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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하지 않은 삶은 죽어야 할 사람이 요행히 사는 것이다”
교육개혁·전인교육을 통해 ‘의식혁명’을 이룩하여야 국민이 살고, 나라가 바로 선다.
 
권혁시 칼럼   기사입력  2016/06/15 [19:51]

사상가, 이상주의자, 사회운동가, 실천가이기도 했던 대문호 레오 톨스토이. 그가 글을 쓴 까닭은 오로지 자신이 깊이 생각하여 깨달은 바를 다른 사람, 세상 사람들에게 전함으로써 그들의 삶에 다소라도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리고 실재로 그렇게 살기 위해서 분투하였으며, 톨스토이는 그래서 더욱더 위대하다.

 

 

그런 그가 강조했던 점은 요컨대, “짐승의 삶을 살지 말라!”는 거다. 사람이 자신만의 욕구충족, 자기애(自己愛)에 급급하여 자기중심·과잉자아에 빠지고 이기심에 사로잡히면 ‘동물적인, 짐승 같은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동물적 욕구에 끌려들고 얽매여 ‘인간본성’의 기초이고 전위(前衛)인 이성을 잃어버린 상태를 이른다. 이렇게 되면 이미 공자가 ‘주의’시켰던 바, 사람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바르고 올곧게(‘정직’하게) 인도하지 못하고, 그래서는 인생이 빛날 수 없다, 즉 행복하지 못하고 불행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에 비추어 생각건대, 그러한 탐욕·과욕은 끝내 충족될 수 없으므로 급기야는 허위, 기만, 부정부패, 무원칙, 부조리로 귀착될 수밖에 없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같은 상태에서 어김없이 나타나는 징후가 인간본성의 이탈, 허위의식에서 비롯되는 기만(행위)이다. 이는 이성, 곧 양심이 마비된 (자기는 그걸 모를 테지만), 그 수치스런 ‘짐승의 삶’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여 감추려 드는 위선의 몸부림일 터이다.

 

“말과 행위에 ‘거짓’이 없으라. (‘나’만이 아닌) 나와 나라를 위하여 항상 ‘생각’하라!” (도산 안창호) “정직하지 않은 삶은 죽어야 할 사람이 요행히 사는 것이다” (人之生也直 인지생야직 罔之生也 망지생야 幸而免 행이면, 논어) 이렇듯 양심이 없어 정직하지 못하면 허망하고, 모든 일이 허사가 되고 만다. 그런데도 공자, 톨스토이를 비롯한 선현들이 말한 ‘올바르게, 즉 정직하게 살라’는 경고, 가르침을 그야말로 완전 무시하여 역행하기를 주저치 않는다(개탄스럽게도 주류·기득권자들이 훨씬 더 심하다). 그 같은 행태, 현상이 끊임없이 터져 나와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기사거리가 되고 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최근 며칠 사이에도 국민의당 박선숙·김수민 의원의 2억3천만 원 리베이트와 김수민 부당(미신청)공천 의혹, 재계 5위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의 거액 비자금조성 및 제2롯데월드 인허가과정의 로비 의혹이 불거졌다. 게다가 롯데그룹 사건과 관련한 ‘국면전환 검찰정치’, ‘홍만표·진경준 전현직 검사장 비리 의혹’ 묵과기도(의도)의 루머마저 나돌고 있다.  조선·해운의 부실기업 대책은 정부재정·공적자금 투여 대신 한국은행 동원(발권력행사, 양적완화)으로 결정, 한은법 위반은 물론 관리감독소홀·부실조장(특히,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면피, 책임회피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와 관련하여 재벌총수의 절대권행사에 반하는 책임부재의 후진적 지배구조 방치·방조에 대한 문제가 뒤늦게 거론되기도 한다.

 

집권여당 새누리당은 계파청산 선언 후, 인기 상임위 차지다툼을 벌여 선언이 허언이 되고 마는 해프닝을 연출, 빈축을 샀다. 더욱이 ‘세월호’ 참사 진상조사의 강제중단 획책에 국민들의 의구심이 불붙고 있다. 그리고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의 불공정입시 논란과 위원선임 해태, 불이행이 물의를 일으켰다. 국제적 망신을 당하는 불상사까지 저질러졌는데, 미국의 양대 대학입학자격시험인 ACT가 문제유출 혐의로 2007년, SAT에 이어 한국시험을 취소한 것이다.

 

이런 우리나라와는 달리 이스라엘은 세계에서 가장 공명정대하고 공평무사한 사회를 이룬 나라들 가운데 으뜸으로 평가되거니와, 이스라엘 사람들이 대놓고 자랑하는 세 사람이 있다. 오늘날, 전 세계가 이들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여기며, 유대민족의 자부심으로 삼는다. 프로이트, 아인슈타인, 마르크스, 바로 그 3인의 위인들이다.

 

이 사람들뿐만 아니라, 콜럼버스, 스피노자, 아이작 뉴턴, 아담 스미스, 토마스 에디슨, 하인리히 하이네, 앙드레 지드, 마르셀 프루스트, 노만 메일러, 에밀 루트비히, 프란츠 카프카,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아서 밀러, 샤갈, 멘델스존을 비롯하여 피카소, 모르강, 죠르지오 바사니, 로스 차일드, 트로츠키, 찰리 채플린, 레너드 번스타인, 록펠러, 마커스 골드만, 신디 웨일, 헨리 키신저, 조지 소로스, 스티브 잡스, 빌게이츠, 스티븐 스필버그, 마크 저커버그 등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위인, 유명 인사들이 유대인이다. 이를 인구비율로 따지면 세계 최다, 최고다(현재 유대인은 1천5백만여 명, 세계 전체 인구의 약 0.25%).

 

유대인들은 수천 년 동안 유럽인들로부터 핍박, 멸시를 당한 탓에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된 것이 그리 오래지 않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의 지적영역의 확장세는 가히 놀랄 만하다. 20세기 들어 세계 최고의 지성 21인 가운데 70퍼센트가 넘는 15명, 노벨상 수상자는 15퍼센트(미국 전체의 30%, 인구비율 3%), 그리고 미국 명문대학(아이비리그)에 재직하는 교수가 과반을 웃돌며, 재학생은 40퍼센트에 이른다. 아울러 미국의 최고 부자 40명 중에 반수가 유대인이다.  

 

이처럼 유대인의 특출 난 우수성의 요건은 무엇인가? 두뇌가 뛰어나서 그런 것만도 아니다. 머리(IQ)가 좋기로는 우리 한국인도 유대인 못지않다. PTSA(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에서 교등학교 1년생들이 1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두뇌가 아주 우수하다. 교육열 또한 세계 최고이며 교육을 위해서라면 다른 모든 것을 마다하고 전력투구한다. 하지만 그 결과는 극히 미미하다. 그렇게 쏟아 붇는 엄청난 공력에 비해서 영 시원치가 않다. 그래서 문제임이 분명할진대, 교육방식이 매우 잘못되었고 지향점이 크게 빗나갔음을 알고 ‘교육백년대계’, ‘개혁·정상화’를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시급히 뜯어고쳐서 바로잡아야 할 게 아닌가!

 

 

유대인들의 전통적 유대식 교육은 ‘인간본성’(인성)이 중심·핵심인 전인교육이다. 그것은 잡다한 지식들만 일방적으로 (심하게는 억지로) 집어넣어 채우는 주입식 교육이 아닌 것이다. 그들은 아주 어려서부터 유대교의 성전 ‘토라’, 지혜의 서 ‘탈무드’를 집중적으로 공부한다. ‘토라’는 율법을 중심으로 신화, 역사(문학적 서사) 등이 실려 있으며, 인간 삶의 도리와 가르침을 담은 모세오경을 이른다. ‘탈무드’는 BC 5백년 경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유대인들의 경험·경륜, 지식이 지혜로써 축적·집성된 교육의 진수, 엑기스다. 사람의 내면의식의 힘(순수의식), 곧 ‘인간본성’이 중심개념을 이룬다. “세계의 역사를 빛낸 유대인의 우수성이 바탕이 된 것은 바로 ‘탈무드’ 교육이다” (류태영, ‘지혜의 삶-탈무드에서 배우는 자녀교육법’)

 

이스라엘의 어머니들은 잠자리에 든 어린 자녀에게 ‘탈무드’를 읽어 준다(베갯머리교육). 아버지들은 만찬(저녁식사)중에 이집트 탈출의 역사를 기리는 의식을 경건하게 행하면서 ‘토라’를 가르친다(밥상머리교육). 그리고 안식일에는 반드시 아버지와 자식들이 토론하고 대화하는 것이 수천 년 이어지는 전통이다(하브루타, 토론학습의 시원).   더욱이 유대인은 말귀를 알아듣는 세 살부터 매주 엿새, 학교나 랍비(엄격한 유대인의 스승)의 집에서 하루에 자그마치 6~10시간을 공부한다. 버머츠마(성인식)에 대비하여 ‘토라’와 ‘탈무드’를 열심히 배우는 것이다(성인식을 치른 유대인 소년·소녀에게는 부모는 물론, 어느 누구도 그의 삶에 일체 간여하지 않는다). 이렇게 10여 년의 긴 세월 동안 다잡아지고 다져진 유대인들의 ‘정신력’은 세계 최강이고, ‘도덕성·선의지’는 세계 최고다.

 

알고 보면, 톨스토이가 의도했던 지향점과, 유대인 교육의 중심이며 핵심인 동시에 궁극적 목표는 ‘인간본성’의 회복이다. 이에 관하여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는 20여 년에 걸쳐 연구, 실험(운동역학· kinesiology)한 결과를 밝혀 저술하였다(저서 ‘의식혁명·Power VS Force’). 이에 의하면 ‘인간본성·순수의식’, 곧 진아(眞我)를 되찾는 것은 인간에 내재한 힘인 ‘잠재력’을 끌어내는 것과 같다. 이 힘은 우리가 도무지 느낄 수 없고 알지도 못하는 내면의식의 힘(잠재력·power, 진실의 힘)이며, 이는 톨스토이가 경계하여 지적한 이른바 ‘이기심’(동물적 욕구)을 위시한 표면의식의 힘(force, 억지의 힘)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강력하다는 것이다.

 

대한글씨검정교육회

권혁시 이사장

‘진실의 힘’, 곧 내면의식의 힘인 진정한 ‘잠재력’을 어떻게 추동할 수 있는가? 원리는 단순하지만 실행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데, 단적으로 말해서 진리·정의·정직, 자애(자비)·관용, 배려, 포용·조화, 등등의 ‘도덕적·정신적’ 가치가 지닌 무한한 ‘에너지의 끌어냄’(attractors)이다. 이는 행동동기이며, 그것은 원리원칙으로써 실행된다. 원리원칙은 ‘인간본성·순수의식’의 근원이고 핵심(core)이며, ‘잠재력’은 순수의식(양심)으로부터 뿜어져 나오고 솟아오르는 무한대의 힘이다. 그런 까닭에 원칙 없이는 잠재력을 끌어낼 수 없으며, 그러므로 원리원칙은 ‘선’(善)과 일맥상통하고, 선의지(善意志, 순수의식·양심의 견지)와 원칙견지는 같은 뜻의 말인 것이다.

 

요는, ‘인간본성’(순수의식)을 다시 찾아 되살려서 삶의 ‘의미’(도덕적·정신적 가치)를 드높이고 그 ‘잠재력’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인성교육, ‘전인교육’을 제대로 해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교육혁명을 통한 ‘의식혁명’이며, 반드시 그리해야 국민이 잘살고 나라가 바르게 일어설 수 있다. 따라서 유년기서부터 버머츠마, 성인식 전까지 지속하는 유대인의 교육을 본받아야 마땅하다. 아울러 모든 면에서 그와 거의 같으며 ‘위성지학’(爲聖之學)을 추구하는 우리 고유의 전통적 교육방식을 ‘온고지신’(溫故知新)하여 되살리고, 그것을 기필코 실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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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6/15 [19:51]  최종편집: ⓒ 서울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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