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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 교수]'표적증세', '세금폭탄' 구차하기 짝이 없는 증세 반대의 논리

고작 3조 8천억원의 세수 증가로 '세금폭탄'이라는 선동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는 정치인을 보면서 좌절감이... 

이준구 교수 | 기사입력 2017/07/23 [04:53]

[이준구 교수]'표적증세', '세금폭탄' 구차하기 짝이 없는 증세 반대의 논리

고작 3조 8천억원의 세수 증가로 '세금폭탄'이라는 선동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는 정치인을 보면서 좌절감이... 

이준구 교수 | 입력 : 2017/07/23 [04:53]

얼마 전 이 게시판에 이왕 증세를 하려면 최고소득세율을 50%까지 올리자는 제의를 한 바 있습니다.

 

  이준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최근 정부가 내비친 안을 보면 5억 이상의 초고소득에 대한 세율을 고작 2% 포인트 올린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제시한 안에 비하면 ‘언 발에 오줌 누기’식의 증세지만 벌써 ‘표적증세’니 ‘세금폭탄’이니 하는 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 내가 그 제안을 할 때 이 정부가 그걸 선뜻 받아들이리라고 기대한 건 절대로 아니었습니다. 정치적으로 볼 때 혁명적 상황이 도래하지 않는 한 그 정도의 획기적 증세는 감당하기 힘들 게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고작 이 정도의 증세를 갖고 보수언론과 보수야당이 그 호들갑을 떠는 상황에서 그런 결단을 내리기는 어려웠을 것이란 점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내가 제시한 50%의 최고소득세율은 지금 바로 이를 실천에 옮기라는 뜻이 아니라 장기적 과제로 삼자는 뜻이었습니다.


‘감세는 미덕, 증세는 악덕’이라는 사이비 종교를 신봉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을 향해 최고소득세율을 그 수준으로 높이면 왜 안 된다는 것인지 말해 보라고 도전장을 던진 셈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경제에 도대체 어떤 부작용이 나타난다고 믿기에 한사코 반대하는 것인지 그 근거를 대라고 요구한 것이지요.


신자유주의의 맹목적 추종자들이 내놓는 답은 보지 않아도 뻔합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최고소득세율을 낮추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는데 우리만 올리면 어떡하냐는 대답이 나올 게 분명합니다.


그들의 머리에는 최고소득세율을 그 수준으로 올릴 때 경제에 어떤 영향이 올 것이라는 그림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아무런 논리적 근거도 없이 무턱대고 다른 나라의 예를 들어 반대하고 있는 셈이지요. 

정부가 내비친 증세안에 대한 반대는 초대형기업에 대한 법인세율을 3% 포인트 올린다는 데서 더욱 심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초고소득자에 대한 증세를 반대할 뚜렷한 명분이 없는 반면, 초대형기업에 대한 증세는 투자가 위축된다는 등의 명분을 찾기가 쉽기 때문일 거라고 짐작합니다.


실제로 이런 반대 논리는 그것이 옳고 그리고를 떠나 상당한 영향력을 갖는 것이 사실입니다.  한 보수언론은 정부가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는 정부가 법인세율을 올린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왜 말이 되지 않는다는 거죠?

도대체 어떤 근거에서 법인세율의 인상이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저해한다는 결론을 미리 내놓고 그런 말을 하는 건가요?

내가 늘 지적하는 바지만, 일반 사람들도 그렇고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도 그렇지만 법인세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법인세는 기업 활동의 결과 발생한 이윤의 일정 비율을 세금으로 거둬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법인세율을 올리거나 내리는 것 그 자체가 투자에 영향을 줄 이유가 없습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 보기로 하겠습니다.
어떤 투자계획이 있는데 이를 실천에 옮기기는 데 5천억원이 든다고 합니다. 이 투자계획을 실천에 옮길 경우 예상되는 미래의 수익을 현재가치(present value)로 환산하면 6천억원이라는 계산이 나왔습니다.

이것은 그 투자계획을 실천에 옮길 경우 20%의 수익률이 예상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그 투자계획을 실천에 옮기기로 결정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경제학원론에서 설명하고 있는 투자 여부의 결정기준입니다.
현실에서 투자를 결정하는 과정은 매우 복잡하게 보일 테지만, 기본적으로 이 원칙에 기초해 있습니다.

만약 법인세율이 20%라면 그 투자계획에서 기대되는 순수익률은 16%로 떨어집니다.
수익률을 r, 법인세율을 t라고 할 때, 세후(post-tax) 순수익률은 (1- t ) r 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당연히 그 투자계획은 실천에 옮겨집니다.
순수익률이 0보다 큰 이상 투자를 하는 쪽이 더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법인세율이 25%로 오르면 어떻게 될까요?
이때 세후 순수익률은 15%로 떨어지지만 그 투자계획을 실천에 옮길 가치가 있다는 점에는 아무 변화가 없습니다. 수익률이 0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한 실천에 옮길 가치가 있다는 판단이 뒤집어져야 할 아무 근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법인세율 그 자체와 투자 사이에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소위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 중에도 이 점에 대해 무지한 사람이 너무나 많은 실정입니다.
보수언론과 보수 정치인들의 반대 논리는 바로 그런 무지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법인세율의 변화가 간접적으로 투자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습니다.
기업은 이윤 중 법인세를 내고 난 나머지를 주주에게 배당해 주거나 사내유보(retained earnings)로 기업 안에 남겨 둡니다. 사내유보를 해두는 이유는 앞으로 투자계획을 실천에 옮길 때 필요한 자금으로 쓰려는 데 있는 거지요.

그렇기 때문에 법인세율의 인상이 사내유보를 감소시키고 이로 인해 투자가 줄어들 가능성은 있는 겁니다. 

 

만약 우리 기업들이 좋은 투자계획은 많은데 이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운 실정이라면 법인세율 인상이 투자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분명 가져올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잘 아시듯, 지금 우리 기업들은 어마어마한 자금을 깔고 앉아 있으면서도 투자를 하지 않고 있는 상황 아닙니까?

자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좋은 투자계획이 없어 투자를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법인세율 인상에서 투자 부진의 이유를 찾는 것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영어 표현에 개가 “엉뚱한 나무를 올려다보며 짖는다.”(barking up the wrong tree)라는 게 있습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 너무나도 잘 들어맞는 표현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일랜드나 트럼프가 꿈꾸는 미국처럼 법인세율을 상식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낮춘다면 투자에 가시적인 변화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다른 나라들에 비해 법인세율이 절반도 안 된다면 해외의 투자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투자 증가가 아무런 대가 없이 공짜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아닙니다.

“이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There is no free lunch.)라는 말이 있듯, 그와 같은 법인세율의 대폭 인하는 나름대로 대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모든 나라들이 아일랜드나 트럼프를 뒤따르지 않는 것은 그 대가가 만만치 않다고 보기 때문이 아닐까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법인세율을 2, 3% 포인트 정도 조정하는 것이 투자에 이렇다 할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만약 투자가 법인세율의 오르내림에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한다면 MB정부가 3% 포인트 내렸을 때 투자의 홍수가 일어났을 것 아닙니까?


법인세율을 낮추어도 투자가 전혀 늘어나지 않은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서도 법인세율을 원래의 수준으로 되돌리면 투자가 줄어들 것이라고 아우성을 치는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요?

나는 정부가 증세 대상의 초점을 초고소득자와 초대형기업에 맞춘 것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정책은 어디에 그 초점을 두느냐에 따라 그 효과가 크게 달라지는 법인데, 증세의 초점을 초고소득자와 초대형기업에 맞춘 것은 당연한 선택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사회복지망 확충하고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더 많은 지출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여유가 많은 계층에서 좀 더 많은 세금 부담을 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닌가요?구태여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당연한 조세정책의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당연한 선택을 두고 '표적증세'라는 말로 민심을 휘저으려는 것은 떳떳한 행동이 아닙니다. 고작 3조 8천역원의 세수 증가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세금폭탄'이라는 선동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는 보수야당 정치인을 보면서 우리 정치는 아직 멀었다는 좌절감이 밀려옴을 느꼈습니다. 

 

출처 : 이준구 전 서울대 경제학 교수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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