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을 ‘말폭탄’으로 막을 수 있나

‘위기의식 부채질’보다 이성적 대응이 절실하다

김종철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 입력 : 2016/09/14 [14:41]

북한이 지난 9일 5차 핵실험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한국사회에는 마치 곧 전쟁이라도 터질 것 같은 위기의식이 감돌았다. 핵실험 자체를 냉정하게 평가하고 대응책을 차분히 논의하기보다는 북한 정권의 무모함과 호전성을 규탄하는 소리가 훨씬 더 요란하게 들렸다.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말폭탄’을 쏟아낼 때마다 대다수 언론매체는 열심히 ‘실황 중계’를 했다.

지난 9일 라오스 공식 방문 일정을 단축하고 귀국해 청와대에서 안보상황점검회의를 주재한 박근혜는 “권력 유지를 위해 국제사회와 주변국의 어떠한 이야기도 듣지 않겠다는 김정은의 정신 상태는 통제 불능이라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은 과거와는 다른 지극히 엄중한 안보 상황”이라며 “국가 비상사태에 준하는 자세로 북한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국내 불순세력이나 사회불안 조성자들에 대한 철저한 감시 등 국민들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도록 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한 것과 ‘국내 불순세력’이나 ‘사회불안 조성자들’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새누리당 ‘중진들’은 해묵은 ‘핵무장론’을 더 큰 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지난 11일 전 원내대표 원유철은 “단기적으로는 미국의 전술핵을 재배치해 북한과 ‘공포의 균형’을 이루고, 장기적으로는 독자적인 핵무기를 최소한 북한의 2배 이상 규모로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 대표 김무성은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한미원자력 협상 등을 통해 핵추진잠수함 도입,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개발, 미국의 전략 핵무기 배치의 필요성이 더욱 명백해졌다.” 당 대표 이정현은 같은 날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기자들을 만나 “북한의 핵이나 미사일 개발처럼 무모한 도발 시도에 대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더 강도 높은 조치들을 정치권과 정부가 함께 강구해야 한다”며 ‘핵무장론’을 중요한 논제로 삼겠다는 뜻을 밝혔다. ‘핵무장론’에는 전 경기도 지사 김문수도 가세했다. 

 

친박 의원 홍문종은 “핵실험 징후가 있으면 북한을 선제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에서 핵무장 주장이 폭탄처럼 터져나오던 9월 11일 청와대 관계자는 “그런 것과 관련해서 정부 입장은 변화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지난 1월 13일 박근혜가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에서 밝힌 ‘한반도 비핵화’를 재확인한 것이다. 이런 현상을 보면, 집권세력 안에서 북핵에 관한 한 새누리당이 청와대와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10일 KBS의 <뉴스9>는 “독자적 핵무기 개발론이 힘을 얻고 있다”며 독자적 핵무장을 위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같은 날짜 조선일보 1면 머리기사는 “‘핵 광인(狂人)’ 앞에 벌거벗은 우리의 운명”이라는 통단제목 밑에 해골이 그려진 핵탄두를 양손에 들고 말을 탄 채 돌진하는 김정은의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올렸다. 그야말로 공포심을 극대화하는 ‘작품’이었다. 9월 11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기사는 제목(“군 ‘북 핵사용 징후 포착 시 평양 지도상에서 없앨 것’···김정은 잡을 레이저부대도 운영”)부터 으스스했다. ‘군 소식통’의 말을 인용한 이 기사는 “국방부가 국회에 보고한 ‘대량응징보복’ 작전개념은 지도상에서 평양의 일정 구역을 완전히 사라지게 만드는 개념으로 보면 된다”고 보도했다. “현재 우리의 탄도·순항미사일 능력으로도 상당 수준의 응징보복이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 군 스스로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남한이 따로 핵무기를 개발할 필요가 없는 셈이다.

새누리당의 ‘핵무장론’처럼 주권자들을 긴장시키는 주장과는 달리 뉴욕타임스 9월 10일자(현지 시각)에는 북한 지배체제의 본질과 특성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기사가 올랐다. 맥스 피셔가 쓴 기사 제목은 ‘북한, 미치기는커녕, 너무나 이성적’(North Korea, Far From Crazy, Is All Too Rational)이다. “북한은 비이성적인가? 아니면 그런 척하는 것뿐인가?”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그 기사의 요지는 이렇다.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 잇단 도발을 하는 배경에는 생존을 위한 이성적인 사고가 자리 잡고 있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의 정치전문가 데이빗 C. 강은 “북한 지도자들이 국내외에서 하는 행동들이 혐오감을 자아내긴 해도 자국의 이익을 빈틈없이, 그리고 이성적으로 잘 추구하고 있다”며 “그런 경향이 지금도 잘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전문가 데니 로이는 “‘미치광이 국가’나 ‘무모한 도발’ 등 북한에 붙은 꼬리표가 자국의 이익을 지키는 데 효과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 기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특히 강조했다. “미국이 앞장선 이라크 침공, 리비아의 ‘대령’ 무암마르 알 카다피를 제거하기 위해 나토 군대가 그 나라를 침략한 사실 때문에 북한은 미국의 침공을 두려워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북한은 미국의 침공을 피할 수 있는 수단으로 핵개발 프로그램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북한의 5차 핵실험에 대해 ‘말폭탄’을 날리는 동안 국회는 ‘식물’이 되다시피 해버렸다. 사드 배치 일방적 결정 때문에 ‘한·미·일 삼각동맹’이 중국과 러시아 등에 안기고 있는 위기의식과 긴장, 청와대 민정수석 우병우를 포함한 권력층의 부도덕한 행위, 세월호 참사, 농민 백남기에 대한 경찰의 ‘살인적 물대포 공격’, 한진해운 ‘침몰’ 같은 중대 사안들이 파묻혀버린 것이다. 군사전문가 김종대(정의당 의원)는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비상사태? 뭣이 중헌디?’)의 결론부분에 다음과 같이 썼다.

 

“지금이 왜 비상사태인지, 근거가 없습니다. 딱히 북한에 대해 조치할 만한 것도 없습니다. 정작 비상사태는 우리가 아는 것이 없다는 데 그 이유가 있는 것 아닐까요?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김정은은 제정신이 아니다’라며 생뚱맞게 ‘국론분열세력과 불순세력을 철저히 감시하라’고 말하는 그 의도가 뭔지도 아리송합니다. 아무런 정보도 없고 체계적인 위기관리 방향도 없이 저렇게 감정적으로 말하는 대통령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도대체 뭘 알고서 대비를 하는 것인지, 정부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중한 것입니까?”

지난 6일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마친 뒤 오바마는 핵 ‘확장 억제’를 재확인하면서 앞으로도 북핵문제에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국방장관 애슈턴 카터는 지난 12일 한국 국방장관 한민구와의 전화 통화에서 “미국은 위협을 억제하기 위해 핵우산, 재래식 억제, 미사일방어 능력을 포함하는 모든 범주의 억제 능력으로 한국과 함께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미국은 초음속 전략 폭격기인 B-1B 랜서에 핵폭탄 24발과 유도폭탄 48발을 탑재할 수 있다고 한다. 만약 북한이 핵무기를 실용화해 어떤 나라를 공격한다면 그 폭격기 한 대가 북한 전역을 ‘석기시대’로 되돌려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5차 핵실험은 종전의 어느 경우보다 한반도와 국제사회에 더 큰 위기감을 안겨주었다. 미국도 중국도, 유엔의 다른 회원국들도 북한을 더욱 강하게 제재해야 한다는 데는 의견이 일치하고 있지만, 막상 현실적으로 ‘응징’하는 데는 정도의 차이가 크다. 특히 ‘조·중군사동맹’을 통해 북한과 ‘우방’이 되어 있는 중국은 북한체제를 뒤흔드는 일 같은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남한의 집권세력이 ‘북한 자체 붕괴론’이나 ‘외부의 힘에 의한 궤멸론’을 주장하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이다. 이런 시기일수록 새삼스럽게 느끼는 것은 북한이 6자회담 같은 대화의 마당으로 나오도록 미국과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김정일 집권 시기에 국제사회 일각에서 강조하던 ‘북한 개방·개혁론’을 김정은체제가 순리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노력이 다방면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감정적으로 퍼부어대는 ‘말폭탄’보다는 남북의 평화공존을 실질적으로 추진하는 자세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기가 바로 지금이다.

 

김종철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ㆍ동아투위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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