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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세상과 근혜의 세상

서울의소리 | 기사입력 2015/02/22 [17:20]

세종의 세상과 근혜의 세상

서울의소리 | 입력 : 2015/02/22 [17:20]

동서양을 막론하고 최고 권력자들은 피권력자들의 착취를 용의하게 하기위해 그들을 ‘생각하지 못하는 살덩이’로 만들기 위해서 혈안이었다.

 

지배자들을 대변하는 상술로 변질된 종교는 민중이 현실을 보는 눈을 가렸고, 밤낮 가리지 않는 고된 노동은 아예 다른 생각을 할 여유 자체를 빼앗았으며, 직접적으로 피지배자들에게 교육받을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하기도 했었다.

 

이렇게 생각하는 기능을 거세시킨 우매한 민중들의 고혈을 빼먹는 기술은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권력자들의 미덕이다.

 

그런데 동서고금의 제왕들을 통 털어 이단아라고 부를 수 밖에 없을 정도로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며 이러한 권력의 전통을 거스르는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세종대왕이다.

 

백성들을 진정으로 사랑했던 세종대왕이 백성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한글을 만든 것은 잘 알려져 있는데, 이는 문자를 독점하여 지배력을 영속화 하려는 중화사상에 물들어 있는 양반계층에게는 크나큰 도전이었다. 하지만 세종대왕은 왕권 존립의 위험을 감수하고 한글을 창제 배포했다.

 

특히나 끊임없이 고전을 탐독했던 세종대왕은 깨인 신하들의 역할을 무엇보다도 중요히 여겨 재위기간 동안 1900회의 학문 경연을 열었다고 한다. 배움 속에 지혜가 있고, 그 지혜를 통해 세상을 다스릴 통로가 있음을 알았던 세종다운 모습이었다.

 

이 경연을 통해 세종은 신하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신하들의 자질과 능력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는데, 적제적소에 능력에 맞는 신하들을 배치하고 국정 운영을 고도화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특히나 6일에 한 번 꼴로 열린 이 학문 경연 중에 세종은 결코 자신의 가르침을 신하들에게 강요하지 않고 신하들에게 배움을 청해 듣기도 했는데, 이는 군신간의 관계를 돈돈히 하고, 신하들의 충심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는 역성모의로 정권을 찬탈하고, 권모술수로 신하들을 다스리며, 주색잡기에 정신 팔려 있다가 살해당한 여느 왕과 달리, 진정 백성을 사랑하는 제왕이 보인 최고의 통치술 이었다.

 

세종이 집현적 학자들을 모아 놓고 ‘연구에 매진해주기를 바라며’ 전했던 다음의 얘기는 그의 성군된 자질을 명료하게 압축해 주고 있다.

 

“내 유일한 소망은 백성들이 원망하는 일과 억울한 일에서 벗어나는 것이요, 농사짓는 마을에서 근심하면서 탄식하는 일이 영원히 그치는 것이요, 그로 인해 백성들이 살아가는 기쁨을 누리고자 하는 것이요. 경들은 내 지극한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하오.”

 

 

퇴임 2년 만에 하지도 않은 업적을 부풀리며 자화자찬 떠넘기기 회고록을 낸 전직 대통령.

 

그리고, 언론 협박범을 총리로 세운 현 대통령의 모습을 보며, 세종의 백성을 향하던 마음가짐과 극명히 대비되었음은 결국 사회가 이모양 이꼴이 되었음의 반증이기도 하다.

 

세종대왕이 잠깐이라도 이 시대를 기웃거릴 수 있다면, 작금의 시대에 보여지는 ‘백성들이 원망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고, 근심과 탄식 계속되고 있는 작금의 실태’에 무슨 말씀을 하실지...

 

글쓴이 : 둥글이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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