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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 교수] 이 세상에 "유상복지"라는 게 있나요?

"틀짜기효과(framing effect)를 노린 교묘한 말장난"

서울의소리 | 기사입력 2015/02/08 [15:54]

[이준구 교수] 이 세상에 "유상복지"라는 게 있나요?

"틀짜기효과(framing effect)를 노린 교묘한 말장난"

서울의소리 | 입력 : 2015/02/08 [15:54]

 

▲ 서울대 경제학부 이준구 교수

미국의 보수파들은 상속세를 "사망세"(death tax)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것을 즐깁니다.

 

정부는 국민이 무얼 하든 세금을 떼어가고 심지어 죽음에 대해서까지 세금을 부과한다는 의미에서 이 말을 쓰는 거죠.

 

그들이 상속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이 말을 쓴다는 건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행태경제이론에서 말하는 틀짜기효과(framing effect)를 노린 교묘한 말장난이지요.

우리나라에서 요즈음 복지와 증세와 관련된 논의가 무성합니다.
여기서 자주 등장하는 것이 "무상복지"라는 표현입니다.
그 말을 애용하는 건 주로 정부, 여당, 보수언론들이구요.
복지프로그램은 그 본질상 무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가 대가를 받고 어떤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그건 복지프로그램이 아닐 테니까요.

그런데도 그들이 구태여 "무상"이란 말을 앞에다 붙이는 건 복지프로그램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부각시키려는 의도임에 한 점 의문이 없습니다. 미국의 보수파들이 사망세라는 표현을 즐겨 쓰는 것과 너무나도 똑같은 맥락이지요.

그 동안 여러 가지 복지프로그램이 임기응변적으로 무질서하게 도입되는 바람에 정리가 필요하다는 데는 아무 이의가 없습니다. 다양한 복지프로그램에 대한 우선순위를 확립하고 먼 훗날을 내다본 청사진을 만든 다음 증세를 할 것인지의 여부를 논의하는 것이 올바른 수순임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무상복지"라는 말을 즐겨 쓰는 사람들은 지금 우리 사회가 너무나 많은 돈을 복지프로그램에 쏟고 있다는 암묵적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나라 살림이 거덜이 날지도 모른다는 말이 꼭 뒤따르고 있으니까요.
며칠 전인가는 정부 고위관료가 복지프로그램이 국민을 게으르게 만들 것이 걱정이라는 말을 하는 것도 들었습니다.

정말로 현재 우리 사회가 복지프로그램에 너무 많은 돈을 쏟아붓고 있는 나머지 나라 살림이 거덜이 날 지경일까요? 그리고 국민이 정부의 복지혜택만 바라고 게으름을 부리는 복지병(welfare disease)을 걱정해야만 할 상황인가요?

정부의 사회복지 관련 지출 통계를 보면 아직도 우리나라는 선진국보다 크게 낮은 수준임을 볼 수 있습니다. 사회복지 선진국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되는 수준입니다. 우리나라가 거덜날 지경이면 그 나라들은 벌써 국제적 거지가 되어 있어야 하겠네요.

무상복지 운운하는 사람들이 즐겨 드는 예를 보면 반드시 "무상급식"이 그 속에 끼어 있었습니다. 내가 알기로는 무상급식에 소요되는 예산이 2조원 내외입니다.

 

그리고 그 2조원이라는 돈은 시궁창이나 쓰레기통으로 쏟아버리는 게 아니라, 우리의 어린이들에게 따뜻한 점심을 먹이는 데 쓰는 겁니다. 게다가 그 2조원은 고스란히 급식을 재공하는 사람들의 소득이 되는 것이구요.


4대강 파헤친답시고, 자원개발 한답시고 몇 십 조원의 혈세를 시궁창으로 쏟아부은 정부가 2조원 들여 아이들 점심 먹이는 게 아깝다고 호들갑떠는 모습이 정말로 가관입니다.

 

종합부동산세만 죽여버리지 않았어도 무상급식에 필요한 예산보다 훨씬 더 많은 세금을 거둬들일 수 있었을 텐데요.

전에 무상급식 논쟁이 벌어졌을 때 재벌 아이에게도 공짜 점심을 줘야 하느냐는 말이 나왔습니다. 재벌 아이에게 공짜 점심을 주는 대신 재벌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거두면 아무 문제 없는 것 아닙니까?

 

복지프로그램에 필요한 예산을 어떻게 조달하느냐에 따라 그 효과가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수파들은 복지예산 타령만 늘어놓고 있습니다.

우리는 결코 복지과잉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의 복지프로그램은 아직도 소외계층을 모두 보듬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형편입니다.

 

그리고 복지프로그램을 위해 세금을 더 내는 부자가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닙니다. 사회복지의 확충을 통해 더 조화롭고 더 안전한 사회가 된다면 부자들도 이에서 큰 이득을 얻게 되는 셈이니까요.

매일 신문과 방송을 도배하다싶이 하는 "무상복지"라는 말은 이제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은 그 말에 보수파들의 불순한 의도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어야 합니다.

 

출처 : 이준구 교수 홈피 http://jkl123.com/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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