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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에게 ‘대한민국’은 무엇인가
 
서울의소리   기사입력  2016/08/16 [21:29]

광복 71주년이 되던 지난 8월 15일 박근혜가 ‘대통령’ 자격으로 ‘경축사’를 했다. 말이 ‘경축사’이지 실제 내용은 건국의 역사를 부정하거나 현재 대한민국의 현실을 극도로 미화하는 억설(臆說)로 가득 차 있다. 대표적인 대목은 아래와 같다.

 


“(···) 이제 우리가 걸어온 길과 우리가 미래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 이 길은, 세계가 따르고 배우고자 하는 길이 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현주소입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우리 내부에서는 대한민국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잘못된 풍조가 퍼져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위대한 현대사를 부정하고, 세계가 부러워하는 우리나라를 살기 힘든 곳으로 비하하는 신조어들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걸어온 길’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일제강점기에 조국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목숨 바쳐 싸운 선열들이 걸어간 길인가, 아니면 박정희를 비롯한 친일파들이 ‘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며 일신의 영달을 추구하던 길인가? ‘우리가 미래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 이 길’은 갖은 위법행위를 저지른 인물들을 청와대 고위직에 기용했거나 아직도 그런 사람을 참모로 쓰고 있는 국정책임자가 가고 있는 길을 뜻하는가?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민주, 정의, 평화, 평등, 화합, 공존 같은 덕목은 찾아볼 수가 없다. 빈부격차는 갈수록 심해지고 많은 젊은이들이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최저임금을 받으며 불안정한 노동을 하고 있다. 노동자, 농민, 빈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 가운데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세계가 부러워하는’ 나라라고 믿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래서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헬조선’이란 말이 생겨 널리 퍼지게 된 것이다. 최근 SNS에서는 텔레비전 뉴스 화면 60개를 캡쳐해 ‘한국을 헬조선이라고 하는 60가지 이유’가 널리 퍼지기도 했다. ‘GDP 대비 복지 비율 OECD 최하위’, ‘아이들 삶의 질 꼴찌’, ‘성평등 순위 136개국 중 111위’, ‘노인빈곤율 1위’, ‘한국 정규직 OECD 평균보다 해고 쉬워’, ‘남녀 임금 격차 OECD 3배’, ‘박근혜 정부 낙하산 인사 5명 가운데 1명꼴’, ‘한국 출산율 세계 최하위권’ 등이다.(한겨레, 8월 15일자 기사[왜 ‘헬조선인지 혼자만 모르겠다는 박 대통령’]).

박근혜는 ‘경축사’에서 “오늘은 제71주년 광복절이자 건국 68주년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날”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경축사’에서 그렇게 말해서 “뉴라이트의 대변자인가”라는 비판을 받고도 같은 말을 되풀이한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을 수호할 의무를 가진 ‘대통령’이 헌법 ‘전문(前文)’의 첫 문장(“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을 스스로 부정하는 셈이다. 지난 12일 박근혜가 광복 71주년을 맞아 원로 애국지사들과 독립유공자 유가족을 초청한 자리에서 92세의 ‘독립투사’ 김영관(전 광복군동지회 회장)은 박근혜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대한민국이 1948년 8월 15일 출범했다고 이 날을 건국절로 하자는 일부의 주장은 역사를 외면하는 처사이다. (건국절 주장은) 헌법에 위배되고, 실증적 사실과도 부합되지 않고, 역사 왜곡이고 역사의 단절을 초래할 뿐이다. 대한민국이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서 탄생했음은 역사적으로 엄연한 사실이다. 왜 우리 스스로가 역사를 왜곡하면서까지 독립투쟁을 과소평가하고 국란 시 나라를 되찾고자 투쟁한 임시정부의 역사적 의의를 외면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박근혜는 ‘독립군 노병’의 그 준엄한 비판에는 한마디 응답도 하지 않은 채 “나라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체계인 사드 배치에 대해 온갖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일부에서는 오히려 혼란을 부추기기도 한다”고 ‘동문서답’을 했다.

박근혜는 ‘경축사’에서 웬만한 초등학생이라도 알 수 있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무지’를 드러냈다. 1909년 10월 26일 오전 중국 하얼빈역에서 ‘조선 침탈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일제가 관할하던 루쉰으로 압송되어 재판을 받고 이듬해 3월 26일 거기서 사형을 당한 안중근 의사를 두고 이렇게 말한 것이다. “안중근 의사께서는 차디찬 하얼빈의 감옥에서 ‘천국에 가서도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라는 유언을 남기셨다.”

올해 여름은 지독한 무더위 때문에 ‘생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어쩔 수 없이 냉방장치를 틀어야 하는 서민들뿐 아니라 고소득자들 사이에서도 ‘불합리한 누진제로 인한 전기료 폭탄’에 대한 불만이 폭발했다. 그런데 정부가 발표한 대책은 고작 “지난 7월부터 9월까지 3개월 동안의 누진제를 완화해 적용한다”는 것이었다.

대다수 국민들이 폭염 아래 허덕이고 있던 무렵에 박근혜는 어떤 일을 하고 있었던가? 지난 11일 새누리당 새 대표이자 자신의 ‘입이며 복심’인 이정현 등 신임 지도부를 청와대로 초청해 ‘초호화판 오찬’을 베풀었다. 식탁에는 바닷가재, 훈제연어, 캐비어 샐러드, 송로버섯, 샥스핀찜 같은 코스요리가 올랐다고 한다. 그런 음식들 가운데서도 특히, 언론매체들과 대중의 격렬한 비판을 산 것은 ‘송로버섯’이었다. 이 버섯은 푸아그라(거위간), 캐비어(철갑상어알)와 함께 서양의 ‘3대 진미’로 꼽힌다. 2010년 11월 이탈리아에서 열린 경매에서는 900그램짜리 송로버섯이 1억6천만원에 낙찰되었다. 한국 인터넷에서는 냉동 송로버섯 500그램에 160만원이 최저가라고 한다. 청와대 오찬에 얼마짜리 송로버섯이 올랐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역사학자 전우용이 지난 12일 트위터에 올린 글을 주목할 뿐이다. “새누리당 신임 지도부 초청 청와대 오찬에 캐비어, 송로버섯 등 초호화 메뉴. 저런 거 먹으면서 서민 가정 전기료 6천원 깎아주는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했다는 거군요. 고작 몇 천원 가지고 징징대는 서민들이 얼마나 찌질하게 보였을까?”

박근혜는 올해 광복절 ‘경축사’를 이렇게 마무리했다. “우리 모두 위대한 대한국인(大韓國人) 임을 가슴에 깊이 새기고, 힘을 합쳐 희망찬 미래로 함께 나아갑시다!” 그에게 대한민국은 무엇인가? ‘나와 새누리당의 대한민국’인가, 아니면 나라의 주권자인 ‘국민들의 대한민국’인가?

 

김종철 동아투위 위원장,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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