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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곧 그 사람!”, 언어는 ‘인성·자질’의 표상
‘언어폭력’을 서슴지 않는 정치인을 철저히 응징한다
 
서울의소리   기사입력  2017/07/07 [22:26]

지도자·위정자는 ‘지언’(知言, 말을 앎)하며, ‘언품’(言品)을 갖춰야 한다

 

대한글씨검정교육회

권혁시 이사장

지도자·위정자는 ‘리더십’이 제1 조건이며, 해야 할 ‘말’을 반드시 하는 것이 리더로서의 ‘자질과 의무’인 동시에 리더십 발휘의 기본이다. 리더십의 3요소는 ‘인식·경청·선견지명’이며, 이는 말로써 드러난다. 첫째 ‘인식’, 사물을 제대로 바로 알아야 이에 합당한 바른말, 좋은 말, 도움이 되는 말, 즉 최선의 언명을 할 수 있다. “앎(지식)을 활용하라, 그 ‘앎’은 심층적이고 제대로 아는 것이어야 한다”


둘째 ‘경청’, 남의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으면 제대로 인식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아집과 독선, 편견에 빠져 누구나 공감하고 수긍할 수 있는 본질과 이치에 맞는 말을 할 수 없게 된다. “거짓말도 들어야 한다. 그리하여 편견과 독선을 제거하라” (인식의 지평을 확대해야 발전할 수 있다. 예컨대, 시대착오적이고 반헌법적인 ‘매카시즘’ ㅡ 남북평화교린 및 통일, 현대 사회주의 등의 담론에 대한 무분별하고 일방적인 비난, 공박은 불식해야 할 독선이고 적폐다.) 셋째 ‘선견지명’, 지도자·위정자는 비전을 말로써 제시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국가·사회의 구성원을 이끌어나가야 하는데, 선견지명이 없이는 절대로 명확한 비전을 말할 수 없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요컨대 말로써 인식(판단력·문제의식·성찰), 경청(소통·겸손·포용), 선견지명(통찰력·방책·비전 제시)’이 표출되고, 그것을 알 수 있다. 사물의 현상과 그 이치를 제대로 ‘인식’하고(알고), ‘경청’함으로써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사태를 폭넓게 인지하며, 뛰어난 통찰력, 곧 ‘선견지명’으로 진로를 잘 선택,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몸속의 혈액순환처럼 ‘진실과 정의와 진리’가 말속에서 끊임없이 흘러야 한다. 그래야만 신뢰와 공감을 살 수 있고, 비로소 ‘말’(言 언)이 살며 살아있는 말이어야 힘이 있다.


“폭력은 기강과 질서를 무너뜨린다!” 

-‘언어폭력’을 서슴지 않는 정치인을 철저히 응징한다

 


만일 ‘말’이 바르고 참되지 못하여 그 말이 죽어서 힘이 없다면, 지도자·위정자로서의 자질인 ‘능력·인격·비전’을 결여한 것이니 국민과 국가, 사회에 해가 될 뿐이므로 더 이상 정치를 하거나 리더가 되기를 포기해야 당연하다. 더구나 모든 “폭력은 기강과 질서를 무너뜨린다!” 그러므로 ‘말의 폭력’(언어폭력)을 일삼는 정치인은 철저하게 응징, 배척해야 마땅하거니와 맹자(孟子)의 ‘말’에 관한 지론이 명쾌하게 이를 뒷받침한다.


“함부로 말하는 것은 책임을 묻지 않기에 그런 것이다” (易其言也 이기언야 無責耳矣 무책이의, 맹자)


맹자는 정치적 정체성(identity, 주체성)이 대단히 강한 탁월한 정치 사상가이며 위대한 철학자였다. 맹자는 그가 스승으로 여기고 섬겼을 성인 공자(聖人孔子)의 사상과 학문(유학, confucianism)을 계승, 발전적으로 정리, 정립하여 선진유학을 이루었다. 이를 통하여 ‘민본주의·왕도정치’를 주창하였음은 만인주지의 사실이다.


전국(戰國)에서의 맹자는 춘추(春秋)시대의 공자와는 달리 군왕들에게 서슴지 않고 바른말, 쓴 소리를 했다. “대업을 이루고자 하는 군주에게는 반드시 부리기 어려운 신하가 있다” (將大有爲之君 장대유위지군 必有所不召之臣 필유소불소지신, 맹자) 게다가 맹자는 공자의 언명을 당위의 근거로 삼아 감히 ‘역성혁명’(易姓革命)을 강하게 주장하였다. “위대한 하늘은 특별히 친애하는 것이 없다. 오직 유덕자를 도울 따름이다” (皇天無親 唯德是輔 황천무친 유덕시보, 논어)


이 말을 ‘천명’(天命, 하늘의 명령)으로 알아들었던 것이다. 그가 언명한 바대로 ‘지언’(知言, 말을 앎)에 이른 것이다. ㅡ 인간의 본질, 곧 그 존엄성을 참으로 인식하는 것인데, 지성(知性)·지천명(知天命)이 ‘지언’이며 대학(大學)에서의 격물치지(格物致知, 사물의 본질과 이치를 부단히 연구하여 지식을 완전하게 함)를 말한다. 일반적으로는 사리가 통하는, 도리에 맞는 말을 뜻한다.


“무엇이 ‘지언’이라 하는가? 비틀린 말로 그 가려진 바를 알고, 어지러운 말에서 그 빠져 있는 바를 알고, 어긋나게 말하는 데서 그 이탈된 바를 알며, 회피하는 말로써 그 다함(모자람)을 아는 바이니 마음에서 생겨나 ‘그 나라의 정치에 해를 끼치며, 그 같은 생각이 정치에 나타나면 국사(國事, 나랏일)를 해치게 된다.’ 성인이 다시 일어나시더라도 내 말을 따르리라” (何謂知言 하위지언? 曰詖辭知基所蔽 왈피사지기소폐 淫辭知基所陷 음사지기소함 邪辭知基所離 사사지기소이 遁辭知基所窮 둔사지기소궁 生於基心 생어기심 害於基政 해어기정 發於基政 발어기정 害於基事 해어기사, 聖人復起 必從吾言矣 성인복기 필종오언의. 맹자)


그러한 확신으로 반드시 말해야 한다는 판단이 서면, 거리낌 없이 그는 군왕을 향하여 고언, 충언, 직언, 정언, 조언을 마다하지 않았다. 맹자는 몸소 선비정신(핵심은 ‘비판의식’)의 전범을 세우기로 작심이라도 한 듯한데, 예리하고도 추상같은 언설 또한 적지 않다. 何必曰利(하필왈리, 왜 그렇게 이익만을 말하는가), 五十步百步(오십보백보, 차이가 있는 것 같으나 결과적으로는 차이가 없다), 緣木求魚(연목구어,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하듯 도저히 안 될 일을 하려든다), 拔苗助長(발묘조장, 모를 뽑아 자라게 하려들듯 억지로 하는 것은 도리어 해치는 짓이다)


그런데, ‘논어’에는 공자의 말(言辭 언사)에 관한 아포리즘이 자못 많으나, ‘맹자’에는 맹자 자신이 직접 말에 관하여 언급한 것은 앞서 말한 ‘지언’을 비롯한 몇 가지로 아주 적다. 그런 까닭은 “말이 많으면 실패가 많다” (多言多敗 다언다패. 공자가어) “그 말하기를 부끄러워 하지 않으면 실천하는 것이 어렵다” (言之不怍則爲之難 언지부작즉위지난, 논어) 이를 암시하듯 공자가 말한 경구를 항상 유념하여 받들어서 준행했기에 그랬을 법하다.


“사람이 말을 하지 않을지언정 말을 하면 반드시 도리에 맞음이 있어야 한다” (夫人不信 부인불신 言必有中 언필유중) “어진 사람은 그 말하는 것을 참느니라” (仁者其言也訒 인자기언야인, 논어) 뿐만 아니라, 그런 공자의 가르침에 덧붙여 더 말할 것이 없어서 그러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공자의 ‘말’에 대한 많은 언명 중에 특히 강조되는 바는 ‘사이비’(似而非)한 언설의 경계일 것이다.


“겉은 비슷하나 속이 전혀 다른 것은 미워하노니, (중략) 말 잘하는(입이 싼) 자를 미워하는 것은 정의를 어지럽힐까 두려워해서요, 말 많은 입을 가진 자를 미워함은 믿음(信 신, 진실)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해서이다.”(惡似而非者 오사이비자 惡佞恐其亂義也 오녕공기란의야 惡利口恐其亂信也 오리구공기란신야. 공자)


“말이 곧 그 사람”(言卽其人 언즉기인)
-인성교육·전인교육, ‘의식혁명’으로서의 철저한 ‘언어교육’ 실행


그리고 주목하건대, 성경이 가르쳐 말하는 ‘지언’은 가히 파격이고 충격이지만 경이롭기 그지없다. 구약성서 창세기에, 하느님(창조주)이 ‘말’하니 그대로 되었다. 그렇게 하여 하느님이 보기에도 좋은 천지창조가 이루어졌다. 더욱이 신약성서 요한복음 첫 장에 의하면, ‘말’로써 이 세상 만물이 생겼다. 이처럼 성서의 문맥자체는 물론 그리스도교 신학, 교의로는 ‘말’(logos, 지혜)이 창조주·구세주(God, Jesus Christ)이다. 그러므로 인간이란 아주 간단히 쉽게 말해서 ‘신’(神, 하느님)을 닮은 존재인 바, ‘말이 곧 그 사람’(言卽其人 언즉기인)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존엄성’은 말할 나위없고, 어떤 말이건 그 자체가 말하는 사람 자신, 즉 ‘사람 됨됨이’(인성, 인격)를 그대로 나타낸다 할 것이다. 그것은 앞서 말한 신학이나 이론으로써 설명하고 주장하지 않더라도 경험적 사실을 통하여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공감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터이다. 그런 점에서 국민 모두가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되고, 예의주시하여 반드시 판별의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이 지도자·위정자들의 ‘말’(言辭 언사)이다.


성경에서 ‘말이 곧 그 사람’이라는 가르침을 알았으니 흔히 말하는 ‘인성’(人性)과 ‘언행일치’(言行一致)가 이와 일맥상통하는 바, 그 중요성을 새로이 인식하여 각성하고, 실천해야 할 줄 안다. 맹자 역시 공자가 말한 ‘사이비’(似而非, 비슷하나 진짜가 아님)한 언사를 경계하여 되새김과 아울러 ‘지언’을 말하면서 결론 내렸듯이 ‘말’(언어, 언사)이 위정자의 기본덕목이며 특히, 정치는 거의가 ‘말’로써 이루어지므로 말이야말로 정치와 국정 수행의 바로미터이다.


그런데도, 맹자의 ‘지언’에 비추어 지도자·위정자로서의 자질 부족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아집과 편견과 독선에 눈먼 자들, 그 우매한 자들의 망언, 극언, 독설, 허언, 사설(邪說) 등등, 이른바 막말·거짓말·허튼소리의 ‘언어폭력’이 정치판에 난무한다. 그래서 부언컨대, 누구인가 말한 경구처럼 모든 “폭력은 기강과 질서를 무너뜨린다!” 하여, ‘지언’(知言)하지 못하고 ‘언품’(言品)이 밑바닥인 위인들은 결단코 국가·사회의 리더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


그렇기도 하거니와, 또한 “말(言 언)은 발음상의 말(馬 마)과 비슷한 성질이 있다. 애정을 기울여 채찍질하고, 쓰다듬고, 인내하지 않으면 야성이 길들여지지 않는다” (정숙자, ‘시와 인연’) 따라서 무릇 짐승이 아닌 사람이라면 누구이든 어려서부터 인성교육·전인교육, 곧 ‘의식혁명’의 차원에서 ‘언어교육’(言敎 언교, 말 가르치기), ‘언어순화’, ‘언행일치’, ‘토론학습’ 등을 비롯한 ‘지언’의 함양에 힘써야 할 것이다. 특히 말을 앞세워 지도적 역할을 하며, 솔선수범해야 하는 위정자들은 더욱더 그래야 한다. 게다가 신(하느님)의 ‘말’이 창조의 무한한 힘을 가졌듯이 ‘지언’에 의한 바르고 참된 말, 그 ‘살아있는 말’은 강한 힘이 있으니 더 말할 나위 없지 않은가.


“성실하게 수양하고자 하면 빈말(虛言 허언)을 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自不妄語始 자불망어시. 소학외편). “발걸음을 잘못 내딛는 것은 고칠 수 있지만, 혀를 잘못 놀린 실수는 결코 돌이킬 수 없다” (벤저민 프랭클린). 그러므로 “말하기 전에 세 번은 생각하여야 한다” (三思一言 삼사일언. 공자)


“착한 사람들은 첫째 최상의 말을 하고, 둘째 법(法, 도리)을 말하고 비법(非法)은 말하지 않으며, 셋째 좋은 말은 하고 좋지 않은 말은 하지 않으며, 넷째 진실을 말하고 거짓은 말하지 않는다” (수타니 파타). 따라서 “참으로 아는 사람은 말이 많지 않다” (知者不言 지자불언. 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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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7/07 [22:26]  최종편집: ⓒ 서울의소리
 
당신은 사람을 판단할때 말을 중히 여기는 모양이지만 고양이 17/07/08 [11:54] 수정 삭제
  나는 사람을 판단할때 말도 참고사항이 될수는 있으나 현실에서의 구체적인 행동으로 사람을 판단하지요. 번지르르한 말을 잘 하는 사람일수도 행동에서는 사악할 사람이 제법 있지요. 트럼프와 클린턴을 비교하자만 사담후세인의 처형을 보고 아이처럼 좋아라 하는 클린턴의 화면을 보자하니 트럼프는 허풍쟁이라는 느낌밖에는 안들더이다. 아직까지 트럼프가 새로운 전쟁을 벌이지 않는 것을 보면 미국이 역대개통령중에서는 그래도 인성이 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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