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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503'번 구속영장심사에서 서울구치소까지...

"박사모들은 뭘해도 제대로 그들 뜻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김용덕 기자 | 기사입력 2017/04/01 [19:34]

[기자의 눈] '503'번 구속영장심사에서 서울구치소까지...

"박사모들은 뭘해도 제대로 그들 뜻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김용덕 기자 | 입력 : 2017/04/01 [19:34]

박근혜(수인번호 503번)에 대한 구속영장실질심사가 열리던 3월 30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오전엔 ‘박근혜 퇴진행동본부’의 구속 당위성에 대한 기자회견이 있었고 이어서 이명박근혜심판 범국민행동본부(이하 이박심판본부), 조선의열단, 박근혜체포단 등의 연합집회가 열렸다.

 

▲     © 김용덕 기자

 

구속영장이 떨어지기까지의 시간을 ‘박근혜를 구속하라’의 8박자 구호를 연창하며 강부영 판사의 구속영장 발부를 기다렸다.

 

오후 7시 11분에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박근혜가 서울중앙지검 10층에 마련된 임시 유치시설로 옮겨간 후 이박심판본부, 조선의열단, 박근혜체포단은 ‘하야가’, ‘그네는 아니다’, ‘광야에서’ 등의 노래도 하고 구호도 외치며 박근혜의 구속에 대한 당위성을 주장했다.

 

▲     © 김용덕 기자

 

중앙지법으로 들어오는 길에서는 박근혜 구속을 저지하려는 박사모 집회가 예의 군가와 쉰 목소리로 박근혜 탄핵반대, 구속불가를 외치며 시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박근혜가 파면이 되고 구속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중앙지법으로 출두하는 날의 박사모 집회는 열기도 사그러들었고 참석자도 극히 미미했다. 하지만 구속을 찬성하는 집회 쪽으로 와서 일부러 시비를 걸려하고 평화적인 촛불시민 집회를 어떻게 해서든 폭력집회로 만들려는 시도가 지속되었지만 현명한 촛불시민들의 적절한 대응과 경찰의 보호로 폭력장면은 연출되지 못했다.

 

그 와중에 촛불시민이 제작한 현수막에 적힌 ‘경축 박근혜구속’이란 문구를 문제 삼은 박사모들이 현수막을 훼손하는 사고가 발생했고 그들은 전부 서초경찰서에 재물손괴혐의로 넘겨졌다.

 

▲     © 김용덕 기자

 

해가 기울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자 박근혜 구속을 외치는 촛불시민들이 퇴근을 하고 합류하기 시작했다. 둘러 앉아 박근혜가 구속이 될 것인지 아니면 기각이 될 것인지에 대해 각자의 의견을 교환하며 이구동성으로 구속이 될 거라고 내다 봤다.

 

여기서 나온 이유들을 종합해 보면

"박근혜의 하수인들이 거의 다 구속이 됐는데 박근혜가 구속이 안 되면 형평성을 잃게 되어 구속한 자들을 다 풀어 주어야 한다. 범죄 행위를 다 부인하므로 증거인멸을 이유로 구속영장을 발부할 것 같다. 이런 사람을를 구속 안하면 대한민국에 처벌 받을 사람이 없다." 등의 이유였지만 "김정일과 내통한 것을 국가보안법으로 별도로 처벌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고 "구속이 문제가 아니라 이건 내란죄인데 뇌물죄를 포함한 13가지의 죄목으로 처벌하는 것은 너무 가볍다"라는 의견도 나왔다

 

▲     © 김용덕 기자

 

노래도 부르고 구호도 외치며 구속영장 발부를 기다리다가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파면 때 100% 파면을 확신하고 카퍼레이드를 미리 준비하고 떡까지 맞춰 촛불시민들과 나누어 먹은 ‘이박심판본부’의 제안으로 구속축하 장미 꽃다발을 맞추러 근처의 꽃집으로 갔다.

 

꽃집 주인이 보라색 장미꽃은 고난을 상징한다고 해서 보라색 장미꽃 20송이를 준비하고 ‘박근혜 입소 축하’, ‘30년 후 사람 돼서 나와라’는 메시지를 적은 리본도 준비했다. 그리고 전달할 시간은 없을테니 지나가는 차를 향해 보라색 장미꽃을 던져 주자고 의견의 일치를 봤다. 기자는 그 장면을 찍으려고 만반의 준비를 했다.

 

▲     © 김용덕 기자

 

시간이 12시를 넘어 31일이 되었다.

이제 구속이 결정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구속이 된다면 어디로 갈 것인가?

이것이 또 다른 화두로 올라왔다.

모두들 서울구치소로 갈 것으로 내다 봤다.

 

그 다음은 과연 구속이 결정되고 우리가 뒤를 따라 간다면 사이드카가 경호하고 남들은 30분씩이나 걸리는 거리를 10분 만에 도착하는 박근혜 차량을 우리가 따라 잡을 수 있을 것인가? 결론은 불가능이었다.

 

그렇다면 몇 시쯤 구속영장이 발부될 것인가?

이재용의 경우를 봐서 5시가 넘어야 결론이 날 것이라 하는데 기자는 3시경에 구속영장이 발부되고 통행이 뜸한 시간에 서울구치소로 향할 것이라는 예측을 했다.

 

  ▲   김용덕 기자

 

일행은 ‘그렇다면 미리 서울구치소로 가자.’ 하고 1시 반 경에 약 15명의 인원만 추려서 서울구치소로 향했다.

 

구치소 앞 3거리.

미리 배치되었던 경찰이 우리가 도착하자 무단 채증을 시도했다. 여기서 약간의 실랑이가 벌어진 뒤 구치소 앞은 박사모 집회신고가 되어서 다른 사람들이 들어갈 경우 충돌이 벌어질 우려가 있다는 경찰의 제지에 촛불시민들은 거기서 발이 묶였다.

 

기자는 취재를 한다면서 기자증을 보여주고 구치소 앞까지 갔지만 정작 박근혜에게 꽃을 던져줄 사람이 없었다. 상황을 보고 기자는 경찰에게 박근혜가 구치소에 입소하는 상황을 본 시민들의 의견을 들을 수가 없다는 이유로 촛불시민 2명에게 꽃을 들게 하고 인터뷰한다는 명목으로서 같이 구치소 정문쪽으로 갔다.

 

▲     © 김용덕 기자

 

기자가 예측한대로 3시경 박근혜의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서울중앙지방겸찰청에서 서울구치소로 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15분 남짓.

사이트카가 엄호하며 내달리면 10분 정도면 도착할 것으로 봤는데 서울지검에서 출발하는 시간이 늦어졌다.

 

언제 출발하나. 출발하면 15분이면 도착할테고 서울구치소 앞에서 정문이 열리는 시간동안 지체되는 시간은 불과 2~3초 정도. 그 사이에 꽃을 던져주는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기자의 머리는 시뮬레이션을 하느라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그 사이 집회신고를 한 박사모들의 집회가 시작되었다.

한쪽에서 ‘박근혜’를 외치면 한쪽에서 ‘대통령’을 연호한다. 이에 질세라 촛불시민들은 박사모들이 ‘박근혜’를 외치면 ‘구속’이라 응답한다. 박사모들은 뭘해도 제대로 그들 뜻대로 되는 것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쌍욕과 육두문자가 난무한다.

 

 

하지만 이들 박사모들의 집회도 오늘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 파면이 되기 전에는 탄핵반대를 이유로, 탄핵이 인용되고 난 다음에는 탄핵불복, 구속불가를 이유로 시위를 했지만 마지막 이슈마저 무색하게 구속이 결정되어 이젠 들고 나올 명분이 없어진 것이니 모이자 할 이유를 만들어 내기가 어려워 시나브로 사그러질 것이라고 본다.

 

드디어 4시 30분. 박근혜를 태운 차량이 서울중앙지검을 출발했다는 소식이 왔다. 출발했다는 소식을 기다리는 1시간 30분이 그렇게 지루할 수가 없었다. 다시 한 번 이렇게 찍을까 저렇게 찍을까 들어오는 차량은 어떻게 찍을까를 미리 그려보며 상상 속에서 수도 없는 연습을 하고 기다렸는데 불과 2초 만에 박근혜를 태운 차량은 서울구치소로 쑥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꽃을 던지고 말고 할 여유도 없었다.

 

나중에 꽃을 갖고 있는 회원한테 물어 봤더니 경찰이 겹겹이 싸고 있었고 박근혜가 탄 차량에 꽃을 던져도 테러로 오인되어 입건한다고 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기자는 불과 2초의 영상을 찍기 위해 간 것이지만 촛불시민들은 박근혜 정권 4년의 능욕을 씻으러 간 것이고 법과 정의가 살아 있는 대한민국을 만든 촛불시민의 궁극의 승리 현장이었다.

 

▲     © 김용덕 기자

 

내려오는 길에 친박집회에서 다시 쌍욕과 육두문자가 난무한다. 이것마저 카메라에 담고 구치소 삼거리를 거의 다 와 가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목덜미를 낚아채고 돌려 세운다. 자세히 보니 친박집회에서 마구 욕설을 하던 사람이다. 왜 사진을 찍느냐고 하기에 기자라면서 기자증을 보여 줬는데도 멱살을 잡고 못 가게 막는다. 서울의소리 편집장과 기자 둘의 멱살을 잡고는 놓지를 않고 기자의 점퍼에 달려 있던 모자를 잡아 뜯어 놓았다. 주변에 있는 경찰을 불러 폭행혐의로 연행하게 하고 의왕서에 가서 피해자 진술조서를 마치고 시간을 보니 벌써 새벽 6시다.

 

정윤회 문건을 필두로 세월호 7시간 등이 권력의 농간으로 묻히고 난 후, 최순실로 인한 국정농단이 jtbc 태블릿 PC 보도로 급물살을 타면서 결국엔 대통령 파면으로 이어지고 21일 만에 구속이 결정되어 박근혜는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것이다.

 

이는 한 겨울의 언 손을 입김으로 호호 불어가며 추운 날씨에도 마다 않고 광장에 모인 1천 6백만 촛불시민의 승리이고 세계사에 남을만한 무혈혁명의 쾌거다.

 

이제 겨우 적폐청산의 첫발을 떼어 놓은 상태다. 과거 어떤 정권도 이렇게도 심하게 국정은 농단한 적은 없었다. 기자는 이런 상태가 국가기관을 총동원해서 저지른 18대 부정대선이 시발점이라 본다. 부정한 방법으로 대통령이 되었으니 그녀에게 사명감이란 애당초 없었던 지도 모른다.

 

▲     © 김용덕 기자

 

22살의 나이로 아버지 덕에 영부인 노릇을 하면서 대통령이 의전만 하는 자리인 줄 착각했던 여자.

 

박정희의 제왕적 통치가 대통령의 일이고 대통령의 명령이면 온 국민이 봉건왕조시대의 신민처럼 무조건 복종해야하는 줄로만 알았던 여자.

 

그래서 자기 맘에 안 들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유신헌법과 긴급조치로 독재를 일삼았던 박정희의 잘못된 가정교육으로 일생을 망친 여자.

 

그런 것만 보고 배워 장장 13가지 죄목으로 피의자가 된 여자.

 

어떻게 보면 잘못 형성된 가치관과 특권의식으로 똘똘 뭉쳐진 이 여자가 적폐를 청산하게 만들어준 가장 고마운 은인일 수도 있다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을 돌이켜 보며 이제 대한민국은 정말로 민주공화국이고 국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만들어 가야하는 새로운 촛불혁명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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