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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정부와 월가가 세계를 지배하는 방법

서울의소리 | 기사입력 2015/12/04 [23:42]

미 정부와 월가가 세계를 지배하는 방법

서울의소리 | 입력 : 2015/12/04 [23:42]

1980년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신흥국들의 경제는 초고속성장을 했습니다. 올림픽 이후 글로벌 세력은 아시아의 신흥국들의 자본시장을 서서히 개방시켰습니다. 개방이 되자 우리나라는 밀려오는 글로벌 자본으로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보통사람들의 정부가 신도시를 건설하면서 200만호의 아파트를 지었지만 싼부채의 공급으로 수요가 폭발해 아파트 가격이 급등했습니다. 1996년 경제적으로 어린아이에서 성장을 해 성년이 되자 그동안 미성년자에게 주어지던 혜택을 버리고 성년 클럽인 OECD에 가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 선진국들과 거의 동등한 잣대로 우리나라의 모든 시장은 그들에게 개방되었습니다. 1997년 5월, 갑작스럽게 아시아에 대한 월가의 금융 공격이 시작됐습니다. 뉴욕의 헤지펀드들이 태국의 통화 바트를 공격했습니다. 그리고 월가의 투기세력들은 바트의 가치하락을 확신했습니다. 태국에 이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를 굴복시키고 마지막으로 한국을 타깃으로 삼아 공격했습니다.

 

당시 문민정부를 비롯한 여야를 막론한 정치계와 경제계, 학계,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국민들은 경제란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것이고 잠깐 불황이 닥쳤어도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정부는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눈앞에 두고 있어 이를 이룰려고 당시 경제에 치명적인 원화강세 정책을 썼습니다. 1985년 플라자합의로 일본 엔이 달러에 비해 2배로 강해지자 상대적으로 우리나라 상품의 가격경쟁력이 우위를 점해 5~6년 간 급속한 성장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월가가 아시아의 신흥국들을 공격하기 2~3년 전인 1994년에 일본 엔의 가치를 달러대비 하락시킴으로서 일본의 가격경쟁력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반대로 우리나라의 수출품 가격경쟁력은 약화돼 내리막 길을 걸어 경상수지 악화로 불과 2~3년 만에 우리나라의 외환보유고는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1998년 1월, 월가의 투기 세력들이 공격을 끝냈을때, 아시아의 신흥국의 주식 가치는 불과 몇 달 사이 70% 이상 폭락했습니다. 부동산도 같았습니다. 달러 대비 원화 가치도 그 정도 하락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정부는 IMF에 무릎을 꿇고 긴급히 달러를 구걸하고 그들의 요구조건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적과의 전쟁이 아닌 방법으로 우방국 미국에 의해 부가 파괴되는 것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미국이 주도하는 IMF는 앞으로 잠재 경쟁국인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의 신흥국들 경제에 강력한 타격을 가함으로써 달러 시스템으로부터의 독립성을 미리 차단했습니다.

 

1980년 대 남미의 부채 위기 때 썼던 방법을 아시아 신흥국들에 그대로 적용하여 그들의 요구대로 워싱턴의 엄격한 통제에 속박시켰습니다. 월가는 1998년 해체된 구소련의 러시아를 공격해 하이퍼인플레이션을 발생시킴으로써 러시아 경제를 향후 10년 이상 힘을 쓰지 못하게  불구로 만들었습니다.

 

러시아나 남미의 경우를 생각하면 우리나라에서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공격한 월가의 금융세력들은 워싱턴 정가 금융계에 정보 지원이 없었다면 결코 성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시아 신흥국들의 경제가 몰락한 1998년 이후, 중국은 새로운 아시아의 시장으로  부상했습니다. 21세기 이후로 고속성장을 보이고 있는 중국 경제 뒤에는 미 정부와 월가, 그리고 싸고 질좋은 노동력을 찾고 있던 미국과 유럽의 다국적 기업들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습니다. 다국적 기업들은 중국의 노동력을 이용한 아웃소싱을 통해 제조업에서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중국이 고속성장하면서 원자재 수요가 폭발하자 중국은 아프리카에서부터 중동 지역까지 손을 뻗치면서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은 다국적기업의 값싼 노동력으로 스스로를 키워가면서 부를 축적해 점차 미국의 패권을 위협할 세력으로 떠올랐습니다.

 

개구리를 물에 넣고 끓일 때는, 먼저 찬물에 개구리를 넣고 아주 천천히 열을 가하라는 민담이 있습니다. 그러면 개구리는 점점 정신이 몽롱해져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다가 끝내 죽고 맙니다.

 

아주 천천히 민담 속 개구리를 끓여 죽이는 것처럼, 워싱턴은 과거 일본과의 플라자합의와 남미, 그리고 1997년 동아시아에서 그랬던 것처럼, 2005년 이후로 중국을 서서히 덥혀왔습니다. 워싱턴의 판단은 오늘날 경제적으로 중국이라는 개구리는 끓어오르기 직전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2차 대전 이후 패권 국가인 미국은 다양한 형태로 환율을 조작해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다른 주요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변동시켰습니다.

 

1944년 브레턴우즈 협약 이래로 달러 가치는 금 대비 97% 이상 평가절하되었고, 2007년 금융 위기 이후 2014년 까지 미 연준은 엄청난 양의 달러를 찍어내면서 달러 가치를 절하시키는 양적완화 정책을 펴면서 위기를 극복해 냈습니다.

 

1985년 미국은 일본을 압박해 달러를 제외한 주요 통화를 인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담은 플라자 합의를 이끌어냈습니다. 이 사건은 합의를 가장한 폭력으로 1년 만에 엔 대비 1/2로 가치하락한 달러로 미국은 일본에 진 빚을 반으로 줄일 수 있었습니다.

 

플라자합의 이후 수출품 가격이 급등하는 어려움에 처한 기업을 살리기 위해 제로금리를 시행한 일본은 이후 엄청난 거품경제에 빠졌고, 1990년 이후 디플레이션과 경기침체로 이어지면서 지금까지도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1989년 올림픽이 끝나고 3저로 호황을 누리던 우리나라에 대해서도 달러 대비 원화 가치 재평가를 압박하여 1997년 IMF의 구조를 받게하는 씨앗을 뿌립니다. 한마디로 1985, 89년에 있었던 환율 재정비는 모두 고통분담이라는 미명아래 환율 조작으로 미국은 결코 자기몫의 고통을 분담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전인 1960년대 월남전으로 막대한 적자가 발생하자 1971년 미국은 금본위제를 철폐했습니다. 또한1973년 아랍과 이스라엘 전쟁을 부추겨 석유공급을 줄여 원유 가격이 400%로 급등했고, 전세계는 전대미문의 스태그플레이션을 겪게 됩니다. 미국의 전략은 끊임 없는 환율 조작을 통해 자국의 인플레이션을 계속해서 다른 나라에 떠넘겨 왔습니다.

 

1970년대  록펠러의 추종자였던 폴 볼커 연준 의장의 고금리 정책은 이른바 '제3세계' 신흥국들의 부채위기를 일으켰고, 채무국들은 뉴욕과 런던의 현대판 샤일록들에게 말 그대로 '1파운드의 살점'을 몇 번이고 떼어줘야 했습니다.

 

이제 2015년 12월에 미국은 금리를 올린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금리를 올려도 미국 자체의 경제는 충격이 미미할 것이라 스스로 판단했을 것입니다. 2014년까지 풀린 달러로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올 가능성을 미리 차단한다는 명분도 섰습니다.

 

그동안 싼부채로 경제적 달콤함에 취했던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들의 레버리지 높은 일부 기업과 우리나라의 빚 많은 하우스푸어들은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을 것 같습니다.

 

(타깃 차이나에서 많은 부분 참조했습니다.)

 

글쓴이 - sunsh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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