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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암살범' 안두희 응징자 4인
박기서, '법 대신 정의의 이름으로 안두희를 때려죽이다'
 
서울의소리   기사입력  2016/06/27 [12:27]

 

1996년 10월 23일 오전 11시 30분경. 인천의 한 아파트에 몽둥이를 든 중년 남성이 들이닥쳤다. 몽둥이에는 '정의봉'(正義棒)'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박기서 선생

 

그는 경기도 부천에서 택시기사로 일하는 박기서라는 평범한 가장으로, 평소에 "백범 김구 선생 암살범이 천수를 다하는 것을 지켜볼 수 없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안두희를 처단하기로 결심한 후 부천시장의 그릇가게에 가서 홍두깨 비슷한 몽둥이(40Cm 크기)를 4천원 주고 사서 안두희 집으로 달려간 것이다.

 

박기서 씨는 누워 있는 안두희에게 장난감 권총을 겨누며 "시키는대로 하지 않으면 권총이 불을 뿜는다"고 고함을 쳤다.

 

이어 준비해간 나일롱 끈으로 두 손을 뒤로 묶고 '정의봉'으로 사정없이 구타했다. 숨이 차면 냉장고에서 찬 물을 꺼내 마시면서 계속 두들겨 팼다. 이윽고 안두희는 욕된 인생을 마감했다.

 

박기서 선생은 안두희 씨가 숨진 것을 확인하고 곧바로 택시를 타고 신곡본동 성당에 가서 고해성사를 한 후 경찰에 자수했다. 고해성사를 들은 이준희 신부는 이렇게 회고했다.

 

"박기서 씨는 김구 선생을 죽인 안두희는 당연히 처벌받아야 하는데 역사가 그 일을 하지 않으니 자신이 사명감을 갖고 죽였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면서 안두희의 장례와 그 영혼에 대해 걱정하면서 성당에서 안두희 장례를 치르는데 도움을 줄 수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박기서 선생이 구속 기소되자, 사회 각계 인사들이 '백범 암살범 안두희 처단 박기서 의사 석방대책위원회'를 구성해 9,200명의 명의로 인천지방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박기서 선생은 3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살이를 하다가 김대중 대통령의 3.1절 특사로 1년 4개월만에 풀려났다.

 

백범 서거 67주기, 경교장의 총격과 '분노의 응징자' 김용희, 곽태영, 권중희, 박기서 스토리 아시아 경제: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6062414264017011

 

 

1949년 6월 26일 서울 종로의 경교장(京橋蔣). 총성이 한 발 울렸고, 국민들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이 이날 육군 소위 안두희가 쏜 흉탄에 맞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현장에서 붙잡힌 암살범 안두희는 어떻게 됐을까요? 안두희는 1년 7개월 만에 특사로 풀려났고 석방 뒤에는 진급해 군에 복귀했습니다. 제대한 다음에는 군납 사업을 하며 큰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암살의 배후에 누가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김구 선생 암살 배후에 대한 조사는 이승만 정권이 무너진 4ㆍ19혁명 이후에 비로소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이승만 정권에서 권력의 비호를 받았던 안두희는 이후에는 공소시효 등을 이유로 법의 처벌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김구 선생 암살범을 추적한 이는 국가가 아닌 개인들이었습니다. 백범살해진상규명투쟁위원회 간사 김용희는 1961년 추격전 끝에 안두희를 붙잡아 사건의 전말을 녹취한 뒤 그를 검찰에 넘겼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1965년에는 김제 출신 청년 곽태영이 안두희를 찾아내 중상을 입혔지만 그는 극적으로 살아났습니다.

 

민족정기구현회 회장 권중희는 10년 넘는 추적 끝에 1987년 안두희를 찾아냈고 1992년에는 자백을 받아냈습니다. "김창룡 특무대장의 사주를 받아 백범 김구 선생을 암살했다." "김창룡이 백범은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등 대한민국에 해를 끼칠 사람이므로 제거해야 한다고 나를 세뇌했다." "범행 직후 특무대 영창으로 면회를 온 김창룡으로부터 '안의사 수고했소'라는 칭찬을 들었다."

 

안두희는 1996년 10월 23일 오전 인천시 중구 자택에서 당시 버스 기사였던 박기서씨가 휘두른 '정의봉'에 맞아 사망했습니다. 안두희가 죗값을 받는 데는 47년이 걸렸습니다. 김구 선생 67주기인 26일, 이 시간의 무게와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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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6/27 [12:27]  최종편집: ⓒ 서울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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