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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가 ‘일본인 교장과 싸워 만주로 갔다? '친일파 미화의 극치’
박정희가 장발 때문에 일본인 교장과 싸웠다는 일화, 정말일까?
 
서울의소리   기사입력  2016/06/16 [21:48]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박정희 기념사업의 규모와 실체를 파헤치는 시리즈]

 

이 글은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박정희 기념사업의 규모와 실체를 파헤치는 시리즈입니다. 지자체마다 앞다퉈 내세우는 박정희 기념사업이 얼마나 미화되고 있는지 역사적 사실을 통해 그 허구성을 증명하고자 합니다.

 

[박정희 기념사업 파헤치기①] 북한 우상화가 별거냐, 박정희 신격화의 끝판왕

 

‘박근혜 오동나무’가 아니라 ‘박재옥 오동나무’로 해야’

 

▲박정희의 하숙집에 있는 ‘박근혜 오동나무’ ⓒ인터넷제보

 

문경시 문경읍 상리에는 박정희가 문경서부심상소학교 교사로 재직할 때 머물렀던 하숙집을 기념하는 ‘청운각’이 있습니다. 청운각에는 ‘박근혜 오동나무’라는 나무가 있습니다. 안내판에는 아래처럼 박근혜 오동나무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하숙할 당시 이 물을 마시면서 마음을 다잡은 약샘으로 우물 벽에서 난 오동나무는 사람이 심은 것이 아니라 우물 중간쯤 되는 돌 틈에서 자연히 싹이 나서 자란 것이다. 오동나무는 봉황이 내려앉는다는 상서로운 나무로 박근혜 대통령과 연관 지어 국가 최고 권위자인 대통령을 상징하며 세인의 발길을 끌고 있다” (청운각에 있는 박근혜 오동나무 안내문)

 

청운각에 있는 오동나무와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는 아버지 박정희가 하숙했었다는 연관성 이외는 없습니다. 봉황이 내려앉아서 상서롭다는 설명은 무슨 신화에서나 나올법한 얘기이지, 현직 대통령과 연관된 이름은 아닙니다.

 

박정희가 하숙집에 있었기 때문에 딸의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면 박근혜가 아닌 박재옥이라고 해야 마땅합니다. 왜냐하면 박정희가 청운각에 머물던 당시에는 박근혜 대통령은 태어나지도 않았습니다.

 

박정희의 첫 번째 부인은 육영수가 아닌 김호남이었습니다. 박정희는 대구사범학교 시절인 1935년 김호남과 결혼합니다. 박정희는 1937년 4월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문경서부심상소학교의 훈도(교사)로 부임합니다. 1937년 11월 김호남과의 사이에서 첫째 딸 박재옥이 태어납니다. 박정희가 청운각이라는 하숙집에 있을 때 박재옥이 태어났으니 시기상으로 보면 ‘박근혜 오동나무’가 아닌 ‘박재옥 오동나무’라고 해야 맞습니다.

 

▲박정희와 육영수의 결혼식 장면. 박정희는 김호남과 이혼하기 전인 1950년 8월 육영수와 맞선을 봤고 11월에 협의이혼을 하자마자 12월에 결혼을 했다. ⓒ정운현

 

박정희는 첫 번째 부인과 억지로 결혼했다면서 방학 때도 집에 가지 않아 주위에서는 총각인 줄 알 정도였습니다. 얼마나 집에 가지 않았는지 보다 못한 아버지가 하숙집까지 찾아오기도 했다는 글도 있습니다.

 

“방학 때도 집에는 가지 않았기 때문에 결혼한 줄은 전혀 몰랐다. 집안 이야기는 도통 꺼내지 않았다.” ( 박정희와 함께 하숙했던 문경군청의 농회(農會)기사인 허동식(許東植))

 

그가 학교에 부임하고 나서 몇 달 뒤부터는 가끔 아버지가 찾아왔다. 늙고 병든 아버지로서 첫째 자식이 보고 싶기도 했고 둘째 술좋아 하는 분이므로 용돈이 궁하기도 하였으며 셋째 장가를 가고도 제 처를 돌보지 않는 자식을 타이르기 위해서였다. (사이버 박정희 대통령 홈페이지 중)

 

아무리 싫은 결혼을 했다고 해도, 딸이 태어났으면 보통 아버지들은 자식을 보러 갑니다. 하지만 아버지 박정희는 방학 때도 집에 가지 않아 아버지 박성빈이 아들을 보러 하숙집을 찾아올 정도였습니다.

 

‘장발 때문에 일본인 교장과 싸워 만주로 갔다? 친일파 미화의 극치’

 

▲박정희의 문경심상소학교 교사 시절의 설명 ⓒ 문경시

 

문경시 홈페이지에 있는 ‘풀어보는 문경 문화유산’에는 박정희의 문경심상소학교 교사 시절에 관한 설명이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학생들에게 사범학교에서 배운 대로 은근히 민족혼을 일깨워주는 말을 자주 했다’는 설명이 나옵니다.

 

마치 당시 박정희를 두고 민족의 앞날을 걱정하는 독립운동가처럼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술 더 떠서 지만원씨는 박정희가 소학교 교사로 있다가 만주로 떠난 이유가 ‘장발’ 때문에 일본 교장과 싸웠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왜놈이면 다여! 그 새끼 때려죽이려다 놔두었다”.

 

‘아리마’ 교장을 패주고 들어와 식식거리며 한 말이었다. 박정희는 일본교장에 대한 반항으로 장발을 했다. 당시 장발은 상상할 수 없는 도전이요 반발로 인식됐다. 이를 장학사가 와서 지적했고, 교장은 교사들을 초대한 술자리에서 박정희의 두발문제를 거론하며 장학사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모욕감에 박정희는 술잔을 던져 버렸다. 아리마 교장의 입에서 “조선인 주제에 너무 건방지다”라는 소리가 나오자마자 박정희의 주먹이 교장의 면상에 꽂혔다.

 

이어서 사표를 내고 3년간의 보통학교 교사생활을 마감한 후, 군인의 길을 찾아 정처 없이 북만주로 떠났다.(2005년 지만원의 시스템클럽)

 

▲문경시 홈페이지에 있는 박정희의 소학교 교사 시절 사진. 박정희의 머리는 오히려 동료 교사들에 비해 더 짧은 편이었다 ⓒ문경시

 

문경시 홈페이지에 올라온 박정희의 소학교 교사 시절 사진을 보면 다른 교사들에 비해 오히려 머리가 더 짧습니다. 다른 동료 교사들은 가르마를 타거나 머리를 올린 세련된 머리였지만, 박정희의 머리는 스포츠 머리에 가깝습니다.

 

지만원씨는 ‘당시 장발은 상상할 수 없는 도전이었다’고 하는데 도대체 저 사진은 무엇일까요? 문경시가 잘못된 사진을 갖다 놓고 박정희의 사진이라고 하는 걸까요? 박정희 대통령 사이버 홈페이지에 있는 소학교 교사 시절 사진을 봐도 박정희는 머리가 별로 길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박정희는 일본인 교장과 싸워서 만주에 간 것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미 학교에 다니면서 만주에 시험을 보러 갔고, 일본인 교장과의 싸움설은 ‘각색’해서 나온 말이 아닐까 유추할 수 있습니다. 긴 칼 차고싶어 만주 간 ‘교사 박정희’[실록 ‘군인 박정희’-친일과 좌익의 기록 4] 만주행의 비밀

 

‘만주군관학교 생도 박정희 사진을 버젓이 홈페이지 올린 문경시’

 

▲문경시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만주군관학교 생도 시절 박정희의 사진 ⓒ 문경시

 

문경시 홈페이지에는 만주군관학교 생도 시절 문경심상소학교를 방문한 박정희 사진이 있습니다. 당시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 생도 복장이었습니다. 친일파를 연구하는 정운현 선생은 ‘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 생도 시절 휴가를 나와 문경 하숙집에 왔는데 긴 칼을 차고 왔다는 박정희 여제자의 증언을 들었다’고 합니다.

 

민족문제연구소에 따르면,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 입학 나이가 넘어 탈락했습니다. 하지만 혈서를 쓰고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만주군은 일본군과 다르다고요? 다르다면 어떻게 일본 육사에 편입할 수가 있었을까요? 같은 일본군국주의 황국이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면서기 월급이 20원이었던 시절 박정희는 교사로 25원을 받았습니다. 안정된 직장이었던 소학교 교사를 뿌리치면서 만주까지 가서 시험을 봤다면, 박정희에게 만주군관학교는 더 큰 출세를 위한 지름길이었던 셈입니다.

 

대한민국 정부 조직이라면 일제강점기 독립군의 이야기를 홈페이지에 올려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문경시는 당당하게 일본 황군으로 만주군관학교 생도 복장을 한 박정희 사진을 올렸습니다. 해당 인물이 친일을 했어도 청운각과 문경에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면 된다는 발상일까요?

 

 

박정희가 과거 3년 남짓 머물렀던 하숙집은 경상북도 보존 초가옥 1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문경시는 박정희의 하숙집을 청운각으로 만들면서 17억 원의 예산을 투입했습니다. 문경시는 박정희가 문경소학교에 부임했던 1937년을 기념해 ‘청운각 1937’이라는 상표를 출원했습니다. 박정희가 마셨던 막걸리는 ‘청운각’이라는 상표로 출시됐습니다. 박정희가 교사 시절 트럼펫을 즐겨 불었다고 ‘박정희 트럼펫 공원’도 조성한다고 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문경시에 있는 청운각을 갔을 때 왜 기념하느냐고 물으면 뭐라 답을 해야 할까요? 일제강점기 친일을 하기 위해 만주군관학교로 떠난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만주군관학교 생도 시절 긴 칼을 차고 방문했던 시간을 추억하기 위해?

 

최소한의 역사의식이 있는 지자체라면 대한민국 국민의 세금으로 친일을 미화하는 작업만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박정희의 공과를 정확하게 기록할 장소는 필요하겠지만, 역사를 왜곡하는 일만은 중단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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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6/16 [21:48]  최종편집: ⓒ 서울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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