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바구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내각책임제’에 관한 小考(소고)
탁월한 리더십의 ‘진보적 정치지도자’가 대통령이 되어 ‘정치혁명’을 이룩해야 한다
 
권혁시 칼럼   기사입력  2016/09/28 [16:08]

내각책임제(의원내각제, parliamentary system)를 말하는 정치인들, 특히 대권주자들이 부쩍 늘어났다. 그래서 ‘개헌’을 해야 하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는데, 그것이 작금의 정치파행과 국정실패의 만병통치약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역으로 헌법개정, 내각책임제 운운이 무소신·무능력의 표출이며, 파국에 이른 정치와 국정에 대한 책임회피, 비겁한 기회주의의 발로일 수 있지 않은가? 그렇게 의심을 사지 않으려면 헌법을 고치고 내각책임제로 바꾸기를 주장하기 전에 자신들의 정신상태를 뜯어고치고 의식수준을 높이는 것이 급선무다. 먼저 그렇게 ‘의식혁명’부터 해야만 한다. 그리하지 않는다면, 내각책임제가 오히려 재앙이 된다는 사실을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이며 단언컨대, 무지무념의 소치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무턱대고 개헌을 하고, 내각책임제를 하면 정치의 불안정과 국정의 혼란이 한층 더 심해져서 걷잡을 수 없는 혼돈지경에 빠질 것이 명약관화한 때문이다.

 

독일 연방의회에서 메르켈 총리가 연설을 하고 있다

 

헌법은 한 국가·사회의 가치구현에 관한 의지표명인 동시에 자유인으로서의 개인과 민주체제인 집단 간의 세력관계의 반영, 즉 국가권력 행사, 정부제도 운영, 정치과정 규정 등 정치체계(regime)의 근본·본질인 바, 섣불리 바꾸려 해서는 안 된다. 더하여 유럽의 독일을 비롯한 몇몇 선진국들이 내각책임제의 정부시스템으로 국정운영에 성공을 거둔 이유를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그것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정치수준’이 높은 데 있다. 거의 모든 위정자들이 민주정신·정치철학이 정명하여 ‘공적사명’에 투철한 것이다. 그래서 당리당략, 사리사욕에 정치가 휘둘리는 사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 국리민복과 공익은 뒷전이고 파당적·사적 이익에 목매는 파멸적 정치행태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요컨대,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이 실천도 못하면서 말로만 떠드는 ‘협치’, 곧 연대와 통섭이 기반이 되어 원숙한 정치를 실현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렇듯 내각책임제를 프레임으로 하는 정치를 제대로 잘하여 목적하는 바,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대통령(중심·책임, presidential system)제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정부와 여야정당의 긴밀한 협조·협력이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여실히 목도하는 정치의 실상, 이기심에 사로잡혀 기득권 사수에 급급한 수구적 정치행태, 그 구태와 악습을 쉽사리 깨부술 수 없는, 혁파치 못할 처지에서는 그런 진정한 ‘협치’는 어림없으며 허상일 따름이다.

 

주지하다시피 ‘민주주의’와, 이에 의하여 실행되는 ‘민주정치’의 기본원리는 국민자치·입헌정치·권력분립·다수결원칙 등이다. 대통령제와 내각책임제는 ‘권력분립’의 형태, 즉 정부형태(system of government, form government)로써 국민주권, 곧 국가권력을 나누어 주고 행사하게 하는 방식·방법, 시스템인 것이다. 이 두 가지 정부형태의 핵심적 차이는 국회(의회)의 ‘신임’에 의한 행정부의 구성 및 존속, 국정 최고책임자의 국민 직접선출, 정책에 대한 의사결정이 합의, 아니면 집정자 1인의 단독결정권에 의한 것인지의 여부다.

 

대통령제는 철저한 ‘삼권분립주의’에 의거, 행정부와 입법부를 명확하게 분립하여 대통령을 국민이 선거를 통하여 직접 선출한다. 대통령은 국가원수이며 집정자(행정권의 수반, 최고책임자)의 지위와 권한이 국민으로부터 주어진다. 따라서 국회에 대하여 책임지지 아니하며, 법률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로 국회를 견제할 수 있다. 대통령이 직접 구성하는 국무회의(내각)는 실권(의결권)이 없는 심의기관인데, 국무위원(정부각료)은 원칙적으로 국회의원을 겸임할 수 없고 국회에서의 발언권이 없다.

 

이와 같은 정부시스템은 대통령이 재임하는 기간 동안 ‘안정적인 행정부’가 정책의 일관성을 견지하여 강력하게 추진, 실행할 수 있다. 또한 다수당의 당리당략적 독선을 제어하고 소수의 정당한 이익을 보호할 수 있는 장점이 크다. 반면에 단점은 국회의 정부에 대한 견제력이 미약하여 대통령이 독단, 독선을 넘어 독재정치의 행태로 흐를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게다가 엄격한 권력분립으로 인하여 정부와 국회의 원활한 협조·협력이 어려울 수 있으며, 특히 여소야대의 상태에서 극하게 대립할 경우에는 조정할 길이 거의 없다.

 

한편, 내각책임제는 ‘의회중심주의’의 근본적인 특징이 있으며, 국회와 정부는 권력융합·협력(fusion of power)에 의한 관계다. 다수당의 대표(당수)가 내각을 조직·구성하므로 ‘정당내각’이 된다. 그리하여 국정운영, 행정권행사의 주체인 행정부가 국회의 ‘신임’에 의하여 구성되고 존속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회는 하시라도 정부를 불신임할 수 있고, 정부 또한 국회를 해산시킬 수 있다. 정부각료는 원칙적으로 국회의원을 임명하여야 하며, 국회에서 발언할 수 있다. 대통령은 국가원수의 지위에 있을 뿐이고, 집정자의 권한(행정실권)은 수상 중심의 내각에 주어진다.

 

이러한 내각책임제의 장점은 행정부와 입법부가 대단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어 유기적인 국정운영이 가능하다. 정부가 국회에 대하여 책임을 지며, 그에 따른 ‘신임’으로써 존속하는 바, ‘책임정치’를 실현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같은 특성의 역설(paradox)로 인하여 ‘불안정한 정부’일 수밖에 없으므로 반드시 충실한 ‘양당제’를 정립해야만 한다. 그렇지 못하면 정정불안, 정국의 혼란이 심화됨으로써 정치파행, 국정실패를 피할 방도를 찾기가 어렵다. 뿐만 아니라, 다수당(특히 집권당)이 정부와 야합하면, 다수의 전횡, 국정의 농단을 저지할 수 없는 파국에 빠지고, 소수의 정당한 의사와 권리가 묵살되기 십상인 아주 큰 단점이 있다(특별히 간과해서는 안 될 유의점은 내각책임제하의 정치나, 정변에 의한 독재정치는 통치권자·집정자가 돌이킬 수 없는 변고를 당하거나 갑자기 사망했을 경우, 후계체제의 불비로 인하여 통치행위의 중단, 국정마비는 물론 권력투쟁의 암투가 벌어지는 비상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더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은 내각제 실시를 거론하면서도 하나같이 확실한 의회중심, 즉 완전한 의원내각에 입각한 정통의 내각책임제를 주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연정’, ‘혼합체제’, ‘분권’ 등을 내각책임제에 덧붙이고 얽어맨 ‘기형화’가 마치 대단한 비책인 듯 내세우므로 도무지 석연치가 않은 것이다.

 

“내각제 요소를 가미한 연정이 필요하다”, “대통령은 외교, 안보를 맡고 내치는 정치권에서 해야 한다”, “대통령은 직선제로 뽑고, 정부 운용 방향은 내각제를 도입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내각제가 바람직하지만, 국회에 대한 불신 때문에 대안으로 분권형 대통령제를 해야 한다”, “내각제를 통해 2년간 연정을 하면 21대 국회에서도 연정을 계속할 수 있다”(2016년 9월 21일자 ‘동아일보’ 기사)

 

그러자면 연관한 정파와 정당들이 의기투합해야 하지만, 사적명리에 혈안이 되어 파당적 이전투구를 일삼는 저급한 정치 풍토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중재와 조정이 순수 내각제보다 훨씬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더 큰 난점은 온갖 세상사, 특히 정치를 수행하는 데 메커니즘(機制・기제)이 확고하지 않고, 더욱이 실험적인 상태이면 문제점(단점)에 대한 적절하고도 유효한 보완책의 강구가 불가능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어떤 일이든 실행방법을 명확하게 정하지 않고 얼버무리면 갈피를 잡지 못하여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다.

이것저것 장점을 곁들여 섞는 것, 또한 지표를 중간 정도로 잡는 것, 이를 긍정적인 관점에서 ‘정치의 중도’를 내각책임제에 적용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못 이상적일 수 있는 ‘중도주의(중용) 정치’는 생각하고 말하기는 쉽지만, 바로 앞에서 지적한 바의 한계로 인하여 거의 실현 불가능하고 성공한 사례도 없다. 그래서 위대한 성인 공자도 어려워했던 그것을 앞세워 치켜세우는 언설은 진보든 보수든 어떤 경우에도 허망한 말잔치일 뿐이라는 점을 적확하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공자께서 어찌 (중용의 도를 행하는) 중도를 하고 싶지 않았겠는가마는 반드시 얻을 수 없기에 그 다음을 생각하신 것이다” (孔子豈不欲中道哉 공자기불욕중도재 不可必得 불가필득 故思其次也 고사기차야. 맹자)

 

거듭 강조하거니와, 정치인들이 구태와 악습을 타파, 국민의 증오와 불신을 불식하고 오로지 공적사명에 투철하여 ‘협치’를 실천해야만 내각책임제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각제뿐만 아니라, 모든 정치가 최고 수준의 정신과 철학(지혜), 곧 ‘지적능력’과 ‘지의 의무’가 필요충분조건이거늘 우리나라의 위정자들이 과연 그럴만한 수준이 되는가?

“썩은 나무에는 조각할 수 없고 거름흙으로 쌓은 담장은 흙손질을 할 수 없다” (朽木不可雕也 후목불가조야 糞土之墻不可杇也 분토지장불가오야. 공자, ‘논어’)

 

어찌되었건 썩을 대로 썩은 나무는 칼을 대는 순간에 부스러지고 만다. ‘중도’를 덧붙이든 곁들이든 어떻게 하더라도 내각책임제로 다시 조각하려면 쓸 만한 재목감이 적어도 과반수는 넘어야 하거니와, 그래서 썩지 않은 성한 나무를 찾고자 이리저리 둘러보고 아무리 살펴본들 10퍼센트가 채 안 될 것이다. 부언컨대 내각제의 기능적 특징은 ‘신임’, 곧 협치의 실행이 으뜸인데, 삼류의 정치임을 세계와 우리, 자타가 공인하는 참담한 지경이므로 도저히 그럴 수 없다는 판단에서 하는 말이며, 그런데도 이를 바란다면 연목구어나 다름없고, 그저 요원하기만 할 뿐이다.

 

그러한 실태가 지금,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 바, 적나라하게 노정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정치활동・정치현상・정치상황(정치의 3요소)의 절망적인 실상이다. 좀 더 구체적인 현황을 말하자면, 정부(조직)는 정치가·행정가 집단이 운영(국정)한다.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는 주로 ‘정책결정’을 통하여 국리민복을 실현하는 경세(經世, 세상을 경영함)에 주력하여야 한다. 아울러 행정은 ‘정책집행’을 맡아 정치적 결정의 완수에 투신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부(집행)보다 우선하고 더 중요한 정치에 극단적 집단이기주의와 계파패권주의, 당리당략과 사리사욕의 병폐가 뿌리깊이 박혀 있다. 그런 탓에 대다수가 ‘국리민복’, ‘국태민안’을 위한 공명정대·공평무사·멸사봉공의 투철한 정의감과 희생정신, 사명의식은 기대난망일 수밖에 없다.

 

“사안(史眼, 역사의 눈)을 모아서 오늘을 본다” 선비정신, 특히 청백리의 혜안으로 현재를 본다면, 가히 불의·부패한 정신바이러스에 병든 소인배들이 조야에 널려서 세상을 몹시도 어지럽히는 상황일 터이다. 정신상태, 사고방식을 뜯어고쳐 ‘의식수준’을 높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역설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까닭이다.

 

그러므로 내각책임제는 다음 세대에나 생각해 볼 일이다. 그것도 ‘정치혁명’으로 교육개혁을 실현하고, 그로써 인성교육을 강화하여 ‘의식혁명’을 이룩해야만 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차세대가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높은 사회적 신분·지위에 걸맞는 도덕적 의무)를 다할 수 있는 건전한 모범적인 지도층을 형성하고, 이를 전제한 정치의 세대교체를 통하여 실현 가능한 것이다.

정치는 말할 나위 없고 온통 암울하기 그지없는 세태이나, 대통령중심제에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탁월한 능력과 리더십을 갖춘 진보적 집정자, 국정최고책임자 단 한 사람만 잘 뽑으면 된다. 앞서 섞은 나무를 말했는데, 그래도 성한 나무, 걸출한 재목 하나는 있지 않겠는가. 국민은 바로 그 거목을 찾아내야 한다. 한 점도 썩지 않아야 하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튼실하고 좋은 나무이어야 한다. 그래야 하는 까닭은 대통령중심제, 더욱이 우리나라는 대통령에게 무소불위할 정도의 막강한 권한이 국민으로부터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대통령이 목숨을 바칠 결연한 각오와 투철한 의지로 불의·부패와의 전쟁을 벌이고 ‘정치혁명’을 성공시켜 국가·사회 전반의 혁신적 ‘변화의 관리’를 추진, 실행한다면 필연코 나라의 발전과 민생의 안정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대선주자들을 비롯한 모든 위정자들은 현재의 불안정한 상황, 혼돈지경의 정치 여건에서는 자칫 잘못하면 정정불안과 국정혼란만 가중시킬 내각책임제를 더는 거론치 않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다. 무기력하고 무책임하게 정치체계를 비롯한 주변을 탓할 게 아니라, 스스로 대오각성·심기일전하여 타락한 현세에서의 지상과업(Task Goal), 그 ‘정치혁명’을 이루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온 국민이 간절하게 원하는 바이고, 부강한 국민주권의 민주국가를 재건하는 길임을 명심하였으면 한다.

 

대한글씨검정교육회 권혁시 이사장

각설하고 목하, 미국의 민주시민들은 정치·경제의 권력을 독점, 독식하여 양극화·빈익빈부익부를 조장한 무도・불의하고 부패한 주류기득권 세력에 대한 거센 저항과 치열한 타도공세, 그렇게 ‘정치혁명’을 위하여 분연히 일어섰다(아웃사이더·비주류인 버니 샌더스의 사자후와와 도널드 트럼프의 포효, 그 무섭게 휘몰아치는 노도광풍이 이를 말해 준다. 우리나라 국민들도 이렇게 약자의 편에 서서 분투하는 용감한 정치지도자의 출현을 대망할 것이다).

 

“현재 유권자들은 미국이 직면한 엄청난 위기를 고려할 때 ‘늙고 낡아빠진 기성 정치세력과 경제계’에 국가를 맡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버니 샌더스)

 

우리나라가 미국보다 몇 배는 더한 위기상황이거니와 우리 국민 모두는, ‘정치혁명’을 실현함으로써 불평등과 부조리, 무원칙을 타파하여 분배정의, 나아가서 ‘사회정의’를 실현하고자 분발, 의기투합한 미국 국민들의 강렬한 결기와 불굴의 의지를 본받고 교훈삼아야 할 것이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Share on Google+ 구글+ 카카오톡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스토리 밴드 밴드 네이버블로그 블로그
기사입력: 2016/09/28 [16:08]  최종편집: ⓒ 서울의소리
 

선거 동안 정당후보자에 대한 지지 또는 반대의 글을 게시하고자 할 경우에는 '실명인증' 후 게시물을 등록하셔야 합니다. 실명확인이 되지 않은 선거관련 지지 혹은 반대 게시물은 선관위의 요청 또는 관리자의 판단에 의해 임의로 삭제될 수 있습니다.
※ 본 실명확인 서비스는 선거운동기간(2017.04.17~2017-05.08)에만 제공됩니다.
일반 의견은 실명 인증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제목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권혁시 관련기사목록
더보기

  마로니에방송 첫 페이지

주간 베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