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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 교수] 불통과 아집의 정치

"대통령의 사전에는 '받기'라는 말만 있고 '주기'라는 말은 없다"

서울의소리 | 기사입력 2016/03/20 [23:43]

[이준구 교수] 불통과 아집의 정치

"대통령의 사전에는 '받기'라는 말만 있고 '주기'라는 말은 없다"

서울의소리 | 입력 : 2016/03/20 [23:43]

 

이준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얼마 전 이 게시판에 정부가 추진하는 소위 '개혁입법'에 대해 야당이 전략적으로 손을 들어주는 게 어떠냐는 글을 올려 물의를 빚은 바 있습니다. 현 정부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해오던 내가 뜬금없이 정부에 협조하라는 말을 하니 어리둥절해 하는 분도 많았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그런데 내 글의 행간을 잘 읽어보신 분은 알겠지만, 내가 정부에 무조건으로 협조하라고 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정부가 추진하는 법안들이 우리 경제를 되살리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거라는 기대에서 그런 말을 한 것은 더욱이나 아니었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지금 우리 경제가 처한 어려움에 대한 전적인 책임은 정부와 여당에 있습니다. 그들의 무능으로 인해 이 어두운 터널에서 희망의 빛을 찾지 못한 채 헤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입만 열면 국회와 야당에게 책임을 돌리는 발언을 일삼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이런 무책임한 책임전가가 국민에게 먹혀들 리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정치 특유의 상황 - 보수세력에 의한 언론의 독점과 지역패거리정치 - 으로 인해 그 책임전가 전략은 훌륭한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그 결과 대통령은 이 난국에 대한 책임을 전혀 지지 않은 채 국회와 야당에 대한 원망만 난무하고 있습니다.

만약 국회와 야당이 비협조적인 자세로 나와 국정 운영이 어렵다면 그들을 설득해 협조하게 만드는 것은 오로지 대통령의 책임입니다. 책상을 치며 분노를 터뜨리고 위협할 것이 아니라 차분한 대화와 설득으로 그들로부터 협조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민주정치의 ABC가 아닙니까?

그러나 대통령이 먼저 마음을 열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요구한 사례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오직 자기의 길만을 주장하며 국회와 야당의 비협조로 인한 피해자임을 부각시키는 발언만 일삼았을 뿐입니다.

협상의 기본은 '주고 받기'(give and take)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의 사전에는 '받기'라는 말만 있고 '주기'라는 말은 그 자취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법안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으면 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해 양보할 것은 양보를 해야 마땅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단 한 치도 양보하려 들지 않습니다. 이런 분위기하에서 야당이 어떻게 흔쾌히 협조하는 태도를 보일 수 있겠습니까?

내가 우려했던 것은 대통령의 무책임한 책임전가가 야당을 궁지에 몰아넣어 곧 다가올 총선과 대선에서의 필패를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대통령이 짜놓은 판에서 벗어날 필요가 절실하고, 그럴러면 개혁법안에 대해 조건부적인 협조를 하라고 권했던 것입니다.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를 명명백백하게 밝히고 그 법안으로 인한 불행한 귀결은 대통령이 전적으로 책임을 지게 만든다는 다짐하에서의 협조 말입니다.

소위 개혁법안들이 모두 손톱만큼의 수정도 없이 통과된다 해도 우리 경제에 이렇다할 변화가 오리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 귀결을 국민들이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아야 어떤 학습효과가 생길 수 있습니다. 국회와 야당에 모든 책임을 전가한 상황에서 박근혜 정권의 무능함이 백일하에 드러날 기회가 봉쇄된 셈입니다.

내가 늘 지적했듯, 이 정권의 트레이드마크는 불통과 아집입니다.
나만 옳고 너와는 대화의 필요조차 없다는 독선이 우리의 정치를 옭죄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새누리당 공천파동을 보면서 또다시 불통과 아집이라는 말이 불현듯 내 머리를 스쳤습니다.

솔직히 말해 나는 새누리당에 거는 기대가 전혀 없습니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깊은 존경심도 찾아볼 수 없고, 신자유주의의 잔재를 청산 못한 구태에도 실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돈 없고 힘 없는 사람의 친구가 되기 보다는 돈 많고 힘 있는 사람의 친구가 되려고 하는 자세도 나를 몹시 화나게 합니다.

그런데 유승민 의원은 그 엄울한 무리 중에서 한 줄기 빛이었습니다.
나느 개인적으로 유의원과 일면식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원내총무 취임연설을 듣고 새누리당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라고 감탄한 바 있었습니다.

용감하게 증세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발언을 항 때 또 한 번 놀랐습니다.
모두가 대통령 앞에 머리 조아리고 "지당하옵니다"를 연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올곧은 태도를 보일 수 있다는 것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 공천과정에서 바로 그 올곧음이 문제가 되어 온갖 핍박을 다 받고 있나 봅니다. 언론보도를 보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다"라는 그의 발언이 문제가 되었나 봅니다. 손톱만큼의 틀림도 없는 옳은 말인데 왜 이것이 문제가 되어야 합니까?

공천파동을 보면서 새누리당이라는 집단이 과연 국민을 대표하는 정당인지 아니면 어떤 한 패거리의 권력유지를 위한 도구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후보자의 자질이나 지지도와는 관계없이 특정 계파의 소속 여부만을 문제로 삼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공천기준으로 일관하는 정당이 어찌 국민을 대표하는 정당이 될 수 있겠습니까?

MB정권으로부터 8년 동안 우리 정치와 사회는 계속 됫걸음질을 쳐왔습니다.
이번 새누리당 공천파동을 보면서 하나의 막장극을 본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제 반목과 갈등이 휩쓸고 있는 불통과 아집의 시대와는 작별을 고해야 합니다. 허심탄회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허물어져 버린 우리 사회의 토대를 하나씩 복구해 나가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출처 : 이준구 전 서울대 교수 홈피 http://jkl123.com/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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