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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후손이 쓰는 변명 (2)
"적폐청산 없는 통합은 냄새나는 쓰레기를 안고 사는 것"
 
이원표 칼럼   기사입력  2017/06/09 [22:51]

적폐 : 오랫동안 쌓여 온 폐단(弊端).

 

  이윤철(94세) 생존항일독립지사

"원표야, 깡패 나왔다."

아버님이 TV 뉴스를 보시다 하시는 말씀에 화면을 보니 '트럼프'가 보인다.

 

우리 집에선 '트럼프'가 그리 불린다. 아버지가 지어주신 대로...

 

올해 94해를 지나신 아버진 중국 항공군관학교(우리의 사관학교) 출신으로 미군 B29 기지의 연락생도로 항일전선 선두가 되었다.

 

앞서 '한국광복진선 청년 전지공작대'에서 항전을 위한 위문, 선전, 선동 전선에 참여케 됐고, 그런 연유로 만나게 된 어머니와 8년간의 연애 끝에 혼인을 허락 받았다.

 

아무튼 1950년 4월 12일 중국에서의 대위 진급 소식을 뒤로하고 아버지와 어머닌 '영사 회의‘ 참석 차 한국으로 가는 중국 영사의 비행기 편에 오를 수 있었고, 고국에서 가정을 꾸미셨다.

 

그해 6월 1일 우리말과 풍습에 서툴렀던 아버진 대위가 아닌 대한민국의 공군소위가 되었다.

 

그리고 겪게 된 민족상잔의 비극, 육이오. 아버지의 일생은 전쟁의 연속이었다. 항일 때 태어나 전쟁의 포화 속으로, 숨어서 때로는 전투로 살았던 전쟁 인생, 그러나 아버진 또 하나의 전쟁 속으로 내 몰려야만 했다.

 

전쟁만큼이나 혹독한 시련이었고 보이지 않는 싸움을 견뎌야만 했다. 거의가 일제의 소비(일본의 소년 비행학교) 출신이거나 일제에 의해 숙달되었던 기술자들로 충원된 공군에서 그랬듯 다른 영역에서도 조차 임시정부와 광복군출신 대부분은 동화되지 않는 이방인으로 여겨졌다.

 

혈연, 지연, 학연으로 일그러진 텃세는 조국을 찾은 광복군 출신과 가족들에게 너무나 아픈 마음의 상처가 되었다. 고향 없는 아버진 '짱꼴라'로 불렸고 이유 없는 놀림과 따돌림을 견뎌야 했다.

 

더구나 미국의 지원 아래 들어 온 P51 머스탱은 미국의 기술로 집약된 전투기로 모든 시스템이 미국식으로 중국에서 부터 미국의 통신체계로 훈련 받은 아버진 자연히 미국 고문단의 눈에 띠게 됐고 그로 인한 질시와 모함은 돋보임에 비례하여 심해져갔다. 평양 '미림'비행장까지 갔던 아버진 휴전 후 만년 중령, 만년 대령으로 군 생활을 마감했다.

 

우리말이 서툴던 아버진, 변또(도시락), 자부동(방석), 고뽀(컵), 오이꼬시, 히야까시 등이 우리 말인 줄 아셨다한다. 웬만한 건축 용어는 대부분 일본 말이었고, 빠가야로, 요씨 등은 교육 현장에서도 쓰였다.

 

친일파의 왜곡된 추앙을 받은 이승만은 자신의 행적과 약점을 감추려 거치적적거리는 임시정부 요인들의 귀국을 방해하기도 했다. 그러한 분으로 분류된 석린 민필호 선생도 중국 초대 영사라는 직함으로, 현지에서 병들어 더 이상 몸을 가누지 못하게 되어서야 귀국이 허락되었다.

 

다시 찾은 고국이 그토록 보고 싶었는데, 본의 아닌 망명생활은 외교관이라는 허울로 포장 되었다.

 

만주군 장교출신으로 쿠데타에 성공한 군사독재 정부는 다시 일본의 검은 늪으로 빠져들고, 문밖을 나서는 젊은 우리들은 말조심을 가훈으로 삼아야 했다.

 

캠퍼스에선 'ROTC'의 우렁찬 경례소리가 요란했고, 우린 그들을 '리퍼블릭 어브 텍사스 카우보이'라 부르며 썩소(썩은 미소)만 날렸다.

 

친일의 망령은 살고 살아서 내 아이들이 마흔을 바라보는 오늘에 국정농단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목격해야 했고, 미국은 알고 우리국민에겐 비밀이어야 하는 군사협정은 무엇이고, 일본은 알고 우리국민은 몰라야하는 불가협적 협상은 무엇인지, 친미와 친일이 지나쳐 주권마저 잊어버린 것인지, 잃어버린 것인지 조차 분간하기 어려운 이 싸움이 한도 끝도 없이 계속되는 건 어떤 이유에서 인가?

 

청산하지 못한 적폐, 친일의 잔재를 털어버리지 못한 우리의 잘못은 언제 잡힐까?

 

다카키 마사오의 ‘견마의 충성’ 혈서 일본에 ‘견마(犬馬)의 충성’과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一死以テ御奉公)을 하겠다는 박정희의 혈서는 당시 <만주신문>(1939년 3월 31일)에 ‘혈서 군관 지원 - 반도의 젊은 훈도로부터’라는 제목으로 보도되었다. 왼쪽은 황군 장교 시절의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육이오 참전 용사라는 어느 노인은 자신이 황군(일제 왕의 군대, 일본군)이었음을 노인정에서 자랑하고 있었다.

 

통일 부총리, 교육 부총리와 대학 총장을 역임하신 한완상 선생님이 대통령 당선되기 직전 문제인 후보에게 "적폐청산 없는 통합은 냄새나는 쓰레기를 안고 사는 것으로 값싼 통합의 유혹에 빠지지 마시고 완전한 청산이 우선 돼야합니다" 라는 충고 말씀을 전하셨다 한다.

 

아! 오늘, 우린 누구? 여긴 어디?

 

건너 방 TV를 보시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다시 들린다.

"원표야! 깡패 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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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6/09 [22:51]  최종편집: ⓒ 서울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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