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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예수와 유대의 바리사이파,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과 한국의 수구파

국정을 파탄 낸 ‘수구파’를 응징하고, ‘매카시즘’(종북몰이)을 격파해야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다

권혁시 칼럼 | 기사입력 2016/11/01 [00:40]

그리스도 예수와 유대의 바리사이파,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과 한국의 수구파

국정을 파탄 낸 ‘수구파’를 응징하고, ‘매카시즘’(종북몰이)을 격파해야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다

권혁시 칼럼 | 입력 : 2016/11/01 [00:40]

2천 년 전, 유대의 바리사이파와 오늘날, 한국의 수구파는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이 거의 같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두드러진 유사점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죽였고, 노무현 대통령을 죽게 한 것이다. 

 

       유대의 바리사이파(위)와 한국의 어버이연합(아래)


예수시대는 로마가 고비용의 용병과 무자비한 무력을 앞세워 공화국에서 제국으로 바뀐 이후였으나, 그때까지도 ‘표현의 자유’에는 일체의 제약이 없었다. 하지만 반란이나 지지, 선동은 용납하지 않았다. 예수가 결코 그런 적이 없는데도, 유대의 바리사이파는 그들의 생각과 태도에 반하는 예수의 사상과 언행에 위협을 느껴 그를 정치범의 누명을 씌워 사형에 처하였다. 가증스럽게도 한국의 수구파는 국정파탄에 대한 책임모면과 정권유지의 술책을 위하여 자신들이 죽음의 벼랑 끝으로 내몰았던 노무현 대통령의 정당한 정책결정을 시비, 폄훼하여 여론을 호도함으로써 부관참시나 다름없는 만행을 서슴없이 자행하고 있으니 통탄할 노릇이다.

 

BC 538년, 페르시아의 왕 키루스(고레스)의 특은으로 유대인들이 바빌론 유수에서 풀려나 고국으로 돌아왔으나 그 후 1~2백년 사이에 이집트와 그리스 알렉산더대왕의 지배를 당하였고 재차 로마에 복속되어 다시 백년이 넘는 긴 세월이 흘러갔다. 이즈음 예수가 태어나기 168년 전, 파괴되기는 했으나 신성한 예루살렘 성전 터에서 제우스에 대한 경배의식을 거행하는 데 격분, 반발하여 국경의 작은 마을 모딘의 제사장 마따디아(마타시아스 Mattathias)가 로마 관원을 칼로 쳐 죽이고 다섯 아들과 함께 요르단강 골짜기로 도주한다.


이 사건이 발단이 되어 유대인들은 단결하여 반란을 일으켰고, 연로한 마따디아가 죽자, 지혜롭고 용감한 그의 삼남 유다가 지도자로 나서 ‘마카베오’(유다 마카비 Judas Maccabe, ‘망치’ 유다)로 불릴 만큼 눈부신 활약으로 독립투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로써 마카베오가(家)는 정치적 기반을 확고히 굳혀 요한 하루카누스 이후에는 국왕으로 인정받으며 대제사장이 국가 최고책임자인 ‘신정체제’의 독립국가로 기틀을 다졌다.

 
그러나 그리스·로마의 새로운 정치철학을 수용하는 국제적인 추세와 시대상황에 처함으로써 ‘신정체제’의 유지가 현실적으로 여의치 않았다. 따라서 유대는 외세의 압력으로 인하여 서로 다른 정부형태와 종교의식을 갖은 세 부류, 즉 바리사이(Pharisee, 분리된 사람들), 사두가이(Sadducee, 제사장 사독 Zadok에게서 유래), 에세네(Essene, 성스러운 자들) 등으로 세력이 나뉘어 파벌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유대의 파벌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분파가 바리사이파였다. 이 파당의 정확한 기원은 알려진 바가 없으나 마카베오 혁명 직전에 결성된 듯하며, 마따디아가 혁명의 칼을 뽑아들자 이들 ‘하시드(Hasidean) 사람’(경건한 자들)이 제일 먼저 지지하고 나섰다. 그리고 독립전쟁에서 승리한 후, 점차로 처음에 가졌던 종교적 열정이 식어지자 ‘바리사이’로 개칭하고 왕국이 무너질 때까지 국가·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앞장서 나갔다. 로마제국의 갖은 폭압에도 결코 굴하지 않는 뜨거운 열정을 이어갔던 것이다.


그들은 고대의 율법(토라 Torah·모세오경, 창세기·탈출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 등 구약성서의 첫 다섯 편을 이른다), 그 모세법에 의거 아주 특이한 규칙과 이해가 잘 안 되는 금기를 지켰으며, 몇 가지의 반드시 준행해야만 할 실천사항과 해서는 결코 안 될 670여 가지나 되는 수많은 금지사항을 철저하게 준수하였다. 그리고 겉보기에는 대단히 겸손하였으나, 자신들은 다른 사람들과는 도저히 비교도 안 된다는 자만심과 우월감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 그리하여 뭇사람들을 하찮게 여겨 경멸하였고 내심 거만하기까지 했다(요컨대 위선과 형식주의, 독선과 권위주의, 교만과 이기주의가 수구적인 바리사이파를 비롯한 무릇 ‘소인배’들의 공통된 특성이다).


처음에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열정적인 신앙을 통하여 순수하고 지고한 행동양식, 삶의 태도, 아울러 사심 없이 충성된 애국심을 가졌었다. 그러던 것이 세월이 흐를수록 시대착오적 편견에 사로잡혀 당연하고 정당한 반론에도 신경질을 부리는 참을성 없는 대단히 성가신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들은 일부러 미래의 비전을 내다보지 않고 고개를 뒤로 돌려 한참 지난 과거, 모세시대의 영광만 그리며 두리번거렸다. 외래의 문물은 가리지 않고 혐오하였으며, 새로운 사상과 사조, 사물 등 모든 것을 극단적으로 배척하였다. 그도 모자라 분단된 북쪽의 이스라엘 땅, 바빌론유수 이후의 사마리아는 동족인데도 상종해서는 안 될, 이민족보다 못한 종족으로 치부하였다. 더구나 개혁자·혁명가들은 이단이므로 종교와 정치, 곧 국가와 민족의 적으로 선포하였다. 편협하기 이를 데 없는 ‘근본주의’에 얽매여 포용력·개방성, 유연성과 융통성이 티끌 만큼도 없는 바리사이파의 이 같은 사고방식과 행태는 현재, 우리나라의 퇴행적이고 자기중심적(이기적)이며 극단적인 수구파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이 독사의 족속들, 닥쳐올 그 징벌을 피하라고 누가 너희들에게 일러주었더냐? 너희가 회개했다는 증거를 행실로써 보여라!” (공동번역 신약성서 마태오복음 3장 7·8절)


바리사이파와 사두가이파를 추상 같이 질타하던 세례자 요한(John the Baptist). 그 광야의 선지자가 기득권 침해를 우려한 권력자 헤로데 왕의 손에 목숨을 잃은 얼마 후, 그에게서 세례를 받았던 예수가 전면에 등장한다. 그는 박학다식한 율법학자들이 지식을 과시라도 하듯 난해한 문장과 복잡한 어휘를 섞어 매우 현학적으로 말하여 이해하기가 어려웠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그는 누구이든 쉽사리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하였다. 때로는 우화를 들려주어 곧바로 본질에 다가가게 했다. 자존심이 강하고 근엄한 랍비(유대의 선생)는 결코 하지 않았을 말과 행동도 스스럼없이 하곤 했다. 특히 천국의 길은 선택된 유대뿐만 아니라, 그 국경 넘어 어디든지 있고 간절히 원하기만 하면 누구라도 갈 수 있다고 되풀이하여 말하였다.


예수는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모여든 많은 사람들(주로 힘없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을 측은히 여겨 더 많은 것을 가르쳤다. 그의 깊은 사유와 관념으로는 이미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결론내린 바와 같이 기본적인 삶을 넘어서는 사리사욕이 앞선 다툼은 극히 무의미했고 야심은 무익했으며, 재력과 권력을 향한 끝 모를 탐욕과 집착은 길지 않은 인생에 주어진 더없이 소중한 시간과 정력을 허비할 따름인 것이었다.

 
또한 사랑과 정의, 평등을 강조하는 예수는 확실하게 진보적이었으나, 고대 율법의 완성을 중시할 정도로 가치 있는 보수도 옹호하였다. 그래서 삶과 죽음의 문제에 있어 케케묵고 낡아빠진 바리사이파의 종교관과는 전혀 다른 그만의 새로운 사상을 전파시켰던 것이다. 이러한 예수를 따르는 군중은 그를 진정한 ‘메시아’(Messiah, 그리스도·구세주의 히브리어. 그러나 뭇사람들은 현세적인 관점에서 ‘정치지도자’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탁월한 연설가·선지자로 여겼다. 


따라서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마카베오처럼 혁명의 지도자로서 압제와 분단의 고통에 시달리는 유대민족의 염원인 독립과 통일을 이룩할 수 있을 터이었다. 더욱이 근본주의에 빠져 극히 배타적이고 이기적이어서 포용하고 상부상조할 줄 모르는 바리사이파가 주류·기득권 세력인 유대의 민중은 그들을 축출하고 정치체계를 변혁하는 것이 간절한 염원이었다. 


그런 까닭은 오늘날, 대다수 한국인의 절절한 심정과 마찬가지로 (예수시대의 기득권자들이 우리나라처럼 그렇게 극도로 부도덕하여 부패한 것은 아니었지만) 지나치게 불평등하고 조화롭지 못한 국가·사회에 대한 불만과 분노의 발로였다. 극소수의 강자들이 부와 권력을 독차지했던 것은 지금,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세태에서 기성세력과 질서에 저항하여 오로지 약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을 옹호하고 대변하는 예수에게 사람들의 마음이 쏠릴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렇기는 했으나 예수의 신념으로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이런 유혹은 ‘특별한 천명’(天命, 하늘의 명령)을 받은 자에게는, 그 원대한 이상이 될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정치권을 중심으로 바리사이파보다 더한 수구세력이 전횡을 일삼는 가운데 ‘우·최·송’ 삼각파(우병우, 최순실, 송민순)에 휩쓸려 심하게 요동쳤다. 그런 풍파 속에서 최순실의 수렴청정, 국정농단의 파도가 솟구쳐 올랐다. 기여코 터져버린 그 경천동지할 사태의 엄청난 쇼크는 온 국민이 아연실색, 경악하며 분기탱천케 하였다. 급기야 ‘탄핵·하야’를 외치며 거세게 반발하는 ‘성난 국민들’(angry people)의 목소리가 하늘을 찌를 듯 하고, 이대로라면 국정 최고책임자에 대한 국민의 실망과 원성, 불신과 우려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갈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집권자의 권한 정지, 통치력 상실, 국정 운영시스템 붕괴의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crisis management)의 비상사태다(작금의 위기상황에서도 무서운 ‘인과응보’의 엄중한 천벌( 天罰, 하늘의 징벌)을 절실히 깨닫지 못하고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끝내는 파멸을 면치 못하리라!) 


그러므로 당연히 정부여당 수뇌부는 지체 없이 ‘하야·총사퇴’함으로써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될 절체절명의 위기, 파국의 지경인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의 과오를 전적으로 인정하고 통렬하게 반성할 줄 모르는 무도·불의하며 무지·무책임할 뿐 아니라, 부패하고 몽매하며 사악하기까지 한 소인배 패거리들이 그렇게 할 리가 만무하다. 오히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예나 다름없이 언제 그랬냐는 듯 ‘송민순 회고록’(빙하는 움직인다)과 북한의 핵개발을 빌미삼아 ‘종북·친북’ 몰이, ‘북풍’ 일으키기에 나설 것은 명약관화하다. 안타깝게도 그런 짐작 그대로 지금, ‘구국의 결단’으로 즉각 사퇴해야 할 대통령은 정부조직도 아닌 비서진 몇 명을 잘라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고, 정부와 여당 수뇌부는 어줍고 비열하게 책임을 모면할 궁리에만 급급할 뿐이다.

 
그럴진대 국정파탄에 대한 책임을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끝까지 추궁하여 엄단함은 물론, ‘송민순 회고록’의 이슈화 또한 간과치 말고 예의 주시해야 할 것이다. 그 술수가 어느 보수신문의 기사에서 언급되었듯이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운영에 대한 의혹을 덮기 위한 방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더더욱 간과치 못할 중요한 문제는 논문도 아니고, 기억을 더듬어 저술한 그 책에 쓰인 글 몇 줄이 마치 청천벽력이라도 되는 듯 침소봉대하고 견강부회하는 경거망동이다. 그런 선동질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선량한 시골 청년 예수를 처치하기 위해 저열하고도 비겁하게 트집 잡기에 골몰했던 바리사이 같은 그런 모리배, 소인배들이나 저지를 수 있는 어처구니없고 터무니없는 난센스의 극치인 것이다.


(게다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송민순 회고록’ 논란과 관련해 “지금 나온 것보다 더한 것도 많지만 국격이 떨어지고 낯 뜨거운 일들이어서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10월 24일자 중앙일보 기사) 이야말로 몇 가지 비열한 저의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송민순 회고록’ 파문의 자가발전에 대한 ‘옹호론’이 아니고 무엇인가? 국민들로부터 역대의 대통령들 가운데 최악의 평가를 면치 못하여 유구무언일 뿐일 그가 (현 정권의 끊임없는 국정파행도 함께 의식하여) 은인자중하지는 못할망정 국민들이 오히려 얼굴을 붉힐 적반하장의 언설, 그 부화뇌동은 나라와 자신의 품격을 위해서 삼갔어야 마땅하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문제의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의 저자 송민순이 차기 대선출마가 확실한 반기문 사무총장의 일파이며, 그 주역 가운데 한 사람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저술 의도가 순수치 못하다는 의혹도 아울러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설령 그렇더라도, 부디 스승 예수를 바리사이파에 팔아 넘긴 유다 이스가리옷 같은 배신자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우리나라는 무엇보다도 ‘평화안보’가 우선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 ‘화해교린’정책을 비난, 폄훼해서야 되겠는가?

 

이렇듯 한국의 수구파는 고대 이스라엘, 유대의 바리사이파를 능가하거니와 그들이 그러했듯이 이분법적 흑백논리, 극히 편협한 단순논리를 내세우면서 ‘송민순 회고록’ 파문에 대한 시비를 증폭시키고 있다.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 지난 지금에 와서 9년 전, 2007년에 있었던 UN(국제연합)의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한 처결과정을 밑도 끝도 없이 극렬하게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시비의 전모가 진중치 못한 단순논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세세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당시의 제반 상황의 반증으로써 여실히 드러난다(그런 까닭은 국정파탄에 대한 책임모면과 정권유지의 술책에 급급한 나머지 다각도의 분석과, 그 결정이 고심끝에 내려진 역발상의 대북 외교전략인 것을 헤아리지 못했거나 무시한 탓일 것이다).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제 2차 회담에서 역사적인 ‘10·4남북정상선언’이 공표되었다. 그 후 11월 18일, 문제의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한 찬반에 관하여 문재인 비서실장, 김만복 국정원장, 이재정 통일부장관, 송민순 외교통상부장관 등 4인의 정부인사가 격론을 벌였다. 그 같은 숙의 끝에 다음날 11월 19일, 백종천 안보실장이 송민순 장관에게 단 한 문장, 그러나 무엇보다도 ‘국가안위·평화안보’가 최우선이라는 결연한 의지의 메시지가 적힌 쪽지를 전한다.


“남북관계 발전에 위태로운 사태를 초래할 테니 인권결의안 표결에 책임 있는 입장을 취하기 바란다”

 

외교는 국제관계에 있어서 한 나라의 생존전략이다. 그것이 ‘평화안보’의 방편일 때, 이른바 ‘외교전쟁’이 된다. 대북관계에 관한 한 외교의 핵심이 ‘국가의 안보’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외교이든 실전에서든 전쟁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겨야만 한다. 따라서 윤리·도덕 및 일반원칙까지도 철저하게 무시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전쟁이란 승자독식의 게임이기 때문이다. 전쟁에서 패하여 모든 것을 송두리째 빼앗긴다면, 그 무엇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전쟁을 하는 데 도덕이나 원칙을 내세워 고도의 전술전략을 구사하지 않고 정면승부만을 고집하면 필패할 따름이다. “전쟁은 속임수의 도다” 兵者詭道也 병자궤도야 (손무, ‘손자병법’) 전쟁에서는 기필코 승리해야 하므로 반드시 의중을 드러내지 않는 속임수, 허허실실(虛虛實實, 허점을 찔러 실리를 얻는 계책)의 전법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이는 제갈공명, 징기스칸, 조지 워싱턴, 마오쩌뚱, 몽고메리 등의 주특기였다.


“옳은 것도 없고 그른 것도 없다” 無可無不可 무가무불가 (논어) 세상에 절대의 법칙이 있는가. 그것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달리 해석될 수 있다. 살인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지만, 전쟁에서는 불가피하게 사람(적군)을 죽일 수밖에 없다. 이 역설을 단편적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근본주의와 획일주의 또는 고정관념과 아집 등 편협성·경직성으로부터의 탈피로 받아들여야 한다. 기회주의나 절충주의의 애매모호한 사고와 태도가 아닌, 그것을 뛰어 넘는 유연성과 탄력적인 ‘변화의 관리’(change management)를 통하여 오히려 정의, 윤리·도덕과 원칙을 지켜내어 견지해 나갈 수 있는 ‘유효적절한 방편’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앞에 언급한 모든 관점에서, 북한 인권결의안에 대하여 (의중은 당연히 찬성이고, 불의한 행태를 절대로 묵과할 수 없지만,) 남북의 화해공존과 상호협력을 통한 ‘평화안보’의 공고화를 위하여 전략적으로, 그것도 반대가 아닌 기권을 결정한 사실과, (근거가 명확치 않은 일방적 주장이지만, 만일 그렇다하더라도) 북한에 대한 의사타진 행위가 그렇게 큰 과오일 수는 없지 않은가? 이 같은 반론을 제기하는 까닭은, 설사 한국이 그 인권결의안에 찬성했더라도 그것이 단지 선언에 그칠 뿐, 실질적으로는 북한동포의 인권향상에는 전혀 기여하지 못한 채 애써 이룩한 평화교린의 남북관계만 악화되는 원치 않은 결과를 초래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수구파가 그러하듯이 예수의 가르침과 행적으로 하여 자신들의 권위가 실추되고 권세가 침탈될 것으로 판단한 편협하고 독선적인 바리사이파는 그를 쳐 없애기로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적개심에 불타는 그들은 어떻게든 트집을 잡아 궁지에 몰아넣고, 처단의 빌미를 만들고자 시도 때도 없이 집요하게, 그러나 예의 그 단편적인 흑백논리를 내세우며 시비를 걸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이 예수가 세리, 죄인들과 어울려 같이 식사하는 것을 문제 삼다가 오히려 훈계를 당하였다. “의사는 건강한 사람에게 필요치 않고 병자에게 필요하다. 나는 선한 사람을 불러 회개시키려고 온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불러 회개시키려고 왔다” 어느 안식일에는, 길을 가던 예수의 제자들이 배가 고파 밀 이삭을 잘라서 먹었는데 바리사이파가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짓을 한다며 항의하자, 예수는 예날 다윗의 행적을 들어 제자들의 무죄를 입증시키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죄인으로 단정한 그들을 책망하였다. 또 한 번은 예수의 제자들이 식사할 때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었으니 조상들의 전통을 어긴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에 대한 견해를 밝혀 줄 것을 요구하였다. 예수는 먼저 그들을 위선자들로 규정하고 나서 “인간의 계명을 하느님의 것인 양 가르친다”는 성서 구절을 말해 주었다.


바리사이파는 어떻게 해서든 예수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서 그의 말을 트집 잡으려 하였다. 그래서 카이사르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은지, 옳지 않은지를 문의한다. 예수는 세금으로 바치는 돈을 보여 달라고 한 다음, “이 초상과 글자는 누구의 것이냐?”고 되물었다. 그들이 “카이사르의 것이다”라고 대답하자, 예수가 말하였다. “그러면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려라” 그리고 어느 날 이른 아침, 예수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사람들을 가르치려 할 때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가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모세법(율법)에 의하면 이런 죄를 지은 여자는 돌로 쳐 죽이게 되어 있는데, 예수의 의견은 어떠한지를 묻는다. 예수는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뭔가를 쓰다가 그들이 대답을 재촉하므로 아주 짧게 말하였다. “너희들 중에 죄 없는 사람이 있으면 저 여자를 돌로 쳐라” 그 말에 바리사이파들은 나이가 많은 사람부터 하나씩 그곳에서 물러갔다.


이어 바리사이파는 요한과 자신들의 제자들은 자주 단식하며 기도하는데, 예수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만 한다며 시비를 걸었다. 그래서 예수는 스스로를 신랑에 빗대어 말하였다. “잔치 집에 온 신랑의 친구들을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어떻게 단식하게 할 수 있는가? 이제 때가 되면 신랑을 빼앗길 것이니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을 할 것이다”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가 회당에서 가르칠 때 손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안식일인데도 병을 고쳐주면 바리사이파가 고발하리라는 것을 아는 예수가 손을 펴주기 전에 그들에게 먼저 묻는다. “너희에게 묻거니와, 율법에 어떻게 하라고 하였느냐? 안식일에 착한 일을 하라고 하였느냐? 악한 일을 하라고 하였느냐? 사람을 살리라고 하였느냐? 죽이라고 하였더냐?”

 
예수가 안식일인데도 또다시 벳자타 못가에서 30년 넘게 다리를 움직일 수 없어 걷지 못하는 어떤 장애인을 고쳐주자, 이번에는 최고회의(산헤드린)가 소집되었다. 호출 당한 예수는 고발내용을 경청하고 나서 한 주간의 어떤 특정한 날(안식일)이기 때문에 해야 할 좋은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추호도 없음을 확실하게 밝혔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확신에 찬, 전혀 거리낌 없는 그의 대답은 율법주의의 기존질서에 대한 공개적인 도전, 항거였다. 그 제서야 바리사이파는 예수를 제거하는 것이 뜻밖에도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교활한 바리사이파는 정치적 활동은 물론 그에 관해서는 한마디 말도 한 적이 없는 예수를 ‘유대 왕’을 자처했다는 누명을 씌워 선동죄, 반란죄로 몰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극형에 처하게 하였다. 예수는 살이 갈라지고 피 튀기는 채찍질로 모질게 신문하는 로마의 유대총독 빌라도에게 자신의 신념을 꺾으면 살 수 있었으나, 기꺼이 목숨을 바쳐 그의 사상과 신조를 굳게 지켜냈다.

 

그렇게 사형선고를 받고 예수는 죽기 전에 말할 수 없는 수모와 능욕과 치욕과 고통을 당하였다. 그처럼 ‘송민순 회고록’과 관련한 시비는 정치적 목적달성에 혈안이 되어 나라의 안위와 안보를 위하여 남북관계를 진작시키고자 절치부심하며 전력을 다했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가증할 ‘야유와 조롱’이 아닐 수 없고, 그를 모독하는 것이며 두 번, 다시 죽이는 짓이다.

 

대한글씨검정교육회

권혁시 이사장

아울러 수구파의 해묵은 술책인 ‘종북·친북’ 몰이, ‘북풍’ 일으키기를 불식시키지 못하는 한 차기 대선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반드시 정권교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극히 상투적이지만 대단히 위협적인 예의 그 ‘매카시즘’을 지금부터 미리 격파하여 대선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매카시즘’은 넓은 의미로는 논리적 이론 또는 사실적 근거 없이 정적을 비난, 매도하고 탄압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거세게 반발, 큰소리로 일갈하며 이를 명확한 논리로 강력하게 논박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답답하다 못해 울화가 치민다.

 

하여 그리스도 예수는 정치지도자가 분명히 아니었으나, 현재의 우리나라에도 그와 같이 ‘정의와 진리’를 추구하는 정신과 사상, 언행을 닮고 본받아 나라와 국민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실천할 수 있는 지혜롭고 용감한 '진보적 정치 지도자'의 출현을 거듭 대망하는 바이다.

 

인류역사의 대전환점 ― 그리스도는 율법의 종지부(로마서 10장 4절) ― 그 예수의 가르침은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여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더없이 존귀한 인간의 존재, 그리고 영혼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다. 그는 이를 몸소 실천하여 오래된 낡고 일상적인 세계관에 사로잡혀 새 시대의 징후를 알아채지 못하는 기성세력에게 대항하여 무도, 불의, 부패 등등, 그들의 수없이 많은 부정·부당성을 가차 없이 공박하였다. 그런 탓에 바리사이파의 입장에서는 예수를 그 어떤 강대한 반란군보다 훨씬 더 위험한 정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그들의 상식과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뒤집고 깨부수는 그리스도 예수의 강력한 비장의 무기는 그의 ‘아포리즘’이다(aphorism, 진리 또는 신조나 원리를 쉽게 이해하고 기억하도록 간결하고 명쾌하게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사람들 스스로가 자신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게 하였으며 그의 말(로고스 logos, ‘지혜’의 뜻도 있다), 그 발언은 지극히 단호하고 ‘결정적’인 것이었다.

“당신은 이스라엘의 이름난 선생이면서 어찌 이런 것들을 모르는가?” (요한복음 3장 10절)


“행복하여라.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니” (마태오복음 5장 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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