움직이고 우리는 사랑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탐욕은 강하지만 오래 가지 못한다. 탐욕으로 움직이는 자들은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다가 결국 제 풀에 무너지고 만다. 사랑은 연약하지만 모든 것을 견디어 낸다. 사랑으로 움직이는 우리들은 서로 연대하며 힘을 북돋워 준다. 꺾이지 않는 희망을 키워간다.

 

삶이 덧없음을 종종 얘기 한다. 특히, 한창이던 여름, 그 기운이 한풀 꺾이고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들면 문득 올 한 해,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고 남아 있는 날들을 바라보게 된다. “참 빠르기도 하지. 또 이렇게 지나갔구나. 얼마 남지 않았네!” 반복되는 시간의 흐름 속으로 사라져 간다, 모든 것이.

 

오직 사랑만이 예외일 뿐이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는다.(1코린 13,8 참조) 그러니 사랑이 수반되지 않는 모든 것은 결국 지나가버릴 것이다. 사랑 없이는 그 어떤 것도 결국 아무 것도 아니다.

 

권력을 누릴 기간이 줄어들수록 이를 점점 더 절감하게 될 것이다. 권력을 내놓는 순간, 이를 절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욱 권력에, 돈에 집착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불행히도 거기에는 답이 없다.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사랑 그리고 사랑이 기뻐하는 진실, 거기에만 답이 있을 뿐이다.(1코린 13,6 참조) 사랑과 진실만이 덧없이 스러지지 않고 지속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디에 서야 하는지 너무나 자명하지 않은가? 스러지고 말 것이 아니라 스러지지 않을 것, 거기에 나와 내 삶을 놓아야 한다. 나는, 내 삶은 그토록 소중하다. 그렇지 않은가?

 

   
 

조현철 신부 (프란치스코) 예수회, 서강대학 신학대학원 교수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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