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광고
로고

"군자는 표변(豹變)한다" 각료선임 문제, ‘선현의 지혜’가 해결책

“인사가 만사다” 원칙준수의 ‘공명정대한 인사관리’, 국정성공의 지름길

서울의소리 | 기사입력 2017/05/31 [00:54]

"군자는 표변(豹變)한다" 각료선임 문제, ‘선현의 지혜’가 해결책

“인사가 만사다” 원칙준수의 ‘공명정대한 인사관리’, 국정성공의 지름길

서울의소리 | 입력 : 2017/05/31 [00:54]

세계적인 명화 시스티나 성당 벽화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경탄을 자아내게 하는 미켈란젤로의 위대한 역작(力作)이다. 이 벽화를 그리던 미켈란젤로는 거의 반 정도를 남겨놓고 작업을 중단한다. 그림이 처음 구상했던 만큼 좋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여 그렸는데, 새로 시작하자니 도저히 엄두가 나질 않았다. 


번민과 고뇌에 휩싸인 미켈란젤로는 술에 취하여 고민을 잠시라도 잊고 싶은 마음에서 술집을 찾는다. 그런데, 그 술집 주인이 새로 담은 술이 제대로 빚어지지 않았다며 커다란 항아리에 가득 찬 술을 남김없이 쏟아버리는 것이었다. 이에 감명 받은 미켈란젤로는 그때까지 그렸던 벽화를 다 지워버리고 다시 그리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시스티나 성당 벽화는 처음과 다른 모습으로 완성되었고, 세계 최고의 명화로 재탄생하였던 것이다.


"군자는 표변(豹變)한다” 표범이 달리던 방향을 갑자기 바꾸듯, 군자는 잘못을 알면 주저하지 않고 고쳐서 바로잡는다는 뜻이다. 이리저리 깊이 생각한 끝에 안 된다는 판단이 섰는데도 망설이면 일을 그르칠 수 있다. 그러므로 분명히 잘못됐다고 생각됐을 때는 서슴없이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그리하여 자신 있게 다시 시작하면 그 경험이 디딤돌이 되어 크게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 선현들의 한결같은 가르침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노나라에 복부제(宓不齊)라는 이가 살았다. 그가 어느 마을의 원님으로 있을 때 이웃나라가 쳐들어왔다. 복부제는 즉시 성문을 닫으라고 했다. 성문 밖 들에는 누렇게 잘 익은 곡식들이 추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백성들은 그 곡식이 아까워 원님에게 “곡식을 적에게 넘겨줄 바에야, 적이 오기 전에 모두 나가서 아무 밭에서나 우선 곡식을 거둬 오도록 하는 게 좋겠습니다.”라고 건의하였다. 그러나 복부제는 그들의 청을 뿌리치고 성문을 닫아걸었다. 백성들은 복부제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전쟁이 끝나자, 복부제는 적을 이롭게 했다는 혐의로 왕에게 불려갔다. 왕은 왜 곡식을 적에게 넘겨주었는지를 추궁하였다. 복부제는 왕에게 이렇게 아뢰었다. “일년 동안 애써 지은 곡식을 적에게 빼앗긴 것은 참으로 아깝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급하다고 해서 남의 곡식을 마구 베어다 먹는 버릇이 생기면 그건 10년이 걸려도 고치기 어렵습니다. ‘그까짓 것’하는 마음이 결국 큰일을 저지르게 됩니다” 왕은 그의 높고 깊은 식견에 탄복하였다. (이의용, ‘돈이 보낸 편지’)


군자는 인덕(仁德)을 확고하게 인식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하여 온힘을 다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군자의 자질은 의(義)·언행일치·겸손인데, “복부제는 군자다운 자격을 가지고 있다”고 공자는 말하였다.

 

영국의 수상 처칠이 국회에서 연설을 하기로 했는데 다른 일 때문에 시간이 다소 지체되었다. 처칠은 늦지 않게 도착해야 한다는 일념에서 운전기사에게 속력을 내서 달리라고 지시하였다. 그래서 교통신호를 무시하고 과속을 하다가 교통경찰에게 붙잡히게 되었고, 운전기사는 다급하게 말했다. “이 차는 수상 각하의 차요. 지금 국회로 가는데 시간이 늦어서 빨리 가야하오.” 하지만 경찰은 처칠을 힐끔 쳐다보고는 “수상님을 닮기는 했는데, 그분의 차가 교통법규를 어길 리가 없소. 당신은 교통위반에다가 거짓말까지 했소” 이렇게 꾸짖듯이 말하며 면허증을 제시하게 하였다.


처칠은 엄정하게 공무를 수행하는 그 경찰에게 크게 감명 받아 경시총감에게 일 계급 특진시켜줄 것을 명령하였다. 그러나, “경찰 조직법에는 그런 규정이 없기 때문에 특진을 시킬 수 없습니다” 경시총감은 수상의 지시인데도 부적절하므로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이에 처칠 수상은 “오늘은 두 번씩나 경찰에게 당하는군”하면서도 매우 만족스럽게 웃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권진(權軫)은 청백리로서 황희, 맹사성과 함께 삼상(三相)으로 불리며 조선시대 세종의 치적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어려서부터 아주 명석하여 1377년(고려 우왕3년) 스물한 살에 과거급제함으로써 크게 촉망받았다. 그래서 당대 최고의 세도가인 염흥방(廉興邦)이 자신의 조카딸과 혼인하기를 권하였으나, “권세가와는 추호도 혼인할 생각이 없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 이에 미움을 산 탓에 여러 해 동안 관직을 받지 못하다가 요행히 의창현의 현령으로 임명되었다. 


권진은 부임하자마자 해안지역에 출몰하던 왜구를 격퇴하고 민폐를 척결하여 빈민을 구제하였다. 이로써 시중이었던 이성계(李成桂)의 추천으로 전주판관이 되었으며, 1398년(태조 7년)에는 조전원수 성석린(成石璘)의 천거로 경력이 되었다. 그 후에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쳐 태종 6년(1406년)에 강원도관찰사가 되어 선정을 폈고, 청렴성을 인정받아 대사헌으로 발탁되었으며, 관의 기강확립에 힘썼다. 형조·호조·이조 판서에 이어 1426년(세종 8년) 찬성이 되었으며, 1430년에 다시 이조판서를 거쳐 1431년 우의정에 올랐다. 


그즈음 권진은 자신이 이미 노쇠하여 정신력과 기력이 다하였고 판단, 간곡하게 사직을 상소하였으나 세종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에도 계속된 3번의 사직상소를 세종은 모두 거절하였고, 권진에 대한 ‘지나친 신임’이 끝내 화를 불렀다. 1433년, 좌의정으로 이조판서를 겸하고 있을 때 사람을 잘못 천거했다 하여 대간의 탄핵을 받자 권진은 관직에서 물러났다.

 

“나라를 위하여 온힘을 다 바쳐 죽은 뒤에야 그친다” (鞠躬盡瘁 국궁진췌 死而後已 사이후이. 諸葛亮 제갈량) 


오늘날, 중국인들도 이런 제갈공명(孔明, 제갈량의 자)을 ‘죽는 날까지 몸이 으스러지도록 최선을 다한 사람’으로 여긴다. 나관중(羅貫中)은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를 지어 뛰어난 문학적 수사로써 그를 그려냈다. 탁월한 전략과 비전, 비범한 자질과 리더십, 불굴의 용기와 분투정신을 근거로 그를 지혜의 총아, 충정의 전범, 현상(賢相)의 표상임을 서른여섯 번이나 부각시켰다. 그 공명이 군기, 즉 규율과 기강을 엄정히 세우고자 눈물을 머금고 마속(馬謖)을 참수하였다.

 

 

인적자원은 국가경영의 중요한 기반
‘정무고위직’의 엄정한 인사관리, 국정성공의 관건

 

두 말할 나위 없이 ‘인적자원’(human resources, man power)이야말로 국가경영에 더없이 중요한 초석이 되고 기반을 이룬이다. 하여 맨파워다. 그러므로 국가·사회가 위난 지경일수록 반드시 ‘정무고위직’에 대한 엄정한 인사관리를 준행하여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관료주의를 일신, 국가경영의 효율성을 향상시켜 국정성공을 기약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듯 “인사가 만사다” 공사를 막론하고 모든 조직이 다 그럴진대, 인사의 기본원칙을 무시하면 혼란과 잡음이 생기게 마련이고, 그렇게 되면 그 앞날이 어두워질 수밖에 없다.

 

정부의 정무고위직에 대한 인사관리에서 철저히 지켜야 할 2가지 원칙이 있다. 그 중에 첫째가 ‘도덕성’인데, 정무고위직은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를 실천해야 할 지위이기에 더욱 그렇다(청문회의 근본목적이 바로 그것이며, 도덕성이 결여됐는데 ‘공적사명 의식’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신정부 각료 후보자들이 결격사유, 즉 도덕성(위장전입, 더욱이 부당이득 목적)의 문제가 확인되어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전혀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됐을 터이나, 작금의 ‘각료 인선·임명’에 관한 이슈는 현 정부의 국정성공의 시험대라 할 만큼 통치권이 직면한 아주 중요한 현안이며, 이율배반의 딜레마이므로 그 심각성을 깊이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어제 29일, 최초로 문재인 정부가 실시하는 최고 ‘정무고위직’ 인사인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국회의 인준 절차통과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우여곡절 끝에 31일로 의결이 연기되고, 다행히 국민의당이 동조하기로 했으나, 여전히 부결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래서 후보자에 대한 보다 철저한 사전 검증은 물론, 인재를 좀 더 두루 널리 찾아야 했었다는 아쉬움이 자못 크거니와, 향후에는 이런 중대한 문제가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주도면밀할뿐더러 탕평인사를 뛰어넘는 광폭적인 인재등용과, 입체적인 자질검증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앞서의 예화들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각료 선임에 깊은 관심을 갖고 그 과정을 처음부터 지켜보던 차에 적이 착잡한 마음에서 생각난 것이다. 미켈란젤로와 ‘군자표변’(君子豹變, 易經 역경), 그것은 단적으로 말해서 “틀린 길을 가느니 돌아가는 것이 낫다” (Better go back than go wrong. 서양속담)는 뜻이다. “공정하면 밝아지고 청렴하면 위엄이 생긴다” (公生明 廉生威 공생명 염생위. 맹자) 이 경구는 현명한 복부제가 ‘대의, 원칙’을 견지한 경계의 지혜를 생각게 한다. 


그리고 지나친 집착은 화를 부르며, 자신의 모자람을 알면 스스로 마다하고 물러나는 것이 상식임을 세종과 권진의 관계, 그 일화를 통해서도 확인 할 수 있다. 더구나 천하통일(서진)의 기초를 이룬 사마의(司馬懿) 조차 “천하에 둘도 없는 기재”라고 찬탄해 마지 않았던 제갈공명이 ‘나라를 위하여 읍참마속(泣斬馬謖)’하던, 만감이 교차했을 그 처연한 심정을 희미하게나마 알 것 같다.

 
아무튼 이런저런 핑계, 미명으로 ‘민주시민혁명’의 시대정신, 그 핵심인 적폐청산의 실현에 반하거나 역행하는 모든 사고와 태도가 티끌만큼이라도 있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사소할지라도 무원칙하고 부조리한 악습에 대한 묵과, 묵인은 개혁의 유일한 독소, 개혁실패의 함정인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국가의 최고권력자인 수상에게 조차 엄정하게 공무를 집행하고,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는 영국경찰의 태도를 귀감삼아야 할 터이다. 


나참판이 고장 나지 않는 한, 아무리 거센 폭풍우가 휘몰아쳐도 기어이 목표에 도달하기 마련이다. 부디 (적폐세력이 아닌) 모든 지도자·위정자들은 정파를 초월하여 현 정부가 역사와 국민이 부여한 시대적 사명과 정체성을 잃지 않고 원대한 목표를 향하여 힘차게 나아갈 수 있도록 의기투합하길 바란다. 

 

대한글씨검정교육회

권혁시 이사장

아울러 부언컨대, 특별히 유념해야 할 대목은 이번 각료인사 문제에 대해 직접적인 책임을 져야 마땅한 대통령 비서진은 자기중심주의와 합리화 특히, 충성 일변도의 태도를 과감하게 탈피하여야 한다. “대업을 이루고자 하는 군주에게는 반드시 (쓴 소리, 바른말하는) 부리기 어려운 신하가 있다” (將大有爲之君 장대유위지군 必有所不召之臣 필유소불소지신, 맹자)

 
또한 같은 맥락에서 국정에 관한 모든 사안의 발상과 견해를 획일화시키려 해서는 안 된다. “획일과 무차별은 죽음이다” (도올 김용옥) 치열한 문제의식과 창의적 사고, 다양한 의견개진, 활발한 토론과 중지를 통하여 최선의 방책을 제시함으로써 집정자를 보좌해야 한다. 그 중핵은 ‘인사관리’를 기초로 한 정책(public policy)인데, “정책은 철학이다” (김형렬)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남다른 도덕성과 투철한 공적 사명감을 견지해야 하거니와, 공직자로서의 태도, 곧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확고하게 정립해야 한다. 


각설하고, 이 같은 제언을 하는 까닭은 걱정스럽고 난감한 심정에서,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정부 각료의 인선·임명, 곧 최고 ‘정무고위직’에 대한 인사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함으로써 이를 시발로 ‘민주시민혁명’에 의해 어렵사리 세워진 민주시민정부,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간절히 염원하므로 해서이다.

  • 도배방지 이미지

권혁시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광고
PHOTO
1/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