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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교수] 반어법 전문가가 본 안희정의 선의

반어법 함부로 쓰지 마세요.

서울의소리 | 기사입력 2017/02/24 [21:58]

[서민교수] 반어법 전문가가 본 안희정의 선의

반어법 함부로 쓰지 마세요.

서울의소리 | 입력 : 2017/02/24 [21:58]

  정의봉과 서민교수

경향신문에 칼럼을 시작할 때, 혹시 잘못돼서 잡혀갈까 두려웠던 난 글 전체를 반어법으로 쓰기 시작한다.


예컨대 윤창중이 성추행을 했을 때는 “윤창중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고 썼고 박대통령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위대한 지도자’라는 식으로 썼다.


내가 아직 잡혀가지 않은 건 내 반어법을 그대로 믿은 박대통령 덕분인데, 오랜 기간 반어법을 쓴 결과 이 방면에서 어느 정도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

 

유력 대선후보 안희정 지사는 엊그제 부산대 강연에서 이명박과 박근혜를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분들도 선한 의지로 우리 없는 사람들과 국민들에게 좋은 정치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뜻대로 안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K재단, 미르재단도 평창 동계 올림픽을 앞두고 
사실 대기업들에게서 많은 좋은 후원금을 받아서 
동계 올림픽을 잘 치르고 싶어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박근혜가 재단을 만든 게 선의라고?
문제가 되자 안희정은 반어법이라고 둘러댄다.

 

과연 그럴까.
반어법 전문가인 내가 보기에 그 말은 반어법이 아니다.
일부에선 그 말을 할 때 청중들이 웃었다며 반어법이 맞다고 우기지만,
청중의 웃음이 반어법의 근거는 될 수 없다

(그들은 박근혜란 단어에 이미 웃기 시작했다).

 

그게 반어법이 되려면 다음 두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첫째, 선한 의지 뒤에

그게 반어법임을 뚜렷이 알 수 있게 만드는 문구가 뒤따라야 한다.
이렇게 말이다.


[박근혜도 선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어요.
동계올림픽을 빌미로 대기업들에게 돈을 뜯어내
최순실에게 선물로 주고 싶은 좋은 마음이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안희정은 ‘선의로 시작했는데

법과 제도를 지키지 않아서 그랬다’라고 결론짓는다.


앞부분이 반어법이라면 이것 역시 그 반어법을 뒷받침해줘야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그냥 안희정은 박근혜의 선의를 인정한 것이다.
그 뒤에 한 말을 보라.


21세기 지성 운운하면서 선의를 그대로 인정하는 게 새로운 트렌드인 양 말했고,
누구의 주장도 선의로 받아들이는 게 자신의 소신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이런 결론이 나오려면 박근혜의 재단설립도 선의라고 본 게 맞다.

 

 

둘째, 평상시 언행이 반어법을 뒷받침해야 한다.


전문가를 참칭하지만, 내가 쓰는 글이 다 반어법이 완벽하게 구사되는 건 아니다.
반어법이 잘 구사되지 않으면 대체로 글이 한심해진다.


내 글에 대해 경향신문에 항의전화를 하는 독자들이 있는 건 그런 이유다.
하지만 그 경우에도 대부분의 독자들은 내 의도대로 그 글을 이해해 주는데,
그건 내가 평상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아주기 때문이다.


안희정의 대선출마 후 언행을 보면, 그가 박근혜를 비꼰 게 맞는지 의심이 든다.


-박근혜 청산에 대해 “해체 수준에 이른 정부를 무슨 청산을 하느냐? 버티는 박 대통령이 신기할 뿐, 박근혜 정부는 이미 끝난 정부다.” <---그럼 박근혜 용서한다고? 무슨 자격으로?


-새누리당도 연정의 파트너가 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연정’을 언급하며 “누구든 개혁 과제에 합의한다면 연정을 구성할 수 있다.” <---그럴 거면 정권교체는 뭐하러 하는지? 노무현 대통령을 계승한다는 건 국민들 편에 선다는 의미여야지,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처럼 노무현 대통령이 잘못한 것까지 따라하는 건 계승이 아니다.


-안희정이 아닌 그 대변인의 말이긴 하지만, 이것도 안희정의 뜻으로 봐야지 않을까? “진정 촛불과 태극기로 상징되는 극단의 분열 시기를 치유하고 통합의 대한민국으로 나가길 원한다.” <--- 촛불과 태극기가 과연 동등하게 비교될 만한 것이며, 통합되야 할 것인가?

 

 

이랬던 사람이니만큼 재단을 만든 게 선의라는 말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만일 안희정이 노무현의 사람이 아니었다면, 예컨대 이재명이었다면,
저 발언 중 어느 하나만으로도 대선후보에서 탈락했으리라.


안희정은 말한다.
"선의 발언이 논란이 되는 건 선한 의지에 대한 제 이야기를 왜곡했기 때문이다.“라고.
그를 믿고 지지했던 사람에게 논란의 책임을 돌리는 걸 보면
그도 어느새 정치인이 다 된 모양이다.


하지만 다수의 사람이 말을 왜곡해서 듣는다면 그건 말한 사람의 책임이다.
그게 정말 반어법이었고, 선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에게 이렇게 갑질을 하련다.


안지사님, 반어법 함부로 쓰지 마세요. 아무나 쉽게 쓸 수 있는 초식이 아닙니다. 

 

 

                        기생충박사, 서민교수 http://seomin.khan.kr/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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