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우리 민족을 세 번 배신한 역사적 사실

조선을 지켜주겠다는 감언이설에 속아 고종이1882년 미국과 최초로 통상조약을 맺었다.

이건흥 칼럼 | 입력 : 2017/05/03 [00:09]

지난 달 26일 사드 배치에 항의하는 성주 군민들이 경찰과 대치하고 있는 가운데 경북 성주군 성주골프장으로 사드 부품을 실은 차량이 들어가고 있다. 주한미군은 레이더 등 사드 장비를 실어 나르며 야간에 기습 작전하듯 이 논란 많은 사드를 이 지역에 전격 배치했다. ©연합뉴스

 

18세기말 영국의 산업혁명 이후 인류가 근대화되어가는 과정에 영국, 프랑스, 미국 등 서양세력이 중국과 조선, 일본 등 동양을 물밀듯 점령해왔다. 이른바 서세동점(西勢東漸)의 격변의 물결 속에 제국주의 시대를 맞이하면서 우리 민족이 왜 일본에게 식민 지배를 당하고 분단이 되었는지 그리고 우리 민족 최대의 비극인 동족상잔(同族相殘)의 한국전쟁이 일어난 배경은 무엇인지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철저히 분석해야 비로소 민족통일로 나가는 길이 보일 것이다.

 

영국의 산업혁명은 인류 문명을 전통적인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진화시켰다.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면서 영국에서부터 근대화가 시작된 것이다. 영국은 산업화를 이뤄내면서 증기기관과 기계공업의 발달로 산업생산력이 농업생산을 능가하게 됐다. 기술이 발전하고 제품 생산이 늘어나면서 내수시장이 활발해지자 영국 국력이 급속도로 강대해지면서 19세기 세계 최강의 대영제국을 건설하게 된다.

 

영국의 산업혁명 이후 프랑스, 독일, 미국이 질 좋은 영국의 공산품을 수입해 오다가 자기들 국가에서 직접 제품을 생산하게 되었고 기계공업의 발달로 공업화가 이루어지면서 국력이 커져갔다. 19세기 영국의 산업혁명이 본 궤도에 오르자 유럽 국가들은 앞 다투어 영국의 뒤를 이어갔다. 영국과 같이 공업화를 이루지 못하면 약육강식(弱肉强食)의 경쟁에서 침략당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영국에서 시작된 기계공업은 프랑스 독일 이태리로 마치 암세포가 퍼져나가듯이 유럽 전체로 급속하게 확대되었다.

 

영국에 이어 공업화에 성공한 유럽 국가들은 산업생산력이 증가하면서 공산품의 과잉생산으로 새로운 소비시장의 개척과 제품 생산에 필요한 원료 공급과 값싼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아시아, 아프리카로 전선을 확대하면서 19세기 말부터 유럽과 미국은 대포로 무장한 전함(戰艦)을 앞세워 재래식 무기로 무장한 약소국가들을 무참하게 침략하는 폭력적인 제국주의 식민지 시대가 전개됐다.

 

19세기 영국의 처칠이 청년 장교시절 아프리카 수단 옴두르만 전투에 참전하여 1개 보병부대가 수만 명의 흑인 원주민과의 전투에서 맥심기관총으로 소낙비 같은 총알을 퍼부으면서 흑인들을 전멸시켰다. 전투에서 승리한 처칠이 말하기를 “인류문명사에서 야만인에 대한 위대한 승리를 안겨준 무기가 맥심기관총이다.”라고 극찬했다.

 

일본도 독일에서 맥심기관총을 수입해서 1894년 50만 명의 동학군을 죽였다. 19세기 러시아는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과 비교해 산업화가 가장 뒤처져 있었다. 러시아에 이어 일본이 마지막으로 근대 산업화에 동참했다. 일본은 1854년 미국의 페리 제독이 연합함대를 끌고 와 대포를 쏘아대며 통상조약을 맺으면서 아시아에서 중국과 조선을 제치고 가장 먼저 근대화에 성공하면서 최종 후발주자로 세계열강 대열에 동참하게 됐다. 강대국들은 경쟁적으로 식민지 쟁탈전이 치열하게 진행되면서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약소국가들은 속수무책으로 유럽 국가와 미국, 그리고 일본에 종속되어갔다.

 

이러한 과정을 거처 미국이 우리 민족을 세 번 배신한 역사적 사실을 살펴보자.

 

CIA한국지부 총책을 맡았던 그레그 전 주한 미대사가 한계레 신문 권태호 워싱턴 특파원과의 인터뷰를 통해『한국의 분단은 미국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며 “미안합니다.”라고 고백했다.【2011.6.2.보도】(2015.5.19. 손석희 앵커와의 인터뷰를 통해서『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그는 CIA에서 30년을 보냈고 주한 미대사를 지내면서 한국에 대해 누구보다 많은 정보를 갖고 있었던 그레그 대사의 증언을 통해서 미국이 지난 백년 이상 우리 민족을 크게 세 번 배신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중 첫째는 우리 민족에 대한 일본의 식민 지배이고, 둘째는 조국의 분단 그리고 셋째는 민족통일을 방해하면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일본은 1854년 미국과 통상조약을 맺은 이후 메이지 유신을 통해 1889년 대일본제국헌법을 제정하면서 국가 기반이 안정될 때까지 20년간 외국세력에 전혀 침략당하지 않고 안전하게 산업화를 이루면서 힘을 키워 나갔다. 중국은 1842년 영국과 아편전쟁을 시작으로 조선은 1866년 프랑스의 병인양요와 1871년 미국의 신미양요 등으로 서구 열강들에 침략을 당하는 사이 섬나라 일본은 서구 열강과 똑같이 근대화를 이뤄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민족이 미국에게 첫 번째 배신으로 일본의 식민지 국가로 전락했다.

 

단재 신채호 기념사업회, 조선의열단 기념사업회 이건흥 사무총장

19세기 후반 중국, 일본, 러시아가 조선 침략을 시도하자 미국의 알렌 공사가 고종에게 미국은 쌀이 많이 생산되는 풍요로운 나라이고 지리적으로도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조선을 침략할 의사가 전혀 없다.

 

그리고 조선이 이들 나라로부터 공격을 받으면 미국이 군대를 파견하여 조선을 지켜주겠다는 감언이설(甘言利說)에 속아 동북아 국제 정세에 위기의식을 갖고 있었던 고종이 1882년 미국과 최초로 통상조약을 맺었다.

 

그 당시 고종은 일본이 미국과 통상조약을 맺으면서 발달된 과학문명을 도입하여 강대국으로 급성장하는 일본을 경계하면서 부러워했었다. 일본이 미국과 통상조약을 맺기 전 중국과 조선보다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동북아에서 가장 미개한 나라였다. 따라서 고종은 미국과 통상조약을 맺어 조선을 일본과 같이 강대국으로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너무나 기뻐했었다.

 

그러나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면 미국이 즉각 군대를 파견하여 조선을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헌신짝 버리듯이 배신하면서 일본과 미국은 가쓰라 태프트 비밀조약을 통해 미국이 필리핀을 지배하는 데 일본이 묵인하고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는 데 미국이 묵인하기로 했다. 우리 민족이 미국에 첫 번째 배신으로 일본에게 식민지 국가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우리는 코리아에 관해서 외교적으로 일본에 간섭할 수 없다. 난 일본이 코리아를 손에 넣는 것을 보고 싶다.”고 발언했다. (2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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