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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와 맹자,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과 반기문 총장
하늘은 오직 유덕한 지도자를 도울 뿐이니, 국민만을 위해 정치하라!
 
권혁시 칼럼   기사입력  2016/06/04 [01:12]

위대한 성인 공자는 군자(위정자)뿐만 아니라, 서민대중들도 도덕적 수양을 통하여 춘추전국 시대, 극도의 혼란지경에 빠진 세상을 이상적 사회로 바꿀 수 있다고 확신하였다. 그리하여 이를 실현하고자 부심하며 동분서주, 철환천하했고 말년에는 교육에 심혈을 기울였던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상황은 공자가 살았던 시대보다 훨씬 더 어지럽고, 정신적·도덕적으로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부패하고 타락한 듯하다. 이에 대한 공자의 해결책, 그 가르침이 ‘예’(禮)다. ‘예’는 결코 신분적 차이의 구분이나 타율적 규제의 장치가 아니다. ‘예’는 사람의 도덕적 본성, 곧 인간본성인 ‘인’(仁)을 바탕으로 하는 행동양식으로써 사회와 개인윤리의 규범이다. 이는 국가·사회의 질서를 위한 제도이고, 인간관계의 진작을 위한 사회적 장치인 것이다.

 

그렇게 ‘예’에 터 잡아 정치는 ‘정명’(正名)에서 비롯된다. 곧 ‘이름을 바로잡음’은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다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예’와 ‘도’(道)의 정합, 예도를 이른다. 이로써 정치지도자는 모름지기 ‘군자’(君子)다운 기품과 자질을 갖추어야 하며 도덕적 수양과 실천, 더하여 폭넓은 학문(위성지학), 이를 바탕으로 한 가지 경지에만 특출 나기보다는 어떤 상황에서든 합당한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는 ‘전인적 인간’상을 정립해야 하는 것이다(군자는 ‘위성지학’을 통해 왕도정치를 준행하는 주체이고, 그 지향점이 플라톤의 이른바 ‘철인정치’와 다르지 않으며, 따라서 정치의 공학에만 능숙한 인물은 위정자로 부적격하다).

 

극심한 경기불황 탓에 살기 힘든 국민들은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한데,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대통령선거 출마 가능성을 놓고 정치권과 언론이 설왕설래, 야단법석이었다. 그리고 끝내는, “내용이 과대 확대 증폭된 면이 없지 않다” 아무리 비공개라지만, 언론모임(관훈클럽)에서 국내 정치관련 발언을 쏟아놓고 빠져나가려는 모습은 반 총장의 별명인 ‘기름장어’를 연상케 한다(5월 31일자 동아일보 사설). 그런 뜨끔한 촌평을 받으며 그가 떠나버린 지금, 정부는 작년 12월 28일에 체결한 한일 외교장관의 ‘일본군 위안부피해자 문제관련 합의’를 밀어붙이고 있다. 피해 당사자들과 시민사회가 거세게 반발하는데도 5월 31일, 일본군 위안부 지원재단 설립준비위원회를 발족한 것이다.

 

그 가증할 ‘12·28합의’에 반 총장은 축하한다면서, “박근혜 대통령께서 비전을 갖고 올바른 용단을 내린데 대해 역사가 높이 평가할 것이다” 그렇게 극찬해 마지않았다. 그래서 반 총장에 대한 감정이 썩 좋지 않았는데 대선 출마설이 불거진 직후, 어느 신문을 보고 실망은 더 커졌고, 동시에 개탄을 금치 못하였다. 세계지도자, 대통령 감을 운위하는 건 고사하고, 우리나라의 최고위(장관) 엘리트 관료출신으로서 그의 무례, 무도한 처신을 뒤늦게 알게 된 때문이었다.  

 

 

반 총장이 노무현 대통령 서거 시에 조문을 하지 않았고, 2009년 8월에는 제주도 평화포럼에 강연자로 참석했으나 그 때도 노 대통령의 묘소를 찾아 참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5월 27일자 한겨레 사설). 그가 2004년, 노무현정부의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발탁되어 2006년 11월까지 재임하였고, 노 대통령의 천거 덕분에 그해 12월, 유엔 사무총장이 됨으로써 크나큰 영광과 은혜를 입었다. 그뿐 아니라, 그렇게 이뤄진 각별한 ‘인간관계’로 해서 도저히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와 혹자들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도 모르지만, 공자가 그토록 중시한 인간으로서의 도리, ‘예’를 모르는 소치다.

 

“예는 하늘의 경위요, 땅의 의리이며, 백성들이 행할 바이다” (禮 예, 天之經也 천지경야, 地之義也 지지의야, 民之行也 민지행야, 좌전)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위에 있으면서 관대하지 못하고 예를 위하여 삼가섬기지 않으며 상에 임하여 애도하지 아니하면, 내가 그를 어찌 평할 수 있겠는가?” (子曰 자왈, 居上不寬 거상불관 爲禮不敬 위례불경 臨喪不哀, 임상불애, 吾何以觀之哉 오하이관지재, 논어) 이것은 아마도 공자 자신이 고급관료 부하들을 평가하는 어떤 잣대가 된 그의 인사관리 철학의 고백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이 구절을 읽고 있다(김용옥, ‘도올논어2’).

 

그런데도, 반기문 총장의 대선 출마설이 정계를 뒤흔들고, 언론은 시시각각,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그의 품성과 자질, 업적의 공과에 대한 시시비비, 호불호의 엇갈린 평가와 출마에 대한 찬반의 의견들을 연이어 쏟아냈다. 반 총장이 대선출마를 강하게 시사하며 작심한 듯 발설(관훈클럽 발언)한 이상, 그 말에서 ‘인식’의 부적절성과 오류를 적확하게 짚어내어 주의, 상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누군가가 대통합을 선언하고 나와 솔선수범하여야 한다” 이 말이 마치 정부와 집권당의 실상을 염두에 둔 것처럼 들리는 까닭은 정부여당의 극심한 이전투구, 파행 탓일 것이다. 물론 그런 뜻이 아니라, 흔히 말하는 ‘협치’와 거의 같은 의미로 이해된다. 하지만 여야 정당들의 안으로부터의 분열과 밖에서의 분쟁, 즉 ‘정치파행’의 주된 원인은 뭐니 뭐니 해도 정치와 국정의 제 1인자인 대통령의 리더십 문제다. 그러므로 이 딜레마가 단순하게 무슨 선언이나 솔선수범으로 결코 풀릴 수 없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라도 알만 한 것이다.  

 

“남북통일은 당장 기대하기 어려우나 국가 통합은 정치지도자들이 뜻만 있으면 내일이라도 가능하다” ‘통합’을 되풀이하여 강조하는 반기문의 ‘문제의식’이 한참 빗나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현재, 국민이 당하고 있는 불안과 고통, 그리고 우리나라가 안고 있는 절박하고 절실한 현안은 통합이 문제가 아니라, 정치파행과 국정실패, 그로 인한 미증유의 경제위기와 극심한 민생고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시급하게 그에 대한 즉효의 해결책을 강구하는 것만이 정치지도자의 더없이 막중한 임무인 것이다.  

 

‘국가 통합’ 운운했는데, 우리나라 국민들이 언제 분열을 일으켰는가, 서로 갈라져서 싸우기라도 했는가? 사리사욕에 광분, 공적사명을 망각한 일부 ‘정치꾼’들의 패거리 싸움질을 나라와 국민 전체의 문제인 것처럼 왜곡, 과장하여 견강부회해서는 안 된다. 그 통합의 의미를 좁혀서 정치적 단결·단합으로 이해하더라도, 골 깊은 정치파행을 역량이 부족한 지도급인사 몇 사람의 뜻으로 평정할 수 있는 간단한 문제로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지난 4·13총선에서와 같이 국민의 엄중한 심판, 응징과 뛰어난 최고지도자의 엄정한 리더십만이 특효약임을 알아야 한다(톱 리더 1인의 주도적 역할은 ‘구세주 콤플렉스’(messiah syndrome·complex)의 난점이 생길 수도 있으나, ‘분권화’와 더불어 집권자가 현명하고 유능하기만 하면 ‘관료제’의 문제, 폐단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요컨대 대통합, 국가통합, ‘통합’이 반기문의 키워드이고 슬로건이며, 거듭하여 그것을 ‘문제의식’의 핵심인 것처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작금의 정치이슈(문제점)는 통합이 아닌 ‘민생경제 및 안정’이어야 하며, 통합 논리는 극단적 개입주의, 획일주의, 폐쇄성 등, 경직된 의식이나 (심하게 말하면) 무의식, 무개념의 발로일 수도 있어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필요할 때는 당연히 힘을 모아야 하지만, 다양성과 개방성을 배격하고 자유와 창의를 저해하기 십상인 ‘통합’을 애써 강조하고 중시하는 생각과 태도는 시대착오적이므로 삼가여 자제하여야 한다.  

 

부연하거니와, 직면한 위기극복의 방책이며 키포인트는, ‘민생’과는 전혀 무관하고 실체도 없는 공허하고 추상적인 통합론이 아니라, ‘정치혁명’을 통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정치·경제·사회 전반의 개혁이며, 이로써 ‘민생안정’을 이루는 것이다. 아울러 반 총장의 장점으로 부각시키는 경력이 오히려 핸디캡일 수 있는 양면성을 간과치 말아야 한다. 외교 분야에 국한된 극히 단편적인 지식·경험의 편협성과, 평생에 걸친 공직생활로 인해 의식과 태도가 ‘관료제’의 폐단에 순치(관료화)되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장점도 있으나 ‘관료제’의 문제는 특히, 중앙집권국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하며, 그래서 민주정치는 ‘분권화’의 확대, 강화가 아주 중요하다).

 

앞서 말했듯이 오늘날의 시대상황이야말로 춘추전국 시대가 그러했던 것처럼 극한의 혼돈지경이다. 그래서 2천5백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공맹(孔孟)의 정치철학과 ‘경세론’은 여전히 유효하다. ‘정치’의 길로 들어선 사람은 누구이든 공자의 예·정명·학문(위성지학)의 성취와 특히, 온고지신·법고창신(法古創新)의 관점에서 공자의 후계자로 인정되는 맹자의 인간의 존엄성을 중시하는 ‘민본주의’ 정신과 지혜를 배워야 마땅하다. 맹자는 공자(유학)의 사상·이념과 이론을 정리, 재정립·발전시킴으로써 ‘선진유학’의 길을 닦았음은 만인주지의 사실이다.

 

그는 민본주의 실현을 위한 왕도정치를 주창하였으며, 그 ‘경세론’의 핵심은 민생(경제)·인륜(교육)·덕치(인정)인 바, ①이상적인 경제제도, ②학교설립 및 교육, 이로써 경제적 안정을 기하여 백성의 생계, ‘민생’을 유지하는 것이 왕도의 시작이며 교육을 통하여 ‘인륜’을 깨우치는 것이 왕도의 완성이다(富之敎之 부지교지, 공자). ③인정(仁政), 곧 ‘인’의 절대적 효용성이며 덕치(德治), 즉 정치의 도는 오로지 위정자의 ‘덕’에 달린 것이다. 요컨대, 백성을 보호하는 것이 바로 왕도다(敬德保民, 保民道 경덕보민 보민도, 맹자).

 

대한글씨검정교육회

권혁시 이사장

이 ‘경세론’은 천명이며 위정자의 사명·소임인 바, “위대한 하늘은 특별히 친애하는 것이 없다. 오직 유덕자를 도울 따름이다” (皇天無親 唯德是輔 황천무친 유덕시보, 논어) 이는 맹자의 ‘역성혁명’의 근거다. 그러므로 부귀, 권세, 명예, 등, 사리사욕을 다 버리고 오직 국리민복과 사회정의·평화를 이루며,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는 데 헌신할 멸사봉공의 투철한 사명의식과 신념, 결연한 의지 없이는 감히 ’정치‘를 하면 안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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