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과 ‘백사 이항복’, 북·미대립과 ‘안보불안·위기’의 극복

모든 위정자가 정파와 이념을 넘어 북한 핵도발로 인한 ‘안보불안 해소, 국가위기 극복’에 매진해야 한다

권혁시 칼럼 | 입력 : 2017/10/07 [01:31]

칼에는 대장부의 기상이 서려있고
거문고는 천고의 소리를 품었어라
(劍有丈夫氣 검유장부기 琴藏千古音 금장천고음. 이항복, ‘백사집’)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지와 해학, 용감하고 호방한 기개와 번득이는 뛰어난 지혜를 두루 갖춘 그릇 큰 위정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이 단시(短詩)를 지었던 오성대감(鰲城大監)으로 불린 백사 이항복(白沙 李恒福)이다. 자는 자상(子常), 선친은 이몽량(李夢亮, 형조판서·우참찬)이며, 권율(權慄, 도원수)의 사위다. 이 시는 여덟 살 나이의 어린 그가 아버지의 말씀을 따라 ‘칼과 거문고’를 소재로 지어서 쓴 글이다. 


훗날 손녀사위가 된 소년 이항복이 권철(權轍, 영의정) 대감의 방문 창호지를 뚫고 주먹을 밀어 넣었던 감나무 소유권 담판과, 혼담 중에 아랫도리를 벗어 내렸던 일화는 유명하다. 이는 일찍이 앞의 시에서도 명철한 기상과 원대한 포부를 유감없이 드러냈듯이 어린 시절부터 타고난 자질이 대단하였음을 보여준다. 게다가 조실부모하는 불운, 그 고통의 처절한 연단은, 그 ‘큰 그릇’(대기 大器)을 깨지지 않도록 단단하게 구워냈을 터이다(아버지는 아홉 살, 어머니와는 열다섯 살에 사별하였다). 


그런 이항복은 다섯 살 아래인 이덕형과는 ‘신언서판’(身言書判)의 자질과 학문에 매진하는 학구열, 그로써 추구하는 ‘위성지학’(爲聖之學)의 심원한 이상이 동일하였다. 그래서 당리당략, 당색을 완전히 탈피하여 일심동체처럼 바른 정치를 이루고(政者正也 정자정야), 옳은 정책을 펴는 데 함께 힘을 합쳐 국정수행에 정진하였다. 이항복은 누구보다도 붕당, 계파이기주의를 혐오했는데, 국태민안과 국리민복을 실현해야 할 정치가 파행을 일으키는 근본원인으로 인식하였기에 그러했다.

 
그는 언론창달의 책임자인 대사간 이발(李潑)이 자신의 책무를 소홀히 하여 붕당을 짓고 이를 부추기므로 체직(遞職, 전직)시키기를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이로 인하여 요직의 실권자로부터 질시, 질타를 당하게 되자 (병고를 핑계대어) 사직상소를 세 번이나 올린다. 그러나 이항복의 그런 정의감과 기개가 이를 전화위복케 하여 사직은 불허되고, 오히려 저작(著作)에서 박사(博士)로 승진하였다. 


이때로부터 이항복은 이덕형과 더불어 비슷한 반열의 관직을 맡으며 국정의 중심에 서서 그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데 최선을 다한다. 조선 최대의 국란인 ‘임진왜란’(壬辰倭亂) 발발 시, 도승지 이항복과 대사헌 이덕형은 의기투합하여 미증유의 위난지경을 앞장서서 헤쳐 나갔다. 병권을 장악, 전쟁을 지휘하는 병조판서의 직무를 무려 다섯 번이나 번갈아 수행하고,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 또한 교대로 맡으면서 국사를 이끄는 데 몸을 사리지 않고 마음을 다하여 헌신하였다.

 

임진왜란 발발의 전운이 감돌듯 우리나라는 지금, 북한 핵도발로 인한 미국과 북한의 극한 대립으로 국방·안보가 극도의 불안지경에 처해 있다. 잘잘못을 가리기에 앞서 정부와 여야정당, 군부를 필두로 온 국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의연하고도 침착하게 대처해야 할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국가안보에 누구보다 앞장서서 크게 기여해야 마땅한 제1 야당이 그 본분과 소임을 망각하고 사사건건 시비를 일삼는다. 그토록 불안을 증폭시키고 분열을 조장하여 내분과 자중지란을 일으키려드니 우려를 넘어 통분을 금치 못할 노릇이다.


“코미디 같은 발상이다. 나라를 지킬 능력도 안 되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함부로 하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당리당략적 발설이라 해도 한국정부의 ‘전시작전권’ 행사 의지에 대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시비가 더없이 무례하고 자기 비하적이다. 대통령에 대한 비난의 언사가 그렇고, 남한의 군사력·방비태세에 대한 불신과 냉소는 자가당착을 넘어선다(만일, 지금껏 북한의 30배에 달하는 막대한 국방비를 쏟아 붓고도 그렇게 군비(軍備)가 허술하다면, 과연 누구를 탓해야 하겠는가?)


과거에 미국의 억지로 인하여 북한의 도발에 강력 대응이 불가능했던 사실과, 모든 국가의 군대는 자체적인 지휘, 작전권을 행사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동맹국과는 역할 분담을 통해 얼마든지 지원·연합하여 군사작전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을 제대로 알아야 할 것이다. 전시작전권보다 더욱 중요한 대목은 고질화된 미국 의존성을 탈피한 ‘자주국방’의 의지와, 그 실행 능력의 강화이며, 동시에 한국과 미국의 국가 간 긴밀한 군사동맹과 유기적인 공조체제를 공고히 하는 것이다. 


이는 또한 ‘전술핵 재배치’ 문제의 해결책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자유한국당(홍준표 대표)은 전술 핵무기 조기배치를 위한 1천만인 서명운동을 벌이고, 미국을 방문하여 이를 각계에 호소할 계획을 하고 있다. 그러나 간과치 말아야 할 것은 한반도의 전술핵 배치에 대한 ‘펜타곤’(pentagon, 미국군부의 본부)의 분명하고 일관된 입장이다.이를 잘 살펴서 알지 않으면 안 된다”(不可不察也 불가불찰야. 손자병법)


그것은 과거의 ‘냉전(cold war)시대’에 미국이 남한에 대거 포진시켰던 전술 핵무기가 대북방위 목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런 까닭에 미국·소련의 군축협정이 체결되자 한 때는 9백여 기가 넘었던 다종다양한 전술 핵무기를 전면 철수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거듭 말하거니와 미국의 전반적인 군사전략의 핵심적 의도를 적확하게 인식하여 이제는, 국가안보·국토방위의 미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를 점차적으로 줄여 나아가야 한다. 아울러 이에 상응한 ‘최첨단 신무기’(비핵무기)의 도입, 개발을 비롯하여 자체 군사력을 증강시킴으로써 자주국방 태세를 한층 더 강화해야 할 것이다.

 

이항복처럼 정파와 계파를 아우르는 ‘큰 그릇’의 정치 리더십,
-공명정대한 정치적 신념과, 파당을 초월하는 용기와 지혜

 

 

조선시대 선조 초기 이래, 사색당파가 팔당으로 나뉘고 팔당이 다시 십육색으로 갈라졌다. 이처럼 위성지학을 추구하는 선비정신을 무색케 했던 정치의 분당은 정파, 학맥, 문벌 등등, 명분과 실리가 복잡다기하게 얽혀 있었으나 정치적 신념과 지향, 특히 원칙주의(강경파)와 보편주의(온건파)의 대립이 그 근원이고 핵심이었다. 동서 당쟁으로 외적의 침략을 막아내지 못하여 피난 중인데도 당파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언성을 높이며 분쟁이 격렬하게 벌어지는 조정에서 이항복이 초연히 일어서 일갈하였다. 


“소인이 참으로 큰 실수를 하였습니다. 이다지도 싸움 잘하는 동인들이 동해를 막게 하고, 서인들은 서해를 막게 하였다면 왜적들이 어찌 이 땅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겠습니까. 뒤늦게야 이를 깨달았으니 원통합니다” 


이항복은 율곡 이이의 문하로 ‘서인’이었고, ‘오한지교’(鰲漢之交, 관포지교 管鮑之交를 빗댄 돈독한 오성과 한음 漢陰의 우정)의 이덕형과, 서애 유성룡(西崖 柳成龍), 오리 이원익(梧里 李元翼)은 ‘남인’이었다. 그러나 이항복은 파당에 개의치 않고 임진왜란의 위난지경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한 일념으로 이들과 혼연일체가 되어 맡은바 소임을 다하는데 분골쇄신, 진력하였던 것이다.


이 같은 충정과 노력이 큰 힘이 되어 임진·정유재란은 조선의 승리로 끝났다. 그리고 기나긴 7년 전쟁으로 피폐할 대로 피폐해진 민생과 국력을 회복시키는 데 진력해야 했다. 하지만 전란 중에 유성룡이 화친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북인들이 격렬하게 탄핵하였고, 이원익이 유성룡을 두둔한다 하여 그마저 탄핵하려 들었다. 이항복은 북인들의 이 같은 행태가 몹시 부당하다고 판단하여 서슴지 않고 상소하였다.


언제나 스스로 말하건대, “고금 천하에 나라를 지키고 적을 막을 방도란 전(戰), 수(守), 화(和) 이 세 가지 밖에 없으니 이미 싸울 수 없고 지킬 수도 없어 그 이하를 논하건대 오로지 저들이 요구한 화의를 받아들여 화급을 면하는 길 뿐이다”하였습니다. (중략) 이제 크게 척화(斥和)의 의리를 내세워 기강을 바로 잡는다 하여 순서대로 제거한다면 신이 당연히 먼저 받아야 하는데도 입을 다문 채 구차하게 행동하여 입을 씻으며 형적을 감추면서 요행이 면하기를 바란 것을 실로 크게 부끄럽게 여기는 바입니다(이항복, 선조 32년 5월 ‘선조수정실록’).


전쟁 중에 적군과의 화친을 도모한 것은 전황을 살펴서 나라를 위난에서 구하기 위한 병법, 즉 전략적 선택, 결정이었음을 명확하게 천명하였다. 동시에 이에 동조한 자신을 (당파를 가릴 것 없이) 우선하여 파직해야 한다는 소신을 기탄없이 피력함으로써 만조백관을 숙연케 하였고, 군신 모두가 파당을 넘어 국가의 재건에 합심 협력하는 기풍을 진작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백사 이항복의 자질과 정치적 행적, 그 정신과 신념을 상세히 구체적으로 살펴본 까닭은 지금, 임진왜란을 당하였던 그 시대의 조선과 다름없는 현상을 목도하여 심히 우려되므로 해서이다. “국가안보 의제를 두고 제1 야당이 걸핏하면 어깃장을 놓는 것은 부적절하다”(9월 30일자 세계일보 사설) “안보 노선을 놓고 여야도 갈라져 있는데 청와대마저 그 내부가 동맹파·자주파로 갈려선 안 된다”(9월 30일자 조선일보 사설) 


민주정치는 국정의 여타 사안과 문제에 대해서 정당한 반론제기와 비판, 다양한 의견 제시가 전적으로 필요하고, 허용되어야 마땅하다. 그리해야 최상의 결론과 가장 적절하고 유효한 대안을 도출할 수 있다. 그러나 일촉즉발의 안보위기를 당해서는 국군통수권자(대통령)과 국방최고책임자(장관)의 일치된 방위전략을 여야, 정파를 떠나서 국민 모두가 전적으로 신뢰하고, 군대는 이를 따라 일사분란하게 전술과 작전을 수행하는 데 만전을 기해야만 하는 것이다. 

 

대한글씨검정교육회

권혁시 이사장

더욱이 자유한국당 소속의 정치인들은 국정농단·국정파탄과 정치파행의 그 크나큰 대과(大過)로 인하여 저들의 수장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탄핵, 파면당한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정계에서 물러나거나, 아니면 개과천선, 환골탈태를 위해 참회록을 쓰면서 유구무언, 은인자중하여 차기 총선에서 국민의 최종심판을 받기까지 지극히 근신하는 것이 현명한 처신일 것이다.


여하간, 그 수가 많을수록 더 좋겠지만 몇 사람, 아니 단 한 사람만이라도 임진왜란에 슬기롭게 대처했던 ‘큰 그릇’의 정치를 한 백사 이항복을 비롯한 선열들처럼 담대한 기개와 용기, 그리고 뛰어난 지혜와 지략, 그 공명정대·멸사봉공의 리더십을 실천해주길 간절히 바란다. 부디 그리하여 모든 위정자들이 당리당략과 계파이기주의를 버리고 일심동체가 되어 국가위기를 극복하고, 안보불안을 해소하는 데 최선을 다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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