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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공부해야 한다. 그러나 교과서에 한자병기는 안 된다
무분별한 한자병기는 우리말·글을 해치기 때문이다
 
권혁시 칼럼   기사입력  2016/05/11 [20:02]

 

 

 

권혁시 대한글씨검정교육회 이사장

인류가 처음으로 지어서 썼던 설형문자, 상형문자, 중국 한자 등 뜻글자(표의문자)가 갖는 공통의 문제는 각각의 글자가 단어(낱말)가 되기도 하고 음절(소리마디)이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하나하나의 낱말, 곧 사물과 의미마다 각기 다른 글자를 가진 문자체계인 까닭에 그만큼 많은 숫자의 글자를 만들어 익히고 써야하는 어려움이 따랐다. 그래서 소리만을 명확하게 적을 수 있다면 훨씬 더 간편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마침내 뜻글자에서 벗어나 소리글자(표음문자), 즉 ‘알파벳’을 만들어 쓰게 된 것이다.  

 

이는 일부 사상가들이 “알파벳이 발명 되고나서부터 진정한 대중교육이 가능했다”고 말할 정도로 인류가 이룩한 위대한 업적이다. 익히 소리글자의 이 같은 위력을 잘 알았던 우리나라의 선각자 서재필은 1896년 4월 7일(신문의날), 한글전용의 ‘독립신문’을 창간하였다. 그로부터 시작된 한글전용은 광복 이후, 찬반논쟁이 지리하게 이어지는 가운데 오랜 세월에 걸쳐 뿌리내렸다. 한글전용이야말로 우리나라 ‘언어·문자’의 발전을 이끈 대전환이었으며, 동시에 이를 뒷받침하는 초석이 되었다.

 

그런데도 최근에 뜻글자인 한자를 교과서에 병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느닷없이 제기되었고, 이에 대한 찬반양론이 첨예하게 맞부딪히고 있다. 교육당국 역시 한자병기를 적극 추진하였으나 반대 여론이 극심해지자 절충안으로 병기 대신 책의 옆단이나 끝단에 한자를 표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내일 5월 12일, 헌법재판소에서는 ‘한글이란 국어를 표기하는 우리의 고유 문자를 말한다’는 명시로써 한글전용의 근거를 밝힌 국어기본법 제 3조 2항에 대한 ‘위헌소송’의 1차 공개변론이 실시된다. 위헌 소청의 주된 이유는 이 법조항과 아울러 동법 제 14조는 공문서에 한자 쓰기를 극도로 제한하는 바, 한글로는 한국어를 표기하는 데 부족할 뿐 아니라 전통적으로 써왔던 한자도 우리 문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한자혼용은 물론 교과서 한자병기의 기도가 그동안 쌓아온 ‘한글전용’의 지대한 역할과 가치를 훼손하고 역행하는 고루하고 편협한 복고주의, 단순논리와 고정관념의 시대착오적 발상에서 발로하였음이 명백하다. 게다가 사교육의 상업적 이기주의를 의심케 하는 무원칙과 부조리의 무모함 마저 드러내고 있으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튼 한자의 혼용이든 병기·표기든 반드시 그래야 한다면 앞에서 말한 표의문자의 중요한 문제 이상으로 더 절실하고 타당한 사유를 제시하여야 하는데, 그 핵심은 ‘한자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자로 적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자를 쓰지 않으면 사고력, 창의력 등에 장애를 일으킨다는 점을 강변한다.

 

그러나 한글 보다 한자가 사고력과 창의력의 향상에 더 좋다는 과학적·실증적인 비교(yardstick)분석이 실행된 적은 없다. 한자어의 이해를 위해 한자를 써야한다는 주장도 터무니없기는 마찬가지다. 예컨대 ‘자연’을 한자로 표기하면 (가령 초등학생이) 자칫 심오한 노장철학의 “스스로(自) 그러하다(然)”는 뜻 모를 해석을 하여 오히려 혼란을 일으킬 수도 있지 않은가?

 

더욱이 우리말의 50~60 퍼센트를 차지하는 거의 모든 한자어들은 굳이 한문으로 적지 않아도 순우리말처럼 확실하게 그 뜻을 알 수 있는 완전한 우리말로 동화되었다. 그리고 ‘말’, ‘눈’ 등과 같이 순우리말에도 있는 그다지 많지 않은 동음이의어도 글이나 말의 맥락에 따라 그 뜻이 밝혀지므로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부득이한 경우에는 그에 맞는 말뜻을 괄호( ) 안에 써 넣으면 될 것이다.

 

그런데 특기할 만한 사실은 중국인들에게는 예나 지금이나 말보다는 뜻글자인 한자가 훨씬 더 중요하며, 소리글자는 의사소통에 적합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중국어는 ‘언어유형’이 단음절 고립어로 대부분 한 음절의 단어(형태소; 뜻을 갖은 음절)이어서 하나의 말소리(음)가 240여 가지의 많은 뜻(단어)을 나타내야 한다. 따라서 말(구어)만으로는 완전한 의사전달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다 적확하며 깊이 있는 뜻을 나타내기 위해서 음은 같으나 뜻이 다른 많은 글자들이 만들어졌다(예컨대, 시; 時, 市, 詩, 是, 試, 始, 施, 視, 示... 室... 世... 誓... 事... 識...).

 

그렇게 한 자에 하나의 뜻만 가진 한자, 즉 낱말마다 그에 맞는 하나의 글자를 쓰지 않으면 안 되었고, 구어(말)가 문어(한자·한문)에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아울러 땅이 넓은 중국은 지역마다 말이 다르므로 하나의 공통된 의사소통 수단이 필요했는데, 뜻글자가 제격이어서 한자를 중시하는 요인이 더해진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현재의 거의 모든 한자는 중국인의 기질로 인해 축약하거나 종합하여 변형됨으로써 원형과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뜻글자의 특성이 희미해지고 상징화되어 문자로서의 효율성(가독성)이 줄어든 것이다. 예를 들어 한자를 모르는 사람이 ‘象’(코끼리 상)자를 보고 ‘코끼리’임을 쉽게 알 수 있겠는가? 어쩔 수 없이 뜻글자인데도 글꼴과 그 뜻이 잘 맞지 않는 5만여 개의 수많은 글자들을 엮어서 하나하나 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소리글자를 쓸 수 없는 중국인들이야 부득이 그래야겠지만, 그럴 시간과 노력이면 차라리 ‘국어사전’을 보며 낱말들의 뜻을 제대로 익히는 것이 보다 효과적인 학습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한자·한문을 아예 배우지 말고 쓰지도 않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한문 교과의 공부는 물론, 오래 전부터 교육부가 선정한 1800자의 기본한자를 익히고, 교과서 외의 글에는 자유롭게, 그러나 (필요한 경우에 공문서를 포함하여) 가급적이면 극히 제한적으로 한자를 병기, 혼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구이든 한문과 관련된 학문을 전공하거나 한자·한문을 좀 더 깊이 있게 공부하기를 원한다면 자유의사에 따라서 그렇게 하면 되는 것이지 무분별하게, 특히 교과서에 한글과 한자를 혼용하거나 병기하는 것은 극히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이다(교육부가 검토한다는 한자표기 방식도 크게 다를 바 없으며, ‘용어해설’이 필요한 경우에는 단원의 끝에 한데 모아서 수록하면 될 것이다).

 

요컨대 중국말과는 달리 모든 뜻을 정확하게 나타낼 수 있는 우리말을 굳이 뜻글자인 한자로 써야 할 이유가 전혀 없으며, ‘한글’은 어떤 말, 무슨 소리든 다 적을 수 있는 소리글자로서 거의 완전무결한 문자다. 그러므로 쓸데없이 한글에 한자를 덧붙이고 섞어서 쓰는 것은 글을 읽는 데 오히려 혼란스럽고, 우수하며 과학적인 우리말과 글에 들보, 걸림돌이 될 뿐임을 유의하여야 할 것이다.

 

더 말할 나위 없이 한글이야말로 우리겨레의 무한한 자부심이며 긍지다. 인류역사 이래 인위적으로 만든 문자가 없어지지 않은 경우가 없는데, 6백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첨단 정보통신시대, ‘디지털·모바일’에 최적의 문자로써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그런 만큼 한글은 대다수의 전문가·학자들이 그 우수성에 놀라워하며 인정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세계 최고의 문자다(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

 

우리는 그래서 최고의 문자를 갖은 자긍심과 함께 한글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겨야만 한다. 그리해야 하는 까닭은 ‘알 권리는 살 권리’라는 더없이 중요한 관점에서 우리가 문자를 안다는 것, 게다가 배우기 쉽고 편리한 한글 덕분에 글씨를 자유자재로 쓰고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역사적·세계적으로 크나큰 축복인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우리글을 지어 물려준 세종대왕께 늘 감사 드려야 하고 훈민정음과 창제에 담긴 ‘세종정신’, 곧 호학정신·주체의식·창조정신·사명의식·실천의지를 이어받아 반드시 되살려야 한다. 아울러 귀중하기 이를 데 없는 우리글 한글을 유용하게 잘 써야 함은 물론, 더욱 더 발전시켜 길이길이 보존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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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5/11 [20:02]  최종편집: ⓒ 서울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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