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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의료비 불안...민간의료보험 시대를 초래하다

으르렁대는 시대의 건강 정책 밑그림, 이번엔 제대로 설계해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 기사입력 2017/04/17 [10:26]

무서운 의료비 불안...민간의료보험 시대를 초래하다

으르렁대는 시대의 건강 정책 밑그림, 이번엔 제대로 설계해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 입력 : 2017/04/17 [10:26]

김현정 (서울특별시동부병원 원장, 의학박사, <의사는 수술 받지 않는다> 저자)

 

서울시동부병원 김현정 원장

춘추전국시대 사람들이 이런 느낌이었을까?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그 시대를 문득 떠올린 것은 일말의 동병상련과 위로를 찾으려는 무의식에서 기인한 것이리라. “춘추전국시대 사람들도 분명 불안했을 거야. 고민들 엄청 했을 거구. 자고 깨면 나라가 바뀌고 제후가 뒤바뀌고 질서가 뒤집어지는데 오죽했겠어? 그러니까 제가백가도 출몰했겠지. 뭔가 바뀌는 시대는 다 그럴 거야. 마치 요즘 우리들처럼.” 떠오르는 상상을 여과 없이 떠들어대며 신랑에게 은근 동의를 구했다. 허! 근데 우리 신랑 아랑곳없이 심드렁 대꾸한다. “지금은 쟁명하는 제자백가가 없잖아. 제대로 된 대안을 내놓는 사람이 누가 있냐고.” 갸우뚱하며 나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의료비 불안: 민간의료보험 시대를 초래하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불과 10년 전과 현재의 의료 환경은 비교하기도 힘들 만큼 크게 변했다. 자고 깨면 섣부르고 설익은 법률들이 숱하게 쏟아져 나와 이름표만 바꿔달거나 어설픈 숙성 과정을 거쳐 신규 정책으로 둔갑하여 우리 앞에 폭력적으로 들이닥친다. 아니면 말고 식으로, 누군가의 실적용 또는 승진용인지는 알 수 없으나, 강행된 정책 사업들은 결국 현장에서 한참 피를 흘린 뒤에야 비로소 거둬지거나 수정되기 일쑤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욕망들이 충돌하고 들끓는다. 사방에서 아우성이다. 바야흐로 으르렁대는 시대다.

 

의료계도 포효하고 있다. 사람들의 불안과 고민은 이상하지 않다. 정당하다. 사회정치적으로는 혼란스러웠지만 사상적으로는 풍성했고 문화의 골격이 완성된 변혁의 시기로 평가받는 춘추전국시대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기도 언젠가 훗날에는 마치 그렇게 긍정적으로도 여겨지지 않을까? 현재 우리들의 치열한 고민이 제자백가만 못지않으며 충분히 의미 있고 가치 있다고 믿고 싶다.

 

언제부턴가 진료실에 환자와 함께 불안이 따라 들어왔다. 환자들의 까칠함 뒤에는 언제나 불안이 숨어 있었다. 시계를 쳐다본다. 의심한다. 불안스레 되묻는다. 사람들은 왜 병원에 오는 것일까? 아파서 치료받으러 오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진단서가 있다. 정형외과는 특히 진단서를 많이 쓰는 과다. 직장용, 병사용, 요양용, 장애용, 급여용 등등… 어떤 날엔 외래 환자의 삼분의 일이 진단서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보험회사 제출용이라는 진단서의 증가였다.

 

세상에 이다지도 사보험에 든 사람들이 많은가. “우리나라엔 모든 국민이 가입한 국민건강보험이 있는데 왜 굳이 매달 따로 생돈 들여가며 그런 보험을 들고 계세요?” 진단서 떼러왔다는 어느 중년 부인에게 물어보았다. “아유, 어림없어요. 큰 병에라도 걸려 봐요. 건강보험이 된다고 해도 따로 드는 돈이 얼마나 많은데요. 웬만한 재력으로는 못 버텨요. 순식간에 집안 거덜 나고 자식들한테 못할 짓 하게 되지요.” 내게 물정모르는 소리 말라며 손사래를 치신다.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게 중증 질환이요 비급여 진료비다. 재난적 의료 상황에 대한 두려움과 게다가 장수까지 하면 어쩌나… 불안한 사람들은 귀가 얇아진다. 쉽게 혹한다. 보험에 든다. 보건사회연구원의 통계 분석에 따르면 88% 국민이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해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정부와 의료인에 대해서는 신뢰가 없으면서도 현대의료에 대해서는 여전히 순진한 믿음과 걸러지지 않은 제한된 정보를 지닌 사람들로서는 사보험이 불가피하고도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인 것이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제도의 성과와 과제

 

정책적 진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재난적 중증 질환에 대한 보장성 강화와 3대 비급여 항목인 상급병실료, 선택진료비, 간병비에 대해 각각 심도 있는 고민과 진전이 있었다. 특히 간병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노력한 결과, 보호자/간병인 없는 병원을 구현하고자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제도가 출범하였고, 현장에 한창 이식 중이다. 내가 몸담고 있는 서울특별시동부병원은 2014년부터 같은 취지의 다른 이름인 서울시 정책 ‘환자안심병원’을 시범운영 해오다 이어서 보건복지부 ‘포괄간호서비스’ 제도로 갈아탔으며, 현재 이름이 바뀐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제도를 전 병동에서 실시하고 있다.

 

사실 우리는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얼결에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 숱한 애로점을 온몸으로 부딪치고 겪으며 극복해왔다. 그 과정에서 상처도 많았고 내상도 입었지만 배운 점과 성찰한 바도 적지 않다. 먼저 누군가 간호간병통합서비스가 좋으냐 나쁘냐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면 나는 좋다고 대답하겠다. 세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첫째 경제적 시간적으로 간병 부담이 획기적으로 해소되었다. 둘째 병실의 쾌적함과 안전성 확보되었다. 보조 침상에서 새우잠을 자며 집에서 해온 반찬통 꺼내놓고 함께 바글거리던 예전 병실을 상상해보면 그 차이점이 확연해진다. 셋째 간호간병업무의 전문성이다.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로 구성되는 한국형 간호간병 모형은 선행 시범사업을 통해 도출되었다고 하며 기능 간호에 치중되었던 간호 업무를 기본 간호까지 포괄하도록 확장시킴으로써 입원서비스의 질 향상을 꾀했다.

 

하지만 풀어야 할 숙제 또한 만만치 않다. 먼저 간호사 입장에서다. 사업 초기에 많은 어린 간호사들이 울면서 이직하거나 현장을 떠나갔다. 밥 먹고 화장실 가는 도움은 물론, 물 갖다 달라, 가려운 데를 긁어 달라, 왜 재깍재깍 안 오냐 등등 일거수일투족 몰아치는 환자들의 다양한 수발 요구를 전부 수용하길 힘들어했다. 어느 수간호사는 자신의 딸이라면 당장 관두게 하겠다고 읍소했다. 기존의 기능 간호와 확장된 기본 간호 사이에서 간호사들은 역할의 정체성을 혼란스러워했다. 새롭게 변화된 업무 내용과 서로의 직능에 대해 적응기가 필요했고, 이 부분은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 그동안 느낀 바, 간호와 간병은 엄연히 다르다. 달라야 한다.

 

또한 환자 입장에서도 모두 만족만 한 것은 아니었다. 어떤 환자 분은 본인이 혼자 다할 수 있으니 따로 간병이 필요하지 않은데 소액이지만 왜 굳이 추가비용을 지불해가며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원에 입원해야 하냐고 따지기도 하였다. 또한 의료인들이 제 아무리 열심히 해도 서비스 내용에서 간병인이 24시간 한사람의 환자만을 지킬 때처럼 세밀하지도 치밀하지도 못하다는 것이다. 간호사 대 환자 비율이 현재(1:5~1:16)보다 월등히 높아지지 않는다면 이 문제는 계속될 것이다. 어느 지인은 모친을 우리 병원에 입원시켰다가 이런 걱정을 조심스레 토로하며 간병인을 쓸 수 있는 다른 병원으로 떠나갔다.

 

간호 인력 확보 위한 근본적 처방: 유휴 간호사 활용 방안 강구해야

 

한편 병원의 운영진 입장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안정적 인력 확보 문제였다. 현재도 많은 의료기관들이 이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의료서비스는 태생적으로 노동집약적 산업이기 때문에 인력이 굉장히 중요하다. 훗날 인공지능 로봇이 개발되어 사람을 대신할 수준의 서비스가 보편화되는 그날까지는 아직 사람 손이 필수다. 간호 인력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는 제도를 시행하면서도 이에 대한 준비가 별로 없었다.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깨닫자 갑자기 간호대 입학 정원을 무작정 늘리려고 한다.

 

맙소사, 이것은 너무도 근시안적 처방이어서 급팽창된 간호 인력이 잉여로 돌아서는 순간 조만간 다른 제3의 문제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의 활동 간호사 비율이 고작 44%(미국 82%)인 것을 착안한다면 이 점이 개선되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펼치는 것이 우선 고려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더욱이 적절한 인력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업무 내용과 환경, 복지, 처우 등이 같이 개선되어야 해결 가능하다.

 

또 한 가지 이슈는 입원 환자의 특성이나 중증도에 따라 간호요구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병원 단위로 또는 병동 단위로 급성 질환 또는 수술 환자 위주로 입원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만성 질환 또는 손이 많이 가는 거동 불편 장기 입원 환자가 위주인 곳도 있다. 서비스의 질을 높인다는 명분하에 간병인을 무조건 배제하고 간호사 또는 간호조무사라는 전문 인력으로만 해결하려는 현재의 제도로는 뜻밖에도 빈틈이 너무 많다. 차라리 간병인의 자질을 표준화해서 강화하고 제대로 투입·관리하는 편에 손들고 싶다. 다시 말하지만 간호와 간병은 다르다. 직능의 세별화가 절실하고 모형의 다양화가 필요하다.

 

그 많은 싱아는 누가 다 먹어치운 것일까?

 

폭발하는 의료수요를 놓고 의료의 의미와 폭은 앞으로 점점 더 확장될 것이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국민건강보험’이라는 좋은 제도를 확립하였다. 그러나 개선할 점이 많은 것도 사실이고, 한편에선 이 제도 자체를 탐탁히 여기지 않으며 무너뜨리려는 위협의 손길이 호시탐탐 움직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건강보험 제도를 근간으로 의료 정책을 건강하게 발전시키기 위한 몇 가지 제언을 하며 이 글을 맺음하고 싶다.

 

우선 자원의 효율적 배치가 절실하다. 의료 재원은 국민건강보험 재정으로 볼 때 2001년 11조 원에서 2017년 57조 원으로 재원은 가파르게 증가해왔는데,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보장성 비율은 예나 지금이나 60% 남짓이다. 마치 끝없는 숨바꼭질처럼 어느 항목을 보장한 다음날이면 마치 새로운 비급여가 창출되는 풍선효과가 계속되어왔다. 그 많은 싱아는 누가 다 먹어치운 것일까? 사람들은 의사들이 그 돈을 다 가져갔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적대감을 표시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의료현장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 재료비, 인건비, 관리비 등등 세부 항목의 배치를 살펴보면 더 자세한 답이 나올 것이다. 새는 곳이 너무 많다. 수원지에서는 더 많은 물을 쏟아 붓고 있는데 물은 수도관에서 다 빠져나가고 정작 수돗물은 여전히 쫄쫄 갈증 나게 떨어지는 셈이다. 분명한 것은 단순히 보장성을 늘리는 정책만으로는 답이 되지 않으며 이와 함께 풍선효과를 제어할 정책적 장치가 함께 고민되어 실효적 강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의료가 더 이상 돈벌이 산업으로 전락하지 않고 의료인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내지는 일방적 희생양이라는 느낌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하다. 의료기관 현장에 어느 정도 유연성과 자율성을 주면서 동시에 철저한 질적 수준의 관리가 필요하다.

 

의료 인력 정책 방향: 의료는 의사 혼자만의 원맨쇼가 아니라 팀워크

 

앞서 언급했듯이 의료서비스는 노동집약적 산업이며 인력에 절대적으로 의존적이다. 그러므로 의료 인력 체계를 어떻게 가져가느냐는 의료 정책의 근간이 될 것이고, 이에 대한 고민은 계속되어야 한다. 단순히 의사와 간호사만 있어서 작동하던 모델은 이미 오래 전에 수명을 다했다. 수년째 진통을 겪고 있는 전공의 선발과 수련 문제, 호스피탈리스트(입원 전담 전문의), PA(physician assistant)의 제도화 등등 의료계가 당면하고 있는 여러 이슈의 드러난 배경 그 너머에는 의료 인력의 재편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의료는 의사 혼자만의 원맨쇼가 아니라 팀워크이다. 간호사 외에도 다양한 간호 인력(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 완화도우미, 적정 자격의 간병인 등), 각종 치료사(물리, 작업, 언어, 인지, 운동, 음악, 미술, 웃음, 원예 등등), 각종 코디네이터, 사회복지사, 임상심리상담사, 응급구조사, 의료기사/의무보조, 전산담당, 심사담당, 의무기록사, 산업안전담당, 환자안전전담, 보건전담 등등 병원에 정말 많은 직능이 필요해졌다.

 

나아가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예전에는 이들 새로운 직능을 ‘준 의료 인력’ 내지 ‘보조 인력’(파라-메디컬)으로 파악했다면, 이젠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필수 의료 인력’ 내지는 ‘협동 인력’(코-메디컬)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직능의 세별세분화는 시대가 요하는 세계적 큰 흐름이다. 앞으로도 어떤 형태로든 계속 진행될 것이다. 정책적으로 제도화하여 정규 인력으로 양성해나가야 한다.

 

정부 및 다양한 주체들의 참여적 논쟁과 합의가 중요하다

 

요컨대 정부가 신뢰를 회복하려면 무엇보다도 일관성 있는 중장기 비전의 제시가 필요하다. 전체적인 밑그림을 먼저 제시하고, 이에 맞춰 예측 가능한 정책들이 순차적으로 펼쳐진다면 환자, 의료인, 기업인, 그리고 국민 모두가 공정하다고 느끼게 되고, 정부를 신뢰하게 될 것이다. 최근 오스트리아 비엔나 정부는 ‘헬스플랜2030’을 수립하였는데, 몇 가지의 시사점이 있다. 우선 2030년까지의 중장기 계획이 수립되어(여러 합의 과정을 거쳤으리라)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갈팡질팡하지 않을 큰 기조의 일관성이 확보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모든 정책에 건강(health-in-all-policies)’이라는 접근이다. 예를 들어 건설 분야 도시계획을 할 때에도 건강 요소를 배려하고 의료기관의 배치를 함께 계획한다. 더욱이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 부처 간 교차예산(inter-sectoral working budget)이 책정된다는 점이다. 우리가 배울 만한 점이다. 한편 우리 사회의 의료문화에도 변화의 노력이 필요하다. 의료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우리 모두의 태도뿐만 아니라, 그동안 정부나 의료계 또는 언론이 의료남용과 과잉의료를 조장해 오진 않았는지, 치료적 의료 이전에 건강증진적 의료, 즉 스스로 건강을 가꿀 수 있는 노력이나 이를 도와주는 라이프 스타일이나 환경 개선 등의 ‘0차 의료’적 정책 접근이 부족하지 않았는지 자성할 필요가 있다.

 

정책은 더 이상 정치인이나 공무원의 전유물이 아니다. 다양한 주체들이 관심을 갖고 끊임없이 함께 고민하고 해법을 제시하고 서로 간에 합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지금이야말로 제자백가들이 쟁명할 시간이다. 사상을 꽃피우고 무르익도록 해서 문화와 제도의 기틀을 새롭게 재편하고 골격을 세우는 새로운 시대를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게 될 것이다. 

 

원문보기 http://www.welfarestate21.net/home/data3.php?mode=read&mod_gno=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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