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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를 읽어라...스승이 그 속에 있다

관우가 조조의 목을 베었다면...

서울의소리 | 기사입력 2017/10/15 [15:27]

삼국지를 읽어라...스승이 그 속에 있다

관우가 조조의 목을 베었다면...

서울의소리 | 입력 : 2017/10/15 [15:27]
6·25 전란 당시 피난 갔던 시골 큰 집 사랑방 서재에는 각종 책이 있었다. 그중에는 삼국지, 열국지, 수호지, 서유기, 홍루몽도 있었는데 필사본이었다. 붓글씨로 한지에 옮겨 쓴 필사본 중에 처음 펼친 것이 ‘삼국지연의’다. 삼국지는 중학교 2년생의 눈을 사로잡았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한지 냄새나는 삼국지에 코를 묻었다.
 
삼국지의 무엇이 나를 사로잡았을까. 삼국지 속에는 인생의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 인간이 간직해야 할 보편적 가치와 진실과 버려야 할 온갖 부조리가 녹아 있었다. 흔히들 삼국지 하면 유비·관우·장비의 도원결의를 떠올린다. 의리의 표상처럼 전해 오는 도원결의는 오늘의 정치에서도 소중하게 기억되어야 한다. 그 밖에 간신의 모략과 배신 등 잡다한 인물이 나온다. 그들도 오늘의 현실에서는 하나의 교훈이다.

 
공명의 출사표. 대의와 명분
 

충성은 모든 가치의 으뜸이었다. 왕은 국가의 상징이며 충성은 애국이고 애족이었다. 불충은 국민에 대한 배신이었다.
 
삼국지를 일관되게 관통하고 있는 것은 대의와 의리와 충성이다. 유비·관우·장비의 도원결의를 시작으로 유비를 따르며 충성을 다 하는 측근들에게서 충성을 빼놓는다면 남는 게 없다. 오늘의 정치에서는 배신이 정석인 것 같다. 정치인들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과의 관계다. 이해득실로 국민을 배신한 자들은 삼국지를 읽어라. 열 번도 필요 없다. 한 번이면 된다.
 
제갈공명은 삼국지의 중심을 이루는 중요한 인물 중에 하나다. 공명이 없었다면 유비의 존재도 삼국지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조는 유비의 책사인 서서의 모친을 볼모로 귀순을 강요한다. 천하의 효자인 서서는 유비를 떠나며 천하의 인재인 제갈공명을 천거한다.
 
유명한 삼고초려는 바로 공명을 얻으려는 유비의 진심이다. 천하의 인물들이 구름처럼 모여든다. 신뢰다. 동서고금을 통하여 신뢰를 넘어서는 설득력은 없다. 오늘의 정치가 가장 배워야 할 가치다. 전과 14범이 대통령이 되는 나라, 친일의 후손들이 권력을 지배하는 이 땅에서 그들의 필독서는 삼국지다.
 
공명의 출사표에는 뜨거운 애국심과 충성심이 깊이 배어 있다. 성공을 기약하지 못하면서 출전하는 그의 출사표는 눈시울을 적신다. 출사표 그 어디에도 개인의 공명심은 없다. 공명의 출사표를 읽으면서 문득 문재인이 떠오르는 것은 근거 없는 애정인가. 그가 국회의원과 대통령에 출마하면서 국민에게 보낸 출사표에서 공명의 출사표를 느낀다. 사심을 느낄 수가 없었다.
 
정치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는 그의 결심을 흔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국민에 대한 충성이었다. 뜻을 이루지 못한 노무현의 뜻을 이어받기 위해서며 국민을 위해 한 몸을 던진다는 비장한 결의라고 생각한다. 오장원에서 삶을 마감하는 공명은 비록 꿈은 이루지 못했다 해도 후세에 큰 교훈을 남겼다. 1,800여 년 전 공명이 올린 출사표를 정치인들은 마음을 비우고 읽어보라.
 
신은 본래 포의(布衣)로 몸소 남양에서 밭을 갈고 있었습니다. 어지러운 세상에 목숨이나 보전하기를 바랄 뿐 조금이라도 이름이 제후의 귀에 들어가 그들에게 쓰이게 되기를 바라지는 않았습니다. 선제께서는 신이 더럽고 보잘것없음을 꺼리지 않으시고 귀한 몸을 굽혀 신의 초가집을 세 번이나 찾으시고 저에게 지금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을 물으셨습니다. 이에 감격한 신은 선제를 위해 개나 말처럼 닫고 헤맴을 무릅썼습니다.
 
두보는 공명의 출사표를 이렇게 기렸다.
 
승상의 사당을 어디서 찾을꼬. 금관성 밖 잣나무 우거진 곳 섬돌에 푸른 풀은 절로 봄인데 잎 사이 꾀꼬리는 부질없이 노래하네. 삼고초려에 천하통일 뜻을 품고 두 조정을 받들 던 늙은 신하의 마음 군사를 일으켜 이기기 전에 먼저 죽으니 길이 후세 영웅들 눈물로 옷깃을 적시네.
 
관우가 조조의 목을 베었다면
 

조조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르다. 적벽해전에서 패하고 겨우 살아난 조조는 쥐처럼 도주하다가 화용도 외골목에서 관우에게 잡힌다. 절체절명의 외통수에서 조조는 관우에게 두 손 모아 빈다. 한 때 관우를 포로로 했다가 놓아준 은혜를 들먹인 것이다. 관우는 조조를 살려준다. 준엄한 군법의 시행을 알면서도 관우는 은혜를 갚는 것이다.
 
공명은 관우가 조조를 살려줄 것을 미리 알았지만, 관우로 하여금 과거의 은혜를 갚도록 한 것이다. 이 또한 배울 점이다. 삼국지에서 제갈공명의 존재는 가히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제갈공명을 넘어서지 못한 주유는 병들어 임종을 맞이해 하늘을 우러러 탄식한다. “하늘은 이미 주유를 내시고 어찌 또 제갈량을 내셨습니까?” 한국에서도 이 같은 한탄을 하는 정치인이 많을 것이다. 이인제 이회창이 그럴 것이다. 혹시 홍준표도 그런 생각을 할까. 꿈 깨야 할 것이다. 오를 나무를 쳐다봐야지.
 
삼고초려로 공명을 얻었듯이 유비의 부하 사랑은 지극했다. 상산 조자룡이 유비의 아들 ‘아두’를 품에 안고 적진을 뚫고 돌아왔을 때 유비는 아들을 땅에 던졌다. 자식 때문에 장수를 잃을 뻔했다는 것이다. 이런 주군을 위해 목숨을 아낄 장수가 어디 있겠는가. 한국 정치에서도 이런 지도자가 그립다.
 
읍참마속(泣斬馬謖)을 모르는 정치인은 없을 것이다. 한국 정치에서는 쥐나 개나 읍참마속을 말한다. 과연 그런가. 법의 공정한 집행은 국가 존립의 근간이다. 그러나 어떤가. 오늘의 한국 정치에서 법이 과연 공정하게 집행되고 있는가. 국민의 머릿속에는 너무나 많은 이름이 자리 잡고 있다. 김기춘·우병우·원세훈·김관진을 공정하다고 하는 국민이 있는가.
 
흔히 MB를 가리켜 전과 14범이라고 한다. 그가 아무리 ‘믿습니까’를 외쳐도 국민은 믿지 않는가. 그런 인간을 국민은 대통령으로 선출했고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놨다. 그러면서 참회는 고사하고 국민을 협박한다. 이제 결코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국민의 분노가 용서하지 않는다.
 
사람이 먼저다
 
유비 63세, 관우 59세, 장비는 57세에 세상을 하직했다. 세상사 마음대로 되는 것은 없다. ‘오장원’에서 54로 삶을 마감하는 공명은 ‘위연’의 배신을 미리 알고 제거할 비책을 준다.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다’라는 신화를 남긴 제갈공명. 그러나 그도 운명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광대무변한 광야와 같은 삼국지에서 등장하는 영웅호걸들은 헤일 수없이 많다. 그러나 이들도 운명을 거스를 수가 없다. 공명·관우·장비의 최후를 보면서 문득 노무현을 생각한다.
 
‘3김’이라 불리던 김대중·김영삼·김종필도 이제 김종필만 남았다. 지금 인간 반열에도 오르지 못할 무리가 정치의 탈을 쓰고 국민을 기만한다. 14개의 가면을 쓰고 마지막 발악을 하는 인간은 아직도 운명이 자신을 비켜 갈 줄 믿지만 이미 운명은 손짓하고 있다.
 
정치는 사람이 한다. 그러나 아무 인간이나 정치를 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가 무엇인가. 국민이 편안하게 마음 놓고 살도록 하는 것이다. 수백 명의 어린 죄 없는 생명을 바닷물에 수장하고도 참회를 모르는 것은 정치가 아니다. 멀쩡한 강에 20조 원의 국민 혈세를 쏟아 부은 것도 정치가 아니다. 나라를 지키는 군인을 정치댓글에 동원하는 것도 정치가 아니다. 국정원이 돈을 마구 뿌려 선거에 개입한 것도 정치가 아니다. 언론을 장악해 민심을 호도하는 것도 정치가 아니다. 대한민국이 아니라 ‘국정원민국’이다.
 
웅덩이에 물은 겉으로 보기에는 깨끗할지 모르나 휘저으면 흙탕물이 된다. 가라앉았던 오물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지금 세상은 어떤가. 대한민국이란 땅이 오물 구덩이처럼 느껴진다. 파헤치니 드러난다. 그냥 덮어두자는 세력이 있다. 그냥 넘길 수는 없다. 힘들어도 치워야 한다. 적폐청산이 없이 개혁은 공염불이다.
 
이 시대에 유비는 누구인가. 누가 공명인가. 누가 관우고 장비인가. 누가 ‘오호장군’인가.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홍준표가 이명박 관련 BBK 가짜편지를 조작하지 않았다면 이명박은 어떻게 됐을까. 화용도에서 관우가 조조를 베어버렸다면 중국의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이 기 명(팩트TV논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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