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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림비 예산은 삭감, 박정희 우상화에는 펑펑
[수산스님 칼럼] 상대의 입장에서 자신을 비추어 보자
 
수산스님(6.15경기본부 홍부위원)   기사입력  2016/09/30 [09:11]

인생에 지침이 될 만한 이야기가 시의 형태로 엮여져서 예부터 널리 읽혀져 온 경전인『법구경』에 “모두 폭력을 무서워한다. 모두 죽음을 두려워한다. 자기 자신을 남의 입장에 놓아보고 죽이지도 말고 죽이도록 하지도 마라”는 말씀이 실려 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나도 모르게 ‘나’를 중심으로, 모든 것이 나의 뜻대로, 나의 욕심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살아간다. 부처님께서는 세상의 참된 이치를 부정하고 인과법을 무시하며 소유욕에 눈이 멀어 과오를 범하는 이기주의에 사로잡힌 우리 중생들을 경계하셨다.

 

그래서 내가 느끼듯이 누구나 폭력을 무서워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니 남의 입장이 되어 함부로 폭력을 행사하지 말라고 하셨던 것이다. 이 세상은 혼자서 고립되어 살 수 없기에 ‘나’만을 위한 강한 집착은 결국 나 자신뿐만 아니라 이웃까지도 파멸의 수렁으로 빠뜨린다는 것을 역사는 말해 주고 있다.

 

지난 9월9일 북한은 5차 핵실험에서 핵탄두 폭발실험을 통해 ‘경량화’·‘소형화’·‘표준화’를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그들의 발표가 100퍼센트 사실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이제 북한의 핵무기가 실전배치 되고 대량생산도 가능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만은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까지의 북한에 대한 미국이나 한국의 정책이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명박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대화가 아니라 오직 제재를 통해 항복을 받겠다는 정책은 오히려 이 땅에 전쟁의 위협을 높여 국민들의 불안감만 키운 셈이 되었다.

 

정치철학도 없고, 역사도 모르며, 수학 계산도 되지 않는 지도자의 어리석음은 개성공단 폐쇄라는 엄청난 악수로 오히려 남한의 금전적 손해만을 안기게 되었다. 지난 정권의 퍼주기가 핵개발을 가져 왔다는 저들의 뻔뻔한 거짓말은 왜곡과 거짓으로 가득 찬 언론을 통해 마치 진실인양 호도되고 있다.

 

그리고 모든 상황이 제정신이 아닌 북한의 어린 지도자로 말미암았기에 이제는 대화가 아니라 오직 강력한 제재로 북한의 고립화만이 위기를 풀어낼 수 있다는 천박한 해결책을 당연한 듯 내놓고 있다.

 

먼 외국에서 순전히 본인의 의지로 초래한 위험으로 목숨을 잃은 한 국민을 두고 국가가 가장 기본적인 임무인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에 분노하며 국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되었다던 사람이 지금의 대통령이다.

 

그런 본인은 정작 바로 눈앞에서 생방송으로 중계되는 가운데 수백 명이 수장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반성과 미안함을 찾을 수 없고 오히려 진실은폐에 침묵하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길 가다가 어깨를 부딪쳐도 미안하다고 한마디 하건만, 명백한 공권력의 남용으로 한 농민을 죽음에 이르게 한 정부는 유감표명조차 할 수 없다고 하니 그 뻔뻔함에 치가 떨린다.

 

전쟁 중이라 할지라도 적군의 부상자는 치료해 준다고 하는데, 수 십 년만의 물난리로 엄청난 피해를 입은 북한 주민을 도와주는 것을 막는 정부에게는 자비나 사랑이란 단어가 사치일까 싶다. 한반도를 파국으로 이끄는 군비경쟁보다 대화를 통한 전쟁억지가 훨씬 이 땅에 평화를 준다는 사실은 김대중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까지의 정책에서 우리가 배운 교훈인데, 저들만 느낄 수 없나 보다.

 

전시작전통제권도 없으면서 전쟁불사론을 외치는 정신 나간 정치인들. 미국을 비롯한 모든 국가들이 결코 찬성하지 않을 줄 뻔히 알면서도 핵무장론을 주장하는 저열한 정치인들.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 관련예산 8억2천만원을 삭감하면서 독재자 박정희 기념사업을 위해 1900억이 넘는 돈은 펑펑 쓰겠다는 천박한 효심과 충성심.

 

이 모든 것들이 바로 우주가 오직 나만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이기주의에 젖은 행위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자기 자신을 남의 입장에 놓아보라는 말이다. 내가 원하는 딱 그만큼 상대방도 원한다는 단순한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상대가 비록 적일지라도 그의 입장에서 자신을 비추어 보는 현명함을 갖추기를 바라는 것은 요원한 바람일까? 어쩔 수 없이 그냥 이대로 500여일을 버텨야 하는 것일까? 늦더위의 후텁함 만큼의 먹먹함으로 가슴 갑갑한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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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9/30 [09:11]  최종편집: ⓒ 서울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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