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 이승만 6.25때 일본 망명 요청 사실!

서울의소리 | 입력 : 2015/06/24 [23:32]

[디·퍼/단독] "이승만 정부, 일본 망명 요청설" 사실이었다

KBS | 박재우 | 입력 2015.06.24. 20:01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 前 대통령의 행동에 대해 역사적 논란이 많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일본 망명 요청설'인데요,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 정부는 실제로 일본에 망명 요청을 했을까?

■ 이승만 前 대통령 '일본 망명 요청설'

한국전쟁 발생 직후 불과 사흘 만에 서울이 점령당하는 등 다급한 상황이라, 당시 한국 정부의 공식 기록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사실 확인을 위해 `망명 지역'으로 거론됐던 일본 야마구치 현청의 도서관을 찾았습니다. 야마구치현의 역사를 기록한 `야마구치 현사'에서 1950년의 기록을 살펴봤습니다.

▲ 야마구치현사

당시 `다나카 타쓰오' 야마구치현 지사는 한국전쟁 발생 이틀 뒤인 6월 27일, 외무성을 통해 "한국 정부가 6만 명의 망명정권을 야마구치현에 세우고 싶어한다"는 전보를 받았다고 적혀있습니다. 이에 대해, `다나카' 지사는 현재 지역 주민들에게도 배급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고 있는 등 식량 문제가 심각하다며, `한국인 망명' 수용에 반대 의사를 밝혔습니다.

■ 일 "한국인 5만 명 수용" 계획

`한국인 망명'에 대한 조금 더 정확한 공식 기록은 없을까? 여러 사람에게 확인하는 과정에서 교토의 한 대학에 있는 `재일교포 3세'인 교수님이 한국전쟁 당시 이 문제와 관련한 미국 공문서보관소의 `미 군정 문서' 마이크로 필름을 소장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교토로 달려갔습니다.

이 문서는 한국전쟁 발생 열흘쯤 뒤인 1950년 7월7일의 기록이었습니다.

야마구치현의 `다나카' 지사는 일본 츄고쿠 지역 5개 현 지사 회의에 참석한 자리에서 `한국인 5만 명 수용 계획'을 발표합니다. `다나카' 지사는 영문으로 된 `비상 조치 계획'이란 제목의 이 보고서에서 야마구치현 아부 등 4개 자치단체에 20개의 피난 캠프와 마을을 만들고 임시 막사 1곳에 200명씩, 모두 250개 막사에 5만 명을 수용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 일본은 '조선정보실'…이승만 정부는 '깜깜이'

한국전쟁 발생 이틀 전인 6월 23일에도 야마구치현 지사가 `북한이 남침할 위험성이 매우 높다며 대책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일본 총리에게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야마구치현의 `다나카' 지사는 한국이 북한과 중국,소련 등 공산주의 세력의 `1차 저지선'이고, 야마구치현은 일본 본토의 `방파제'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고 한반도 정세 변화를 꼼꼼하게 확인했습니다.

이 `한국인 피난 캠프' 계획이 어느 정도까지 진행됐는지 다른 문서를 더 찾아내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승만 정부의 `일본 망명'도 인천상륙작전 등으로 전쟁의 양상이 완전히 바뀌면서 실행에 옮겨지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국전쟁 발생 직전, 이승만 정부가 한반도와 주변 정세에 얼마나 어두웠는지, 한국전쟁 발생 직후 이승만 정부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 이 기사는 6월 24일 KBS 뉴스9에서 방송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나의 의견>

 

광복절을 거부하고 건국절 어쩌고 했던 수구 단체들 난리가 났겠군...

전쟁이 나자 자기들만 살겠다고 일본 망명?

에라이~

 

친일파 청산 않고 반민특위 탄압한 이유가 있었구만!

그래서 김구도 죽였나?

친일파 청산하여 민족 정기 바로잡자!

 

* 이상 coma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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