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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식 고취 언론인' 단재 신채호 순국 80주년 추모제 거행
김원웅 회장 "민중이 직접 역사의 주체로 나서야 된다"
 
서울의소리   기사입력  2016/02/22 [00:40]

일제에 머리를 숙이지 않겠다며 옷이 다 젖는 한이 있어도 고개를 뻣뻣하게 든 채 세수를 했고,

 

일경에 체포되어 10년형을 언도받고 감옥에서 고문 휴유증 등으로 감옥생활이 불가능하여 보증인의 보증아래 석방이 허가되었으나 보증인이 친일파라는 이유로 석방을 거부하고  만주의 여순 감옥 차디찬 바닥에서 숨을 거둔 파란만장한 단재(丹齋) 신채호(1880∼1936) 선생.

 

일제강점기 사학자이자 언론인으로서 민족의식을 고취했던 단재 신채호 선생 순국 80주기 추모제가 21일 오전 10시 30분 충북 청주시 상당구 귀래리 단재영당에서 열렸다.

 


단재 신채호 선생 기념사업회 주관으로 거행된 이번 추모제에는 신채호 선생 기념사업회 김원웅 회장 비롯해 독립운동단체 회원, 유족, 시민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김원웅 회장 "박근혜 정권은 범죄정권"

 

단재 신채호 선생 기념 사업회 김원웅 회장은 추도사에서 "정부가, 친일을 미화하고 독재를 찬양하는 그런 교과서를 자라는 세대에 가르치려고 한다.그런 교과서를 자라나는 세대에게 가르치는 것은 범죄행위다. 그것을 실천에 옮기면 그 정권은 범죄정권이다."고 분노했다.

 

이어 "아직까지도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중심에는 친일파와 그 후손들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일제식민지배 36년, 친일파 지배 71년 아직도 해방되지 않은 땅위에 살고 있다. 단재선생님께서 하신말씀 “독립은 주워지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중이 직접 역사의 주체로 나서야 된다.“고 강조했다.

 


1880년 충청도 회덕면(현재 대전시)에서 태어난 신채호 선생은 구한말 독립협회에서 활동했으며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황성신문과 대한매일신보에 논설을 쓰며 친일파의 매국행위를 비판하고 국권회복운동을 주창했다.

 
독사신론, 조선상고문화사, 조선사연구초 등 역사서를 펴내며 민족의식 고취에 힘쓰던 선생은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에도 참가했다.

선생은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고자 대만으로 가던 중 일제에 체포돼 중국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에 있는 뤼순(旅順)감옥에 수감됐고 1936년 옥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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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2/22 [00:40]  최종편집: ⓒ 서울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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