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테러를 보며...서방이 깨닫지 못하는 것들파리 테러는 서방의 두려움과 이슬람의 굴욕감의 충돌
도미니크 모이시의 <감정의 지정학>은 감정의 색깔로 세계 지도를 그립니다. 감정 지도로 보면 서양은 공포, 이슬람은 굴욕, 아시아는 희망으로 채색됩니다. 서양은 성공한 역사에서 이뤄낸 자신감이 상처를 입을까봐, 실패하고 좌절한 세력으로부터 공격을 받을까봐 두려워하는 정서입니다.
이슬람은 오스만 제국 이후 지난 3백년 간 지속적으로 쇠락하면서 자신감을 잃게 됩니다. 그것이 과거의 영광과 대비되면서 서구에 대한 미움을 배가시키는 굴욕적 정서를 형성합니다. 중국과 인도의 중산층을 합친 7억 명의 ‘친디아(chidia)'가 희망의 주축입니다. 여기서 예외가 있다면 일본으로 서구와 같은 두려움의 정서에 빠집니다.
바이러스는 물리력으로 제압되지 않는 일종의 면역학적 문제입니다. 이슬람을 극복하려면 이슬람을 포용하면서 그 굴욕감을 관리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면역학적 처방입니다. 그러나 서방의 군사행동은 이슬람에게 더 많은 굴욕감을 주게 되고, 그게 또 다른 보복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형성하는 것이지요. 여기서 군사행동을 결심하는 서방은 인간의 저항의지를 과소평가합니다.
그러나 결과는 독일의 더 거센 저항이었습니다. 미국이 원자폭탄을 일본에 투하하여 항복을 받아냈다고 하지만 많은 역사가들은 사실이 아니라고 합니다. 일본의 무조건 항복은 러시아와의 전략적 제휴가 실패한 외교적 실패가 그 직접적인 원인이었다는 겁니다. 미국은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대규모 폭격을 하였지만 이것이 상대방을 결정적으로 굴복하는 데 성공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테러를 당한 프랑스가 시리아의 락까를 공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항공작전이 IS의 굴복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하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게다가 IS에 대한 연합군은 오합지졸입니다. 이런 군사작전으로 전쟁을 종결짓는 시대는 갔습니다. 오히려 전쟁은 더 장기화될 것입니다. IS의 테러에 미온적으로 대처하거나 용인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손자가 “장기전으로 이익을 본 나라는 하나도 없다”고 한 말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건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슬람의 굴욕감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있습니다. 그것은 국가의 정치-군사력의 총체, 즉 외교(D)-정보(I)-경제(E)-군사(M)-문화(C)-의지(W)가 종합적인 역량으로 발휘되어야 하는 문제일 것입니다.
김종대 정의당 국방개혁기획단장 <저작권자 ⓒ 서울의 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김종대 관련기사목록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