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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무당과 대통령…박근혜는 왜 지배당했나” 분석
 
서울의소리   기사입력  2016/11/22 [08:14]
 

 

프랑스 유력 일간지 <르몽드>가 ‘최순실-박근혜 스캔들’의 중심에 놓인 박근혜에 대한 분석 기사를 실었다. 지난 19일 토요일자 종이신문에 실린 이 기사는 꼭두각시 퍼포먼스를 벌이는 시민들의 사진과 함께 14면을 통째로 차지했다.

필립 메스메르와 필립 퐁스 등 도쿄의 두 특파원은 <한국, 무당과 대통령>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이 절친 최순실에 의해 조종됐던 스캔들이 밝혀진 이후 나라 전체가 공황 상태에 빠졌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임기 말이면 어김없이 측근 비리 등으로 위기에 처했던 한국의 이전 대통령 사례를 들면서 박근혜 역시 예외가 아니라고 적었다. 다만 박근혜는 퇴진 요구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그 어느 때보다 엄중하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박근혜와 최순실의 관계에 주목하며 이런 질문을 던졌다. “아주 어린 나이부터 명령을 내리는데 익숙했던 독재자의 딸이 언뜻 보아서는 스스로 결정하는 방법을 모른다고 할 정도로 지배당할 수 있었을까?” 

신문은 박근혜의 내외적 요인을 들어 설명했다. 부모 모두 살해당하는 비극을 맞이한 젊은 박근혜가 겪었을 혼란은 그를 겉으로는 냉정하게 보이지만 상처받기 쉬운 성격으로 만들었을 것으로 봤다. 둘째로는 당시 사회적으로 사이비 종교가 판을 치던 격변의 혼란기였던 점을 들었다.

1980년대 박 대통령이 쓴 6권의 저서를 분석했던 <한겨레> 기사를 인용해 박근혜의 종교에 대한 인식을 엿보려 했다. 신문은 박근혜가 박정희 사망 이후 측근들이 돌변하는 소위 ‘배신’의 시련을 겪은 뒤 자신을 붓다와 예수에 비유했던 점을 소개했다. 젊은 박근혜는 이처럼 상처받기 쉬운 존재가 돼 있었다.

박정희 사후 새로운 독재자가 집권하면서 한국 사회는 혼란스러워졌으며 계층을 막론하고 누구나 무당집을 찾는 게 보편적인 일이었다고 적었다. 이에 따라 “불안한 상태의 한국인들은 망자의 영혼과 교감하면서 속죄의식과 엑소시즘에 몰두했다”는 것이다.

이런 두 가지 주요한 요인들로 인해 박근혜가 사이비 교주 최태민 일가의 영향력 아래 손쉽게 놓일 수 있었다고 신문은 분석했다. 신문은 소문으로만 돌던 이들 관계가 폭로되면서 박근혜의 이해할 수 없었던 결정들을 해석할 수 있게 됐다고 썼다. 그러면서 신문은 세월호의 7시간 등 “지금까지 대답이 없었던 질문들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르몽드 기사의 전문이다.
번역 및 감수 : Sang-Phil JEONG
기사 바로가기 ☞ http://bit.ly/2fa6aMY


En Corée du Sud, la chamane et la présidente
한국, 무당과 대통령

 

Choi Soon-sil, une amie très proche de la présidente sud-coréenne Park Geun-hye, avait une grande influence sur elle. Depuis cette révélation, le pays est dans la tourmente.
박근혜 대통령과 매우 가까운 친구 최순실이 대통령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스캔들이 밝혀진 이후 이 나라는 공황 상태에 빠졌다.

 

Par Philippe Mesmer (Tokyo, correspondance) et Philippe Pons (Tokyo, correspondant)
필립 메스메르(도쿄, 특파원), 필립 퐁스(도쿄, 특파원)

   

 

Corruption, passe-droits, abus de pouvoir… Tous les présidents, conservateurs ou progressistes, de la jeune démocratie sud-coréenne ont quitté leurs fonctions dans une atmosphère délétère de scandales. Quand ils n’étaient pas eux-mêmes directement impliqués, leurs proches l’étaient.
비리, 특혜, 권력 남용… 민주주의가 들어선지 얼마 안 된 한국에서는 보수이든 진보이든 모든 대통령들이 스캔들을 일으키며 탁한 분위기에서 임기를 마쳤다. 그들 스스로 직접 사건에 연루되지 않았다면 그들의 측근이 연관돼 있었다.

 

En cela, la présidente conservatrice Park Geun-hye, dont le mandat de cinq ans s’achève en février 2018, ne fait pas exception. Ce qui en revanche est nouveau, c’est la nature de l’affaire qui risque de la conduire à la démission, voire à la destitution ou à un simple rôle de figurante à la tête de l’Etat.
이런 점에서 오는 2018년 2월 임기를 마치는 보수 정당 출신의 박근혜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이전과 다르게 새로운 점은 사건의 성격이 정부 수반에 대한 퇴진 또는 탄핵, 2선 후퇴 등의 요구에 이를 정도로 엄중하다는 것이다.

 

Quelque peu résignés à une corruption du monde politique qui gangrène jusqu’aux plus hautes sphères de l’Etat, les Sud-Coréens sont choqués. Cette fois, l’abus n’est pas lié à une pratique du pouvoir mais à une pathétique dépendance psychologique de la présidente, âgée de 64 ans, à l’égard d’une amie proche, Choi Soon-sil, 60 ans.
한국인들은 정부 고위 관계자들까지도 타락시키는 정치권의 비리에 대해 어느 정도 체념하고 있지만 그래도 꽤 놀랐다. 이번에는 권력을 남용한 데서 끝난 것이 아니라 64살 먹은 대통령의 절친 최순실(60세)에 대한 다소 우스꽝스러운 심리적 종속성과 연관됐기 때문이다.

 

Relation étroite
친밀한 사이

 

Que celle-ci ait extorqué 61 millions d’euros aux grands groupes industriels sous forme de donations pour deux fondations qu’elle contrôlait en usant de sa relation privilégiée avec Mme Park constituait en soi un scandale. Révélée au cours de l’été, l’affaire n’avait toutefois pas déclenché de tourmente dans l’opinion.
최씨는 자신이 주무르던 재단의 출연금 명목으로 대통령과의 특별한 관계를 이용해 대기업으로부터 6천100만 유로를 갈취했다. 이것 자체로도 스캔들이 되기에 충분했지만, 첫 보도가 나왔던 여름까지는 언론의 주목을 크게 받지 못했다.

 

Mais, le 24 octobre, une équipe de la chaîne télévisée JTBC se procure une tablette appartenant à Mme Choi qui révèle la relation étroite entre les deux femmes et l’influence de la confidente sur la présidente.
그러나 JTBC 취재팀은 지난 10월 24일 두 여성의 친밀한 관계와 대통령에 대한 비선의 영향력을 드러내주는 최씨의 태블릿 PC를 손에 넣는다.

 

Depuis, c’est la tempête. Les excuses formulées à deux reprises par Mme Park, manifestant une certaine sincérité, voire une fragilité rares chez cette femme réputée pour sa froideur, n’ont eu aucun effet. Sa cote de popularité a plongé, à 5 % d’opinions favorables. Esseulée après les arrestations et démissions de ses proches, elle invoque aujourd’hui la Constitution pour se raccrocher tant bien que mal à un pouvoir que lui conteste massivement la rue.
이때부터 폭풍이 몰아쳤다. 박 대통령은 두 차례에 걸쳐 공식 사과를 했다. 그는 일종의 진정성과 차갑기로 알려진 성격치고는 드물게 연약함을 보이기까지 했지만 소용 없었다. 지지율 조사에서 긍정적 여론은 5%로 곤두박질쳤다. 측근들이 체포되거나 사퇴한 뒤 외톨이가 된 그는 이제 거리의 국민들이 강력하게 내려놓으라고 하는 그 권력을 겨우 부여잡기 위해 헌법을 내세우고 있다.

 

Le samedi soir est devenu le jour des rassemblements pour appeler à sa démission. Le 12 novembre, plus de un million de personnes (260 000 selon la police) ont ainsi afflué de tout le pays sur l’avenue Sejong, au cœur de Séoul. Du jamais-vu depuis les manifestations pour la démocratisation en 1987.
지난 토요일 저녁은 그의 퇴진을 요구하기 위한 총궐기의 날이 됐다. 11월 12일에 100만 명이 넘는 인원(경찰 추산 26만 명)이 전국 각지에서 서울의 중심에 위치한 세종대로로 몰려 들었다.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 볼 수 없었던 대규모 시위였다.

 

Park Geun-hye subjuguée
지배당한 박근혜

 

Des fenêtres de la Maison Bleue, la résidence présidentielle, Mme Park devait apercevoir la mer de bougies dont la lueur se reflétait sur les panneaux rouges réclamant sa démission.
대통령 관저인 청와대의 창문에서 박 대통령은 퇴진이라는 문구가 써진 빨간 빛깔 유인물 위에 작은 불빛들이 반짝이는 촛불의 바다를 봤을 것이다.

 

« Nous ne sommes plus une dictature, nous sommes une tyrannie », avait auparavant lancé Chu Mi-ae, présidente du parti d’opposition Minju (centre gauche), stigmatisant le côté droitier de Mme Park et l’ascendant aux tonalités spiritualistes exercé sur elle par Mme Choi. Pendant ce temps, le parquet préparait l’interrogatoire de la dirigeante – une première pour un président en exercice.
야당인 중도좌파 진영의 더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 우리는 더 이상 독재가 아니라 (신정-역주) 전제정치 하에 있다 »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씨의 의해 박 대통령에게 행사된 정신적 감에 대한 지배력과 박 대통령의 보수적인 면을 비판했다. 그러는 동안 검찰은 국가지도자에 대한 조사를 준비했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조사는 사상 처음이다.

 

Les enquêteurs veulent clarifier les liens qui unissaient les deux femmes, car il est apparu que les décisions importantes de Park Geun-hye, une quarantaine de ses discours, la nomination de membres du cabinet et jusqu’à sa garde-robe devaient avoir l’aval de Choi Soon-sil, aujourd’hui en garde à vue. Celle-ci avait en outre accès à des informations confidentielles sur la sécurité auprès desquelles les e-mails d’Hillary Clinton semblent des broutilles. « Choi Soon-sil était la tour de contrôle par laquelle tout devait passer », commente une personnalité familière des arcanes du pouvoir.
수사관들은 두 여성을 하나로 묶어주는 관계를 밝히고자 한다. 40여개 연설문 수정이나 내각 임명, 심지어 의상 등 박근혜의 중요한 결정들이 현재 구속중인 최순실의 도움을 받아 이뤄졌기 때문이다. 또한 최씨는 힐러리 클린턴의 이메일들이 하찮아 보일 정도로 국가안보 관련 비밀 문서에 대한 접근권마저 갖고 있었다. 권력 중심부의 비밀을 잘 알고 있는 한 인사는 « 최순실은 모든 것이 거쳐가야 하는 컨트롤 타워였다 »고 말했다.

 

Comment la fille du dictateur Park Chung-hee (au pouvoir de 1961 à 1979), élevée au cœur du pouvoir et habituée dès son plus jeune âge à donner des ordres, a-t-elle pu être subjuguée au point, apparemment, de ne pas savoir décider par elle-même ?
어떻게 권력의 중심부에서 길러지고 아주 어린 나이부터 명령을 내리는데 익숙했던 독재자 박정희(1961~1979년 집권)의 딸이 언뜻 보아서는 스스로 결정하는 방법을 모른다고 할 정도로 지배당할 수 있었을까 ?

 

Deux facteurs ont pu jouer. La personnalité de Mme Park, vulnérable derrière une grande maîtrise de soi apparente. Et un environnement socioculturel dans lequel pullulent les sectes religieuses, dont beaucoup se nourrissent de la spiritualité traditionnelle (chamanisme, divination, géomancie) enracinée dans la vie quotidienne.
두 가지 요인이 있을 수 있다. 박 대통령은 눈에 보이는 놀라운 냉정함 뒤로 상처받기 쉬운 성격을 갖고 있다. 또 사이비 종교가 넘쳐나는 사회문화적 환경에서 많은 이들이 일상생활에 뿌리 내리고 있는 전통적 정신세계(샤머니즘, 예지력, 점술)에 몰두한다는 점이다.

 

Mme Park a connu une jeunesse tragique. A 22 ans, en 1974, elle perd sa mère dans une tentative d’assassinat ratée contre son père par un Coréen du Japon pro-Pyongyang. Rentrée précipitamment d’Europe, où elle finissait des études scientifiques, la jeune femme est brutalement immergée dans l’impitoyable univers du pouvoir, en assumant auprès de son père le rôle de première dame.
박 대통령의 젊은 시절은 비극적이었다. 스물두 살이던 1974년 북한을 추종하던 재일동포 한국인의 총에 어머니를 잃었다. 아버지를 겨눈 총이 비켜 맞은 것이다. 과학 분야 공부를 마치고 유럽에서 서둘러 귀국한 이 젊은 여성은 갑자기 냉혹한 권력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아야 했다. 아버지가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을 맡긴 것이다.

 

Crise mystique
신비주의적 고비

 

Un peu perdue, sans personne à qui se confier, elle tombe sous la coupe d’un pseudo-pasteur, Choi Tae-min, le père de Choi Soon-sil. Cet ancien policier, qui a changé d’identité à plusieurs reprises, est le fondateur d’une obscure secte religieuse, l’Eglise de la vie éternelle. Proche de Park Chung-hee, il devint le guide spirituel de sa fille, lui faisant croire qu’il a des pouvoirs de chaman et qu’il peut communiquer avec l’esprit de sa mère.
누구에게 기대야 할지 몰라 살짝 정신을 잃은 그는 자칭 목사라는 죄순실의 아버지 최태민의 품에 안기게 됐다. 이전에 경찰이었던 이 남성은 신분을 여러 차례 바꿨는데 보잘것없는 사이비 종교 ‘영세계’의 교주이기도 했다. 박정희와도 친했던 그는 박정희 딸의 정신적 안내자가 됐다. 그가 박근혜 어머니의 영혼과 소통할 수 있는 주술적 능력을 가진 것으로 박근혜가 믿게 만들었다.

 

Son influence grandissante lui vaut alors le sobriquet de « Raspoutine coréen ». Après l’assassinat de Park Chung-hee par son chef des services secrets, en 1979, ce dernier déclarera qu’une des raisons de son geste était l’influence de Choi Tae-min sur le dictateur, alors que le pays était en proie à des manifestations.
그의 영향력이 커지자 « 한국의 라스푸틴 »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1979년 박정희를 살해한 정보기관의 수장은 사건을 벌인 뒤 전국 각지에서 연일 계속되는 시위에도 독재자에 대한 최태민의 영향력이 커졌다는 사실이 거사의 이유 중 하나라고 밝혔다.

 

A la mort de son père, la jeune Park, de plus en plus seule, se rapproche encore de Choi Tae-min et de sa nombreuse progéniture (née de six épouses), à commencer par sa fille Soon-sil. Au cours des années suivantes, elle sombre dans une sorte de crise mystique dont témoignent ses écrits de l’époque.
아버지의 사망 이후 젊은 박근혜가 점점 혼자이게 되자 다시 최태민과 딸 순실을 비롯한 그의 자녀들(여섯 명의 부인으로부터 나온)이 접근했다. 이후 몇 년 동안 박근혜는 일종의 신비주의적 고비를 겪는다. 이는 당시에 쓴 그의 글에도 등장한다.

 

Lors de son accession à la présidence en 2013, le quotidien de centre gauche The Hankyoreh s’était plongé dans les six ouvrages autobiographiques publiés par elle entre 1980 et son entrée en politique en 1997. Le quotidien avait rappelé que Park Geun-hye, dont la mère était une fervente bouddhiste, a eu une éducation chrétienne. Baptisée « Juliana », elle est diplômée de l’université catholique Sogang.
대통령에 취임한 2013년 중도좌파 성향의 일간지 <한겨레>는 1980년부터 정치에 투신한 1987년 사이 출간된 6권의 자서전 형식의 책을 분석했다. 신문은 박근혜의 어머니는 열렬한 불교 신자였고, 자신은 기독교 교육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율리아나’라는 세례명을 가진 박근혜는 가톨릭 계열의 서강대에서 학위를 받았다.

 

« Le christianisme a pu se propager en raison des persécutions religieuses, écrit-elle en 1989. Les difficultés que j’ai rencontrées m’ont obligée à aller plus loin, comme Jésus. » Deux ans plus tard, elle évoque la rébellion de Devadatta, cousin de Bouddha ayant conspiré contre lui : « J’ai ressenti une forme d’apaisement à découvrir que même Bouddha avait été trahi. »
박 대통령은 1989년 이렇게 썼다. « 기독교는 박해로 인해 널리 퍼질 수 있었다. 내가 겪은 난관들은 나를 더 나은 곳으로 데려가 줄 것이다. 예수처럼. » 2년 후 그는 붓다의 사촌이지만 나중에 돌아선 제바달다의 모반을 들먹였다. « 붓다 조차 배신당했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었다. »

 

Le sentiment de trahison, nourri par les revirements des proches de son père après son assassinat, a influé sur le caractère de Mme Park, qui a toujours eu du mal à accorder sa confiance. Au cours de la campagne présidentielle de 2012, son mysticisme lui a attiré un électorat âgé qui voyait en cette femme célibataire et sans enfants, durement frappée dans sa jeunesse, une sorte de sainte prête à faire don de sa personne au pays.
그가 가진 배신의 감정은 아버지가 살해당한 후 측근들이 태도를 돌변한데서 기인한다. 이 사실은 그의 성격 형성에 영향을 줬고 그래서인지 그는 좀처럼 신뢰감을 형성하기 힘들어 한다. 2012년 대선에서 그의 신비주의는 독신인데다 아이도 없고 젊어서 강한 충격을 받아 국가에 자신을 바친 일종의 성녀로 각인한 노년층 유권자들의 표를 가져오게 했다.

 

Renaissance du chamanisme
샤머니즘의 부활

 

L’ascendant de Choi Tae-min sur la jeune Park, qui s’est poursuivi jusqu’à la mort du « Raspoutine coréen » en 1994, expliquerait la phrase sibylline d’une dépêche de 2007 de l’ambassadeur américain à Séoul, Alexander Vershbow, révélée par WikiLeaks : « Selon la rumeur, le défunt pasteur a eu un contrôle complet du corps et de l’âme de Mme Park. »
젊은 박근혜에 대한 ‘한국판 라스푸틴’ 최태민의 영향력은 1994년 그가 사망할 때까지 지속된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2007년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의 외교 전문 속 수수께끼같은 문장에도 잘 드러난다. « 소문에 따르면 사망한 이 목사가 박근혜의 몸과 마음을 완벽하게 통제했다. »

 

Choi Tae-min aurait profité de sa proximité avec la jeune femme pour accumuler une immense fortune, au travers de deux fondations caritatives, à la tête desquelles il l’avait placée et qui auraient en réalité servi de structure de blanchiment d’argent.
최태민은 엄청난 부를 쌓기 위해 이 젊은 여성과의 친분을 이용했을 것이다. 통로가 된 두 자선재단의 우두머리에는 그녀를 앉히고 실제로는 돈세탁 창구로 사용했을 것이다.

 

Que la jeune Park ait été psychologiquement vulnérable à l’ascendant des Choi peut s’expliquer, au lendemain de l’assassinat de son père et cinq ans après celui de sa mère. La Corée du Sud est alors elle-même tourmentée par les mutations sociales profondes entraînées par une modernisation effrénée.
젊은 박근혜가 심리적으로 최태민의 지배력에 취약하다는 건 어머니가 살해되고 5년 후, 그리고 아버지가 살해된 직후 알 수 있다. 한국 자체가 급격한 현대화에서 초래한 근본적인 사회 변화로 굴곡을 겪었다.

 

En 1979, le pays sort de dix-huit ans de dictature de son père – qui a mis le pays sur la voie de la croissance économique – pour tomber sous le joug d’un autre général putschiste, Chun Doo-hwan, dont le régime (1980-1987) sera marqué dès mai 1980 par un massacre de civils après le soulèvement de Kwangju.
1979년 그의 아버지-나라를 경제 성장의 길로 이끌었다-의 독재 18년에서 벗어난 한국은 또 다른 무장폭동 세력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된다. 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의 집권(1980-1987)은 1980년 5월에 이미 광주항쟁에서 시민들을 학살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Au cours de ces périodes tourmentées (arrestations et tortures d’opposants ; croissance rapide qui fait voler en éclats les solidarités ancestrales…) apparaît une pléthore de sectes religieuses bénéficiant de l’anxiété diffuse de la société.
이런 혼란기에(반정부 세력에 대한 체포와 고문; 급격한 성장에 따라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연대의식이 산산조각 나고…) 사회에 퍼진 불안감을 자양분으로 사이비 종교가 과다하게 생겨났다.

 

Le chamanisme, système de croyances faisant intervenir les esprits, persécuté pendant des siècles par la dynastie Yi (1392-1910) puis par le colonisateur japonais (1910-1945), connaît alors une renaissance. En témoignent les innombrables maisons de chamans dans certains quartiers des grandes villes. Consulter un chaman (mudang) est une pratique commune à toutes les classes sociales. En état de transe, ils se livrent à des rites propitiatoires et des exorcismes, entrant en communication avec l’esprit des défunts.
영혼을 불러내는 신앙 구조를 갖는 샤머니즘은 이씨 왕조(1392-1910)에 의해 수 세기 동안 박해받았다. 일본 식민지 시절(1910-1945)에 다시 부활했다. 대도시 몇몇 동네에 셀 수 없이 많은 무당집들이 그 증거다. 무당을 찾는 일은 사회의 모든 계층에서 보이는 일반적인 모습이다. 불안한 상태의 한국인들은 망자의 영혼과 교감하면서 속죄의식과 엑소시즘에 몰두했다.

 

Grand déballage
다 꺼내놓기

 

La vulnérabilité psychologique de Park Geun-hye et une société en quête de repères expliquent donc l’ascendant pris par les Choi sur la jeune femme. Soon-sil, qui aurait hérité des pouvoirs chamaniques de son père, est devenue une sorte d’éminence grise de Mme Park : elle fut associée à toutes les décisions importantes de la vie de celle-ci, dont son entrée en politique en 1997.
박근혜의 심리적 취약성과 기준점을 찾아가는 사회는 그래서 이 젊은 여성에 대한 최씨 일가의 영향력을 설명해준다. 아버지로부터 주술적 능력을 이어받은 최순실은 박근혜에 있어 일종의 막후 실력자가 됐다. 최순실은 1997년 정치 입문을 포함해 박근혜 삶의 모든 중요한 결정에 개입했던 것이다.

 

Au pouvoir, la présidente restera, apparemment, sous l’influence de Mme Choi. Selon d’anciens conseillers de la présidence, cités par la presse, celle-ci était la personne la plus influente de Corée du Sud : « Se mettre en travers de sa route était le meilleur moyen d’être congédié », rappelle Cho Eung-chun, secrétaire de la présidence entre 2013 et 2014.
분명 집권한 뒤에도 대통령은 최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언론에 인용된 전 보좌진들의 말에 따르면 최순실이 한국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사람이었다. 2013-2014년 사이 대통령 비서관을 지낸 조응천은 “가장 쉽게 해고되는 법은 그(최순실-역주)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었다”고 떠올렸다.

 

Les révélations sur l’étrange relation de la présidente avec les Choi ont ouvert la boîte de Pandore des rumeurs : les actions critiquées, incomprises ou mystérieuses de Park Geun-hye prennent soudain sens.
대통령과 최씨 일가의 기이한 관계에 대한 언론의 폭로로 소문으로 떠돌던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그 동안 비판 받았고, 이해할 수 없었고, 불가사의했던 박근혜의 행동들이 갑자기 해석이 됐다.

 

Il sera très difficile d’endiguer le grand déballage qui commence : toute spéculation plausible ou tout détail croustillant deviennent « un fait », les questions jusqu’ici sans réponse ressurgissent. Où était par exemple la présidente pendant les sept heures qui ont suivi le naufrage du ferry Sewol, en avril 2014, alors que 300 personnes, en majorité des lycéens, étaient en train de périr noyés ? Pourquoi s’être acharnée sur un journaliste japonais qui avait écrit, reprenant une rumeur, que la présidente était alors en compagnie du mari de Choi Soon-sil ?
다 꺼내놓기가 시작됐고 이제 그 일을 막기는 매우 어렵게 됐다. 모든 그럴듯한 추측과 모든 놀라운 디테일들이 ‘사실’이 되고 있다. 지금까지 대답 없던 질문들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예를 들어 2014년 4월 대부분 고교생인 300명의 세월호 희생자들이 바다 속에서 익사하고 있을 때 그 7시간 동안 대통령은 어디에 있었나 ? 대통령이 최순실의 남편과 함께 있었다는 루머를 이용해 글을 쓴 일본 기자에게 왜 그처럼 악착같이 대했을까 ?

 

Même pour son camp, Mme Park, qui semble durement affectée par cette tourmente, risque de ne pas pouvoir redresser la barre. Un élément de fragilisation supplémentaire, à l’heure où l’élection de Donald Trump à la Maison Blanche inquiète le pays quant à l’avenir de sa coopération avec les Etats-Unis.
이번 일로 박 대통령은 심지어 자신의 소속 정당에서도 심각한 타격을 받은 듯하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돼버릴 수도 있다. 추가적인 취약 요소는 도널드 트럼프의 백악관 입성이다. 한미 양국 협력의 미래를 봤을 때 한국을 불안하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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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11/22 [08:14]  최종편집: ⓒ 서울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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