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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권자의 뜻, “국민명령 불복에는 ‘탄핵’, 내각제 개헌은 ‘저지’하라!”
지혜롭고 용감한 정치지도자를 대통령으로 선출, ‘민주시민혁명’을 성공시켜야 한다
 
권혁시 칼럼   기사입력  2016/12/01 [21:48]

백만 민중이 분연히 일어선 ‘11·12시민혁명’의 불길이 더욱더 거세게 타올랐다. 11월 26일, 눈비를 뚫고 대한문에서 광화문을 넘어 끊임없이 이어지는 140만 대군중이 청와대를 포위, 압박하였다. 한 목소리로 외치는 거대한 함성에 경천동지, 하늘이 놀라고 땅이 흔들렸다. 분명 그것은 ‘박근혜 정권의 전복’이었다. 그러므로 이후에는 오직 단호한 응징과 엄중한 처벌이 있을 뿐이며, 이는 모든 ‘혁명’(revolution)의 어김없는 귀결이다. 또한 무거운 죄를 진정으로 뉘우치고 엎드려 사죄할 줄 모르는 오만하고 후안무치한 작태가 화를 키운 업보이며, 그 인과응보의 무서운 천벌인 것이다. 


이렇게 처참한 말로에 이른 주된 원인은 그간의 언설과 행태에 비추어 유추컨대 인지능력, 죄책감 결여와 자기중심적 성향 등, ‘반사회적 인격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 psychopath)임이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 ‘11·12시민혁명’에 나선 국민들이 한 목소리로 준엄하게 명령하였던 것이다. “박근혜는 퇴진해라, 아무 것도 하지 마라!” 

 

지난달 26일 저녁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5차 범국민대회에 모인 150만 국민들이 촛불을 들어 올리며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지경이므로 모든 사태의 판단과 결정은 거의 전적으로 배후 측근들의 주도, 조정과 농간에 따랐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따라서 ‘국정농단’에는 각별히 신임받는 정부와 여당의 핵심인물들도 다수가 가담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진행형’이다. 이는 다름 아니라, 정상적인 판단·결정은 고사하고 어떤 대응책도 자기 스스로 생각해낼 수 없을 터인데, 사실상의 정권붕괴의 상태에서 교활하게도 진실을 호도하고 책임을 전가하여 ‘하야’를 원하는 ‘민의’를 묵살한 3차 국민담화는 물론, 4월 사퇴, 6월 대선실시를 제기하여 탄핵을 모면하고, 수세를 반전시키려 드는 술수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 ‘탄핵’은 더 말할 나위 없고, 집정자의 고유권한을 저들 마음대로 좌지우지, 농단하여 불법부당한 월권행위, 국기문란, 헌정질서 유린을 자행한(만일 그렇지 않더라도 ‘연대책임’을 면치 못할) 정부여당 수뇌부도 즉각 사퇴해야만 한다. 더욱이 황교안 국무총리는 과거행적이 불순한데다가 철저한 하수인, 분신으로써 동일체(one flesh)나 다름없지 않은가. 광장에서, 길거리에서 목이 터져라 외치는 민주시민들의 고함소리가 이를 말해 준다. “박근혜는 퇴진하라, 황교안도 물러나라!” 


아울러 탄핵을 촉구하는 지엄한 ‘국민명령’에 불복하여 국정농단의 주범, 정부여당의 이따위 가증할 술책에 말려든다면 야 3당 또한 엄중한 ‘국민심판’을 면치 못하리라. 그렇게 되면 12월 3일, 그리고 그 이후에도 비분강개한 대군중의 함성은 갈수록 커지고 분노는 마침내 폭발하고 말 것이다.

 

각설하고, 현 상황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다수 국민들이 그리 마음먹고 있을 테지만, ‘11·12시민혁명’이 단지 정권퇴진에 그쳐서는 결코 안 되는 것이다. 현재의 사태를 절호의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정권 전복’과 동시에 ‘부패·불평등 전복’을 통하여 만악의 근본원인을 뿌리 뽑아야 한다. 그러 할 때 비로소 혁명이 완결되는 것이다. 기실, 민주시민이 주도하는 사회변혁의 가장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방법으로써 혁명은 불의와 부패, 무원칙과 부조리, 수구와 퇴행의 사회현상이 극에 달하면 급격하게 불길처럼 타오르고, 모든 것을 일거에 태워버리는 급진적 변화를 일으킨다. 


그리하여 정치, 경제를 위시한 국가·사회 전체의 구조적 개편을 가져온다. 지배이념(이데올로기), 국가권력 및 계급체계, 사회계층 및 신분의 불평등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변혁이 이루어지는 거대하고 대대적인 대전환의 현상인 것이다.


그런데, 대개의 혁명이 폭력투쟁으로 인하여 막대한 파괴를 유발하거니와, 막급한 피해가 수반되는 극한 상황이 벌어지는 원인은 고착된 현상의 타파를 위하여 급진적이고 비정상적인 행동(movement)방식과 비상한 실행전략에 있다. 반면에 정치를 비롯한 국가·사회 체계의 광범위한 영역에서 혁신적인 근본적 변화가 비폭력적 방법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11·12시민혁명’은 프랑스대혁명처럼 물리적 폭력과 대규모 파괴와 살상을 통한 유혈혁명과는 다른 현대적 의미에서의 ‘비폭력적·평화적 혁명’인 것이다. 하지만 비폭력적 방법이 끝내 저지, 봉쇄당하거나 혁명이 목적하는 변혁이 뜻대로 달성되지 않으면 폭력을 동반한 비상한 사태가 촉발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다수 민중의 저항이 중심축이 되는 ‘민주시민혁명’은 대단히 급진적인 전개양상으로 인하여 필연코 변동·발전의 단절현상이 따르기 마련이므로 연속성을 갖기 위해서는 ‘정치적 리더십’이 절대로 필요하다. 그렇게 ‘혁명의 핵심은 청치’인 것이다. 따라서 혁명, 즉 ‘국민의 뜻’을 올곧게 이루어낼 수 있는 투철한 사명감과 불굴의 의지를 갖춘 정치인을 국가의 최고지도자로 삼아야 한다.

 

수구세력의 정치체계 개편 · 헌법 개정 기도,
“썩은 나무에는 조각할 수 없다!” ‘정치혁명·의식혁명’이 급선무다

 

  4·19혁명 당시 모습(출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그런데도 정치권은 ‘시민혁명’에 나선 위대한 국민의 뜻을 제대로 수렴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국정농단의 원흉인 정부여당은 온 국민이 통탄해 하고 분개하거늘 통한의 반성과 사죄 한마디 없다. 작금의 위기와 혼란의 원인이 십중팔구는 청치파행인데도, “반구저기(反求諸己), 내 탓이오!” 그런 깊은 성찰의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국정혼란, 정치파행의 와중에서도 이합집산, 합종연횡의 한없이 무책임하고 지극히 기회주의적인 행태가 본격화하고 있으니 걱정이 앞선다. 


현재 가장 눈에 띠는 부류가 친박, 친문(친노) 세력을 배제하고, 이른바 ‘제 3지대론’을 표방하는 정치인들인데, 그들은 이원집정제 또는 내각책임제(의원내각제, parliamentary system)를 핵심으로 하는 헌법 개정을 다시금 주장하고 있다. 11월 25일, 국민의당은 ‘현 시국과 개헌, 그리고 제 3지대론’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어 개헌정국의 개막을 획책했고, 개헌 찬성론자를 총리로 삼아 내각제의 정치체계를 위한 헌법 개정의 추진을 계획하고 있다. 여기에는 박지원 위원장, 손학규 민주당 전 고문, 정의화 전 국회의장, 새누리당의 김무성계인 김학용 의원 등이 참석했으며, 이어서 26일, 같은 주제로 정 전 국회의장과 손 전 고문이 의견을 나누었다. 


그 주된 이유가 대통령의 권한을 원천적으로 막아 국가권력의 사유화를 막겠다는 것인데, 말은 그렇지만 권력분점, 나눠 먹기식의 정치판을 만들겠다는 속셈이 들여다보이지 않는가. 설령 그런 저의가 없더라도, 국민들의 판단처럼 구태의연하고 부패한 정치세력으로는 내각책임제와 이와 유사한 정치체계는 실현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재앙이 될 수밖에 없음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썩은 나무에는 조각할 수 없고 거름흙으로 쌓은 담장은 흙손질을 할 수 없다” (朽木不可雕也 후목불가조야 糞土之墻不可杇也 분토지장불가오야. 공자, ‘논어’)

 

내각책임제는 다수당(대표)이 주도하여 정부(내각)를 조직·구성한다. 따라서 국정운영의 주체인 정부가 국회(의회)에 대하여 책임을 지며, 그에 대한 ‘신임’으로써 존속하기 때문에 ‘책임정치’를 실현할 수 있는 장점이 크다. 반면에 국회에 의하여 존립 여부가 결정되므로 대단히 ‘불안정한 정부’일 수밖에 없다. 


그런 까닭에 ‘양당제’의 확립과 아울러 정치인들이 공적사명에 투철하여 당리당략이나 사적명리에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 이른바 ‘협치’가 이루어지지 못하면 정정불안, 정국혼란이 빈번해져 정치파행, 국정실패의 위험에 처하기 십상이다. 다수의 전횡, 국정농단을 제어할 수 없음은 물론, 그로 인하여 소수의 정당한 의사와 권리가 일방적으로 침해, 박탈되는 단점도 있다.


내각책임제는 더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정치가 공명정대한 정신과 철학(지혜)이 필수조건인데, 이기적·파당적 이전투구를 일삼는 삼류의 정치임을 세계와 우리, 자타가 공인할 만큼 정치가 저급한 수준이므로 기대난망일 따름이다. 우리나라 대다수의 정치인들이 이기적인 구태와 악습을 버리고 정치의 수준을 높여 명실상부한 ‘협치’를 실행할 수 있기 전에는 내각책임제나 이를 가미한 정치체계를 섣불리 도입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민주시민혁명의 목적은 ‘부정부패·불평등’ 타파, 


민주시민혁명의 목적은 ‘부정부패·불평등’ 타파, 
이념·계층·지역·세대를 넘어 전 국민이 의기투합, 힘을 집중해야 한다

 

대한글씨검정교육회

권혁시 이사장

“명필은 붓을 탓하지 않는다” (能書不擇筆 능서불택필, 신당서·新唐書) 이 말에서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은 고르지 않고 아무 붓으로나 글씨를 쓴다는 게 아니라, 어떤 붓으로든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서투른 목수가 연장만 나무란다” (A bad workman quarrels with his tools. 서양속담) 


이처럼 고금동서의 경구가 한결 같이 가르치는 메시지는 유능한 사람, 달인들은 문제의 원인을 ‘반구저기’, 자신에게서 찾아내어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이다. 그럴진대, 사상 초유의 대규모 국민저항, ‘시민혁명’이 무도 불의하고 부패한 기성정치, 주류·기득권 세력에 대한 불신과 원성으로부터 촉발하였고, 이를 타도하기 위하여 봉기한 사실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여 깊이 자성하며 은인자중하여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경거망동하여 정치파행과, 그로 인한 국정파탄이 정치와 국가경영의 실패가 아닌 정치체계, 즉 현행 대통령제(presidential system, 대통령중심제)의 문제인 듯 침소봉대하여 왜곡하고, 내각책임제를 내세워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 듯 호도하는데, 그것은 ‘허튼 소리로 사람들의 눈을 가리는 짓이다’(於于以蓋衆 어우이개중, 장자). 하지만 인간세의 기묘한 역설(paradox), 불행중 다행이며 전화위복인 것인가. 내각제와는 달리 대통령중심제에서는 최소한 1인, 탁월한 능력과 리더십을 갖춘 국정 최고책임자 단 한 사람만 잘 뽑으면 된다. 리더십의 핵심은 자질로써 ‘인격, 능력, 비전’과 ‘인식(판단력·문제의식·성찰), 경청(소통·겸손·포용), 선견지명(통찰력·방책·창조정신)’의 지혜이다.


우리나라 정치가 아무리 삼류라 해도 이런 걸출한 인재가 한 사람은 있지 않겠는가? 국민은 바로 그 거목을 가려내야 한다. 그래야 하는 까닭은 대통령중심제의 우리나라는 대통령에게 실로 막강한 권한이 국민으로부터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큰 힘을 가진 대통령이 목숨을 바칠 각오와 의지로 ‘불의·부패’와의 전쟁을 벌이고 ‘정치혁명’을 성공시킬 때, 비로소 위대한 ‘11·12시민혁명’은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적 분기점이 될 것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념·계층·지역·세대를 넘어 전 국민이 의기투합, 힘을 집중해야 한다. 종전의 구태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진보와 보수의 다툼이 아닌(사실, 한국에는 확실한 보수 진정한 진보가 없다), 수구 기득권세력과 싸워서 승리하여 ‘부정부패·불평등’을 타파, 혁신하여야 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최근에 미국에서 전개되었던 대통령 선거와 정치상황은 우리에게 시금석이 될 수 있으며, 반드시 교훈삼아야 할 것이다


탐욕에 빠지고 이기심에 사로잡힌 부의 독점과, 이를 옹호하는 부패한 정치·경제 체제와 그 현상의 혁파를 위하여 도널드 트럼프가 ‘보수주의’로부터 급진적 개혁을 외치며 깃발을 치켜들었고, 버니 샌더스는 ‘진보주의’에서의 강력한 혁신을 부르짖으며 횃불을 켜 올렸다


이렇게 미국 대선에 뛰어들었던 도널드 트럼프와 버니 샌더스가 내건 선거 슬로건(정강정책)은 차이점들이 수없이 많은데도, 두드러진 공통점은 중산층, 서민대중(사회적 약자들)의 권리와 권익의 보호·보장이고, 이를 침해한 주범인 ‘정치·경제’, 그리고 기득권자들에 대한 질타와 혁명이다. 극심한 ‘부의 차별’이 조장되는 천민자본주의와 이에 기생하는 정치와 경제를 비롯한 사회전반의 문제와 폐단들을 과감하게 뜯어고쳐 확실하게 바로잡는 것이다. 이를 벼르고 다짐하면서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가 같은 길로 나섰으며, 그렇게 ‘진보·혁신’을 향하여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이는 앞서 말했듯이 모든 ‘민주혁명’의 근원적 동인인 ‘불의와 부정부패’, 그로부터 야기된 ‘불평등’한 사회현상을 ‘정치혁명’을 통하여 타파하고 혁신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미국의 위대한 민주시민들은 ‘11·8선거혁명’을 통하여 진보·보수, 여당·야당 등 모든 영역을 뛰어넘어 부패한 기성정치, 기득권세력을 심판, 응징하였다. ‘정치혁명’을 이룩하기 위하여 무도 불의하고 부패한 주류·기득권 세력을 물리치고 비주류·아웃사이더 도널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던 것이다(특히 인상적인 것은, 세계 최고의 정치 선진국인 미국에서 그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주류언론을 주축으로 부패한 수구세력의 극심한 여론호도 책동이었다. 우리도 주류·기득권 세력의 이 같은 저항을 간과치 말아야 할 터이다. 마음을 다잡고 민주시민혁명의 방해, 저지를 기도하는 매카시즘을 비롯한 모든 분파적·분열적 준동을 철저히 배척해야만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에도 버니 샌더스와 도널드 트럼프, 특히 샌더스와 같은 확고한 정치철학과 실천의지를 유감없이 드러내는 용감하고 지혜로운 ‘진보적 정치지도자’가 출현하였는가, 부패하고 무지 무능한 정권을 가차 없이 일갈, 질타하고 강력하게 퇴진을 촉구하며 엄중하게 책임을 추궁하는 그는 과연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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