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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구라'는 없는지 고민 좀 하자"

미군 의료헬기는 뭘 저렇게 열심히 하는 걸까? 뭘?

서울의소리 | 기사입력 2015/03/29 [13:44]

"'천안함 구라'는 없는지 고민 좀 하자"

미군 의료헬기는 뭘 저렇게 열심히 하는 걸까? 뭘?

서울의소리 | 입력 : 2015/03/29 [13:44]

내가 자란 곳은 서울시 성동구 옥수동 아랫말이다.

대문을 열면 손수레 하나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흙길이

청량리역에서 용산역으로 가는 철길 둑을 따라 나란히 있는데,

 

그 길과 집(작은 마을)이 모두 철도부지에 속해있었다. 결국 강북강변도로가 생기면서 1969년에 마을이 모두 헐리고 주민 대부분이 경기도 광주(지금의 성남시)에 반강제로 이주 하면서 내가 살던 마을은 아스팔트 아래로 사라졌다. 난 중학교 진학 문제로 건너 마을로 이사해서 계속 옥수동에 살게 됐지만 이때 함께 자란 많은 동무들과 헤어지는 큰 아픔을 겪었다. 다들 어떻게 살고 있는지...

 

태어나고 자란 마을은 사라졌지만 추억은 남아있다. 어린 나에게 스승이었고 친구였던 한강이 있다. 동호대교 북단 하류 쪽으로 100m, 한강 개발로 많이 변형됐지만 내 추억의 장소는 지금도 남아있는데, 요즘도 중앙선 옥수역에서 전철을 기다릴 때는 일부러 플랫폼 끝으로 가서 그 장소를 내려다보며 어린시절 속으로 돌아가곤 한다.

 

그 시절, 푸석해져서 구멍이 뻥뻥 뚫린 블로크담장에 걸리다 시피 있던 양철문을 삐비빅 열면 바로 앞에 3m 높이의 철길 둑이 있고 둑을 올라가면 바로 한강 그 추억의 자리가 있다. 여기서 낚시도 하고 겨울엔 동무들과 썰매를 탔고 강둑을 몽땅 태우며 불놀이도 했다. 여름엔 물놀이...

 

난 국민학교 5학년 여름방학에 처음으로 한강을 헤엄으로 건넜다. 지금의 강남구 앞구정동 앞을 목표로 헤엄쳐 건너려면 물 흐름을 감안해서 미리 상류 쪽으로 한참을 걸어 올라가서 출발해야했다. 그런데도 물살에 떠내려 가면서 목표했던 지점에서 훨씬 하류 쪽에 도착된다. 물 흐름이 대단했다. 바다에도 이런 물 흐름이 있다고 하는데 경험하진 못했지만 한강에서 얻은 경험에서 해류(조류)가 어떨 거란 짐작은 있다.

 

한강은 물고기가 참 많았다. 어느 때는 하류 쪽에서 까맣게 몰려 올라오는 고기때를 보며 잠자리채를 물속에 넣었다 꺼냈다 하면서 혹시 한 마리 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수없이 채질을 했던 기억도 있다.

 

제3한강교(지금의 한남대교)가 생기고 다리를 건널 때 강물을 내려 보며 물고기 노는 모습을 해 저물도록 쳐다보았던 기억도 있다. 이때만 해도 한강물이 강원도 산골 물처럼 맑았다. 어머니는 아침밥상을 치우면 가족들 빨래를 광주리에 이고 한강으로 가셨다. 이 시절 한강엔 돈을 받고 빨래를 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장마철 늘어난 한강물에 떠내려가는 익사체를 여러 번 봤는데... 남자는 엉덩이를 하늘 쪽으로 가슴을 강바닥 쪽으로 하고, 여자는 반대로 가슴을 하늘로 하고 떠내려간다는 것도 알 게 됐다.

 

달리던 기차가 굉음을 내면서 갑자기 멈춰서면 사고를 생각하면서 습관처럼 철둑길을 뛰어 올라갔다. 멈춰선 열차바퀴를 만져보기도 하면서 아래를 자세히 살펴보기도 한다. 운이 좋으면 열차에서 떨어진 브레이크 쇠뭉치를 줍는 경우도 있다. 크고 무거운 쇠뭉치이기에 동네에 오는 엿장수 아저씨에게 주면 엿은 물론이고 옥수수깡냉이까지 덤으로 준다. 철로 옆에 목이 잘린 머리를 봤는데 처음엔 개머리로 알고 고무신 신은발로 돌려놓고 보니 친구동생 얼굴이었다. 이날 건너 마을에 사는 여럿 아이가 죽었는데 이제 막 국민학교에 입학한 동생들 이었다. 철로에 못을 올려놓고 지나가는 기차바퀴에 못이 얇아지게 해서 장난감을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으로 철길에 왔다가 변을 당했다.

 

많은 사람들이 빈곤에 삶이 지쳐있던 때였다. 강물에 투신 하는 사람, 달려오는 기차에 뛰어드는 사람이 자주 있었다. 물놀이 하다가 또는 철로에서 장난치다가 부주의로 죽는 이들도 많았다. 이런 연유로 사체를 자주 보게 됐는데... 물에 빠진 익사체와 기차사고 사체의 차이가 어떤지 알게 됐다.

 

한강엔 낚시꾼들도 많았는데 주로 밤샘 낚시를 하고 아침 일찍 철수 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마 낮에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 아니었겠나 생각된다. 낚시꾼들이 있던 자리엔 엉크러진 낚시줄부터 바늘 미끼 등등... 엉켜서 버려진 낚시줄을 잘 클르고 부러진 찌, 바늘 등을 잘 정리하면 그런데로 낚시 할 만하게 꾸며진다. 이즈음 물고기들은 순진해서 대충 해도 잘 낚였다. 내가 잡은 붕어와 잉어는 민물고기반찬을 좋아하시는 아버지 점심도시락반찬으로 쓰였다. 뱀장어도 많이 잡았는데... 뱀장어는 낚시줄을 몸에 감고해서 잡아도 굉장히 귀찮았다. 뱀을 닮은데다가 미끌미끌하고 징그럽고 이상해서 잡으면 그냥 모래 위에 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아깝지만 그땐 뱀장어가 좋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던 때였다.

 

가뭄이 심하던 어느 해 여름, 친구들과 강건너 모래사장에서 맨손으로 모래모지를 두 양동이 가득 잡았다. 그날 저녁 동네 한켠에 대형 솥을 걸어놓고 아저씨들은 둘러 앉아 술안주 하고 아주머니들은 그릇에 담아가고... 동네를 위해 굉장히 좋은 일을 한 것 같아 친구들끼리 어깨 으쓱했던 기억도 있다.

 

기차가 지나갈 때 소음이 상당히 크게 들린다, 수없이 들은 소리 지겹도록 들어서 친근해진 소리,,, 달리는 기차 소리는 변화가 없이 일정했다. 그런데 간혹 기차소리에 미세한 음이 섞여 들릴 때가 있다. 이 미세한 음은 한강에서 물고기를 잡기위해 화약을 터트리는 소리다. 이 소리 또한 자주 들어서 기차소리에 섞여 들리는 미세한 소리를 난 분별할 수 있었다.

 

활명수병에 화약을 넣고 심지를 달아 병입구를 촛농으로 봉해서 물에 띄워 놓으면 수직으로 서서 심지가 타들어가는 주둥이를 수면에 내놓고 적당히 흘러가다 폭발하게 된다. 이건 불법 고기잡이다. 폭발음을 누가 들으면 안된다. 그래서 달려오는 기차굉음에 폭발 타이밍을 맞춘다. 기차의 큰 굉음 속에 작은 폭발음을 감추려는 것이다. 그런데 기차소리에 익숙해진 내겐 그 작은 소리도 다 들린다. 얼른 철둑을 뛰어 올라가서 기차가 지나길 기다렸다가 건너편 한강으로 뛰어 내려가면 강물엔 물고기때가 뒤집어져 허옇게 둥둥 떠 있다. 폭음에 놀라 기절했거나 죽거나 한거다. 아무나 건저가면 된다. 나도 허리까지 빠져 가면서 많이 건졌었다.  어떤 땐 헤엄쳐 들어가서 고기를 입에도 물고 메리야스, 빤스 속에 넣고 두 손으로 헤엄쳐 나와야 했다... 자주 그랬다.

 

낚시를 하다가 가까이서 화약을 터트리는 과정을 처음부터 지켜보기도 했다. 폭발 때 물이 튀고 바닥 흙탕물이 뒤집어지는 광경을 여러 번 봤다. 기차굉음과 활명수병 폭발음과 뒤집어 지며 튀어 오르는 흙탕물, 뒤이어 하얗게 떠오른 물고기들... 그리고 물에 빠진 익사체와 기차에 치인 사체의 모습은 어떠 했는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 이 글을 왜 썼는가...

 

 ▲ 미군의료헬기는 뭘 저렇게 열심히 하는 걸까? 뭘?

 

내 어릴 적 경험으로는,

사고현장과 수병들 모습(인양된 사체포함)에서 어뢰폭발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 생각 때문일까. 테레비젼에서 무슨 전문가니 학자니 하는 자들의 황당한 말을 듣다가 이들이 국민의 수준을 어떻게 생각하기에 저런 황당한 말을 작심하고 하는 걸까 하는 생각에 그 아가리에 활명수병을 쳐박고 싶은 심정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 내 얘기의 결론은 구라는 없는지 고민해 보자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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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양이 2015/03/30 [08:49] 수정 | 삭제
  • 모든 정부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읍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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