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과 이재명 깊이보기

작금의 갈등 상황은 ‘바위’와 '바람‘의 극단에 있는 지지자들 때문

둥글이 박성수 | 입력 : 2017/01/05 [00:09]

노무현 대통령 서거 직후, 최 측근이던 문재인 의원이 기자들에게 그 비극적 사실을 공 표했었다. 그런데 그 말투에는 일말의 격동과 떨림을 찾아 볼 수 없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내 자신이 흥분하고 있었던 터라 나는 문제인 의원의 덤덤한 태 도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잠시 지난 후에 나는 생각이 짧았음을 알았다. 평생의 동지이자 친구가 그렇게 비명횡사 했는데 문재인 의원이 나보다 덜 슬펐겠는 가?! 그런 생각에 미치니 그의 비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바위 같은 ‘굳건함’은 내가 닿을 수 없는 특별함으로 다가왔다. 공자가 말하는 ‘불혹’(흔들림 없는 상태)의 표상으로 문재인을 얘기해야할 정도로.

 

 둥글이 박성수씨


물론 모든 바위가 그렇듯이 '여간해서는 움직이지 않는 문제점’이 여러 곳에 보여졌다.‘대통령 후보로서 책임 있게 나서지 않는다.’는 지적이 수도 없이 이어졌다. 국민의 여론을 제대로 읽지 않고 복지부동하고 있다는 비판도 끊임없었다.


그런 이유로 문제 상황 마다 ‘바람 같이 몰아치는’ 이재명 시장의 활보에 많은 국민들은 열광을 했다. 그 ‘능동적 대응력’은 타의 추정을 불허하기 때문이다. 바위같이 묵직하고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문재인에 실망을 했던 상당수 국민들의 관심은 그래서 이재명 쪽으로 쏠렸다. 물론 그렇다고 이재명 시장이 정치인의 완벽한 표상은 아닐 것이다. ‘몰아치는 바람’은 한편으로 살랑거리는 꽃잎을 떨어트리는 등으로 대지에 뿌리박고 있는 생명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각각의 국민들이 자기 성격에 맞는 대선 후보에 대한 지지를 공표하며, 그 두후보를 대신해서 대리전을 치루고 있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이로 인해 각각의 지지자들 사이에는 상당한 분열과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이러한 대리전이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 지금까지 이명박근혜의 폭정에 몸부림 치던 각각의 국민들이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각각의 후보들에 자신들의 미래를 몰빵한 결과라고 보여진다. 이렇다보니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누가 흠집을 낼라치면 눈이 뒤집어 지는 것이고, 반대로 상대편 후보의 흠집 꺼리를 찾기 위한 인터넷 서핑에 안구가 충혈 될 지경에 이르는 것이다. 자신의 전재산을 걸어 도박을 하는 사람의 심리다.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되지 않으면 끝장이다’는 위기감이 그들을 사로잡고 있기에 상대편에 대한 적대감이 상상을 불허하는 것이다.


가뜩이나 그들이 ‘성숙한 주체’라면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처신이 넓혀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내기 위한 능동적 참여활동에 열을 올릴텐데, 사이비종교 교주 모시듯 하는 ‘광신’만 팽배해 있다 보니(특정 정치인을 맹목하는 보스정치가 아직 한국 정치의 의 주류이다보니...) 자기편 보스가 대권을 잡을 수 있도록, 상대편 깎아 내릴 궁리만 하면서 서로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재앙이다.


이들은 자기가 보는 세상 말고는 다른 세상을 인정하지 않는 ‘유아론적 시야의 전형을 보인다. 가령 ‘문재인을 종북이라는 식으로 비난하는 기사를 보고도 분노하지 않고 모른체 하는 이재명 지지자’나, ‘이재명 시장을 매장하기 위해 쓰인 수구논객의 과장된 기사를 퍼다가 사실인양 주장하는 문재인 지지자’들이 이런류에 들어간다. 이들은 자신들의 성격특성을 각각의 대통령 후보들에게 투사해 대리전을 치르고 있는 상태이다. 전쟁터에 나선 군인들에게 ‘자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처럼 이들의 호전성을 누그러트리고 상황을 관조하게 할 방법을 쉽게 찾을 수 없는 것이 문제이다.


숙고해보자. 문재인은 바위 같은 사람이고, 이재명은 바람 같은 사람이다. 이러한 ‘바위’와 ‘바람’은 성격과 능력의 차이를 일컫는다. 그런데 성격적으로 이 한쪽 극단에 있는 지지자들은 자기가 보는 ‘바위’, 자기가 보는 ‘바람’ 밖에 보지 못하며 그 외의 것은 자신의 기질과 경험, 관점으로 왜곡해 버린다. 하여 바람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바위의 장점을 단점으로 여기게 되고, 바위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바람의 장점을 단점으로 여기게된다. 그렇기에 서로 헐뜯고 싸우는 것이다.


사례를 들어보자, ‘바위’ 문재인이 ‘바람형’ 국민들로부터 본격적으로 욕을 얻어먹기 시작한 것은 ‘도둑맞은 대권’, ‘대선무효소송’에 나서지 않고 침묵하고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인정했을 때부터였다. 이에 많은 국민들은 울분을 터트렸고 문재인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당사자인 문재인 대권 강탈당한 현실에 국민들보다 덜 답답 했겠는가? 그 현실이 아무렇지도 않아서 그걸 받아들였겠는가?


대선이 있기 1년 전인 2011년 10월 26일. 전국적인 보궐선거가 있었다. 여러가지 납득할 수 없는 부정 상황이 발생한 거대한 선거 사기 사건이었다. ‘디도스 선거’라고 명명된, 정권과 선관위의 광범위한 개입에 의한 부정선거 사건이었다. 하지만 실로 수많은 불법, 부정 증거가 밝혀졌지만, 별 볼일 없는 컴퓨터 보안업체 하급 직원 몇 명 구속되고 끝났다. 민주당이 눈감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자기들 직접적인 밥그릇 뺏기는 사건이기 때문에 눈 뒤집어져라 밝혀내려 했고 나서서 싸웠지만 흐지브지 선거부정 사건은 덮여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런 선거부정 사건은 주변의 직간접적 증거들이 아무리 많이 발견된다고 하더라도 ‘선관위원장’과 ‘당선인 본인’이 “나 부정선거 했다”고 핵심 증거를 들고 나와 양심선언 하지 않으면 뒤집힐 수 없기 때문이다. 수사-사법권력까지 꽉 잡고 있는 터에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 선거부정 사건 1년 후에 대선이 치러졌다. 그간 1년간 시스템이 정비된 것도 아닌데, 그리고 선관위원장과 박근혜 당선자가 핵심증거를 들고 나와 양심선언을 한 것도아닌데... 사법부의 주구들이 물갈이 된 것도 아닌데... 문재인이 “부정선거야! 나 박근혜 인정 안할래!”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상황이 뒤집어졌을까?! 전혀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바람형’ 국민들의 울끈 하는 심정은 이해가고, 그들이 나서서 박근혜 정권 4년 내내 ‘선거무효소송’을 외쳤던 것은 전략적으로 필요한 활동이기는 했다. 나 역시 만들어 뿌리다가 구속된 전단지 곳곳에 수시로 선거부정 내용을 채워 넣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구호’로서 ‘운동’으로서 우리가 외쳐야할 소리였을 뿐, ‘대법원의 선거부정 판결’은 애초에 가능하지가 않았다. 이런 터인데 야당의 당수 문재인이 ‘전략적’으로 해결될 가능성이 0인 그 문제를 계속 물고 늘어지며 야당 전체의 지지율을 떨어트려야 했겠냐는 말이다. 그런 전략을 쓰는 것이 맞냐는 말이다. (이에 대해 ‘바람형’ 국민들은 ‘그렇다’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 후로도 여러 건의 문재인의 ‘우유부단함’이라고 일컬어진 행동은 그러한 포석이 깔려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문재인의 태도에 ‘바람형’성격을 가진 이들이 무턱대고 내리 까는 것은 초점이 빗나간 것이다. 문재인이라고 해서 특정 상황에 나서서 상대를 규탄하고 사이다 발언으로 국민들 지지를 받는 것을 싫어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은 그것이 돌아올 파장과 품어야할 사람을 생각하면 참아야 할 부분이 있기에 일면 답답해 보이는 대응을 한 경우가 많았을 것이라 여겨진다. 물론 실지로 부적절한 대응을 한 경우도 많았지만, ‘바위형 인간’의 특질을 고려해보면 그게 무턱 댄 단점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이재명 시장을 보는 ‘바위형’ 인간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바위형 인간들이 보는 이재명은 그야말로 ‘공중전에 능한 촐랑거리는 인물’정도인 듯하다. 묵직한 것을 좋아하는 ‘바위형 인간’들은 이재명 시장이 그때그때 ‘이슈만 찾아다니며 그럴싸한 발언을 하는 사람’, ‘자기 감정도 조절 못하고 사자후 토해내는 것이 본업인 사람’ 쯤으로 보는 듯하다. 이는 아마 ‘바위형 인간’들이 예부터 내려오는 ‘군자상’의 표상으로 ‘묵직함’을 제일로 뽑는 이유일 것이다. 그렇기에 이재명 시장이 성남시에 이뤄놓은 성과마저도 무시하거나 폄하하며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재명 시장이 그런 거침없는 발언을 시도 때도 없이 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이념이 머릿속에 안착되어 있음을 말하는 것이고, 그 이념을 현실화 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일차적으로는 성남시에서 실현을 했고, 이제 중앙정부에서 실현해야할 단계이기 때문에, 이재명 시장의 ‘바람 같은 특성’을 폄하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바람은 그렇게 바위와 다른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작금의 갈등 상황은 ‘바위’와 '바람‘의 극단에 있는 지지자들의 소행이다. 극단이 무서운것은 너무 한쪽 끝으로 와있다 보면 저쪽 끝이 존재하는지 조차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다보니 자기의 시야로 모든 것을 재단하고 상대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류의 극단주의가 우리 연합군? 내에 얼마나 큰 폐해를 가져오는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그러한 이들을 아군으로 여기지 않는다. 주변을 살펴 함께 손잡지 않으면 우리 모두가 다시한번 저들 수구반민족 세력의 노예로 살아야 함을 알자.


- 바위 위에 핀 꽃이 잔잔한 바람이 산들거릴 날을 꿈꾸며...

 

출처 :길위의 평화 원문보기   글쓴이 : 둥글이 박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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