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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70년, 윤치호는 정말 애국가를 지었나”

독립운동 좀 하다가 자발적 친일 거두가 된 윤치호의 애국가 작사자 논란

이영일 기자 | 기사입력 2015/08/09 [18:52]

“해방 70년, 윤치호는 정말 애국가를 지었나”

독립운동 좀 하다가 자발적 친일 거두가 된 윤치호의 애국가 작사자 논란

이영일 기자 | 입력 : 2015/08/09 [18:52]

최근 '암살'이라는 영화로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신선한 재조명이 활발하다. 해방 70주년이 되는 해이지만 우리는 아직 친일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주장도 다시 나오고 있고, 한 언론사에서는 친일후손 명단을 작성해 암울했던 역사의 굴레를 잊지 말자고 나서고도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자 현 대통령의 동생도 왜곡된 역사에 대한 사과 요구는 지나친 것이고 야스쿠니 신사참배도 내정간섭이라고 하는 판이니 흡사 세월이 일제의 망령속으로 거꾸로 돌아가는 듯 하다. 그속에서 70년의 세월을 허망하게 자리하는 것이 하나 있다. 통한의 고통속에서 눈물로 불렀던 애국의 노래가 바로 그것이다. 
    
해방 70주년을 앞두고 최근 이 애국가의 작사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관심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단순한 나라 상징물의 의미를 훨씬 뛰어넘어 해방을 위해 초개와 같이 목숨을 버렸던 선조들의 얼과 정신이 서려 있는 이 애국가의 가사를 각각 윤치호와 안창호가 썼다고 주장하는 논쟁이 그것이다.

 

▲ (좌) 윤치호, (우) 안창호     © 이영일


애국가 작사자에 대한 활발한 대표적 입장은 윤치호가 작사자라는 주장이다. 이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윤치호 역술 1908년 재판 「찬미가」 기록, 1910년 신한민보 <국민가> 윤티(치)호 기록, 1910년 8월 14일 동격유학생회 韓國開國紀元祝賀會 “金晋庸ヨリ現行ノ國歌ヲ廢シ尹致昊作ナル國歌ニ代ヘンコトヲ提言” 기록, 1945년 자필 ‘1907년 윤치호 작’ 기록 등, 가족의 다양한 증언등을 제시하며 윤치호가 작사자라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윤치호는 잘 알려진 친일파의 거두다. 한때 독립운동에 참여했고 대성학교 교장도 역임했던 그였지만 1911년 105인 사건이 일어나자 친일전향을 조건으로 1915년 2월 13일에 출감했고, 그 후 1915년 3월 14일자 매일신보에 자신이 일선동화에 앞장설 것을 다짐하는 글을 쓰는가 하면, 3.1운동이 일어난지 며칠후 경성일보를 통해 평화를 위해 일제에 순종하라는 매국적 발언을 일삼기 시작했다.
    
60년간 금천출납부에 일기까지 직접 썼던 그가 평소 애국가를 자기가 지었다고 말하고 다닌적도 없고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적었던 그의 일기장에는 애국가에 대한 언급이 단 한줄도 없다. 1943년 일제의 총동원령이 나자 11월 18일자 매일신보를 통해 조선 학도병 독려의 적극적 친일행위에 열을 올린 윤치호는 1945년 2월, 일본 귀족원 의원에 선출되어 일본 귀족 이도오 찌꼬오(伊東致昊)가 된다.
    
그런 그는 해방이 되자 뜬금없이 애국가를 자기가 만들었다고 나선다. 윤치호가 애국가의 작사자라고 주장하는 쪽은 윤치호가 자신이 설립한 한영서원 교재로 찬미가를 편찬해 보급하고 1945년 10월경에 애국가 가사를 옮겨 쓴 '가사지'를 남겼다는 것을 주요 증거로 제시하며 다양한 연구물을 제시해 오고 있다.
    
필자는 윤치호가 친일 매국노라고 해서 그가 애국가를 작사했을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윤치호는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던 자였다. 하지만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친일 행적의 사상을 가진 그가 변절전에 어떻게든 애국가의 형성 과정에 관여했을수는 있어도 60년동안 단 한번도 스스로 애국가에 대해 언급없던 자가 애국가를 만들었다고 선뜻 동의되지 않는다.
    
윤치호 작사를 주장하는 측은 최근 안창호 작사설을 조작이라며 주장하고 나섰다. 마땅히 윤치호가 애국가를 지은 것이 규명된다면 당연히 이는 역사적으로 수용되어야 한다. 애국가를 친일변절자가 지었다는 것보다 훌륭한 민족지도자가 지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해서 역사를 왜곡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신경질적 주장과 힐난적 규명 태도는 애국가에 대한 규명 자세가 아니라 생각된다.
    
윤치호가 애국가를 만들었다는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 소신과 믿음앞에서 이를 규명하려 노력하듯, 안창호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믿음속에서 그 근거를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이 윤치호 작사설 주장측처럼 모두 허위이고 조작인 것인가? 윤치호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주장이 진리이자 역사적 진실이라고 생각한다면, 윤치호설의 핵심인 찬미가가 버젓이 있음에도 그가 애국가를 지은 것이 아니라 안창호가 지은 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마치 윤치호 자신이 한 것처럼 왜곡되었을 수 있다는 반론은 왜 계속되고 있는 것일까를 생각해야 한다. 역사를 돌이킬 수는 없으나 가정은 해볼 수있다라면 필자는 앞에서 언급한 윤치호의 행적에 그 원죄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들이 예전에 이미 다 애국가 작사자는 윤치호라고 밝혔는데 왜 안창호를 애국가 작사자라고 우기냐며 안창호 작사설을 주장하고 믿는 사람들을 전부 역사를 왜곡하려는 작당인 듯 치부하는 성숙하지 못한 태도는 윤치호설이 설사 진실이라고 해도 이를 수용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찌됐던간에 윤치호든 안창호든 누가 애국가를 만들었는지에 대한 역사적 진실은 아직 확정된 바 없다. 따라서 해방된지 70주년이나 지났는데도 아직 애국가 작사자가 누구인지 규명 못한 후세들의 못남을 반성하고, 각각 이를 주장하는 측에서 그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언과 정황, 증거를 토대로 왜 자신들이 주장하는 인물이 애국가의 작사자라는 것인지에 대한 진지하고도 냉정한 연구를 계속해 나가야 한다. 흐지부지 하는 것도 아니고 안하는 것도 아닌 정부의 애국가 작사자 규명 노력과 의지는 이제 좀 달라져야 하고 적극적이어야 한다.
    
애국가 작사자를 규명한다면서 누워서 침뱉기처럼 우리 스스로 헐뜯으며 규명하는 애국가 작사자는 누더기가 될 우려가 높다. 우리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해 온 애국가의 진정한 힘이 무엇인지 광복 70주년앞에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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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NGO대학원에서 NGO정책관리학을 전공했다. 대학 재학 시절 총학생회장과 문화일보 대학생기자, 동아일보e포터 활동을 했고, 시민의신문에서 기자 교육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중앙일보 사이버칼럼니스트, 한국일보 디지털특파원, 보도통신사 뉴스와이어의 전문칼럼위원등으로 필력을 펼쳤다. 참여정부 시절 서울북부지방법원 국선변호감독위원, 대통령직속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국무총리실 삼청교육피해자보상심의위원등 다양한 민간위원을 역임했다. 2015년 3월, 사회비평칼럼집 "NGO시선"을 출간했고 각종 온오프라인 언론매체에서 NGO와 청소년분야 평론가로 글을 써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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