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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우리 민족을 세 번 배신한 역사적 사실(5)
미군정사령관 '하지' 등장으로 남한은 비극이 시작되었다.
 
서울의소리   기사입력  2017/06/11 [22:44]

일제치하에는 남북이 같은 동족이었으나 해방직후 우리민족을 남북으로 갈라놓은 미국이 남한을 점령하여 자주독립국가 건설이 좌절된 상태에서 미군정 통치시절 하지 장군에 의해 친일파들을 앞세워 반공의 광풍이 몰아치면서 좌익세력을 척결한다며 남한에 피바람을 몰고 왔다.

 

존 리드 하지, 민군정사령관 반공주의자 였던 하지는 친일파들을 앞세워 '좌익세력을 척결한다'며 남한에 피바람을 몰고 왔다. 

 

미국이 심어놓은 반공이라는 악마의 뿌리가 남북한의 같은 동족을 철천지원수로 갈라놓아 오늘날까지 이어오면서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진보적 개혁세력을 좌파 빨갱이로 몰아 씨를 말리면서 암울했던 우익의 시대를 살아왔다. 국가권력을 장악한 민족반역자들은 자신의 생각과 사상, 이념노선이 다르면 무조건 종북 좌파 빨갱이라는 딱지를 부처 죽였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한번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히면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었다.

 

친일경찰들은 일본 칼을 차고 다니면서 경남밀양 표충사 단장면에서는 일가족이 빨갱이로 몰려 일본 칼로 목을 처 거리에 매달았고, 창원시 신목마을 야산에서도 마을주민과 일가족들이 ‘빨갱이’로 몰려 일본 칼로 사지가 잘린 채 희생된 창원저수지가 보도 연맹원 들이 집단 학살된 장소라고 마을주민들이 확인시켜주었다.

 

지금도 그 당시 집단 학살되었던 양민들의 뼈가 전국곳곳에서 계속 발굴되고 있다. 이러한 폭력사태를 묵인 방조하는 미군정에 대해 많은 민중들의 저항과 항의가 그치지 않았고 미국에 대한 반미감정이 극도로 악화되었다. 친일경찰과 친일군인들은 미군정에서 공산당을 타도한 공로를 인정받아 하루아침에 최고애국자로 변신했다.

 

이러한 민족반역자들은 이명박정권에서 2008년 8.15건국 60주년을 맞이하여 건국공로훈장을 받겠다고 한나라당이 국회에서 법 개정을 시도했고. 박근혜정권에서도 건국공로자법률안이 2014. 8. 15. 새누리당 윤상현의원이 대표발의 했으나 광복회를 비롯한 시민단체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건국공로훈장은 독립운동한사람만 받게 되어있는데 민족반역자들은 자신들의 과거 부끄러운 친일행적을지우기위해 미군정 때 빨갱이를 척결한 공로로 훈장을 받겠다는 것이다.

 

친일파들에게 건국공로자예우를 하자는 법률안을 대표 발의한 윤상현의원은 빅근혜에게 누님이라고 불렀던 친박계 핵심인물로 윤상현 의원의 작은할아버지 윤종화는 조선인 최초로 종로경찰서장을 지냈던 인물로 노덕술과 함께 악명을 떨쳤던 친일경찰이었다. 종로경찰서가 무수히 많은 독립운동가들을 체포해 고문을 가했던 곳으로 독립운동가들은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하거니 평생 장애인으로 살았던 악질적인 곳이기 때문에 조선의열단 김상욱의사가 상징적으로 1923년 1월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져 아비규환으로 만든 뒤 도주하였다.

 

일본경찰은 김상욱의사를 체포하기위해 서울시내 4대 경찰서에 총비상령을 내렸고 기마대와 무장경관 400명이 김상욱 의사의 효제동 은신처를 겹겹이 포위하여 3시간 반 동안 총격전을 벌인. 시가전 끝에 김상욱의사는 10발의 총탄을 맞고. 벽에 기댄 채 마지막 남은 탄환 한발을 머리에 대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면서 자결하였다. 우리는 이러한 선열들의 애국정신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미국의 보호아래 독버섯처럼 피어오른 민족반역자인 윤상현의 집안과 박정희 딸 등 친일세력들의 만행을 우리후손들에게 지속적으로 알려야한다.

 

해방이후 우리민족의 비극은 미군정사령관 하지장군의 등장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하지장군은 R.O.T.C 출신의 전투장교로 일리노이 주에 있는 카본데일이라는 탄광촌 출신의 촌놈으로, 하지장군은 한국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 상태에서 오키나와에 주둔해있던 제24군단소속 제7보병사단을 인솔해서 한국을 점령하라는 명령을 국무성으로부터 받자.『나는 한국이란 말을 들어보지도 못했다. 그러니 한국에 대해 자문을 해줄 수 있는 전문가를 보내 달라!』고 국무성에 전문을 치자 국무성으로부터 한국전문가가 아닌 외몽고 전문가인 3등서기관에 불과한 인물이 파견되었다.

 

이 부분에서 사뭇 비교되는 것이 하지장군이 전투장군에 불과했다면 일본을 점령했던 맥아더장군은 전투를 위한 장군이라기보다 한사람의 전략가이자 정치가였다. 그는 웨스트포인트 미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日本書籍에 대해 안 읽은 책이 없고 일본사람보다 일본말을 더 잘한다는 자부심이 대단히 컷 엇다. 맥아더장군은 일본을 점령하기 전부터 일본에 대해 철저히 분석했고 점령 후에도 직접 통치는 일본인에게 맡기고 자신은 일본정부를 감시하는 역할만 했다.

 

그래서 지금도 맥아더장군은 일본민주주의 토대를 닦아놓은 인물로 추앙받고 있다. 그런데 하지장군은 한국을 점령하자마자 육군중위는 순천군수. 육군대위는 광주시장으로 임명하는 등 전국의 행정조직을 현역미군을 실무직에 바로 임명하는 전권을 마구 휘둘러댔다. 그 당시 대학생들은 하지군정을 ‘Shoeshineboy-Govemment' 라고 嘲弄했다. 해방당시 영어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던 터라 구두닦이들이 제일먼저 영어를 배워 미군과 소통하면서 한국지식인이나 민족지도자들과 소통이 단절됐다.

 

하지장군은 일본이 본국으로 철수하자 일본인 소유의 개인재산을 포함한 공공재산까지 모든 재산을 미군정소유로 한다는 포고령을 발표했다. 이중에는 일본인 지주소유의 농경지를 비롯하여 공장. 광산. 철도산업시설물과 선박. 자동차등 운수기관과 주식. 채권. 등 온갖 재산이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장군은 이러한 일본의 재산 즉 적산불하를 연고자들에게 그대로 나눠 주었다.

 

일제 강점기 때 연고권을 가진 사람들은 일본인의 보호를 받으면서 안락한 생활을 한 친일자본가로써, 대표적으로 김무성새누리당 (전)대표의 선친인 민족반역자 김용주는 전남방직을 불하받았고, 삼성재벌창업자인 이병철은 친일로 돈을 번 친일파기업인으로, 해방직후 제일제당, 제일모직 등 적산을 불하받아 부를 더욱 축적했다.

 

 이건흥 단재 신채호 기념사업회

조선의열단기념사업회 사무총장

민족반역에 앞장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그리고 친일경찰과 친일군인들은 다른 나라 같으면 재산을 몰수당하고 사형 당했을 사람들이 미국의 보호를 받으면서 그들은 더 많은 재산과 더 큰 권력을 장악했다. 친일파들은 또다시 친미파가 되어 남한의 모든 기득권을 유지한 체 해방 된지 70여 년간 오늘날까지 정치, 경제, 언론 등 우리나라의 모든 기득권을 장악한 채 친일세력이 친미세력으로 자자손손 대를 이어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다.

 

이들이 반통일 수구꼴통세력으로 돈과 권력과 언론을 장악한 이른바 조. 중. 동이 종편TV방송까지 장악해서 모든 여론을 주도하고 여론을 왜곡시켜왔다. 앞에서도 지적한대로 해방이후 미군정 3년간 친일파와 함께 벌어진 10.1 대구 폭동사태. 4.3 제주항쟁 6.25 한국전쟁 3.15 부정선거 5.16 박정희 군사쿠데타 5.18 광주학살 등 미국의 끊임없는 정치공작에 의해 직간접적으로 국내정치에 개입해 왔다. (6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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